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와이번 테이밍(2)
펄럭! 펄럭! 펄럭!
하늘의 점처럼 보이던 와이번이 마침내 나무 바로 인근까지 내려왔다.
가까이서 보니 동체가 훨씬 더 커다랬다.
날개를 펼친 상태의 그것은, 최소 오우거 3마리를 합쳐 놓은 크기였으니까.
“으앙! 세타 이 개자식아아아아아아아!”
한 박자 늦게, 유리나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순간적으로 최초 떠올릴 때보다 곱절의 마나를 사용해 역중력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앗. 미안.”
유리나는 완전히 바닥에 짜부가 되어버렸다.
살짝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해하겠지.
내 마법 두 개에 이 정도 대가라면, 공짜로 거저 주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너, 너어, 지인짜아, 뒤지인다아, 이거 얼른, 안 풀어어어어!?”
“중력이라면 이미 풀었는데?”
“…어?”
강에서 탈출한 물고기마냥 파닥거리던 유리나가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무안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찌릿, 날카로운 눈매가 내 쪽을 향했다.
“넌 진짜 뒤졌다.”
팔을 동동 걷어붙인 유리나가 성큼 발을 내딛었다.
“말은 나중에 하고. 일단 비켜서는 게 나을 것 같네? 그러다 와이번이 낚아챌라.”
“헉!”
직후, 유리나가 자라목으로 고개를 움츠렸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나는 곧 속으로 시간을 샜다.
1초, 2초, 3초.
- 끼에에에에에에에!
정확히 3초 만에 무지막지만 와이번의 괴성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크기도, 목소리도.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마물이었다.
다만,
- 끼에에에?
우렁찬 괴성 뒤에 물음표가 붙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지금 막 지상으로 내려선 와이번 두 마리는,
쮸와아아아아아악!
- 끼에에에에에!
곧 마나로 이루어진 그물망에 칭칭 휘감겨졌으니까.
‘드라이어드 웹(Dryad web)’이라고도 불리는, 초목 계열 마법이었다.
여기서 드라이어드는 숲의 최상급 정령을 일컬었는데.
마법으로 드라이어드가 직접 재가공한 세계수의 줄기만을 소환해 내는 것이다.
그 질김 정도야 말할 것도 없었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더욱 대상을 옭아매려는 특징까지 있었다.
물론 이 또한 잊혀진 고대의 마법이다.
경지도 무려 6써클.
내게 1시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 함정을 더 준비했다.
- 끼엑! 끼에에에에에엑!
쫘아아아아아악!
세계수의 그물망이 와이번들을 완전히 옭아맨 직후.
지잉! 지이이이이이잉!
내가 주변에 미리 세워둔 쇠막대기들이 거칠게 진동을 일으켰다.
무려 룬어를 각인시킨 물건이었다.
‘파동’과 관련된 마법 몇 가지를 안배해 둔.
- 끼익… 끼이이이익…….
효과가 있는 건지, 그 흉포하던 괴성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나는 일정 시간 동안 마물의 울음소리를 재해석했다.
그리고 특유의 주파수를 주변 진동과 맞춰갔다.
마물의 뇌에 직접적으로 파고든 파동의 흐름은, 이내 내부를 통째 뒤흔들어 놓을 터였다.
아마 생각대로라면, 지금쯤 저 와이번들은 제정신이 아니겠지.
마치 만취한 사람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랄까?
휘청, 휘청.
때마침 두 개의 거체가 크게 비틀거렸다.
“…제대로 먹혔네. 이제 유리나, 네가 시원하게 한번 갈겨줘.”
“가, 갈기다니?”
“네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저 마물들한테 한 방 날려주라고. 복수는 해야지?”
“뭐, 뭐라고!?”
언젠가부터 내가 하는 양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유리나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된다고?”
“어.”
“아, 아니. 쟤들 길들일 생각 아니었냐고?”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걱정 안 해도 돼. 네 입으로 말했잖냐. 5써클 이하의 마법으로는 가죽에 흠집조차 내기 힘들 거라고.”
“그거야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 5써클. 그것도 위력이 강하다는 불꽃 계열 마법을 정통으로 맞으면, 제아무리 와이번이라도…….”
그 즉시, 나는 누군가 했던 말을 똑같이 되돌려줬다.
“천하의 유리나가 왜 이리 혀가 길어?”
“……!”
“그냥 쏴. 뒷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너, 나중에라도 기껏 수고했는데 내가 다 망쳤다느니 하는 헛소리하기만 해봐.”
“응~ 그럴 일 없어.”
순간, 유리나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눈에는 어떤 결의로 가득 찼다.
“…두고 보라지. 불꽃의 여왕 아그자하여! 열화(熱火)의 날개로 이 땅에 헌신하사, 아둔한 존재를 굽어살피시길…!”
캐스팅이 시작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화르륵! 불꽃이 형상을 갖추어 간다.
그건 활짝 펼쳐진 한 쌍의 날개였다.
좌우 길이만 못해도 5미터는 훌쩍 넘는.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날개 곳곳에 자리한 수백, 수천 개의 깃털이었다.
“…그 깃이 하늘에 자취를 남기는바, 지상으로 내려앉아 모든 것들을 잿더미로 만들리라.”
곧 십수 초간의 캐스팅 끝에,
푸화아아아아아악!
예의 무수한 화염의 깃털들이 일제히 와이번들에게 쏘아져 갔다.
허공에 일직선의 궤적을 그리는 그것들은, 내가 봐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수평(水平)으로 쏟아지는 화염의 비.
-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마침내 비명과도 같은 와이번들의 괴성이 천지에 울려 퍼졌다.
***
같은 시각, 리비아 왕국.
“흥. 흐흥~”
레베카는 아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리 좋으냐?”
“아빠도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거야.”
“마음에 들긴, 그래 봤자 고추 새낀데 무슨…….”
맞은편에 앉은 웬 중년 사내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만약 세간의 사람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놀라 입을 벌릴 광경이었다.
위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그가 바로, 대륙 전체에서 수위를 다툰다는 골든 버드 상단의 주인이자 리비아의 둘뿐인 공작이니까.
“아예 결혼 얘기까지 나올 기세다?”
“결혼? 음…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세타 님이 원한다면야 얼마든지.”
“에잉. 이래서 딸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더니.”
아예 제 볼을 붙잡고 부끄러워하는 레베카를, 사내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흘겨봤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잊은 건 아니겠지?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네 연애는 뒷전이야.”
“나도 알아. 자기가 물어봐 놓고선… 아빠는 하나뿐인 딸이 처녀 귀신이 되기를 원하는 거야?”
“그건 아니다만, 제 꼬추 서방 생각만 온종일 하는 딸이 아빠는 무척이나 걱정되는구나.”
“아버지. 자꾸 꼬추, 꼬추 하실 거예요? 혹여 누가 들을까 소녀는 겁이 납니다만?”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다고…….”
벌컥!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그 순간,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크흠.”
사내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두 사람이 자리한 곳은 리비아 왕궁 내의 드넓은 식당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이곳에서 ‘역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엇, 벌써 와계셨습니까? 정말로 오랜만에 뵙는군요, 골드런 공작님.”
“테레스 후작! 잘 지냈소?”
“황금의 상단주 님을 뵙습니다! 이야~ 신수가 이전보다 더 훤해지셨군요.”
“하하하하! 리제로 백작, 내가 할 말을 그대가 하는군.”
언제 그랬냐는 듯, 사내의 얼굴에는 영업용 미소가 가득했다.
어쩌면 생에 가장 중요한 날이 될 테니까.
지금 막 들어서는 손님들은 면면부터가 화려했다.
좌측부터, 노르망 왕국의 하르센 후작.
게르힘 왕국의 테레스 후작.
상황이 무척이나 어려운 자이툰의 리제로 백작도 먼 걸음을 했고.
트루크 왕국의 베놈 공작도 보였다.
이미 열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들어섰지만, 걔 중 하위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죄다 백작 이상의 내로라하는 고위급들이었으니까.
각국의 귀하신 분들이 지금 이곳에 모인 이유는 물론,
“…제국.”
공공의 거대 악(惡) 때문이었다.
오늘이 ‘반(反) 제국 연합 전선’의 첫 출범식이다.
“그럼 모두가 모이신 듯하니, 연합 전선 제2차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소회지만, 1차 때는 몇몇 나라밖에 보이지 않아 실망했는데, 이번에는 이리 빠짐없이 참석해 주셔서 무척이나 기쁩니다.”
가벼운 인사로 시작된 회의는 장장 3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제국군의 동향.
마탑에서 사로잡힌 인질들의 거취.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제국군에 대항할 수 있을지까지, 실로 다양한 안건들이 다루어졌다.
“하암…….”
그 지루한 분위기 속에, 레베카가 참지 못하고 몰래 하품을 해댈 무렵.
“하면 즉시 자이툰으로 병력 10만을 파병키로 하고… 인원 구성은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듣자 하니 안개의 검사 로마니아 공작이 아직 그곳에 있다던데.”
“으음… 그가 가장 큰 문제로군요. 같은 십이월이나 십이지왕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 그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을 테니.”
“아니면, 병력을 더 늘려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초인’은 단순히 병력 수만으로 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일반 병사들쯤은 몇 천이라도 그 홀로 모조리 베어낼 수 있을 겁니다.”
“서, 설마 그렇게까지야…….”
정색을 하고 연신 반대 의견을 내어놓는 이들은, 역시나 자이툰 쪽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가까이서 나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봤으니까.
이 시점에서 레베카의 눈이 반짝였다.
“골든 버드 상단의 대표, 레베카 드륜 쉬포네입니다.”
공식적으로 그녀의 아버지인 골드런 공작은 가문의 대표로 이곳에 나왔다.
레베카는 방금의 소개대로, 상단주 대리 자격으로 자리한 것이고.
어디까지나 국가적 회의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입을 두 개로 늘린 것이지만.
“레, 레베카?”
설마 직접 발언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골드런 공작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인원 구성 문제는 ‘테라’의 대표가 합류하면 다시 논의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테, 테라의 대표라니요?”
대번에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베카 님.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신 듯합니다. 테라는 이미 오랜 내전으로 다른 곳에는 신경 쓸 여력도 없을뿐더러…….”
“아니에요.”
작게 고개를 저은 레베카가 말을 잇는다.
“지금 막, 제 친우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해방군과 반란군의 합의 하에 내전을 잠정 중단키로 하고, ‘통합 테라군’을 창설한다는 소식을요.”
“……!”
이 놀라운 소식에 모두가 기함했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것 참으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로군요!”
“근데, 사실이라도 문제기는 합니다. 분명 테라의 반란군은 제국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지요. 황제의 욕심이라면, 고작 속국으로 만족할 리가 없습니다. 카이클 공작만 한 인물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뒤늦게 노선을 튼 것이겠지요.”
분위기가 차츰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허나, 아직 이들의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 테라의 대표는 누가 오기로 했습니까? 역시 산중의 호랑이인 카이클 공작입니까? 아니면, 그보다는 떨어지지만 실로 엄청난 무형의 이득을 취한 인버스 공작입니까?”
“내전 사후 테라를 안정화하는 데는 보다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테니, 역시 방문 대표는 인버스 공작 쪽이 더 가능성이 크겠지요.”
“조금 아쉽군요. 물론 둘 중 누가 와도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만…….”
예상대로, 대세는 카이클 공작이었다.
다만 이곳의 사람들 중 누구도 두 공작 외의 대표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국가 간의 동맹을 위한 최초의 방문은, 일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직접 오는 것이 관례였으니까.
진심에 대한 일종의 증명이다.
하여, 레베카는 사뭇 재미있어졌다.
그녀만큼은 테라의 대표로 누가 오는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과연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여기 있는 이들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까?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이가, 얼마 전까지 불과 ‘평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훗.”
찰나, 레베카의 두 눈에 싸늘한 한기가 내려앉았다.
그때에는, 이들의 태도도 조금쯤은 다르게 될까?
자국에는 10만을 파병해 달라 말하기를 망설이지 않으면서.
타국에는 1만조차 파병하기를 꺼려하는, 이 뭣 같은 분위기가.
***
모락모락.
- 끼이이이이…….
지금 내 앞에는, 잘 익은 와이번 두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역시 방어력이 보통은 아니었다.
5써클 불꽃 마법을 직격으로.
그것도 ‘아그자하’라는 폭발 계열 마법을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흉성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까.
“얘내 더 빡만 치게 만든 것 아니냐?”
“…….”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것들이었다면 이전에도 사례가 이미 있었겠지. 내 살다 살다 와이번을 종속시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거든?”
현대 마법 체계에서 중급 이상 마물의 ‘테이밍’은 불가능한 분야로 취급되었다.
이유가 있었다.
테이밍의 기본은 마물의 이성을 직접 지배하거나, 혹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길들이는 것이 요점인데.
첫째로 먼 옛날에는 이 테이밍에 특화된 ‘페로몬’이라는 주력이 따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대 마도 시대의 몰락과 동시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둘째로, 길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급 마물까지다.
그마저도 어느 정도 지성을 가진 고블린 정도?
오크는 또 안 된다.
애써 키워놔도 녀석들이 인간을 상대로 품는 본연의 ‘식욕’은 어찌할 수 없었으니까.
상황이 이럴진대, 최상위 마물에 속하는 와이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나는 예외지.”
“뭔 예외야?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내 중얼거림에 유리나가 답답하다는 투로 반문했다.
우우웅!
나는 대답 대신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써클을 운용했다.
흠칫!
대번에 와이번 두 마리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유리나는 물론이고, 세상 모두가 모르고 있는 사실.
세타 쿤 이그니스라는 인간의 영혼에 깃든 것은,
쩌저저적!
수십, 수백의 마물들을 한낱 레어의 파수꾼들로 다루었던, ‘드래곤’ 아이리스다.
마침내 내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변했고.
- 꿇어라.
곧 열린 잇새로 언령(言霊)의 힘이 새어 나왔다.
비록 아직은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쿵!
- 끼에에에에에…….
“뭔 미친…!”
효과는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