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스란에 테라의 깃발을(2)
올빼미만이 울어대는 고요한 밤.
마침내 거사는 시작되었다.
굳이 낮이 아니라 밤을 선택한 이유는, 네 개뿐인 성문이라 그런지 전쟁통에도 통행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꿀꺽.
순간, 젤다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무려 한 나라의 수도.
그 심장으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단언컨대, 이런 미친 짓은 불혹을 넘은 그조차 처음이었다.
세상에 마상에, 일국(一國)의 입구에 마법을 집중 포화한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하는 소리던가?
하여,
“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젤다는 딱 한 번만 더 자신의 상관을 말리려 했다.
“슬슬 준비들 하세요.”
“……!”
물론 의미없는 짓이었지만.
결국 명령은 떨어졌다.
두상조차 앞뒤 볼륨이 선명한 외모.
대체 저 잘생긴 대갈통에 뭐가 들어 있는지, 진심으로 반으로 쪼개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다.
“계획은 간단해요. 변고를 눈치챈 안쪽의 사람들이 이곳 동문(東門)으로 몰리게 되면, 저는 곧장 제 워프 마법을 발동시킬 겁니다.”
“소리는 동쪽에서 지르고, 공격은 서쪽으로 한다… 뭐 그런 뜻입니까?”
“비슷합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누군가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전략의 기본이네요. 그런 걸 동대륙에서는 ‘성동격서(聲東擊西)’라고들 부르죠.”
왕국 제일의 천재, 루나 틴 론지에.
평소에는 그 아름다운 외모 탓에 무슨 말을 하든 예뻐만 보였는데.
지금은 그저 이(異) 문화에 미친 계집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제발…….”
직후, 젤다는 간절히 기도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이 미치광이들을 말려주기를…….
“어림도 없지.”
“…어헉!”
“젤다 경, 무슨 생각하는지 표정에서 다 드러나거든요? 근데 이미 늦었어요.”
“그, 그게 무슨…….”
“선빵은 제가 칠 거거든요.”
쩌저저저저저적!
‘요’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허공 위로, 거짓말 좀 보태 저기 성문만큼이나 큰 빙산(氷山)의 파편이 생성되었다.
그리곤,
투-콰아아아아아아앙!
장장 수십 미터를 날아간 얼음덩이는 그대로 성문과 충돌을 일으켰다.
땡, 땡, 땡, 땡, 땡, 땡!
“비상! 비사아아아아아앙!”
과연 누구 말대로, 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던 것이었을까?
알람 마법이 요란하게 울린다.
그뿐만 아니라, 성벽 위로 웬 그림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금이에요. 쏘세요!”
“이런 젠장! 모두 공격!”
젤다가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화르륵! 쩌저적! 파지지지지직!
그와 동시에, 미리 캐스팅된 마법들이 연이어 하늘을 수놓았다.
평소라면 상당히 아름다웠을 광경이다.
새까만 어둠.
그 사이로 쏟아지는 달과 별빛의 무리.
간간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젤다의 센티한 감성을 한층 드높였다.
…아니, 드높였을 것이다.
작금의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분명히.
“이런 곳에서 총각인 채로 죽게 되면, 죽어서라도 원망할 겁니다아아아아아아아!”
젤다가 예의 잘생긴 뒤통수에다 대고 고함쳤다.
물론, 그 목소리는 금세 마법의 폭음 속에 파묻혔지만.
올해로 정확히 마흔둘인 그는, 아직도 미혼인 천연 숫총각이었다.
***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일행들은 당연히 동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문 중 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틀렸다.
다른 왕국이었다면 분명 그리했겠지만, 공국은 이미 내가 ‘방문’한 적이 있던 곳이니까.
웨에에에엥!
“…능력 하나는 확실하네.”
지금 막, 색욕의 이능을 빠져나온 내가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공간이 눈앞으로 펼쳐져 있었다.
언젠가 내가 털어먹은 공국의 왕궁 내부로.
“역시 천장은 이미 막아뒀고.”
한 번 침입을 허용했던 곳이기 때문일까?
이제 필수 가구들을 제외하면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긴, 그때에도 선물을 보관하는 임시 창고에 불과했으니.
“그럼, 바로 나가볼까?”
나는 지체 없이 출입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이대로 어전까지 돌파한다.
그리고, 공왕을 발견하는 즉시 생포하여 사라진다.
예의 내 색욕의 이능으로.
무척이나 심플하면서도 효과적인 계획이지만, 세상일이란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었다.
“……!”
출입문을 나선 직후였다.
참고로, 이곳은 복도 끝에 자리한 조금 동떨어진 공간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아무 귀중품도 보관되어 있지 않기에 지키는 병력조차 없었다.
아니, 없었어야 했다.
한데도, 복도 끝에서 홀로 모습을 드러내는 저 사내는 무엇이란 말인가?
더 큰 문제는, 그가 내 기억 속에도 분명히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궁 내부에 웬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길래 와봤지. 역시 너였군.”
마치 단단한 바위를 연상케 하는 사내였다.
학장 할아버지와는 또 다른, 조금 더 날이 서고 차가운 느낌의.
“…11월의 검사.”
달리 공국 유일의 마스터이자,
철의 기사라고도 불리는 이.
엑스톤 폴 다우니스, 바로 그였다.
“기억해 주는 건가?”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그보다, 제 이능에 특별한 기운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네요.”
“네가 그렇게 사라지고, 현장을 보다 철저하게 조사했지. 공국 한복판에서 도둑놈들을 놓친 건 내 인생에 다시없을 치욕이었으니.”
“소득이 있으셨던 모양이네요.”
“궁금한가? 네 능력의 약점 말이다.”
“뭘 약점까지야.”
내 어깨가 절로 으쓱여졌다.
대비는 할 수 있을지언정, 이능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런 걸 과연 약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분명히 약점이 맞지. 결과적으로 이리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까.”
“…….”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줘서.”
“…글쎄요. 과연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
나는 자세를 다잡았다.
상대의 살기가 보다 뚜렷해졌으니까.
내심으로는, 차라리 잘되었다고까지 생각하는 참이다.
어차피 어전에서 마주하게 될 사내였으니.
“한 판 붙어보죠.”
“……!”
쯔어어엉!
직후, 나는 망설임 없이 마력 창을 생성해 냈다.
큰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소란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기라도 하면 계획에 애로가 생기니까.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 저 사내 외에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듯하니…
‘단숨에 꺾는다.’
생각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멍청한…!”
사내가 소리 내어 비웃었다.
하기야 이미 오래전 마스터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려 스승님과 같은 십이월이기도 한 사내다.
비록 그중 하위권으로 평가받는다곤 해도…
일개 마법사인 내가 근접전으로 승부를 걸어올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겠지.
휘릭! 휘리리릭!
몸을 쏘아내면서 가볍게 창을 휘돌렸다.
십이월을 일대일로 꺾은 마법사.
단언컨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가히 역사상 최초.
더 나아가, 앞으로의 미래에도 다시없을 뜨거운 이슈.
콰아아아아앙!
최초의 충돌에 폭음이 울렸다.
바닥의 석면이 갈라지고, 벽은 전체로 실금이 갔다.
“뭘 그리 서두르는 거지?”
“혹시나 동료라도 부르시면 귀찮아질 테니까요.”
“…큭큭큭큭. 진짜 웃기는 놈이었군.”
상대가 웃거나 말거나, 나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소리를 차단하는 사일런스라고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이만한 초인들의 싸움이라면, 음향은 몰라도 기운은 필연적으로 새어 나갈 터였다.
아까 눈앞에 있는 사내가 내 기운을 느꼈듯이 말이다.
“다시 갑니다.”
짧게 읊조린 내가 재차 마나를 폭발시켰다.
***
쩌엉!
날아드는 마력 창을 가볍게 쳐냈다.
콰직!
그러자 대번에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물론, 이번에도 팔뚝만 들어 손쉽게 막아냈다.
그럼에도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팔뚝을 차낸 반발력을 이용해 곧장 몸을 휘돌리며 거리를 벌렸으니까.
어느새 양손에는 예의 마력 창을 생성해 낸 채로.
“몸놀림이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낫군.”
“그런 칭찬 자주 들어요.”
“진심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거야 해보면 알겠죠.”
엑스톤은 더 이상의 대화가 불필요함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저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는 녀석이었다.
방금의 움직임이 그 증거였다.
물론, 그래봐야 약해빠진 마법사일 뿐이지만.
“…폐하께 심려를 끼쳐 드리고 싶지는 않으니, 단번에 베겠다.”
“할 수 있으시다면요.”
화르르륵!
엑스톤이 망설임 없이 홀을 휘돌렸다.
직후, 검이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마스터면 마스터지, 구태여 ‘십이월’이라는 초인들을 따로 구분지어 놓은 데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그걸 엑스톤은 몸소 보여줄 생각이었다.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녀석에게 직접.
촤르르르르르르!
기묘한 소음과 동시에, 엑스톤의 검이 변화를 보였다.
소위 십이월이라 불리는 초인들은 마스터가 사용하는 강기를 넘어, 또 하나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에 제 고유의 기운을 덧씌울 수 있다는 것.
이걸 할 수 있냐, 없느냐에 따라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는 12인에 포함되는지가 결정된다.
그만큼 대단한 힘이었고, 할 줄 아는 이들도 극소수라는 뜻이다.
그 차이점은 명명백백했다.
같은 의미로, 철의 기사 엑스톤은…
“……!”
순간, 흐릿한 환영처럼 변화를 보이던 검이 이내 두 개로 나뉘었다.
최초 두 개는 네 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덟로 불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점차 많아졌다.
그렇게 떠오른 검들은 엑스톤의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그를 호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합 128개.
생성된 검의 숫자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쩌정! 쩌저저저정!
그중 일부는, 갑옷처럼 엑스톤의 전신으로 달라붙었다.
인간의 급소라 불리는 머리 또한.
마치 풀플레이트메일에 투구까지 착용한 완벽한 무장 상태의 기사.
그야말로 ‘철의 기사’라는 별명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준비는 됐나? 지금부터는 조금 긴장해야 할 거다.”
“그래 보이네요.”
“참고로 이 검 하나하나에 강기가 덧씌워져 있으며, 내 몸에 달라붙은 검들조차 강기의 강도를 그대로 가져왔다.”
“대단한데요?”
“너는 내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으나, 만약 내 검 중 하나라도 스친다면… 대번에 신체가 뭉텅 썰려 나갈 테지.”
“그것참 무섭네요.”
“…….”
마침내 엑스톤이 입을 다물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단순히 무지에서 오는 만용이라고 표하기에는, 느낌이 상당히 께름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놈과 함께 다니던 이가 자신과 같은 십이월인 에이스 디 파르마였으니까.
심지어, 기억이 정확하다면 저 녀석은 그를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머리가 아프군. 사지 몇 군데를 잘라놓고 물어보면 될 테지.”
하여, 엑스톤은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었으니까.
그저 계획대로 홀을 운용했다.
최초 강물쯤 되는 기운을, 일순 바다처럼 쏟아부었다.
그만큼 이번 한 수는 무지막지한 마나를 잡아먹었으니까.
“스읍…….”
엑스톤이 가볍게 심호흡했다.
검은, 콧등 바로 앞에 일직선으로 곧추 세운 채.
그 의지에 따라 허공을 맴돌던 무수한 검들이 일순 상대를 겨눈다.
생(生)은 전장에서 스러지나.
검(劍)은 이 땅에 그대로 남는다.
혼(魂)은 의지가 되고.
의(意)는 살의로 번져 복수를 행하니.
검들은 폭우(暴雨)가 되어 적에게 쏟아진다.
철의 기사 제3비기.
강철의 비살.
쐐쇄쇄쇄쇄쇄쇄쇄쇅!
마침내 백수십의 검들이 빗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강기의 덩어리.
태산조차 가를 그 엄청난 예기가, 인간의 피육을 향해 쏟아진다.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혹여나 죽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생포해 정보를 캐내는 게 최선이지만.
방심으로 놓치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으니까.
똑같은 실수를 두 번은 반복하지 않는다.
그것이 엑스톤의 철칙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다만, 그런 그조차 착각한 사실이 있으니.
“무, 무슨…?”
폭사되는 검의 비속, 엑스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펑! 퍼펑! 퍼퍼퍼펑!
피하는 것도 아니었다.
녀석은 쏟아지는 강기를, 하나둘 직접 쳐내고 있었다.
바위조차 한낱 가루로 으스러뜨리는 그 무지막지한 힘을, 고작 제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으로 맞부딪혔다.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다.
기사들에게도 검기니, 검강이니 하는 마나의 ‘집약도’가 있는 것처럼.
마법사들에게도 소위 ‘농도’라 불리는 비슷한 개념이 있었다.
마스터.
그것도 십이월에 이르는, 보다 완벽한 강기를 정면에서 막아낼 수 있다 함은.
“설마, 7써클…?”
하나밖에 없었다.
7써클.
마탑에서도 소위 3강이라 불리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경지.
기사의 강기를, 마법사가 정면승부로 상쇄하는 모습은 엑스톤도 눈으로 딱 한 번 목격했다.
블레어 마탑주.
그 인간 같지 않은 제1마탑주에게서.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요?”
“……!”
여전히 쏟아지는 철의 폭우 속, 녀석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보고 있자니 갑자기 떠올랐는데. 저도 비슷한 걸 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뭐…?”
촤촤촤촤촤촤촤!
녀석은 대답 없이 허공으로 마력 검들을 생성해 냈다.
그 수만 어림잡아 일백을 헤아렸다.
“듣자 하니 아저씨, 십이월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라면서요? 소문에, 같은 십이월이라도 격차가 상당하다고들 하던데….”
“…….”
“지금의 저는, 같은 개념인 십이지왕에서 못해도 중간 이상은 될 것 같거든요.”
“……!”
“그러니까, 그렇게 놀라실 필요는 없다고요.”
쩌어어엉!
마침내 녀석이 마지막 남은 검마저 쳐냈다.
그리곤,
휘리릭!
“지는 게 당연한 거니까.”
“…….”
예의 마력 창을 떨쳐 내며 속을 뒤집는 한마디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여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