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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172화 (172/251)

172화. 마스터, 루나 틴 론지에(2)

“이게… 대체 무슨…!”

루나는 작금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앞의 여인.

분명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공주님이 분명했다.

한데, 그런 당신이 이쪽으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전신으로는 그녀조차 경시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마기를 내뿜으면서.

“무슨 일이십니까!?”

변고를 눈치챈 것일까.

멀지 않은 4층의 계단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 몇몇이 후다닥 달려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배치되어 있던 경력들이었다.

“응…?”

허나, 막상 도착한 그들조차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소란이 벌어졌음은 분명한데, 사람이라고는 공주님과 호위 기사인 루나, 단 둘뿐이었으니까.

“…큭!”

루나는 곧장 경고성을 발하려 했다.

아직 시야가 흐릿한 와중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목구멍을 쥐어짰다.

“조… 심…!”

서걱! 서걱!

순간, 섬뜩한 파육음이 연이어 울렸다.

한발 늦었다.

허공 높이 떠오른 다섯 개의 수급.

고작 일 초 상간이었다.

엑스퍼트를 목전에 둔 기사 다섯이 목 없는 시체로 변모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낼름.

직후, 레이지 공주님이 혀를 내밀어 제 손톱을 핥았다.

족히 일 미터는 될 듯한 길이의 손톱은 여느 날 선 비수 못지않았다.

그리고, 이제 루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저 마녀는 그녀가 알던 공주님이 아니라고.

부르르르르.

루나가 검을 지지대 삼아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불의의 습격으로 생각보다 몸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한쪽 눈은 날카로운 파편에 긁혔는지 채 뜨기도 힘들었으며.

특히나, 아직도 옆구리에 박혀 있는 기다란 나무 조각이 문제였다.

덥썩! 푸슈우욱!

허나, 루나는 망설임 없이 나무 조각을 뽑아냈다.

잠시간 뿜어지던 선혈은, 곧 루나의 마나로 금세 지혈됐다.

그 시점에서, 마녀는 완전히 그녀를 동공에 떠올리고 있었다.

“…누구냐?”

루나의 잇새로,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육성이 새어 나왔다.

“어머. 누구라니? 당연히 네 공주님이지. 안 본 사이 내 얼굴도 까먹은 거니, 루나?”

“헛소리는… 집어치워. 너 따위가 공주님일 리가 없다…!”

“흐응~ 왜 그렇게 생각할까? 얼굴도, 육신도, 기억도. 나는 모두 레이지 칸 테레이라 그 자체인데 말이야.”

“그 입… 닥쳐…!”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은 원래 변하는 법이잖니? 더욱이, 계기가 있다면 인성이 바뀌는 건 일도 아니지. 가령, 루나 네가 내 손을 놓쳤던 ‘그날’처럼.”

“……!”

루나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공주님이 아니라고 고개를 도리질 치고 있음에도, 날카로운 무언가가 심장을 후벼 파는 기분이었다.

그 때문에, 루나는 더 이상 참고 있기 힘들었다.

“뭐야, 루나. 지금 나한테 검을 겨누는 거니? 네 주인님인 나한테?”

“…….”

루나는 더 대꾸하지 않고 검을 콰득 움켜쥐었다.

아직 맞붙기 전이었음에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상대는 강했다.

지금의 그녀로서는 무슨 수를 써도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절망적이게도, 원군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이미 4층 전체에 웬 시꺼먼 막이 둘러쳐져 있었으니까.

아마 이 또한 마녀의 능력일 것인즉.

“…여기서 목숨을 거는 수밖에.”

하여, 루나는 모종의 결단을 내렸다.

생명의 근원.

진원의 마나를 끌어내기로.

그거라면, 또 한 번 일시적으로 ‘벽’을 뛰어넘는 것이 가능했다.

우웅! 우우우우웅!

순간적으로 루나의 전신으로 쩌저적, 실금이 갔다.

진짜 실금이 아니라, 우둘투둘한 핏줄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면서 그리 보이게 된 것이다.

홀이 요동치고, 두 눈에는 핏발마저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르륵!’ 손안의 검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엑스퍼트 최상급의 경지, 오러 파이어.

이 시점에서, 루나는 또 한 번 홀 안에 잠재된 모든 마나를 쏟아부었다.

스으으으으으으.

폐부 깊숙이 공기가 파고든다.

그러자,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꽃이 점차 검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성난 파도와도 같던 마나가, 폭풍전야의 바다처럼 고요하게 가라앉고 있음이다.

진정한 강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그 말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검 전체로 덧씌워지는 마스터의 전유물.

“…검강?”

마녀가 놀라 입을 벌렸다.

스팟!

맞은편의 루나가 지체없이 땅을 박찼다.

쩌정! 서걱!

최초의 격돌에 마녀의 손톱이 날아갔다.

콰직!

두 번째에는, 복부를 얻어맞은 마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휘둘러지는 검격에 맞춰 루나가 다리를 차올린 결과였다.

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하며, 루나는 조금 더 무리를 감행했다.

검뿐만 아니라 전신으로 마나를 휘돌릴 수 있는 단계.

하급을 넘어선, 숙련된 마스터의 힘.

“…쿨럭!”

그 순간, 루나가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내장 하나 뒤섞이지 않은 깨끗하고 새빨간 피였다.

명백히 무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실제로 시꺼멓게 죽은피보다, 이런 종류의 피가 더 무서운 법이니까.

‘…앞으로 10초.’

하여, 루나는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설령 이번 전투로 마나의 상당량을 잃게 되더라도…

또 한 번 공주님을 빼앗길 수는 없었기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만둬!”

움찔.

찰나, 루나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거짓말처럼, 절대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기 때문이다.

환청인가?

그 아이가 해줬던 말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이런 현상마저 벌어진 것이라던가…

“그러다 몸 망쳐. 이런 곳에서 죽고 싶은 거야?”

“……!”

착각이 아니었다.

루나의 고개가 천천히, 뒤쪽으로 돌아갔다.

지금 막 4층으로 올라서는 계단 끝에,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세타? 어떻게…?”

“이유를 묻는 것이라면, 여긴 한 번이 아니라 이미 수십 번도 더 왔던 곳이니까.”

“……!”

“검 집어넣고, 지금부터는 나한테 맡겨. 애당초 저건 내가 처리해야 할 복수의 잔재거든.”

세타는 마치 마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루나는 내심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아, 나는 어느 샌가 이토록이나 저 아이를 신뢰하게 되었구나…….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그때, 마녀가 소리 죽여 웃었다.

허나, 그 눈빛만큼은 원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명확했다.

“세타 쿤 이그니스. 여기서 또 만나네?”

“이미 죽은 것 아니었나? 나태의 레이지.”

“내가 생명력이 좀 질기거든. 한 마리의 바퀴벌레 같은 여자랄까?”

‘호호’ 고성을 터뜨린 마녀가 그대로 복도 창가에 걸터앉았다.

“그럼 난 이만~ 아직은 너랑 싸울 생각이 없거든.”

“내가 그냥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급한 건 내 쪽이 아닐 텐데? 루나 그 아이, 당장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꽤나 위험할 테니까.”

“…….”

힐끗, 세타가 이쪽을 바라봤다.

루나는 곧장 괜찮다고 소리치려 했다.

허나, 그럴 수가 없었다.

때마침 귀신같이 시야가 팽팽 돌기 시작했으니까.

속에서는 헛구역질까지 치밀어 올랐다.

“마기가 몸 안으로 침투했어.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

“그리 무섭게 노려볼 필요 없어. 늦어도… 일. 그 뒤에… 직접 찾아 죽일…….”

어느새 주변의 소음마저 드문드문 들려올 무렵.

털썩!

“안… 되는…데.”

마침내 루나의 신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

“…….”

깨져 나간 창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내가 시선을 내렸다.

“하아, 하아…….”

구태여 레이지를 쫓지는 않았다.

아니, 쫓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루나의 부상이 내 생각보다 더 심각했으니까.

울컥!

누운 채로 피를 토하는 루나를 보며 나는 곧장 그녀의 상반신을 들어 올렸다.

피가 응고되어 기도라도 막으면 곤란했으니까.

“음…….”

그 상태로 잠시간 고민했다.

완전한 마스터라면 모를까.

아직 엑스퍼트의 육신으로, 칠악의 마기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하니, 일단 이 마기부터 외부로 끌어내야 했다.

한데, 이미 거기서 내 계획이 틀어졌다.

“…진원의 마나를 사용했군.”

내 표정이 이전보다 훨씬 굳어졌다.

진원의 마나는 곧 생명의 근원이다.

다시 말해, 루나는 제 수명까지 깎아가며 무리를 한 것이다.

하기야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녀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눈이 돌아갔을 테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겠는데.”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내가 이내 루나를 안아 들었다.

도중에 방해를 받아서는 곤란했으니까.

하여, 곧장 색욕의 이능을 발동시켰다.

웨에에에엥!

순식간에 주변 배경이 허물어져 간다.

다시 나타난 곳은, 성 뒤뜰에 자리한 고요한 정원.

푹신한 풀 위에 루나를 누인 내가 써클을 휘돌렸다.

가장 시급한 것은, 깨지기 일보직전인 복부의 홀이었다.

설령 마나를 원상 복귀시키더라도.

그 마나를 담을 그릇이 깨져 있는 상태라면, 밑 빠진 둑에 물 붓기니까.

결과적으로, 이 홀부터 고쳐 내야 한다는 거다.

기왕이면 이전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개념상으로 가능한 일이기는 한데, 성공하면 따로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네.”

치료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을, 나는 이미 한 명 알고 있었다.

치유의 마탑주 스실라 샤르넬리.

그녀는 최초 ‘물’이라는 주력을 매개로 그 위명을 얻게 되었다.

물은 자체로 원기를 회복시키는 속성을 품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원리는 어디까지나 ‘회복력’의 비약적인 상승이다.

이미 깨진 그릇을 대상으로는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물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단순히 회복력이 아닌, 본연의 상태로 완벽하게 되돌릴 수 있는 속성을 지닌 힘을.’

매우 희귀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능력을 지닌 주력의 마나가 존재했다.

사제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에도 뒤지지 않는 그것은…

“…빛.”

화아아아악!

이윽고 내 양손이 새하얗게 물들어 갔다.

어느새 이마 위로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아무래도,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원래 예정보다 곱절은 많아질 듯하다.

***

날이 어둑어둑 저물어가는 저녁.

“으음…….”

루나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 아이가 보였다.

“…네가 또 나를 구한 건가?”

“고마우면 말 안 해도 알지?”

세타가 장난스레 대꾸했다.

자연스레, 루나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그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공주님은?”

“알잖아. 이제 그건 네가 아는 레이지 공주가 아니라는 거.”

“…….”

루나는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가슴이 답답했다.

뿐만 아니라, 목구멍을 타고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온갖 괴로운 감정들이 순식간에 뇌리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

대답은 없었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도 아니었다.

루나의 목소리로 점차 물기가 섞여 들었다.

“공주님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껏 버텨왔다. 한데, 그런 공주님이 이미 돌아가셨다면… 나는 이 이상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까 더더욱 살아야지.”

“……!”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세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마족에게 사로잡힌 혼은 죽어서도 구원받지 못해. 오직 완전한 소멸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

“그런…….”

“그리고, 아직 정확한 상태는 아무도 모르잖아? 만약 단순히 육신만 빼앗긴 상태라면, 다시 되돌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그, 그게 사실인가?”

“응. 다만, 지금 네 힘으로 그녀를 잡는 건 무리겠지.”

“…….”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번 일로, 루나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고. 이 내가 도와줄 테니까.”

“…하지만…….”

“‘마스터’인 너와 7써클 마법사인 내가 힘을 합치면, 칠악이 아니라 세상 그 누가 두렵겠어?”

“…마스터…? 그게 무슨…….”

찰나, 루나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제야 몸속에 자리한 어마어마한 마나가 느껴졌기에.

“이게 대체!?”

루나가 저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의 원인은 명확했다.

“축하해. 진짜 마스터에 올라선 것을.”

“……!”

“그러니까, 다시 한 걸음 전진해. 루나, 너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루나가 멍하니 세타의 얼굴을 바라만 봤다.

한참이나 그리 있던 그녀는 곧,

털썩!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뭐, 뭐야!? 왜 이러는 건데?”

“나 루나 틴 론지에는, 세타 쿤 이그니스에게 기사의 서약을 맹세한다.”

“……!”

“앞으로 나는 네 기사가 되겠다. 오직 너를 위해 살겠다. 내 남은 생이 다 하는 그날까지.”

직후, 루나가 곧바로 기사의 예를 취했다.

지금 그녀는 진심이었다.

이 은혜는, 고작 ‘고맙다’라는 한 마디로 절대 갚을 수 없는 것이니까.

“…아니, 뭘 기사의 서약까지야…….”

“거절은 거절하겠다.”

“…정말로 나 따위를 주군으로 삼아도 괜찮겠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을…….”

“내게는 대륙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할 최고의 주군이다.”

“…거, 되게 낯 간지러운 말이네.”

가볍게 볼 끝을 긁적이던 세타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루나는 그 행동을 오해하고 말았다.

“혹…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급한 불을 끄고 나니까, 또 해야 할 일이 떠올라서.”

“해야 할 일?”

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리비아로 향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지?”

“…물론이다.”

“거기서 문제가 생겼거든. 곧장 자이툰을 도우러 갈 계획이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선수를 치더라고.”

“다시 말해, 제국군이 먼저 움직였다는 건가?”

“아니, 제국군 말고.”

“……?”

“공국군이야.”

“……!”

순간, 루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 공국? 스란 말인가?”

“그래.”

“하지만 공국의 힘만으로 연합에 대항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텐데…….”

“뭐, 시간이라도 끌어보겠다는 거겠지. 그래서 말인데, 그 전에 내가 별동대를 이끌고 공국을 칠 생각이야.”

“뭐, 뭐라고…?”

루나가 기함했다.

빈집털이도 정도가 있지.

한 나라를 공략하는 일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허나, 정작 경악스러운 얘기는 그다음에 흘러나왔다.

“공왕을 사로잡고, 공국의 수도부터 함락시킨다.”

“……!”

“도와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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