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69화 (169/251)

169화. 연합 전선(1)

내 가벼운 손짓 한 번에,

- 끼이이이익…….

쿵!

와이번 두 마리가 다리를 접었다.

“너네 너무 크다.”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푸드득!

마치 인간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 마냥, 날개까지 접으며 고개를 수그렸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다냐?”

“어떻게 된 일이긴. 보시는 그대로지.”

“아니, 뭐 이런 황당한…….”

이 놀라운 광경에 유리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와이번이 이렇게 다루기 쉬운 마물이었다고?”

“와이번이 다루기 쉬운 마물이 아니라, 그 대상이 나니까 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 안 하냐?”

“…여전히 재수 없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내가 곧바로 마법을 디스펠시켰다.

그와 동시에, 와이번들을 옭아매고 있던 세계수의 줄기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두 마물은 조금도 난동을 피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부르르르.

그저 가여울 정도로 제 거체를 떨어댈 뿐.

덥석!

“……?”

순간, 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어느샌가 살며시 내 옷자락을 붙잡은 유리나가 간절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설명 좀 해주면 안 되냐?”

“…….”

“제발.”

“…….”

“제발요.”

잠시 고민하던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이 능력은 드래곤 피어까지 혼재된 고대의 테이밍 마법이다!’라고 곧이곧대로 설명할 수는 없으니.

‘잠깐 골려줘 볼까?’

문득 장난기가 들었다.

“우연치 않게 얻게 된 고대의 마법이야.”

“여, 역시 고대의 마법이었냐!?”

“뭐, 그렇지.”

“이름! 이름이 뭔데?”

“이름?”

“고대의 마법이면, 그 당시인 대마도기에 불렸던 명칭이 따로 있을 것 아니야? 전설의 테이밍이라던가, 환상의 유혹술이라던가…….”

“…뭐냐, 그 유치찬란한 이름들은?”

“그니깐, 진짜 이름이 뭐냐고.”

“나도 얼핏 본 거긴 한데…….”

찰나 생각하는 척하던 내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룬어로 ‘Business Secrets’이던가?”

“비… 뭐?”

“에이, 됐다.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한 애가 뭔 벌써 달릴 생각부터 하냐?”

“이씨.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법이 없네. 너, 약속이나 잊지 마라. 하나 받고 두 개 더. 알지?”

“그래그래. 그보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지?”

말을 마친 내가 이내 정면을 턱짓했다.

내 의지가 곧장 전해진 것일까?

- 끼이이이…….

직후 두 와이번이 머리를 납작 바닥으로 가져다 붙였다.

“타.”

“지, 진짜로 이걸 타고 리비아까지 갈 생각이라고?”

“그럼 뭣 하러 이 고생을 했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때, 내 안색이 돌변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제법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기에.

“…제국군인가?”

“뭣!? 제국군?”

“아마도. 시간 없으니까 빨리 올라타.”

“자, 잠깐!”

우우웅!

빠르게 손사래 치는 유리나에게 나는 지체 없이 중력 마법을 걸었다.

휙!

“끼야아아악!”

재차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푸드득!

그 즉시, 와이번 두 마리가 힘차게 날갯짓을 시작했다.

펄럭! 펄럭!

희뿌연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거친 파공음이 연이어 울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쏴아아아아아아아아!

“……!”

창공이 우리의 눈앞으로 펼쳐졌다.

순식간에 점처럼 멀어진 푸른 숲.

내리쬐는 태양은 보다 가까워졌고, 사방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혹여나 광풍에 날아갈까 에어 쉴드로 방비까지 해뒀으니,

“기분 좋냐?”

우리는 그저 잠깐의 여유.

자연이 가져다주는 이 황홀한 절경을 감상하기만 하면 됐다.

“엉. 완전 조아아아아아!”

언젠가부터 어린애처럼 입까지 ‘하’ 벌리고, 마주 오는 바람을 맞던 유리나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근래 처음 보는 해맑은 웃음이었다.

다만, 우리를 태운 와이번은 그런 유리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푸드득!

또 한차례 가볍게 제 날개를 떨쳐 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그 즉시, 유리나가 크게 휘청였다.

깃털을 콰득 움켜쥔 그녀가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가능한 저고도로 날고 있었지만 떨어지면 무조건 즉사였으니까.

그런 와이번의 행동을 오해했는지,

“이 새끼, 네가 암컷이었냐아아아아아아아!?”

퍽퍽! 주먹으로 거체를 내려친 유리나가 악에 받쳐 고함쳤다.

***

결국 ‘파병 인원 구성을 미루자’라는 레베카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그니스 백작’이라는 이름을 여태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태반이 테라가 구색만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서야 진심에 대한 증명이 되지 않는다면서.

차라리 그뿐이면 다행이다.

“아예 도착하는 대로 포박부터 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이 시점에서 뒤늦게 방문하는 테라의 저의가 저는 무척이나 의심되니까요.”

“분명 이름뿐인 백작일 겁니다. 이번 일을 위해 하위 귀족들 중 적당한 자를 물색해 작위만 수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백작 이상의 고위 관료들은 대부분이 타국에서도 유명했다.

끽해야 전체의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인물들이니까.

정치를 위해서라도 그들에 대한 정보 수집은 필수였다.

그런 와중에, 이곳의 누구도 이그니스라는 이름은 한 차례도 접해보지 못했으니…

“…시작부터 쉽지가 않네.”

홀로 식당 밖으로 나온 레베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려 10만이다.

그것도, 각국의 병력이 한데 뒤섞인.

지휘에 곱절은 많은 노력이 들 것은 기정사실이건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나은 지휘관이 군을 이끌어줘야만 했다.

그리해도 단기간에 모든 이들의 신뢰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일신의 능력이 한계를 뛰어넘은, 소위 ‘대륙급’ 초인들은 얘기가 달랐다.

십이월이니 마탑주니 하는, 규격 외의 존재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베카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역시 세타 님이 필요해.’

10만 군을 이끌 자는 그가 제격이라고.

분명 연합 전선에도 초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눈치를 살피느라 먼저 나서는 법이 없었다.

영웅은 뒤늦게 등장한다고.

분명 아군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을 때야, 자신들이 나설 때라는 엿 같은 생각이나 해대고 있겠지.

쿵!

이윽고 방으로 돌아온 레베카가 통신용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연락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우우웅!

잠시 후, 이내 작은 공명음이 내부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

꼬박 만 하루가 지났다.

그사이, 수정구를 통해 레베카에게 한 차례 더 연락이 왔다.

- 오시면 조금 곤란한 일을 당하실지도 모르겠어요.

- 무슨 뜻이야?

- 아무래도 연합에서 테라를 그리 반기는 눈치가 아니라서요.

- 엉? 달리 이유라도 있나? 아무리 다 무너져 가는 테라라지만, 이 시점에서 손은 많을수록 좋을 텐데…….

- 저도 지극히 공감하는 부분이기는 한데, 말씀하신 대로 다 무너져 가는 테라가 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그런 반응들이더라구요. 죄송해요.

- 뭘. 그게 어디 네 잘못도 아닌데. 반응을 보니, 내 얘기도 이미 다 했겠네?

- …분명.

- 아하.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구만?

- 너무 마음 쓰지는 마세요.

반란군이 제국군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연합 입장에서는 아직 그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라…….

- 다시 말해, 포인트는 두 가지네. 하나는 내 능력을 보여줄 것, 다른 하나는 진심을 증명할 것.

- 면목 없네요. 이리 먼 걸음을 하게 해놓고 제가 아무런 도움도 되질 못해서…….

- 응? 괜찮아. 별로 힘들지도 않거든. 아마 곧 도착할 거야.

- 네? 그게 무슨…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요?

- 내가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리비아로 가고 있거든. 아마 이것만 봐도 높으신 분들이 내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걸?

- 그리 말씀하시니까 제가 더 궁금해지는데요?

-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나머지. 진심의 증명인데…….

내가 여기까지 아까의 대화를 떠올렸을 때였다.

“얌마, 세타.”

“엉?”

휘릭, 내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와이번은 두 마리였지만, 우리는 하나의 와이번에 함께 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유리나는 내 허리까지 꽈악 붙들어 매고 있었으니.

한 번 데이고 나니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나 뭐라나.

“저기 천막이 보이는데?”

“…진짜네?”

아직 왕성에 이르기 전이었다.

성문 밖 평야에, 수천의 천막이 주르륵 설치되어 있었다.

퍽이나 장관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위로 끝없이 줄을 이은 천막의 향연.

그 위로, 각국의 기들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수십만이나 되는 병력을 모조리 왕성 안으로 들이면 도리어 혼란만 가중될 테니, 저렇게 일부는 왕성 밖에서 대기토록 조치한 듯싶었다.

“가볍게 인사라도 해줄까?”

펄럭!

- 끼이이이이이!

내 중얼거림과 동시에, 와이번이 지상으로 하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 와이번이다아아아아아아아!”

대번에 당황한 경계병들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점처럼 보이던 천막들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낙하지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대게 지휘관은 진영의 중앙에 자리 잡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펄럭! 펄럭! 펄럭!

가장 크고 화려한 천막 위로, 와이번이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속도를 죽여갔다.

“모두 전투 준비!!!!!!!!”

일단 훈련을 받은 군대라 그런지, 곧 지상의 사람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예상보다는 훨씬 기민한 대응이었다.

하여,

“저는 테라의 대표로 온 이그니스 백작이라고 합니다!”

곧장 와이번의 거체 위로 몸을 일으킨 뒤, 마나를 담아 고함쳤다.

그 즉시 군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사, 사람이다아아! 와이번 위에 사람이 있다아아아아아!”

“미, 미친… 하면 전설의 비룡 기사란 말인가?”

경악 이후에는 의문이 뒤를 잇는다.

“그, 그보다 테라의 대표라니?”

“들어본 적 있어. 분명 어제 회의에서 테라의 대표가 연합에 참전 의사를 전했다던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제 의사를 전해왔는데 벌써 리비아에 도착할 리가 없잖아. 거기서 이곳까지 거리가 얼만데?”

“하지만 저 와이번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

그 말대로였다.

특히나 테라의 끝자락인 레이브 영지에서 출발하면, 말을 타고 꼬박 한 달을 넘게 달려야 리비아에 당도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걸 나는 만 하루 만에 주파했으니…

동요는 점차 군 전체로 퍼져 나갔다.

“너무 당황들은 하지 마시고요. 그냥 인사 겸해서 잠시 들른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상태로 왕성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놀랄 테니까요.”

“…….”

일부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서 본 와이번은 그만큼이나 위압적일 테니.

그 증거로, 아직도 주변 이들의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정식으로 인사를 좀 드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대, 대체 무슨 인사를 하겠다는 거요? 만약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미 충분히 이루신 듯하오만…….”

“그게 아니라…….”

내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리나가 등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뭔 말을 그리 어렵게 하고 있냐?”

“……!”

“거기 병사 아저씨. 여기 대가리가 누구냐고요.”

“뭣…!”

대번에 기겁하는 사내를 향해, 유리나가 능청스레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쪽은 백작님이라는 신분까지 밝혔는데, 그래도 급은 맞춰주는 것이 응당 예의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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