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스왈로우 제국(1)
“뭐, 뭐가 어쩌고 저째요?”
“갑자기 제국군이 테라는 왜…?”
반응은 나보다 두 여인이 먼저였다.
차례로 유리나와 루나가 놀라 기함했다.
“…….”
다만, 나는 반대로 조용히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연합군이 10만 병력을 이끌고 자이툰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은 이미 제국군의 귀에도 들어갔을 터였다.
대륙 곳곳에 그들의 눈과 귀가 존재하니까.
그럼에도 20만이라는 대군을 움직였다 함은…
“…남은 인원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것이겠지. 자신감 하나는 참 대단들 하시다니깐.”
거기에 십이월 셋을 포함한 마탑주가 무려 다섯.
…한데, 이 즈음하여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소위 제국파라 불리는 이들 중 남은 마탑주가 다섯이나 되었던가?
그리고 그만한 전력이면 제국군의 모든 힘을 테라 한곳에 집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과연 작금의 테라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럴 시간이 없다. 너희는 지금 당장 테라로 회군(回軍)해라. 스란의 문제는 내가 책임지고 마무리 지을 테니까.”
“…….”
그때, 상념을 깨는 엑스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군이라고 해봐야, 산에 남겨놓은 인원까지 일백이 전부인데요?”
“……!”
엑스톤이 대번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 그럼 우리는 고작 일백 명에게…?”
“네. 정확히 저를 포함한 구십일 명에게, 왕성을 통째 털린 셈이죠.”
“…진짜로 미치겠군. 얼마나 나라가 개판이었으면…….”
“지금이라도 제정신을 차리셨으니 다행이죠, 뭐.”
찰나 씁쓸한 표정을 지은 엑스톤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테라를 도와주고 싶어도 당장은 여력이 없네.”
“여력이 있어도 움직일 생각은 하지 마셔야죠.”
“응?”
“아직 제국은 스란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잖아요. 그러니 이리 친절하게 정보도 알려줬을 테고요.”
“그야 그렇기는 한데…….”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군을 움직이면, 당장에 제국군이 스란부터 치려고 들걸요?”
“……!”
순간 눈을 크게 뜬 엑스톤이 ‘과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네. 확실히 나보다 낫군. 허나, 그런 건 이제 상관없다네.”
“네?”
“이미 동맹 관계가 된 이상, 우리는 동료를 위해 피를 흘리기를 주저치 않을 테니까.”
엑스톤이 무척이나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직후, 나는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말씀만이라도 고맙네요.”
“나는 진심이네.”
“됐어요. 애써 우군이 된 마당에, 곧바로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죠.”
“하지만 현재 테라의 전력만으로는…….”
“괜찮아요. 무엇보다, 제국군의 ‘진짜 목적’을 대충은 알 것도 같거든요.”
“지, 진짜 목적…?”
엑스톤을 포함한 사람들이 대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은 짐작일 뿐이다.
만약 그 면면을 듣지 못했다면, 나조차 지금까지도 고민했겠지만…
‘선봉에 선 자가 2황자라고 했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바로 ‘나’라는 존재 때문이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지만, 2황자의 실체를 오직 나만은 알고 있으니까.
무려 칠대 죄악의 일인인 ‘오만’의 권속.
‘…근데, 고작 상급 마족의 힘을 백 퍼센트 받든 공왕도 자아를 완전히 빼앗긴 괴물이 되었는데, 2황자는 멀쩡한 건가? 그리고, 마왕의 힘이라 불리는 칠죄종을 내가 다 흡수하게 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내가 마계 생명체들의 집중 표적이 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죄악의 힘은 그만큼이나 매력적이었으며.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니까.
하니,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보다 확실한 동료를 만들어둬야 했다.
“…뭐지?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냐?”
직후, 고개를 갸웃한 백색의 미녀가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나는 도와주지 않을 거다. 인간사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약속. 분명 방금 네 입에서도 나온 말일 테지?”
한데, 아무래도 그녀는 내 시선을 단단히 오해한 듯싶었다.
곧 그 입가에 희미한 미소까지 맺혀들기 시작했으니까.
저게 진짜 지고한 존재라 불리는 드래곤이 맞는지.
무슨 상상을 하는지 내게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럴 마음도 없었거든요. 웬 설레발이시람?”
- 듣자 하니, 제국은 현재 너희 인간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일인자라지? 고작 왕국 몇 개 모은다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이리나가 메시지 마법으로 의지를 전해왔다.
하여, 나도 곧장 같은 방법으로 마주 대답해 줬다.
- 그런 것까지 아시나 봐요?
- 나 정도 살아오면, 온갖 정보들을 접하게 되는 법이지. 하찮은 인간사조차 말이다. 괜히 지식의 보고라 불리는 존재들인 줄 아느냐?
- 아주 잘나셨네요.
- 내 비상한 머리로 짐작컨대, 열이면 열 너희는 패하고 말 것이다. 역사상 황제라 불렸던 놈들은, 그래도 버러지들 중에서는 제법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거든. 일신의 무력도, 지닌바 세력도.
이리나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리곤, 제 딴에는 무척이나 선심 쓴다는 표정으로 재차 의지를 전했다.
- 그래서 말인데, 네 목걸이를 내게 넘길 생각은 없느냐?
- …그게 무슨 뜻이시죠?
- 그걸 분해하여 연구할 기회를 준다면, 내 너를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제국군이고 뭐고, 내 브레스 한 방으로 확실하게 쓸어주지.
- …언제는 인간사에는 관여하지 않으신다더니? 그리고, 그런 짓은 일족의 규율에도 어긋나지 않나요?
- 뭘. 일족이라고 해봐야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리나가 곧장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이번에도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하기야, 그녀의 관심사는 줄곧 내게만 있었으니…
- 싫습니다.
- 자신과 자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괜히 허세 부리지 말고, 그냥 내 말에 따르는 편이…….
- 아, 됐다고요.
- …….
- 당신의 힘을 빌릴 정도로, 제가 또 약하지는 않거든요. 황제요? 그까짓 거, 이 손으로 직접 때려 부수죠, 뭐.
이리나는 애써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 입가는 연신 파르르 떨리고 있었으니.
어느새 이마 위로는 다시금 익숙한 십자 마크를 떠올리고서.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
번-쩍!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순간적으로 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레 주변 공간이 뒤틀리더니, 전혀 새로운 장소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휘오오오오오오오!
연신 귀청을 때리는 파공음하며, 전신으로 느껴지는 공허함.
이건 숫제 하늘에서 추락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 아닌가?
“억!”
한데, 느낌이 아니라 진짜였다.
내 몸은 지금, 속절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짧게나마 나와 눈이 마주친 저 하늘의 새가, 반갑게 제 날개를 퍼덕였다.
덥석!
직후, 뒷덜미에서 강하게 잡아당기는 인력이 느껴졌다.
“정신이 드느냐?”
“…뭔 짓이죠, 이게?”
“그저 네 일을 줄여주고 싶었느니라. 참고로 여긴 너희들이 말하는 테라의 북부다.”
“그 말은…….”
“그래. 내 텔레포트로 너와 나만 이쪽으로 옮겨 왔지.”
“…….”
그제야 내 두 눈이 게슴츠레 뜨여졌다.
잠시간 그 상태로 찌릿, 상대를 노려보고 있자,
“그 눈알, 마음에 들지 않는군. 이대로 파버릴까?”
“…일단 놔주세요.”
“놓으면? 넌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할 텐데?”
“저도 일단은 마법사거든요?”
나는 뒷덜미를 붙잡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래로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야였고.
높이만 최소 일백 미터 이상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상공이었다.
물론 이따위 광경에 쫄 내가 아니다.
“플라이.”
우우웅!
곧 내 전신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종래에는 ‘탁!’ 하고 목 뒤의 손까지 쳐내면서.
“어쭈?”
“이런 식으로 물 먹이기 있습니까? 자꾸 이러시면 약속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흥. 그 약속이란 거 말인데, 생각해 보니 내가 지켜야 할 이유라도 있느냐?”
“뭐요?”
“입장 바꿔 놓고 말이야. 내가 내 두 다리로 대륙의 어디를 가든, 그건 내 자유가 아닌가?”
“가는 거야 본인 자유지만, 이건 명백한 스토킹이죠. 어느 누가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걸 신경 쓰지 않겠어요? 그리고, 지금 본인이 했던 말을 번복하시겠다는 뜻이죠?”
“…….”
내 정곡에, 이리나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자존심 하나는 월등한 생명체였으니까.
잠시 무어라 꿍시렁대던 그녀는 곧, 손가락을 들어 지상을 가리켰다.
“지금은 나보다 저것들부터 신경 쓰지 그러느냐?”
“…….”
자연스레 내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일견 개미 떼처럼 보이는 새까만 점들이 끝없이 평야를 잇고 있었다.
물론, 나는 단번에 행렬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저건 ‘제국군’이다.
“…일 줄여주셔서 참 고맙네요.”
“후후후. 별말을 다 하는구나. 네가 해결할 수 있다기에, 나도 궁금해졌을 뿐이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저들을 처리하려는지.”
허나, 말과는 달리 이리나의 입가에는 명백한 조소가 맺혀 있었다.
그 표정이 꼭, ‘이제 네가 어쩔 건데?’라고 비웃는 듯했다.
이에 나는,
“…잘 봐요.”
“…응?”
“굳이 브레스가 아니라도, 저들을 막을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 테니까.”
“……!”
***
우웅! 우우웅!
“……!”
지금 막 회의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던 실비아가 눈을 크게 떴다.
품 안의 통신용 수정구에서 반응이 있었다.
기다리는 소식이 있었기에, 그녀는 곧장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유리나!?”
곧 구체 위로 떠오른 얼굴에, 실비아가 바투 안면을 가져다 댔다.
- 실비아! 소식은 들었겠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다냐?
“그건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공국은? 어떻게 됐어?”
- 어떻게 되긴 뭘. 이 몸께서 함께 했는데, 당연히 잘 마무리됐지.
“……!”
그제야 실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내걸렸다.
“네가 아니라, 보나 마나 세타가 또 고생했겠지.”
- 어허? 이번에는 나도 한 몫 단단히 거들었거든?
“알았어. 그래서, 세타는?”
- 나도 몰라.
“뭐?”
- 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번쩍’하더니 사라지고 없더라고. 웬 여자도 같이.
“여, 여자라니?”
- 연애라도 하려나 보지 뭐.
수정구 위로 유리나가 입을 삐죽였다.
상당히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실비아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진짜 괜찮은 거 맞지?”
- 뭘 걱정하고 있어. 걔가 어디 가서 두드려 맞고 다닐 애냐? 또 혼자서 뭔가 작당이라도 꾸미려는 거겠지.
“그, 그래도…….”
- 됐고, 이제 말해 봐. 제국군이 테라로 쳐들어오고 있다며? 이제 어쩔 생각인데?
“…….”
이어지는 유리나의 물음에, 실비아의 표정도 한껏 굳어졌다.
“아직 회의 중이야.”
- 막을 방법은 있고?
“북부의 전 병력이 그쪽으로 집결했어. 승전보든, 비보든… 며칠 안으로 그 결과가 들려오겠지. 괜찮아. 그곳에는 기적의 혁명가가 있으니까.”
- 기적의… 혁명가?
“카이클 공작 말이야.”
- ……!
움찔 몸을 떤 유리나가 곧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하긴, 능력 하나는 확실한 남자니까.
“전략의 귀재, 역전의 용사, 기적을 만드는 사내 등등… 그를 수식하는 호칭들은 무수히도 많아. 적이라면 최악이지만, 아군이라면 이 이상 든든할 수도 없지.”
- 즉, 카이클 공작 하나만 믿고 버텨보겠다?
“딱 1주일만 버티면 돼. 그리고 북부는 지금껏 뚫린 적이 없는 철혈의 요새니까. 알다시피, 제니스 평야를 지나 테라의 북부를 최단거리로 관통하려면, 반드시 마그릭 협곡을 관통해야 해.”
마그릭 협곡.
깎아 내지르는 듯한 수백 미터 높이의 절벽 두 개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천혜의 요새.
온갖 자연재해에도 꿋꿋이 버텨온 역사의 산물은, ‘무패의 북부’라는 별명을 가져다준 살아 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자이툰으로 출발했던 병력들이, 소식을 듣고 곧장 이쪽으로 노선을 튼다는 정보도 있어.”
- 오, 그건 또 의외인데? 연합은 우리보다 자이툰을 우선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이툰도 중요하지만, 이미 수도를 빼앗긴 그곳보다는….”
- 보다는?
“…무려 황자를 잡을 좋은 기회잖아?”
일순, 실비아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래, 이건 기회였다.
명실상부 차기 제국을 이끌 두 후계자 중 하나를 사로잡게 되면…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몰라. 더욱이 남은 1황자는 훨씬 다루기 쉬운 인물이니까.’
역시, 성공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예정보다 계획은 훨씬 앞당겨졌지만.
제국군과의 일전(一戰)은, 분명 두 세력이 따로 놀고 있는 작금의 테라가 하나로 뭉칠 좋은 계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