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와이번 테이밍(1)
훗날 통합 테라군 ‘제1차 협상’이라 명명될 최초의 회의가 끝난 직후.
레이브 영주 성 뒤뜰.
“얌마, 세타!”
“…….”
인기척이라면 진즉 눈치채고 있었다.
하여, 곧바로 고개를 돌리자,
“정말로 방법이 있는 거냐?”
허리까지 내려오는 주홍빛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틀어 올린 유리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마도?”
“맨날 혼자만 큰 그림 그리지 말고, 나한테도 좀 알려주면 안 되냐?”
“말해봤자 안 믿을 텐데. 미친놈 취급이라도 한다면 또 모를까.”
“난 믿어.”
순간, 유리나가 정색을 하곤 답했다.
“우리가 그간 봐온 세월이 얼마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너를 믿는다고.”
“…중간에 나라를 떠나 있던 3년을 빼면, 기껏해야 아카데미 시절밖에 안 봤는데…….”
“뭔 사내놈이 혀가 이리 길어? 됐고, 이 누나가 좀 도와주랴?”
“……?”
내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쟤는 감히 짐작이나 하고 말하는 것일까?
지금부터 내가,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려는지.
“엉? 말만 해. 이 유리나 님이 성심성의껏 도와줄 테니까.”
“…너 솔직하게 말해. 나한테 뭐 원하는 거 있냐?”
“어허이. 누굴 속물로 아시나.”
“그럼, 나중에 딴소리해도 무시하는 걸로…….”
“잠깐, 잠깐만. 성격 한번 되게 급한 고객님이시네. 크흠. 호, 혹시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된다면, 보답의 의미로 그때 가르쳐 주기로 한 마법이나 좀…….”
“그건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해주기로 했잖냐.”
“…말고, 가르쳐 주는 김에 겸사겸사 하나만 더 알려달라고.”
“…….”
곧장 내 입이 다물어졌다.
얘는 양심이 어디 다른 곳으로 출타했나.
내 머릿속에 있는 마법들은 하나하나가 세상에 나오면 업계 전체가 뒤집힐 마법들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무려 드래곤의 지식이니까.
아마 마법사들이라면, 제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배우고 싶을 거다.
그러니까,
“간다. 수고.”
이 헛소리는 더 들어줄 필요도 없이 기각이다.
“아, 어디 가! 알았어, 욕심 안 부릴게.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멈춰보라고!”
“…….”
그제야 내 걸음이 멈춰 섰다.
솔직히, 말은 그리했지만 일단 교육(?)이 시작되고 나면 어울릴 만한 마법 몇 가지를 더 알려줄 생각이었다.
단지 그런 거다.
막상 뻔뻔하게 나오는 상대를 보고 있노라니, 괜히 심통이 나는.
이래서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라는 명언이 등장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계획이 뭔데?”
“…일단 큰소리는 있는 대로 뻥뻥 쳐놨으니, 군량미부터 구하러 가야겠지. 기왕이면 지원군도 얻을 수 있으면 더 좋고.”
“엥?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까는 해방군이든 반란군이든 손은 빌리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해 보겠다더니…….”
“맞아. 실제로 그 두 진영에는 기대도 안 하고 있으니까.”
“그럼…?”
“잊었냐? 손을 빌릴 곳이라면, 외부에도 하나 더 있잖아.”
“…아!”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유리나의 얼굴이 그제야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곤,
“이 짜식. 역시 생각 없이 행동하는 듯해도 다 계획이 있다니깐?”
그 손바닥을 들어 내 등을 ‘팡팡’ 두드려 대기까지 한다.
“…그만 때려.”
다만, 그 손이 좀 매웠다.
찰싹! 찰싹!
“아 쪼옴!”
아니, 좀 많이.
***
전체적인 그림은 이미 머릿속에 그려 놓았다.
사실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자이툰의 모습을 담은 통신용 수정구를 위해, 나는 골든 버드 상단의 레베카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자이툰의 모습이요? 현장에 나가 있는 정찰대에게 부탁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긴 한데… 그건 왜요?’
‘꼭 필요한 데가 있어서.’
‘뭐, 세타 님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근데, 대신이라긴 뭣하지만 저도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아시다시피 이쪽 사정도 그리 좋지는 않아서…….’
‘얘기해. 어지간한 거면 들어줄 테니까.’
‘그럼, 일이 끝나는 대로 우리 리비아 왕국에 잠시 들러주실 수 있을까요? 마침 연합 전선의 대략적인 틀이 만들어졌는데, 이왕이면 자유연합도 함께한다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그건, 연합의 대표로 들러 달라는 뜻이야?’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에요. 솔직히 저는, 세타 님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다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세타 님의 진가를 모를 테니까…….’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 아 참, 이거랑 그때 구해준 일은 별개지? 왠지 부탁할 일이 더 생길 것 같아서.’
‘그럼요. 세타 님은 제 고객이 아니라, 친구시니까요.’
수정구에 대한 일의 전말이었다.
하여, 나는 이참에 ‘연합군’까지 요청해 볼 요량이었다.
많이도 필요 없었다.
그저, 내가 새로이 창설된 연합 전선에도 연이 있다는 것.
그 부분만 보여주면 충분하니까.
한데, 여기서 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나도 같이 가.”
“뭐? 네가 왜?”
“리비아로 갈 거라며. 분명 레베카를 만나려는 거겠지?”
“그렇기는 한데…….”
“그러니까 나도 같이 가자고. 하나보다 둘이 더 낫잖냐. 그 먼 거리를 혼자 가려면 쓸쓸하지 않겠어?”
“…….”
어째 하나를 때어놓으면 다른 혹이 또 붙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세디스.
다음에는 루나.
이번에는 유리나까지.
나중에는 실비아까지 붙겠다느니 하는 소리도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이제 예의 세타 표 특제 워프를 사용하는 건가?”
“…아직 허락 안 했거든?”
“아, 몰라. 어서 이 몸을 모시거라! 안 데려가면 아예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라니까.”
“…….”
“빨랑!”
절로 잇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냥 얘기하지 말걸.
아무래도, 앞으로의 일정이 상당히 피곤해질 듯싶다.
***
“우웨에에에에에에엑!”
기세 좋게 출발을 외치던 모습과는 달리.
유리나는 색욕의 이능을 통과하는 즉시, 위 속의 내용물들을 모조리 게워냈다.
“미… 친…! 뭐 이딴 워프가 다 있… 우욱!”
“야, 야! 떨어져서 토해. 여기까지 다 튀잖…….”
“쿠웨에에에에엑!”
“…….”
한발 늦었다.
나직이 한숨을 내쉰 내가 곧장 몇 가지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1써클이면 충분했다.
먼저,
촤아아아악!
“……!”
나는 시전어조차 없이 ‘워터 볼’ 두 덩이를 생성해 냈다.
하나는 유리나의 머리 위로.
다른 하나는 토사물이 튄 내 의류로.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우리는 곧,
푸슈우우우우우우!
“…….”
대기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연기로 물기를 말렸다.
이번에는 ‘드라이’라고 불리는 바람 계열 기초 마법이었다.
한데,
“……!”
홱!
직후 이어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내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확실하게 들어간 유리나의 전신이, 그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기에.
원래 마법사들은 신체를 쓰는 것을 상당히 싫어해 비쩍 곯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리나는 의외로 보기 좋게 라인이 살아 있었다.
괜스레 민망해진 내가 슬며시 시선을 내리깔았음에도,
“이이이…!”
유리나의 얼굴은 이미 잘 익은 토마토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퍼억!
“억.”
그리고는 다리를 쭉 뻗어 내 엉덩이를 걷어차기까지 한다.
“죽을래? 엉? 진짜로 죽을래?”
“아니 뭐, 더러운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미리 예고라도 해주고 조치하던가. 이게 뒤질라고…!”
“암튼 괜찮아졌잖냐. 속도 많이 나아졌을 텐데?”
“…어라? 그러고 보니…….”
“빛 계열 마법은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거든.”
어느새 유리나의 전신으로 희미한 빛이 어려 있었다.
“…뭐야, 이 자식. 의외로 배려심도 있다니깐?”
“기본이지.”
“하여튼 겸손을 몰라요. 근데 여기는 뭔가 익숙하다?”
찰나 주변을 둘러본 유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먼젓번에 너도 온 적 있던 스란의 접경지대니까.”
“아, 그 검은 마물의 숲?”
“그래. 리비아는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좌표를 지정했거든.”
“괜찮은 거냐? 여긴 이미 제국군이 지천에 널려 있다며.”
“뭐,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 봐야지.”
“…아까 했던 말은 취소다. 계획이 있기는 개뿔.”
투덜대는 유리나를 향해, 나는 가볍게 어깨만 으쓱여 줬다.
“괜찮아. 레베카의 말을 빌리자면, 직선으로 가로질렀을 때 10일이면 리비아의 국경지대라고 했으니까.”
“그 직선 경로가 검은 마물의 숲이니까 문제지.”
“불만이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그러게 혼자 간다니깐 왜 따라와서는…….”
나는 채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 끼에에에에에에엑!
“……!”
직후, 웬 마물의 괴성이 고막을 때렸기에.
곧장 하늘 위로 시선을 들어 올리자,
“와, 와이번?”
유리나가 기겁하여 외쳤다.
와이번.
검은 마물의 숲이 아닌, 북부의 고지대에서나 생활하는 중형 마물이었다.
그 신체 능력은 일반 종들보다 곱절은 강하다는 이곳의 마물들과 비견될 정도였으니.
“이런 미친. 얌마, 고개 숙여! 와이번한테 낚아 채이면 리비아고 뭐고 곧장 위장 행이다!”
“왜 쟤들이 이곳에 있지?”
“낸들 알겠냐? 겨울이라고 추운 북부에서 아래로 내려왔겠지. 와이번들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냐?”
“호오…….”
확실하게 이해했다.
내가 나직이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자,
“너 또 허튼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라. 와이번은 다른 마물들과 차원이 다른 생명체야. 5써클 이하의 마법으로는 가죽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그 속도는 가히 규격 외로 지정되어 공격을 적중시키는 것조차 힘들 테니까.”
“그럼, 쟤들 스스로 지상으로 내려오게 만들면 되지.”
“너 미쳤냐?! 포인트를 속도가 아니라, 그 신체 능력에 맞추라는 말이야!”
“잊었냐? 나 7써클이야.”
이미 마음먹은 이상.
발광을 해대는 유리나도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으니까.
와이번은 음식을 먹지 않고도 무려 3일 내도록 비행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행 속도는 대략 2주야면 ‘대륙 전체’를 횡단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딱 좋은데?”
이만한 ‘이동 수단’이 이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
대략 1시간 동안 철저하게 준비를 마쳤다.
일명 ‘와이번 포획’ 작전 말이다.
- 끼에에에에에!
예의 놈들은 여전히 허공을 활공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이좋게 두 마리다.
이왕이면 암수로 한 쌍이면 더할 나위가 없을 텐데.
그것들로 새끼도 치고, 나중에는 아예 나만의 와이번 기사단을 만드는 거다.
상상만으로도 멋지지 않은가?
온갖 화살과 마법들로 난무하는 전장의 위에서 무리 지어 고고히 허공을 가르는 와이번 군단.
“…아주 좋아. 준비는 다 됐고, 이제 가장 중요한 미끼가 필요한데…….”
힐끗,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숲 초입부의 빈 공터에 내가 준비한 갖가지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 10분 전부터 나를 설득하기를 포기한 유리나는 구석의 나무 아래에서 바닥이나 끄적이고 있었고.
각설하고, 어지간한 먹잇감으로는 저놈들을 꼬아낼 수 없었다.
와이번의 까다로운 미식은 세간에도 이미 유명했으니까.
먹이 자체가 적은 북부에 서식하는 놈들이, 살아 있는 ‘생식’이 아니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오크 따위는 저열하다고 또 걸러댔으니…
- …와이번이 특식으로 생각하는 먹이는, 다름 아닌 ‘인간’이다.
다만, 머릿속 깊숙이 잠들어 있는 아이리스의 지식이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아주 훌륭한 미끼가 될 것이라고.
나야 와이번을 잡는 막중한 임무를 맡아야 했으니, 결국 그 역할을 해줄 이는 정해져 있었다.
“…….”
곧장 구석의 유리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일까?
“…뭐냐. 왜 그딴 기분 나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지? 말이라고는 지독하게도 안 들어먹는 놈이.”
“아까 마법 하나 더 가르쳐 달라고 했지?”
“…엉?”
“오늘 가르쳐 줄게. 하나 받고 두 개 더.”
“……!”
“대신, 잠깐만 미끼가 되어주라.”
순간, 환하게 얼굴이 밝아지던 유리나가 움찔 몸을 떨었다.
“뭐…?”
직후 나는 지체 없이 중력 마법을 이용해 유리나의 몸을 가볍게 띄웠다.
두둥실.
“자, 잠깐. 이게 뭔…!”
“잘 부탁한다.”
슈와아아아아아악!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유리나의 전신이 거칠 것 없이 치솟았고.
- 끼에에에에에에에에!
먹이를 찾아 눈을 빛내던 한 쌍의 와이번이 대번에 그쪽으로 활강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곧 녀석들을 방불케 하는 유리나의 비명이 뒤를 잇는다.
그 즉시,
우우우우웅!
나는 준비한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우리는 리비아 왕국까지 단 하루 만에도 주파할 수 있었다.
“흐흐흐흐…….”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아공간 주머니는 이미 품 안에 가득했으니.
식량으로만 꽉꽉 채우면, 최대 일만 명이 한 달은 족히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여기에 병력까지 약속받는다면…
분명 테라의 콧대 높은 귀족들 전체가 놀라 까무러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