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87화 (187/251)

187화. 스왈로우 제국(3)

“이게 무슨…?”

스실라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갑자기 빛이 ‘번쩍!’ 하더니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점멸 직전 전신을 감싼 마나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농도 짙은 마나는, 단언컨대 최소 마탑주급 이상이었으니까.

“스실라. 당신도 느꼈나?”

“…저스틴?”

그제야 스실라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바로 옆에 그녀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평소의 암울하기 그지없는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로.

“무, 물론이에요.”

“혹, 그 미친 염화의 할방구가 이곳에 온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내포한 기운 자체가 완전히 달랐거든요.”

“하기야 매개체가 없는 이런 메스 텔레포트는, 이미 오래전 고대 시대에 사라진 마법이니… 제아무리 그 할방구라도 불가능하겠지.”

“산중의 기인이라도 등장한 것일까요?”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군. 다만, 우리에게 딱히 적의는 없는 것 같아.”

이 부분은 스실라도 동의했다.

협곡이 무너지는 와중이었으니까.

그에 비해 옮겨온 이곳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평야 한복판이었고.

시전자의 의지는 명확했다.

다름 아닌, 자신들을 구해준 것이다.

“하면 대체 누가….”

“나야.”

“……!”

순간, 스실라가 화들짝 놀랐다.

곧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머리 위를 향했다.

그곳에, 문자 그대로 ‘절세의 미녀’가 두둥실 떠 있었다.

머릿결부터 입고 있는 옷까지 온통 순백 일색인.

“당신은…?”

“누구냐고 묻기 전에, 인사가 먼저 아닌가?”

“구, 구명(求命)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실라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직후, 아직도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일행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찌르고선.

“…음. 으, 은혜에 감사드리오.”

그제야 저스틴도 제정신을 차렸다.

뒤이어, 나름 목소리를 가다듬고 우아하게 목례까지 하면서.

제 딴에는 멋있게 보이고 싶은 모양인데, 스실라 입장에서는 기도 차지 않았다.

하여튼 미녀 앞의 사내들은 어른, 노인할 것 없다더니.

누가 이 사람을 열두 마탑주 중 일인인 정신의 마법사라고 생각할까?

“뭐, 나한테 고마워할 것까진 없고. 그 아이와의 약속이 아니었음, 애당초 나서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 그 아이요?”

“응. 아마 지금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절경을 유유자적 감상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네?”

스실라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최 무슨 말인지.

얼굴은 예쁜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 골라 해대는 여인이었다.

무엇보다, 고작해야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의 반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만큼 하대가 자연스러웠으니까.

지위도, 나이도.

분명 스실라 본인보다 곱절 이상은 적을 텐데도…

‘…나이 생각은 그만하자.’

이내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을 빠르게 지워냈다.

어느 샌가, 하늘 위의 여인은 하얀 건치를 드러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찰나, 그 극강의 미모에 스실라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조금만 기다려 봐.”

“…네?”

“그 아이 말이야. 내 생각인데, 곧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것 같거든.”

***

마그릭 협곡 상공.

그곳에서 나는 가만히 지상을 굽어봤다.

콰쾅! 콰콰콰콰쾅!

연이어 울려 퍼지는 폭음 속.

20만의 군대는 빠르게 몸을 뒤로 물리고 있었다.

때 아닌 재난에 충분히 당혹스러울 법도 하건만, 혼란은 잠깐이었다.

과연 제국군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군은 상당히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상상 이상인데?”

이번 일을 위해 나는 몇 가지 마법을 보다 철저하게 준비했다.

무려 7써클 마법 두 개와 갖가지 하위 마법들까지 합치면, 도합 다섯에 이르는 수식을 동시에 펼쳐 낸 것이다.

물론 핵심은 두 7써클 마법에 있었다.

일정 범위에 지진을 일으키는 대지계 마법, 어스퀘이크(Earthquake).

진동의 전파력을 극대화할 파동계 마법, 웨이브 쇼크(Wave shock).

그 둘을 한순간 마그릭 협곡 아래에 집중하여 시전했다.

일반적인 7써클 마법사조차 펼쳐 내는데 상당한 애를 먹는 초대형 마법들을 일시에.

덕분에, 무한에 가깝던 내 마나는 지금 대부분이 텅 비어버린 상태였다.

“인사 정도는 하고 가야겠지?”

잠시 그 상태로 아래를 내려 보던 내가 이내 플라이를 풀었다.

제어장치를 잃은 내 신형이 곧,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두 팔을 쫘악 하고 펼쳤다.

죄악의 소유자는 같은 죄악의 소유자를 단번에 알아본다.

하니, 제국의 2황자인 스노비 또한 진즉에 내 존재감을 눈치챘을 것인즉.

웨에에에엥!

떨어져 내리는 와중에, 나는 곧장 색욕의 이능을 발동시켰다.

다른 죄악의 힘이 느껴지는 허공 위로.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소위 초인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곧장 반응해 올 수 있었다.

하니, 적당히 거리를 두고 대화를…

찌리리리리.

“…음.”

아직 반경 50미터 범위 내에도 들지 못했건만, 대번에 서릿발 같은 기세가 내게로 집중되었다.

역시 초인들의 감각은 보통이 아니었다.

더욱이 일전에 이미 본 적 있는 파랑의 검사 웨이브로 공작은, 나조차 쉬이 승산을 점치기 힘들었다.

지금 저 초인들 사이로 뛰어들면 열이면 열, 살해당하고 말겠지.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딱 여기까지. 더 가까이 가지 말고 인사하지 뭐.’

직후, 씨익 미소 지은 내가 이내 의지를 쏘아 보냈다.

- 오랜만입니다, 황자 전하?

처음에는 의지를 전하는 데 실패한 줄로만 알았다.

허나, 한 5초 정도 지나자 곧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놈. 세타 쿤 이그니스… 역시 색욕의 죄악을 취했던 건가?

- 오. 곧바로 반응하시네요. 순간 실패한 줄 알았지 뭡니까?

- 내가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라.

- 이미 본인이 더 잘 알고 계시면서 뭘.

-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마왕의 힘을 취한 인간이라니….

- 보통 이런 걸 ‘천재’라고들 부르죠.

- …그리 기고만장할 것 없다. 오히려 그 힘으로 인해, 너는 반드시 죽게 될 테니까.

- 이제 와서 겁주려고 하셔 봐야 씨알이라도 먹힐 것 같습니까?

- 너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죄악이 가진 비밀을. 그 무서움을. 너는 그 힘을 감당할 수 없다. 절대로.

미처 말을 이을 새도 없이, 의지는 재차 내게로 전해져 왔다.

- 굳이 죄악이 아니더라도, 우리 제국군이 네놈의 모든 것을 짓밟을 것이다. 나라도, 동료도. 만약 도망친다면, 대륙 어디든 끝까지 쫓아가 죽일 것이다.

- …….

솔직히 이건 좀 쫄리는데?

20만 대군을 목전에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마그릭 협곡이 무너졌다고 해도, 제국군이 테라로 들이닥치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그저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벌었을 뿐.

물론, 현실이 그렇다곤 해도…

‘…은근히 열받는단 말이지. 어차피 두드려 맞을 거면, 구태여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잖아?’

굳이 자극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상대가 저리 나온다면, 나도 삐딱선을 타는 수밖에.

상념을 마친 내가 다시금 의지를 쏘아 보냈다.

- 말씀 잘 들었고요, 인사는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 돌아가시는 길, 부디 평안하시길 바랄게요. 챙겨야 할 식구도 많으시잖아요?

- …기회를 주겠다. 만약 네가 직접 내 앞에 와서 죄악을 토해낸다면, 내가 대공을 설득하겠….

- 그럴 리는 없고요.

- …….

- 그보다, 식구부터 챙기시라니까 그러네. 혹시 아나요? 방금 협곡을 무너뜨린 대지진이, 갑자기 ‘쩌저적!’ 하고 제국군의 바로 발밑에서 또 발생할지.

- ……!

- 아, 말이 그렇다고요, 말이. 지진은 단발성이 아닌 경우가 많다잖아요. 무려 수천 년이나 자리를 지켜온 마그릭 협곡도 무너진 마당에…….

어느새 완전히 침묵을 지키는 상대를 향해, 이윽고 나는 마지막 의지를 쏘아냈다.

- 근데 아까 뭐라고 하셨더라. 분명 제 모든 것을 짓밟아 버리겠다느니 마느니 하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

머엉~

창공 아래에서 스실라는 가만히 과거를 생각하고 있었다.

마탑이 그렇게 제국의 손에 넘어간 뒤, 스실라와 저스틴은 블레어 마탑주에게 철저하게 구금당했다.

무려 수개월 동안이나.

다만, 배신자들은 이상하리만치 자신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부상당한 상처를 치료까지 해줬으니…

“…결국 로마르니의 팔은 고치지 못했지만.”

함께 사로잡혔던 그를 떠올리며 스실라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전투의 마탑주 로마르니.

그는 이제 불구나 다름없었다.

몸을 쓰는 배틀 메이지인데, 팔 하나를 잃었으니까.

이미 절단된 부위는 그녀의 능력으로도 치료해 줄 수 없었다.

스실라는 그게 여태껏 마음에 걸렸다.

“…로마르니뿐만이 아니야. 정신 차리자.”

순간, 스실라가 ‘짝’ 하고 양 볼을 쳤다.

아직 휘하의 마법사들도 인질이 된 채였다.

태반이 변절하여 블레어 마탑주에게 붙었지만, 일부는 아직도 그녀를 따르고 있었다.

여전히 차가운 감옥에 몸을 누인 채로.

그게 비록 제 3마탑 전체의 1할도 채 되지 않는 소수라 할지라도…

스실라는 그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구해내야만 했다.

“대체 그 아이라는 게 누굴까?”

그때, 같은 처지인 저스틴이 조용히 옆쪽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글쎄요. 곧 알게 되지 않을까요? 빠르면 수 시간 내에 이쪽으로 온다고 했으니까요.”

“벌써 3시간이나 지났는데?”

“…….”

솔직히 스실라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 아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분명 단체가 아닌 개인인 듯한데.

일개 개인이, 20만 제국군을 상대로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예의 순백의 여인을 보지 못했다면, 일말의 기대조차 품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 아이라는 게 여인과 동급이라면…

“…진짜 누구지? 마탑주면서, 나는 이런 대단한 사람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너무 자책하지 마. 나도 몰랐으니까.”

“저스틴과 저는 다르죠. 제가 최소 20년은 더 살았잖아요.”

“…그거 금기어 아니었어?”

“…….”

이내 스실라가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마탑 내에서 그녀의 나이는 금기시되고 있었으니까.

“…으흠. 얘기가 자꾸 다른 곳으로 새네요. 이렇게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앞으로 10분 뒤에도 오지 않으면….”

“혹시 저 찾으세요?”

“……!”

스실라가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곧 둘의 고개가 동시에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스실라는 상당히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얄미울 정도로 잘생긴 얼굴.

“세타 쿤 이그니스…?”

저스틴이 놀라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에 비해 스실라는 무어라 입조차 열지 않았다.

그저 곧장 ‘다다다!’ 뛰어가선,

와락!

“……!”

그대로 지금 막 나타난 아이를 품으로 끌어당길 뿐이었다.

“저, 저기 스실라 씨? 갑자기 이러시면 무척이나 당황스러운데요.”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

찰나, 세타가 움찔 몸을 떨었다.

상대가 고개를 묻은 어깨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번져 가고 있었으니까.

이런 분위기라면…

토닥, 토닥.

“…오랜만이에요.”

그 세타라도, 쓰게 웃으며 등을 쓰다듬어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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