190화. 염화의 마탑(3)
블레어는 지금 기분이 좋았다.
혹시나 기대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몸은 마탑에 있지만, 귀는 대륙 전체에 활짝 열어둔 그였다.
공국의 소식도, 제국군의 움직임도.
이미 모두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잘 안다.
지금 제국이 누구를 가장 신경 쓰고 있는지.
놀랍게도 그건 한 나라도, 집단도 아니었다.
블레어의 기준으로는 한낱 핏덩이에 불과한 어린아이.
“…….”
허나, 다시금 그 아이를 재회한 오늘은, ‘과연’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니, 감탄이 아니라 이제는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전신으로 덮쳐 드는 이 묵직하고도 음침한 기운은, 감히 재능이라는 이름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마나와는 명백히 다른 힘.
이건 ‘마기’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심연과도 같은 흑색의 파도는 일시에 주변을 휩쓸었다.
탑 내부에 순식간에 어둠이 잠식했다.
그 안에 삼켜진 사람들은 신체의 오감을 잃고 아무런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무력한 먹잇감처럼.
“…마나와는 완전히 극상성인 마기라지만, 어찌 이런 기현상까지 일으킬 수 있는 게지?”
물론, 블레어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까마득히 초월했으니까.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기 중의 마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진짜 문제는 그 이외의 것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냄새는 물론이고, 아무런 촉감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 깊디깊은 심해(深海)에 잠긴 사람마냥 호흡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당장 그 자신이 이러할진대,
“흐어어어억!”
“수, 숨이…! 숨이 쉬어지지가… 컥!”
다른 일천의 마법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연이어 허공에 손을 휘젓는 이.
답답한 듯 가슴을 움켜쥐는 이.
서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지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이들까지.
“…그러고 보니…….”
순간, 블레어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오랜 기억 속에서 한 케케묵은 파편이 떠올랐기에.
마기를 기본으로 하면서, 이만한 수준의 인원들을 대상으로 위력을 가할 수 있는 능력.
그것도, 힘이 상당수 약해지는 중간계에서 이 정도 이능의 발현이라면…
“…칠죄종의 힘. 그래, 이제야 기억나는군. 암흑 필드인가?”
7대 죄악 중 식탐(食慾)의 권위, 암흑 필드.
그 효과는 익히 들어봤다.
주변의 마나는 ‘0’으로 수렴시키며, 특정 범위 자체를 ‘마계’와 똑같은 환경으로 바꾼다.
허나, 저 아이는 거기에 더 나아가 몇 가지 제 능력을 더 뒤섞은 듯했으니.
털썩! 쿵! 쿵! 쿵!
마치 인간으로 하여금 오감을 빼앗긴 듯한 착각을 주는 수준급의 환영 마법.
거기에 더한, 중력의 가중(加重).
일대의 무게를 점차 늘려가면서 대상자들로 하여금 천천히 죽음의 공포를 각인시킨다.
범위 내에 포함된 일천의 마법사들은, 자력으로는 절대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특히나 환영처럼 까다로운 주력은, 해당 마법의 수식을 깨우치지 못하는 이상 강제로 깨뜨리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으니까.
문자 그대로, 완벽한 늪이었다.
두둥실!
“이러면, 탑주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관문은 통과한 거겠죠?”
“…….”
바로 그때, 마주 허공 위로 떠오른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놀랍군. 아이야. 너도 2황자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었느냐?”
“…역시 그것도 알고 계셨군요?”
“무엇을?”
“2황자가 실은 마계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사실 말이에요. 그걸 알면서도 당신을 포함한 마탑은 제국과 손을 잡은 건가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제국이 아니라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지.”
“그 목적이 인류의 파멸은 아니실 텐데요? 2황자는 차기 제국을 이끌 지배자로 유력한데, 속이 시꺼먼 그가 앞으로 어떤 짓을 할 줄 알고요?”
“…내가 본 2황자는 충분히 통제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허나…….”
화르르르르륵!
순간, 블레어의 주변으로 뜨거운 화염이 타올랐다.
불꽃마저 삼킨다고 알려진, 진홍의 홍염(紅炎)이었다.
“너는 아닌 것 같군.”
“…이래서 연륜은 무시할 수 없나 봐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다시 묻지. 왜 그만한 능력을 지녔으면서, 테라 따위의 약소국에 붙어 있는 겐가?”
“그야…….”
찰나, 눈앞의 아이가 싱긋 미소 지었다.
적어도 웃음만큼은 여느 또래 아이와 똑같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작금의 제국에는 당신 같은 쓰레기들만 가득하니까요.”
“…….”
물론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달랐지만.
콰우우우우우!
다시금 사방에서 마기가 압박해 온다.
아무래도 시전자 본인은 암흑 필드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모양이다.
그 증거로, 눈앞의 아이는 여전히 제 마법들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재미있군.”
직후, 블레어의 입가가 완연한 호선을 그렸다.
지금 그는 무려 수십 년 만에 ‘호승심’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반드시 당신을 꺾을 겁니다, 염화의 마탑주. 당신 같은 쓰레기들이 없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요.”
***
파르르르르.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아귀를 애써 진정시켰다.
눈앞에 있는 것은 현 대륙의 명실상부 1인자.
수십만 마법사들 중 공식 서열 1위.
식탐은 마나를 옭아매는 성질을 지녔다.
마탑주들에게는, 상성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극독이라는 뜻이다.
다만 암흑 필드는 피아(彼我)의 구분이 없었다.
하니, 달리 아군의 지원 또한 기대할 수 없다.
당장 그 아타락시아 페르잔조차 팔짱을 낀 채 이쪽을 올려다보고만 있었으니까.
‘…그리 생각하니, 눈앞의 할아버지가 더 괴물로 보이네.’
외형은 고작 30대에 불과한 적발의 미남자.
허나, 실제는 일백의 나이를 바라보는 노괴.
그는 나를 상대로 어떤 신위를 선보일까?
…한데,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나조차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우습구나. 2번째 관문을 이미 통과했다고?”
“……?”
“이까짓 거, 그저 깨부수면 그만인 것을.”
“……!”
블레어 마탑주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 것과 동시였다.
웬 ‘와장창!’ 하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삽시간에 내가 걸어둔 중력과 환영 마법이 디스펠되었다.
“…안티 매직 필드?”
언젠가 나도 사용한 적 있는 고대 시대의 지식.
블레어 마탑주는 고작 손짓 한 번으로 제 능력의 일부를 드러냈다.
이런 건 7써클 마스터라도…
“…설마, 8써클?”
내 눈이 ‘흡’ 치켜떠졌다.
- 뭣들 하는가? 이 이상 마탑의 명성에 먹칠을 할 셈인가!?
직후, 마나가 담긴 우렁한 고성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지상의 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제정신을 차렸다.
“타, 탑주님을 지켜라!”
“전투 준비! 전투 준비이이이이이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허나, 아직은 괜찮다.
저들이 아직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까.
제약이 풀린 것은 고작 일신의 자유.
감각의 정상화.
마나는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두가 마법사였으니…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작게 중얼거린 내가 단번에 플라이 마법을 해제했다.
이미 마기와 마나의 치환이 자유로운 내게 암흑 필드의 효과는 무의미했다.
제가 쳐 놓은 덫에 제가 걸리는 머저리 짓은 할 수 없는 법이니까.
“배신자를 포박하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를 몸으로 실천이라도 하는 듯.
2층과 3층에 있던 마법사들이 하나둘, 계단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똑같이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적어도 지금만큼은 외형대로 어린아이에 불과한 아타락시아 페르잔을 사로잡는 것.
슈우우우우우욱! 쿵!
마침내 하강하던 내 몸이 지상에 안착했다.
그때까지도 블레어 마탑주는 여유롭게 이쪽을 굽어보고 있었다.
마치 제가 준비한 순서는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양.
지금부터, 나는 그 자신과 자만을 송두리째 뒤엎을 계획이다.
“플라이 마법이 풀렸다!”
“역시, 이런 공간에서는 제 놈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지?”
“고작 어린아이 둘이다! 두들겨 패서라도 무릎 꿇리도록! 우리는 무려 천 명이다!”
착각들이 하늘을 꿰뚫을 기세였다.
하여, 나는 곧장 몇 가지 마법을 전신으로 캐스팅했다.
이런 일은 초반 기선제압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도와주랴?”
“혼자서도 충분해요. 초월의 마탑주 님은 여기서 전투의 마탑주 님이나 좀 설득하고 계세요. 진짜 끝판왕은 아직 나설 생각도 없으신 모양이니까요.”
“그럴까? 그리고, 그냥 페르라고 부르라니깐.”
“……?”
“아니 뭐, 매번 초월의 마탑주 님, 초월의 마탑주 님, 정 없어 보이잖냐.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니고, 난 이제 탑에서도 배신자 취급이나 받는 마당인데.”
“…….”
제가 말하고도 어색했는지,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머리를 긁적였다.
“싫으면 말고…….”
“그럴게요, 페르.”
“……!”
찰나, 눈을 크게 뜬 그가 비틀린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님’자는 붙여야지?”
“친밀감은 이쪽이 훨씬 나은데요?”
“까분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화였다.
어느새 계단 쪽에서 수백의 사람들이 우리 둘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으니까.
웬 ‘으랴아아아아아아!’ 하는 괴성까지 지르면서.
“다녀올게요. 여기 가만히 계세요.”
“오냐.”
스팟!
나는 가볍게 땅을 박찼다.
양 주먹에는 묵 빛의 마기를 매단 채로.
8써클 마법사의 안티 매직 필드는 내게도 퍽이나 부담이었다.
다만, 그 본인이 직접 나설 생각은 없는 듯했으니…
…나는 마법이 통제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순수 육체 능력으로 저들을 압도할 생각이었다.
퍼어어어어어억!
“…쿨럭!”
최초의 충돌에 선두의 마법사가 수십 미터나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일명 몸통 박치기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양떼 사이에 끼인 한 마리의 ‘늑대’가 되었다.
퍼억! 퍼어어어억!
묵직한 타격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한 번의 주먹질에 셋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우수수 쓰러진다.
또 한 번의 발길질에 다시 둘의 사내가 피떡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마기는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 중 가장 패악적인 힘.
그 자체로 파멸의 성질을 품고 있으며.
스치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극강의 고통을 선사한다.
적어도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이곳의 마법사들은 지금, 그런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었으니.
“괴, 괴물이다!”
“피, 피해라! 으아아아아악!”
쓰러진 이들이 대략 일백을 헤아릴 무렵, 그제야 사람들은 내게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어느 순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더니, 이제는 계단을 등 뒤에 둔 채로 굳어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리되자, 내가 도리어 일천의 마법사들을 코너로 내몬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래도 거기서 구경만 하실 건가요?”
잠시간의 소강상태에서, 나는 하늘을 향해 쏘아붙였다.
제 휘하 마법사들이 쓰러져 가고 있는 마당에도, 블레어 마탑주는 아무런 행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게 너무나 고까웠는데…
“후후후. 내 말했지 않느냐? 그들은 두 번째 관문이라고.”
“아직도 그딴 헛소리를…….”
“뒤를 보거라.”
“……!”
순간, 내 고개가 홱 하고 등 뒤로 돌아갔다.
편하게 쉬고 있어야 할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어느새 제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아 있었다.
한쪽 눈두덩이는 퉁퉁 부어오른 채로.
…당연하게도, 그 앞에는 전투의 마탑주 로마르니가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한쪽 팔이 없다고 방심했어. 이 자식, 그래도 나름 대륙 제일의 배틀 메이지라 불렸던 놈이었지.”
대게 전투 마법사들은 육신의 강화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마나를 받쳐 줄 그릇은 기본이었으니까.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가 적대 행위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전투의 마탑주 님! 물러나세요. 당신이 왜 이러는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지하에 있는 부하들 때문이죠?”
“…….”
“제가 반드시 구해낼게요. 그러니까,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참아주시면…….”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 그거라면 이미 해결되었다.”
“네? 그게 무슨…….”
“나는 써클에 금제를 당했다. 저기 있는 블레어 마탑주에게.”
“……!”
“‘마나의 맹세’에 대해 들어는 봤겠지? 부하들을 살리는 조건으로, 나는 블레어 마탑주를 따르기로 약속했다. 이건, 내 자의로 깨뜨릴 수 없는 절대적인 계약이다.”
마나의 맹세.
물론 들어봤다.
나도 몇 번인가 써먹은 경험이 있으니까.
“크크크크크.”
순간, 블레어 마탑주의 비릿한 조소가 귀청을 때렸다.
“나이를 먹어도 세상사는 언제나 재미있구나.”
“…….”
“아이야, 오늘 하나 배워가는구나. 세상에는 ‘힘’만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어쩐지 너무 여유롭다더니.
다만,
“뭐 어쩌라고요?”
“……?”
“아까 했던 말씀, 제가 똑같이 되돌려 드릴게요.”
일순, 나는 ‘깨져라’ 하는 입 모양을 웅얼거렸다.
마나의 맹세?
우습다.
내 머릿속에는 그보다 더 상위에 존재하는 지식이 들어 있으니까.
언령(言令)의 힘.
그것은, 고작 인간의 맹세 따위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맹약.
“……!”
순간, 로마르니의 두 눈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리곤 풍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온몸을 파들파들 떨어대기 시작한다.
파차차차창!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무언가 깨지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뭣…!?”
“뭐라고 하셨었더라. 이까짓 거, 그저 깨부수면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