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81화 (181/251)

181화. 스란에 테라의 깃발을(4)

“헉, 헉….”

엑스톤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마나인지, 상처 부위를 통해 침투한 기운은 마스터의 마나로도 몰아내기가 힘들었다.

농도가 짙을수록 회복력은 더뎌지는 법이니까.

“이제 그만 비키시지요. 몸도 성치 않으신 것 같은데.”

“…네가 나를 걱정해 주는 거냐, 파르테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단장님을 존경합니다.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자칫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만한 발언이었으나, 지금의 엑스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면 명에 따르지 그러느냐?”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단장님을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게는 단장님이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 의무가 있으니까요.”

“제정신이라….”

일순, 엑스톤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다시금 아까 그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의 폐하께서 꼭두각시인가 하는…

솔직히,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리라.

장장 30년을 봐온 폐하시니까.

젊었을 적, 그러니까 폐하께서 왕자였던 시절.

그분은 자신을 끔찍이도 챙기셨다.

으레 그렇듯 왕족은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평가받는 입장이었고, 그 숨 막히는 환경 속에서 의지할 만한 이라고는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오죽했으면 입버릇처럼 ‘너마저 없었다면…’ 하는 말씀을 하고 다니셨을까.

그래서 잘 안다.

폐하께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보다 공국을 사랑하고 국민들을 생각해 왔다.

제국은 언젠가 꼭 쳐부수어야 할 적이라고 여기셨다.

황제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이상, 스란은 영원토록 제국의 속국 취급을 받을 뿐이라면서.

그런 분이, 하루아침에 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자처한다?

‘…처음에는 달리 묘안이 있으신 걸로만 생각했지. 허나….’

순간, 엑스톤의 두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제국은 빠르게 여타 왕국들을 침공했다.

그 와중에, 자이툰은 전역이 불바다로 변했고.

스란이야 발 빠른 대처로 그런 비극은 피했다지만…

얼마 전, 황제가 직접 칙서(勅書)를 보내왔다.

스란은 이제 국명(國名)을 버리고 완전한 제국령으로 예속되라고.

최초 그 소식을 접했던 날.

그때 폐하의 표정을, 엑스톤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흐읍!”

상념을 마친 엑스톤이 가볍게 심호흡했다.

촤르르르르르!

그와 동시에 전신으로 번져 가는 은의 향연.

다시 한번, 고유 비기인 철의 무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눈앞의 기사들.

바로 어제까지 자신의 부하였던 이들이 당장에 반응했다.

“단장님! 정말로 끝까지 해보실 작정이십니까!?”

“물론.”

“이런 제길! 모두 마나를 극한까지 끌어올려라!”

우우우웅!

대략 오십에 이르는 기사들이 일제히 마나를 휘돌렸다.

대기를 떨어 울리는 웅혼한 공명음은 이들이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그래도 공국 제일이라는 왕실 기사단이니까.

선두의 파르테인만 해도 부단장의 직책답게 경지가 엑스퍼트 최상급을 바라보고 있지 않던가?

‘엑스퍼트 급 기사가 오십이라….’

심지어 이들은 자신이 직접 키웠다.

평상시의 몸 상태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한 지금은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하여, 엑스톤은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목적은 이들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어디까지나 폐하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는 것.

그걸 위해…

꾸우우우욱.

완벽히 철에 휩싸인 엑스톤의 두 다리 근육이 일순 급격하게 수축했다.

그래도 십이월의 자존심이 있지.

엑스퍼트의 검기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버텨주겠지.

파아아아아앙!

직후, 마치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파르테인을 포함한 기사들이 대번에 눈을 부릅떴다.

온몸을 둥글게 웅크린 엑스톤이 빗살과 같은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었기에.

“피떡이 되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아아아아아아아!”

한 박자 늦게, 엑스톤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변경한 그의 전략이란 심플했다.

철의 무장을 전신에 두른 채 그대로 출입문까지 몸으로 밀어붙이는 것.

그리 활로를 뚫을 생각이다.

***

- 내 이름은 반 헬리오스다.

마치 귓가에 가져다 대고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상위 마족, 반 헬리오스.

물론 나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대륙만큼이나 거대한 마계에는 무수한 마물들과 마족들이 얽혀 살고 있었고.

상위 마족만 하더라도 최소 일천 개체는 될 것이기에.

허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랬던 거다.

오랫동안 독에 중독되어 다 죽어가던 공왕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

마족과의 ‘직접 계약’이라면 모두 설명이 됐다.

아마도 그 다리 역할은 칠악 중 하나가 했을 테지.

일단 계약이 이루어졌다면, 저건 이제 이전의 공왕이 아니었다.

“이 모습을 철의 기사가 봤어야 하는 건데…….”

내 얼굴 위로 절로 안타까운 감정이 떠올랐다.

실로 끔찍한 광경이다.

바닥을 비집고 튀어나온 열 개의 촉수하며.

마치 꼬치처럼 그 끝에 꿰뚫린 기사들의 육신까지.

촉수라는 매개를 통해 생기를 흡수하는 것이겠지.

다양한 능력만큼이나 힘을 쌓는 방법도 가지각색인 마족들이니까.

보다 효율적으로 마기를 쌓기 위해 처녀의 심장만 골라 취하는 놈들도 있었고.

질보다는 양이라며, 마을 하나를 통째 사육해 제물로 삼는 마귀도 있었다.

허나, 그들 사이에도 공통점은 있었으니.

마기는 기본적으로 생기(生氣)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마계는 끊임없는 투쟁의 전장이라 불리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니까.

이곳 중간계와는 차원이 다른 대기의 농도는, 약한 자가 살아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들은 동족(同族)을 불문(不問)한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오랫동안 그 생기를 취해야 살 수 있었다.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일평생을 주구장창 싸워야만 하는 종족이니까.

생명체의 본능적인 공포인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싸워 이겨야 했다.

일정 경지에 이를 때까지 말이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버텨, 마침내 1퍼센트라 불리는 상위 마족에 들어선 존재들은…

“지금이라도 내 앞에 무릎을 꿇지 그러느냐?”

“…….”

보이는 것처럼, 하나같이 저런 괴물들일 수밖에 없다.

“네가 감히 상위 마족의 힘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마족들 사이에는 ‘권속 계약’과 ‘직접 계약’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게 뭔데?”

“전자는 그저 힘을 빌려주는 차원에 불과하나, 나처럼 후자의 경우에는….”

일순, 반 헬리오스가 새빨갛게 미소 지었다.

“본체와 완벽히 동화되지. 그 전투력은 마계의 약 80퍼센트. 이곳 중간계에서도 엇비슷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다.”

하기야 그 정도는 되어야 장장 수십 년 동안 제물에 공들여 온 보람이 있을 테지.

“나는 이 나라 전체를 내 사육장으로 삼고 싶다. 보다 강해져서, 이곳에서 마왕급의 힘을 쌓고, 나만의 나라를 건국하고 싶다.”

“…중간계에 식탁을 차리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

“그게 잘못됐나? 너희 인간들도 분명 그리하고 있을 텐데? 살기 위해 돼지 따위의 가축을 사육하고 섭취하지. 우리 마족들도 똑같다. 생명체로서의 당연한 본능이지.”

“됐고, 그런 생각이라면 내가 막아야겠네.”

“…훗. 너도 다른 인간들과 똑같은 놈이었군. 자신은 되면서, 남은 되지 않는다는 이기적인….”

“다른 사람들의 생각 따위, 알 게 뭐야. 그딴 건 모르겠고,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막으려는 것일 뿐이야.”

“…아까부터 막는다, 막는다, 가만히 듣고는 있다만….”

찰나 말끝을 흐리는 반 헬리오스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그 표정이 꼭, ‘너 따위가?’라고 비웃는 듯했다.

“인정한다. 인간 축에서는 제법 강해 보이는군. 허나, 아가야. 그래 봐야 네놈은 인간이다. 우리 마족들과는 씨앗 자체가 다른 약하디약한 종족이라는 뜻이다.”

“거 되게 말 많으시네. 그러니까 한번 싸워보자고. 나도 시험해 보고 싶으니까.”

내가 가볍게 써클을 예열하고 있을 때였다.

콰아아아앙!

순간, 대전의 출입문이 통째 터져 나갔다.

그래.

그건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

내 고개가 당장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뻥 뚫린 출입문 사이로, 무수한 기사들이 양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웬 철의 구체도.

“폐, 폐하…?”

“……!”

그때, 예의 철구(鐵球)에서 인간의 육성이 새어 나왔다.

과연.

이제야 확실하게 알겠다.

철의 기사 엑스톤.

바로 그였다.

“흠… 짐의 이 모습은 자네에게만큼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이, 이게 대체…?”

“설명은 나중에 내 다 해줌세. 그러니까, 잠시만 물러나 있게. 지금은 먼저 온 손님이 있으니.”

“폐하….”

“그래 줄 수 있겠지? 내 하나뿐인 친우여.”

“……!”

파르르 떨려대던 엑스톤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저래서는 곤란하지.

나는 재빨리 왕좌를 향해 입을 뻐끔거렸다.

“거기, 반 헬리오스 씨. 근데 그거 아세요?”

“……?”

“상위 마족의 힘 정도로는, 제게 어림도 없다는 사실 말이에요.”

“…….”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일까?

공왕의 모습을 한 반 헬리오스는 구태여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이번에도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입가에 한가득 맺힌 것은, 명백한 조소였으니까.

“…조금 뒤에도 그런 표정 지을 수 있나 두고 보자고.”

뒤를 이어, 내 써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아마 상대는 짐작이나 할까?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흉포한 기운이 어떤 존재에게서 비롯된 힘인지.

상위 마족?

내게는 그저 우스울 뿐이다.

“엑스톤 경, 정신 좀 차리라니까요?”

“어, 어…?”

“저게 당신이 알던 공왕으로 보이세요?”

“…….”

내 물음에, 엑스톤이 말없이 왕좌를 바라봤다.

어느새 열이나 되는 촉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였다.

다만, 바닥에 널브러진 ‘미라’와도 같은 시신 열 구가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공왕에게서 등을 진 채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어린아이라도 누가 흉수인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잡생각은 그만하시고, 아까 저를 보면서 단번에 베겠다느니 하는 말을 하셨잖아요?”

“내, 내가 그랬었나…?”

머쓱했는지 엑스톤이 대번에 제 머리를 긁적였다.

…은근히 멍청 미가 보이는 순박한 사내다.

그러니 나라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했겠지만.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뭐…?”

일순, 엑스톤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다잡았다.

물론 상대는 그쪽이 아니다.

하여, 나는 곧장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경 말고, 저기 ‘가짜’ 공왕한테 말이에요.”

“……!”

***

스란의 동문(東門).

쾅! 콰콰콰콰콰쾅!

“으갸아아악!”

유리나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최초 화살만 날아들던 성벽에서, 이제는 갖가지 폭발성 마법들이 쏘아져 오고 있었기에.

그것들은 유리나가 있는 인근 전체로 떨어지며 연신 폭음을 일으켰다.

“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아직. 세타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루나가 여전히 성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곧 이쪽에 병력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들키고 말 거라고! 그리되면, 대번에 저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올걸!?”

“그 전에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지.”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동문이 ‘그르릉’ 열리기 시작했다.

“저, 저, 저, 저거 보라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유리나는 이제 말까지 더듬거렸다.

루나는 물론이고, 대응 차원에서 쉼 없이 마법을 쏘아내던 젤다와 다른 마법사들도.

“후, 후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젤다의 물음에, 루나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세타가 저곳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 하지만 루나 경…….”

“절대로 안 됩니다.”

“……!”

루나가 고집스레 중얼거렸다.

그녀는 내심 속으로 다짐까지 한 상태였다.

만약 가정한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촤아아앙!

직후, 루나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오지 않으면, 직접 구하러 간다.

이제 이 검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검이니까.

“저, 저길 보십시오!”

“앗!”

그 순간이었다.

투투우우우우웅!

저 멀리, 왕성의 하늘 위.

그곳에서 웬 새까만 기둥이 솟아오른 것은 웬 굵고 기다란 흑선(黑線)이었다.

색깔만 하얀색이었다면 가히 천신이라도 강림한 것이 아닐까, 착각마저 들 광경이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색깔이 너무 께름칙했다.

“저, 저게 대체 뭐다냐?”

유리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여, 루나가 더 망설이지 않고 땅을 박차려는 순간.

“기둥 말고, 성의 꼭대기를 보십시오!”

“……?”

성(城)은 멀리서도 잘 보였다.

스란의 왕성은 다른 건물들보다 높은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조금 더 효율적인 자체 방어를 위해, 최초 설계부터 그리 지어진 것이다.

때문에, 이곳에서도 왕성은 한눈에 보였는데,

“……!”

일순, 사람들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성의 꼭대기.

하늘 높이 펄럭이는 공국의 기 옆으로.

“테, 테라의 깃발?”

무려 테라의 기가 나부끼고 있었으니까.

국기 옆에 타국(他國)의 기가 나란히 세워지는 경우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앞으로 이 나라와 같은 길을 걷겠다.

다시 말해,

“세타 이 자식, 성공했구나!”

유리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후퇴! 후퇴하세요! 목적은 이루었습니다!”

“후퇴하라아아아아아아!”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젤다가 마나를 담아 고함쳤다.

어느새 루나도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세타.”

그런 그녀의 입가에 희미하지만 명백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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