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공국을 점령하라(2)
테라의 국경을 책임지는 자는 울프 백작이었다.
이름대로, 생긴 것도 야생의 늑대를 연상케 하는 사내였다.
참고로 그는 최근에 공국의 귀족이 되었다.
하면 어떻게 단번에 고위급이 되었느냐?
설명할 것도 없었다.
그는 황제의 사람이었다.
하물며, 공국은 이제 제국의 완벽한 속국이었으니까.
물론 스란에는 아직 국보(國寶)로까지 여겨지는 11월의 검사, 엑스톤 폴 다우니스가 버티고 있었다.
달리 철의 기사라고도 불리는 그는, 제국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눈엣가시였다.
다만 그는 공왕의 충직한 심복이었고, 그 공왕은 제국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이 중요했지만.
“…병신.”
잠시 상념을 떠올리던 울프가 이내 정면을 바라봤다.
언젠가부터 한 사내가 조용히 발 아래에 부복해 있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못 들었다. 다시 한번 지껄여 보거라.”
움찔.
일순 사내가 몸을 들썩였지만 그뿐이었다.
“…성문 밖 약 3킬로미터 지점에서 일단의 무리가 접근해 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흠… 적인가? 마침 따분했는데 잘됐군. 방향은?”
“테라 쪽으로 확인됩니다. 한데, 적이라 보기에는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뭇 당혹감마저 느껴지는 사내의 말에 울프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누누이 일렀던 것 같은데. 내 신조가 뭐라고 했지?”
“…알아듣기 쉽게. 용건만 간단히 입니다.”
“그걸 아는 놈이 이따위 보고냐?”
“죄송합니다. 침입해 오는 인원이 약 일백 가량이라는 믿기 힘든 얘기를 들어서…….”
“뭐, 일백만?”
벌떡!
두 눈을 부릅뜬 울프가 당장에 몸을 일으켰다.
“자, 잘못 본 거 아니야? 테라에 일백만이나 되는 병력이 어디 있다고!”
“저… 일백만이 아니라, 일백 ‘명’입니다.”
“……?”
순간, 울프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다시 말해 봐.”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그는 투박한 손가락을 들어 제 귀까지 후벼 팠다.
“접근해 오는 신원 미상의 무리는, 약 일백 가량입니다.”
뻐어어어억!
직후, 보고를 이어가던 사내가 피를 흩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발길질에 얼마나 거력이 담겨 있었던지, 예의 사내는 한참이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컥.”
“니미, 씨벌. 지금 장난 까냐? 뭐 일백? 그럼 기껏 처 와서 보고는 왜 하고 있냐?”
용병 출신답게 울프는 입이 상당히 거칠었다.
보이는 광경대로, 행동 또한.
“이런 거까지 내가 일일이 신경 써야 돼? 엉? 입이 있으면 한번 지껄여 봐라.”
“죄송… 합니다. 알아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만, 혹 외교로 온 사신일지도 몰라…….”
“다 죽여.”
“…예?”
“다 죽이라고. 이미 위에서 확고하게 가닥을 잡은 것 같으니까.”
울프가 김빠진 표정으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흥미를 잃었는지,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벼 파던 그가 일순 틱, 코딱지를 튕겼다.
휘릭, 챱!
왕건이었다.
그것은 정확하게 다시금 무릎 꿇은 사내의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부르르르르.
천상 기사인 그가 모욕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꼬와?”
“…아닙니다.”
“꼬우면 네가 내 상관하던가~”
울프는 발을 들어 사내의 머리까지 지긋이 짓밟았다.
실제, 벼락출세한 울프와 사내의 실력은 엇비슷했다.
아니, 세간에서는 오히려 울프가 한 수 아래로 평가되었다.
공국의 명문 중의 명문, 아스트로 후작가의 장남.
빈센트 탈 아스트로.
그것이 지금 무릎 꿇고 있는 사내의 신분이었으니까.
“아, 재미없다.”
“…….”
“야, 그냥 꺼져. 앞으로 잡일은 알아서 처리하고. 별 시답지 않은 일로 내 귀중한 시간을 뺏지 말란 말이야. 알간?”
“…예.”
“너 지금 반항하냐?”
“명 받들겠습니다.”
“그래야지. 븅신이.”
퍽!
머리를 지그시 눌러대던 발등이 거칠게 정수리를 타격했다.
“…….”
물론 빈센트는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
스란의 영역을 약 일 킬로미터 남겨둔 지점.
이제는 거대한 장벽이 확실하게 시야로 들어왔다.
아마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화살의 비가 쏟아지겠지.
“우선 사신이라도 보내볼까요?”
그때, 젤다 남작이 내게 이리 다가섰다.
“왜요?”
“고작 이 인원으로 전쟁을 하러 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까요. 일단 저들의 방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제법 괜찮은 책략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대신, 그 사신 역할을 맡은 분은 열에 열의 확률로 죽게 되겠죠?”
“…국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웃으며 희생할 겁니다.”
“아니요.”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국민보다 위대한 국가는 없어요. 사람이 최우선이 되어야죠.”
“…예? 그게 무슨…?”
“애당초 국가의 존립 목적이 뭐예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거잖아요. 사람이 없는데 나라는 또 어떻게 있을 수 있겠어요?”
“이, 이해하기 힘든 말입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적어도, 신분 사회에 완벽하게 찌든 이들의 입장에서라면.
허나,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민이었다.
이런 쪽으로는 소위 ‘깨어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뭐, 내 사상까지 일일이 이해시킬 생각은 전혀 없지만.’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 내가 힐끗, 하늘을 올려다봤다.
원래는 푸른 창공이었을 그곳은, 어느새 완벽한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 마법에 따른 변화였다.
7써클 이상의 최고위 마법들은 주변의 기후나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치니까.
“슬슬 시작해 볼까?”
“뭔데, 또 불꽃 마법으로 저지를 거냐?”
그 순간 내 어깨너머로 불쑥, 주홍빛 머리통이 솟구쳤다.
이번에도 나를 따라나선 유리나였다.
교육 때문이라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자기도 5써클 마법사인데 뭐가 문제냐고 바득바득 따지고 들었으니까.
더불어…
“…음.”
자연스레 내 시선이 그보다 더 뒤로 향했다.
웬 흑발의 미녀가 멀지 않은 곳에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으로는 일견 예리한 기세를 흩뿌리면서.
마치 내 등을 호위라도 하듯이.
…보고만 있어도 든든한 광경이지만, 이게 또 상당히 부담이었다.
“저, 루나. 평상시에는 그렇게까지 주변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데…….”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일전에 습격해 온 암살자들이 기습이라도 해올지.”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괜찮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까.”
내가 안 괜찮거든요, 이 아가씨야.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내가 이내 포기하고 전방을 주시했다.
준비는 끝났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쉼 없이 머리 위에서 내려치는 새하얀 뇌전이, 내게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으니까.
아마 저들도 퍽이나 당황스러울 테지.
고작 일백으로 쳐들어오지를 않나.
화창하기만 하던 하늘에서는 때 아닌 날벼락이 쳐대질 않나.
그러니까, 적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는 이 전초전(前哨戰)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다들 잠시만 뒤로 물러서 줄래요? 가능하면 멀리요.”
“……!”
“아까 제가 부탁한 것만 확실하게 준비하고 있어주세요.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전체적인 지휘는 1팀장님이 맡아주시고요.”
찰나 눈을 크게 뜬 젤다 남작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나와 루나도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다른 무엇보다 내 명을 최우선으로 따르기로 미리 얘기가 되어 있었으니까.
곧 사람들이 최소 10여 미터는 멀찍이 물러선 것이 확인되자,
우웅! 우우우웅!
나는 써클을 휘돌렸다.
내 의지에 반응하여 마나가 대기 중에서 힘차게 공명을 일으켰다.
경지는 7써클.
주력은 뇌전(雷電).
작금의 대륙에서는 완전히 잊혀졌으나, 드래곤의 기억 속에는 명명백백히 존재하는 힘.
그 옛날, 신의 육신에마저 상처를 입혔다고 알려진 고대의 마법.
“…우라노스 라그나뢰크(Uranus Ragnarök).”
빠직!
내 시전어와 동시에, 찰나 지면으로 튀어 오른 스파크는,
빠직! 빠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이윽고 무수한 전류가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꽈릉! 퍼어어어어엉!
때마침 하늘에서 내려친 번개는 정확히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뇌류와 내가, 마침내 한 몸이 된 것이다.
“세, 세타!”
화들짝 놀란 유리나가 외쳤다.
루나는 이미 이쪽으로 뛰어올 준비까지 마쳤다.
“멈춰! 괜찮으니까.”
“……!”
그 즉시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어느새 나는 눈부신 광채에 휩싸여 있었기에.
파직! 파지직!
간간이 전신으로 살기 어린 스파크를 튀겨대면서.
마치 하늘에 뇌신이 존재한다면, 꼭 이런 모습일 거라고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먼저 갑니다!”
직후, 나는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목표는 명확했고, 대화는 불필요했다.
전쟁은 저들이 먼저 시작했으니.
나는, 내 것을 건드린 이들에게 베풀 자비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스팟!
순간, 내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오직 마나만을 뜨겁게 불태웠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한줄기 ‘뇌전’이 되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꽈릉! 꽈르르르릉!
눈앞에서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으아아아악!”
“뇌, 뇌신이다! 뇌신이 나타났다아아아아아아아!”
공포가 뒤섞인 비명들이 천지를 찢어발겼다.
그 수만 최소 수백.
아니, 수천을 훌쩍 넘겼다.
저들은 방심했다.
고작 일백뿐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내가 최초 접근했을 때는 성벽을 오른 이들조차 얼마 보이지 않았다.
적의 명백한 패착이었고.
나는 기회를 놓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우르르릉!
잠시간 여기저기 뇌전을 흩뿌리던 나는 곧장 또 하나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내가 굳이 4써클 이상의 마법사들만 엄선하여 데리고 온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전쟁을 보다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끝마치기 위해서다.
웨에에에에엥!
이제는 익숙한 소음과 동시에, 허공에 새까만 아가리가 생성되었다.
앞으로 약 1분 동안만 지속될 그곳에서…
꽝! 꽈과과과과과광!
갖가지 색깔의 향연이 비집고 나왔다.
여러 4써클 이상의 마법들이 내가 만들어낸 이능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이다.
목표는 장벽 너머에 자리한 공국 병력들의 거처.
그중에서도 ‘식량’이 보관되어 있을 법한 건물들이었다.
당연하게도, 밥을 먹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듣기로,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조차 최소 일주일 거리라고 했으니.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국경지대를 빼앗을 수 있다는 거지. 복수심에 불타 일시 후퇴했던 이들이 재차 이곳으로 반격해 올 때, 우리는 이미 공국의 수도에 도착해 있을 거고.’
화륵! 쩌저저저적! 푸화아아악!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도 마법의 향연은 계속되었다.
화염계 파이어 레인(Fire rain).
대지계 어스 라이즈(Earth rise).
바람계 스파이럴 토네이도(Spirul Tornado)는 물론이고, 얼음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프로즌 오브(Frozen obe)까지.
그야말로 온갖 중급 이상의 마법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 일백의 힘은 장벽 너머에 자리한 건물들을 남김없이 파괴시켜 나갔다.
타겟을 설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내가 손짓하는 마나의 흐름에 따라 마법들은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지금만큼 나는, 완벽한 전장의 지휘자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내가 지닌 죄악의 능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색욕의 이능은 텔레포트처럼 특정 대상을 이동시키는 능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워프처럼 발을 딛고 선 곳과 목적지를 연결시켜 주는 통로와 같았다.
다시 말해,
“…역시 사기네.”
이 무지막지한 능력의 범위는 사람뿐만 아니라 ‘물체’나 ‘기운’까지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