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수중 전투(2)
7써클 마법사.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초인이자, 명색이 ‘최고위’라는 이름이 붙는 긍지 높은 단계.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이 경지에 이른 이는 채 열이 되지 않으며.
그 힘은, 가히 마스터에 못지않았다.
쯔어어어엉!
언제나처럼 제노스는 단 한 자루의 마력 창만을 생성해 냈다.
하기야, 설령 대규모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아군이 휘말릴 가능성이 큰 이런 제한된 범위에서는, 오히려 녀석의 특기를 살리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터였다.
번쩍!
그와 동시에 좌측의 복면인.
즉, 두 번째 달로 불리는 인영이 사라졌다.
쾅!
“……!”
아니, 정확히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속도가 가히 섬전을 방불케 했다.
어느새 제노스의 코앞에서 나타난 그녀는,
쉬쉬쉬쉬쉬쉭!
양손의 비수로 정면을 할퀴었다.
찰나의 찰나 동안, 허공으로 무수한 흑의 궤적이 그려졌다.
쩡!
한 번의 격돌에 대기가 울렸고.
쩌정! 우지끈!
연이은 충돌에 배 하판이 으깨졌다.
투-쾅!
그 즉시, 제노스는 창을 크게 휘돌려 상대를 떨쳐 냈다.
다만, 그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
순간적으로 제노스의 눈빛이 착하니 가라앉았다.
휘돌려 치는 창의 간격을 허공으로 뛰어오름으로써 피해낸 상대가,
사뿐.
어느새 제 창끝에 오롯이 내려 있었기에.
“…역시.”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쇠로 된 무기도 아니고.
단순히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갈라지는 그 마력의 창 위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양 서 있었으니까.
거기서 더 나아가,
찰칵!
웬 기묘한 쇳소리와 동시에 그녀는 곧장 발을 내뻗었다.
신발 끝에, 척 보기에도 예리한 칼날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홱!
제노스는 고개만 꺾어 공격을 피해냈다.
파창! 쯔어어엉!
그리고는 순식간에 창을 소멸시켰다 재생성해 내며 반격까지 시도한다.
그 과정이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저건 숫제 마법 아카데미를 다닌 놈인지, 기사 훈련을 받은 놈인지…
“나야 재미있기는 한데… 너는 한눈팔 여유가 없지 않을까?”
“……!”
순간, 장난기로 가득한 목소리가 내 고막을 때렸다.
존재라면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제노스가 신신당부를 해뒀기 때문인지, 공작가의 다른 전력들은 이미 멀찍이도 물러난 상황이었다.
“…가만. 여유 부리는 게 아닌가? 혹시 저들을 보호하려는 건가?”
“…….”
“의외네. 너는 쟤들과 적이 아니었나?”
이대로 두면 자꾸 제 혼자 떠들어댈 것 같았기에,
“아까부터 중얼중얼 뭐라는 거야, 미친 작자가.”
“……!”
내 거친 입담으로 마주 응수해 줬다.
이런 대우는 처음인지, 복면을 쓰고 있음에도 사내의 분노가 곧바로 여기까지 전해졌다.
곧이어,
“…그냥 죽여 버릴까?”
사아아아아아!
그 작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살기가 내 전신으로 들이닥쳤다.
움찔.
고작 기세를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농도도, 수준도.
이전에 겪었던 살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촤르르르르르륵!
직후, 세디스의 검에서 날 법한 쇳소리와 함께.
“음…….”
이내 무수한 마나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빛 한 점 투영되지 않을, 새까만 비수가 최소 수십.
아니, 수백도 더 될 듯싶다.
순수한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그것들은 거침없이 나를 노렸다.
콰쾅! 콰콰콰콰콰쾅!
비수와 화살이 맞부딪힌다.
허나, 들려오는 것은 폭음이 동반된 굉음이다.
형상은 무구를 이루고 있으나, 그 실체는 둘 모두 마력 덩어리였으니.
열, 백, 그리고… 천.
꽈아아아아앙!
충돌 횟수가 족히 일천 단위를 넘어섰을 무렵,
스팟!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서로를 향해 치달렸다.
상대는 하판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으며.
나는 그 즉시 감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눈으로 찾지 마라.
특정한 신체의 기관이 아닌, 전신의 세포로 적을 느껴라.
주변에 존재하는 바람의 흐름은, 세포의 감각을 보다 명확하게 일깨워 줄 것이다.
에이스 스승님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면서 당신은 몇 마디를 덧붙이셨다.
검을 쫓으려 하면 필패(必敗)요.
사람을 추적하면 반반(半半)의 싸움이 될 것이나.
‘바람’을 느낀다면, 필승(必勝)할 것이니.
번쩍!
눈을 반개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등 뒤.
짙은 음영이 진, 내 그림자였다.
나는 그곳을 향해 망설임 없이 마력 검을 내질렀다.
푸우우욱!
하판 아래로 검이 스펀지처럼 쑤셔 박혔다.
한데, 곧바로 그림자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꿀렁!
이내 한 인영을 토해낸다.
팔뚝의 옷자락이 아주 약간 잘려 나간 사내.
첫 번째 달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너, 정말로 마법사 맞냐? 듣던 거랑은 또 다르잖아. 이건 숫제 기사와 정면승부를 벌이는 기분이니…….”
그의 놀라움도 이해는 간다.
설령 마법적인 재능이 넘쳐 나도 실패하는 분야.
그것이 배틀 메이지였으니까.
기본적으로 몸을 써야 했기에, 육체적 재능까지 타고나지 않는 이상 어중이떠중이가 될 뿐이었다.
“제가 좀 대단하기는 하죠.”
힐끗, 제노스를 돌아보자 그쪽도 잠시 소강상태였다.
나는 저 녀석이 더 놀라웠다.
예상은 했지만, 마스터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을 줄이야.
휘리리리리릭!
…아니, 도리어 마스터에 필적하는 육체 능력으로 상대를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비록 상대가 살수라고는 하나.
배틀 메이지는 절대로 검을 쓰는 자들에게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편견을, 저 녀석이 깬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이딴 괴물들이 다 있어?”
어느새 잽싸게 제 일행에게 다가선 첫 번째 달이 한숨을 내쉰다.
“오늘은 인사 정도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순 밑천까지 다 드러내게 생겼잖아?”
“…인사는 무슨. 단칼에 죽이려고 했으면서.”
“그럴 마음이었음, 진즉 그리했겠지. 뭐, 나중에라도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자신감이 상당히 넘치시네.”
“얘가 살수 무서운 줄 모르네? 당장 내가 너한테 살인 예고라도 해봐. 앞으로 두 다리 제대로 뻗고 잠이나 잘 수 있겠냐?”
“…….”
이 부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래서 암살자라는 족속들이 골치 아픈 것이니까.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들은 종종 심리전을 걸어 상대의 피를 말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말려들지 말자.
“하긴, 내가 아니라도 네 목숨은 장담하지 못하지만…….”
“…뭐?”
“아차! 이건 비밀이었는데. 실은 말이야, 엄청 무시무시한 사람이 너를 노리고 있더라고?”
첫 번째 달이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도 심리전인가?
그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내가 빤히 바라만 보고 있자,
“…재미없긴. 암튼, 인사는 여기까지.”
덥석!
순간, 그가 제보다 20센티미터는 체구가 작은 일행을 옆구리에 끼웠다.
“무슨…!”
“이만 가자.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어.”
말을 마친 첫 번째 달이 손가락을 들어 주변을 가리켰다.
배들이 대장선인 이쪽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지근거리였다.
“더 지체하면 골치 아파질 것 같지 않아?”
“…큭.”
분한 듯 순간적으로 가볍게 몸을 떤 세컨드 문이 나와 제노스를 번갈아 노려본다.
직후,
휘릭! 첨벙!
둘은 그대로 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한겨울의 강물임에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
삽시간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주변은 마치 폭풍우라도 휩쓸고 지나간 분위기였다.
그렇게 나와 제노스가 멍하니 강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을 때.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카이클 공작이 한껏 굳은 얼굴로 외쳤다.
결과적으로는, 무려 마스터 둘을 패퇴시킨 승리였으나.
과정적으로는, 고작 두 사람에게 중형선 두 척을 잃은 뼈아픈 패배였다.
***
실질적인 피해는 생각보다 경미했다.
배만 부수어졌을 뿐, 그곳에 타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강물 위로 둥둥 떠다닌 채 생존해 있었으니까.
다만,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이들이라도 추위는 어쩌지 못했다.
“불! 불꽃 마법사 더 없나?”
대장선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온도를 높여줄 마법사들이 부족한 모양인지, 구조되어 한데 모인 사람들은 몸만 덜덜 떨어대고 있었다.
그 수가 족히 이백을 훌쩍 넘겼으나, 불꽃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는 고작 다섯이 전부였다.
하여, 보다 못한 내가 앞으로 나섰다.
“다들 이리 모여 봐요.”
“뭘 하려고…?”
화아아아아악!
곁에 선 제노스의 반문에, 나는 대답 대신 고온의 빛을 내뿜었다.
불꽃처럼 배에 옮겨 붙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보다 효율 높은 수단 말이다.
“오오오오오오!”
순식간에 ‘벌떡!’ 몸을 일으킨 사람들이 내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허나, 나는 이번에야말로 기겁하고 말았다.
“자, 잠깐…!”
상상해 보라.
흠뻑 젖은 이백의 남정네들이 물까지 뚝뚝 떨어뜨리며 우르르 이쪽으로 달려드는 광경을.
“고, 고맙다!”
“이, 이제 살겠군! 은혜는 잊지 않겠네.”
“느므 츠어… 지짜로 중는 줄 아랐다니까?”
…입이 돌아가기 직전인 마법사도 있었다.
나는 이들을 뿌리칠 수 없었다.
좀 불쌍하기도 했고.
아까도 말했지만, 선박 위에서의 거동 범위는 무척이나 제한적이었으니까.
“아, 진짜! 좀만 떨어져 봐요! 마나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웬 엄살이 이리들 심하시대!?”
물론 내 외침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남정네들은 도리어 내게로 더 찰싹 다가붙었으니까.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때 나에 대한 공작가 가신들의 인상도 상당 부분 변했다고 한다.
첫인상은, 실력만 믿고 미쳐 날뛰는 천둥벌거숭이.
수백의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몰살시키는 소악마.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던가?
“…….”
다만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그런 내 모습을 제노스 놈은 한 걸음 물러서 바라만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카이클 공작조차도.
…괜히 속이 뒤틀렸다.
하여, 나도 모르게 심통 맞은 고성이 터져 나왔다.
“에잇! 지휘관들은 팔자 좋네! 손님은 이리 고생만 시키고, 자기들은 손 놓고 구경이나 하고 말이야.”
“……!”
그제야 제노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세간에는 배틀 메이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녀석도 분명 불꽃 따위의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어서 보여보거라.
세상에 네 진정한 실력을 드러내란 말이다!
홱!
“……?”
허나, 내 기대에 무색하게 제노스는 방향을 틀었다.
아예 시선을 내 쪽으로 향하지도 않았다.
“저 새끼가?”
나는 고생시키고, 저 혼자 꿀을 빠시겠다?
미안하지만 그 꼴은 못 보지.
덥석!
“……!”
나는 모른 체하는 제노스의 뒷덜미를 당장에 낚아챘다.
그러고도 모자라, 아예 품으로 당기기까지 했다.
“뭐, 뭐야!? 이것 놔라!”
“너 같으면 놓겠냐? 꿀쟁이 새끼.”
비단 말뿐만이 아니라, 나는 실제로 제노스를 더욱 꽈악 끌어안았다.
점차 덮쳐 오는 사람의 파도 속에서,
“…웃긴 놈이었군.”
희미하게 들려오는 카이클 공작의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하고서.
***
찰박!
어둠 속에서 두 인영이 뭍 위로 올라섰다.
“…역시 네 말대로 재미있는 녀석이었네.”
부르르,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낸 퍼스트 문이 말했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뒤따르던 인영이 복면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상당히 아름다운 20대 여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오늘 끝장을 봤어야 했어.”
“몸도 성치 않으면서 헛소리는. 제노스라고 했던가? 그 녀석도 보통은 아니었어.”
“…계속 싸우면 이길 수 있었거든?”
“물론 그렇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팔 하나는 내어줘야 했을걸? 그 녀석들, 느껴지는 마나로는 최소 6써클 이상이었어.”
“……!”
“알지? 예전에 내가 전투의 마법사 로마르니와 싸워본 적 있는 거. 그 핏덩이들, 최소 그와 동급이야.”
“그럴 리가…….”
“그러니까 이만 미련 버려.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까, 나머지는 그 대공인가 하는 작자가 마무리 짓겠지.”
그럼에도, 세컨드 문은 이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하면 조직의 명예는? 이대로 더럽혀진 채로 내버려 둘 생각인가?”
“왜 이래? 나는 그런 껍데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인 거 잘 알면서.”
말을 마친 그가, 이내 세컨드 문의 턱을 살며시 붙잡았다.
그리곤 제 얼굴을 바투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조직은 언제든지 만들면 돼. 그 아래의 소모품들도 마찬가지야. 가장 중요한 건 너와 나. 우리 둘의 존재지. 무슨 뜻인지 알지, 리비?”
“…….”
순간, 세컨드 문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피했다.
멈칫.
찰나 인상을 찌푸린 그가 이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훗. 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미래를 위한 보상이나 제대로 셈하러 가보자고. 이번 일로 우리 피해가 막중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보상?”
“해방군의 전력이 건네받은 정보랑 상당 부분 달랐잖냐. 저딴 괴물들이 함께라니. 고작 열아홉 따위가 상대가 되겠냐고? 쥐뿔, 어림도 없지.”
“…….”
홀로 자문자답한 퍼스트 문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보상을 받아야지. 지엄하신 대 황자 폐하께 직접.”
“……!”
***
어느새 배가 강 끝에 다다랐다.
이미 소식을 접했기 때문인지, 강 너머의 뭍에 무수한 인영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얼굴마저 점점이 시야로 들어왔다.
한데…
파지지직!
선상 아래로 내려서기도 전부터, 허공에서 불똥이 튀었다.
배 위의 카이클 공작.
땅 위의 인버스 가주(家主).
해방군과 반란군.
군의 실질적 통수권자인 두 앙숙의 만남으로, 벌써부터 주변으로 묘한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그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나로서는 지레짐작밖에 할 수 없으나…
“…이거, 그냥은 넘어가지 않겠는데?”
확실한 건, 오늘의 밤이 끝나기 전 사달이 제대로 일어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