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83화 (183/251)

183화. 백룡(2)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순백의 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견 보기에는 무척이나 순진무구한 표정이다.

만약 그 실체를 몰랐다면, 나 또한 분명 그리 생각했을 테지.

머릿결과 비견될 정도로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한편으론, 루나를 옆에 가져다 놓으면 참으로 어울리는 흑백의 조화겠구나… 하는 실없는 상상마저 들었다.

“…아닌데. 분명히 인간 맞는데. 대체 왜 네게서 동족의 느낌이 나는 걸까?”

“백(白)의 일족이신가요?”

“맞아. 근데 방금도 이상했어. 보통 인간들은 우리를 위대한 존재라고 부르든가, 그도 아님…….”

힐끗, 말끝을 흐리는 여인의 시선이 내 옆을 향했다.

마치 풍이라도 걸린 듯, 철의 기사 엑스톤은 그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하염없이 전신을 떨어대고 있었다.

일순 여인의 동공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드래곤(Dragon)이라고 부르는데 말이지.”

“허억!”

“옆에 아이도 기본은 되어 보이고. 아무튼, 너희 둘은 저기 있는 애들과는 다르다는 거겠지?”

이번에는 출입문 쪽을 가리키는 여인이었다.

어느새 몰려든 수십의 기사들이 복도 한가득 우수수 쓰러져 있었다.

그 모양새가 꼭, 썩은 짚단을 보는 듯했다.

“쓰레기는 확실하게 치웠고. 내게 달리 할 말이라도 있니?”

예의 순백의 여인이 빙긋, 미소 지었다.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육신의 파편.

다시 말해, 원래 공왕의 팔이었던 그것을 주워 든 채 웃음 짓는 미녀란…

“…꿀꺽.”

엑스톤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

나도 이 몸으로 일족을 보는 건 처음이라 사뭇 긴장이 됐지만.

여기서 움츠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상대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으니까.

그 내면에는 분명 호감과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나도 너한테 궁금한 게 많은데. 그럼 하나 받고 하나 대답해 주는 걸로?”

“좋습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뭐가 궁금한데?”

“아마 상급 마족을 처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신 거겠죠? 중간계의 수호자로서 본분을 다하시기 위해서요.”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닌데… 그저 거슬렸기 때문이야. 여긴 내가 담당하는 구역이거든. 로드에게 혼나기 싫었던 것도 있고.”

“로드? 로드가 살아 있습니까?”

“…뭐야, 로드의 존재도 아는 거야? 볼수록 흥미로운 아이네. 암튼, 질문이 잘못됐어. 고(古)서적에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본 로드와 내가 아는 당대의 로드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

드래곤 로드는 평균적으로 천 년에 한 번 교체되어 진다.

그들의 수명을 기준으로는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지만, 원체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종족이니까.

그걸 몰라서 질문을 던진 게 아니었다.

“하면, 다른 드래곤들은요?”

“다들 자기 레어에 콕 박혀 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요. 중간계에 마족의 씨앗이 발호하고 있습니다. 저도 느낀 사실을, 위대한 존재들이라고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찰나, 줄곧 미소 띤 얼굴을 내보이던 여인의 신형이 움찔했다.

“적당히 궁금증만 풀 생각이었는데,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아이였구나?”

“그 말은…?”

“근데, 듣는 귀가 좀 많네?”

직후, 여인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웬 ‘털썩!’ 하는 소음이 뒤를 잇는다.

“……!”

직후,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눈으로 보고도 기가 막히는 광경이다.

인간들이 마스터라 칭송하는 초인을, 고작 손짓 한 번으로 털썩털썩.

“아까의 답을 이어서 해주자면… 일족의 대부분은 ‘소멸’했고, 나를 포함한 극소수는 이리 불우한 생(生)을 이어가고 있달까?”

“뭔…!”

대번에 내 표정이 사악하고 굳었다.

느낌상 거짓말 같지는 않았으니까.

아니, 드래곤의 대부분이 소멸했다니, 이게 당최 무슨 뜻이란 말인가?

“두 망룡(亡龍) 때문이야. 걔네들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지. 아마 당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일족을 통틀어도 열 개체가 채 남지 않았을걸?”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질문은 하나에 하나씩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제법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 줬다고 생각하지 않아?”

“…….”

절로 내 입이 다물어졌다.

어느새 예의 미소 띤 얼굴은, 감정 한 점 드러나지 않는 지극한 무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 내 차례야.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는데,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으직, 으지지지직!

일순, 일대의 대기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감히 인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무형의 압박.

전신이 무거워지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심장의 써클은 낡아 닳기라도 한 듯 뻐걱이기 시작했다.

“내가 인간인 네게 일족의 비사까지 털어놓은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으니까. 해서 묻는 건데….”

“…….”

“…너, ‘아이리스’와는 무슨 관계니?”

투명한 두 눈이,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볼 듯 동공과 마주 직시했다.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었으나, 실제 그녀는 중간계 최강이라고도 불리는 생명체였으며.

온순하기로 유명한 백(白)의 일족에서 탄생한 돌연변이.

그 힘은 의심할 여지없이 일족에서도 손에 꼽힌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또라이 백룡(白龍) 이리나.”

“……!”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기 때문일까?

거짓말처럼 여인의 기세가 일변했다.

“…재, 재미있는 인간이 아니라,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이었네?”

얼마나 당황했는지, 이제는 말까지 더듬거린다.

그런 그녀의 이마 위로 선명한 십자 마크가 떠올라 있었다.

***

약 10여 분 뒤.

대전을 빠져나가는 길.

내 옆에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엑스톤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시선은 쉼 없이 뒤쪽을 힐끔거리면서.

“저, 정말로 괜찮은 거냐?”

“뭐가요?”

“뭐라니… 너는 정녕 저 여인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뇨.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엑스톤 경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걸요?”

“한데도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다는 말이냐!?”

한껏 목소리를 낮춘 엑스톤이 여전히 눈치를 보며 반문했다.

아무래도 단단히 겁을 먹은 모양이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보는 법이라고들 하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제 일행들이 어디 있는지부터 알려주세요.”

“아, 아마도 이 길로 쭉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거다.”

공왕의 실체는 이미 낱낱이 밝혀졌고, 상급 마족 반 헬리오스는 완벽하게 소멸했다.

하여, 나는 지체 없이 유리나들부터 찾았다.

다만, 그리 멀지 않은 뒤에서는 여태 ‘그녀’가 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 언제까지 따라오실 작정이십니까?

- 신경 쓰지 마.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 무려 화이트 드래곤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데,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요?

-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그 입이나 조심 좀 하고 나불대던가.

- 음….

재차 메시지 마법을 보내려던 내가 뒷말을 삼켰다.

이 부분은 딱히 할 말도 없었으니까.

- 거듭 얘기하지만, 내 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난 인간사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거니까. 그게 일족의 규칙이기도 하고.

- …그러십니까?

- 무엇보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네 말의 진위를 확인하려는 것일 뿐이니까.

- 목걸이를 보여줬는데도 부족하신가 보네요.

- 응. 그걸로는 부족해. 아직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거든.

여기서 잠시 아까의 상황으로 돌아가자면.

기세를 끌어올리며 추궁하는 그녀를 향해, 나는 아이리스의 목걸이를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 혼의 파편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숨긴 채 간략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아이리스의 일부 지식과 기억들은, 모두 이걸로 엿볼 수 있었다고.

물론 내 얘기를 모두 들은 그녀는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한낱 물건에 무려 드래곤의 지식을 봉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조차 처음 알았다고.

‘얘를 인간이라고 봐야 하나…’ 따위의 말을 연신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리곤 곧,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내게 알려줬다.

예의 일족의 대부분이 소멸했다는 그 얘기 말이다.

그건 살아가는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존재의 자취였다.

나도 잘 알고 있는, 두 망룡의 과거.

다만 이리나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비단 두 망룡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한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일족이 느꼈던 외면하고 싶은 현실.

장장 일만 년이다.

그 오랜 세월을,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살아 버티기는 쉽지 않다.

자의적인 죽음조차 불가능했다.

그건 신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한데, 그런 와중에 웬 일족이 ‘방법’을 찾아냈다.

잘하면 소멸.

못해도 이 지긋지긋한 생의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실로 감탄스러운 계책을.

사실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던 거다.

겉으로는 망룡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내심은 부러웠던 거였다.

그런 미친 짓을 행할 수 있는 용기가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망룡이 유체이탈에 성공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는, 너도 나도 마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내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그럼 결국 모두가 유체이탈 마법에 성공했다는 말입니까?’

‘정확히는 성공이 아니라, 시도라고 해야겠지?’

‘하, 하지만 어떻게…? 분명 연구 자료는 모두 불태웠을 텐데….’

‘드래곤들이 왜 마법적인 부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라 불리는지 알아? 장소에 남아 있는 마나만으로도 수십, 수백 가지의 해석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야.’

‘그럼 정말로… 하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도 몰라.’

‘네?’

‘나라고 어떻게 알겠어? 그 뒤로 성공했다는 일족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딴 자살 행위에 내가 직접 동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3천 년도 되지 않는 짧은(?) 세월을 살아서 그런지, 이리나는 예전부터 삶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그런 와중에 너를 만나게 된 거야. 어쩌면 사라진 일족 전체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를 흔적을.’

‘…….’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네 얼굴이 아이리스가 폴리모프했을 때의 외모와 판에 박은 듯 똑같았거든.’

‘…그래서 끝까지 따라오시겠다고 한 겁니까?’

‘아주 잠깐이야. 지금 레어로 돌아가 봐야 당장은 할 일도 없고, 너랑 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무엇보다 라그하일이 아니라 아이리스 쪽이라는 게….’

뒷말은 더 들을 수 없었다.

타이밍도 뭣 같게, 엑스톤이 신음을 흘리며 제정신을 차렸기에.

이 때 아닌 드래곤과의 동행에 대한 일의 전말이었다.

“세타!”

“……!”

이윽고 내가 상념에서 벗어났다.

성을 빠져나오자, 유리나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

한데, 어느 순간 유리나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정확히는, 내 바로 옆에 있는 이리나를 발견하면서부터.

표정만 보면 꼭,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 그 자체였다.

“…뭐야.”

유리나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어느새 바로 뒤까지 접근한 루나도 더욱 표정을 굳혔다.

한데, 이어지는 이리나의 반응이 실로 가관이었다.

빙그레 미소 지은 그녀는 딱 한마디로 짤막하게 인사를 마쳤으니까.

“넌 뭔데?”

“…….”

그게 세 여인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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