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수중 전투(1)
고요한 중앙 천막 내부.
콰콰콰콰콰콰!
그 안에서 거대한 마력의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천막의 주인.
아니, 이 진영의 수뇌인 사내의 눈에서 짙은 안광이 폭사했다.
“고, 공작 각하…….”
앞에 부복하고 있던 휘하 가신이 더욱 납작 엎드렸다.
“궁 한복판에 있던 자들이다. 우리 군이 곳곳에 배치된 수도 왕궁의 중심! 심지어 바로 인근에도 몇 개나 되는 기사단이 대기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 이 잡듯이 일대 전체를 수색하고 있다 합니다. 투입된 인원만 삼천에 달하며, 밤낮으로…….”
“한데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냐! 그들이 하늘로 솟았더냐? 그도 아니면 땅으로 꺼졌더냐? 여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는 답이 어찌 나온다는 말이냐!?”
쩌적! 쩌저저저저적!
천막 내부에는 나무로 된 탁자 하나가 자리해 있었다.
순간, 그것 전체로 금이 갔다.
카이클 공작의 무거운 마나에 반응하고 있음이다.
그는 왕국 전체를 통틀어도 셋밖에 없는, 6써클의 대마법사니까.
“제국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 아직은 모르고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고작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인지라…….”
“그 또한 확실치는 않다는 말이군.”
“하, 하지만 궁 주변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계속된다면 결국 제국도 눈치채게 될 것입니다.”
“…이미 접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할 것이다. 저들의 눈과 귀는 분명 왕궁 내에도 있을 테니까.”
“명을 내려주십시오!”
찌릿.
카이클 공작의 매서운 눈빛이 가신의 뒤통수로 내리꽂혔다.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왕’이라는 무기를 잃은 우리를, 제국은 그냥 두고 보지 않을 테니까.”
기실 카이클 공작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도 이 부분이었다.
타국인의 시선으로, 테라의 내전은 명분 없는 쿠데타.
딱 그 정도니까.
그나마 가장 중요한 왕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기에, 제국도 망설임 없이 이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지.
만약 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제국은, 당장에 테라를 치려 들 테지.”
카이클 공작이 신음처럼 중얼거리고 있을 때, 여태 바로 곁에서 조용히 서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벌어질 일 아니었습니까?”
“뭐라고?”
그는 란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카이클 공작의 부관이자, 개인으로는 5써클의 마법사였다.
“그냥 이대로 강 너머를 밀어버리고 국경을 정비하시지요.”
“……!”
“전쟁을 위해, 이미 자국에 남아 있던 잔여 제국군도 모두 돌아간 마당입니다. 적어도 당장은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으니, 기회가 좋지 않습니까?”
“음…….”
“고작 마탑주 둘에 8월의 검사 하나입니다. 곧 강물도 얼 테지요. 다소 피해는 있겠으나, 자유 연합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
그럼에도 카이클 공작의 얼굴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작이 아니다.”
“예?”
“심지어 저곳에는 내 아들도 인정한 녀석이 있지. 란돌프, 너는 전쟁에서 최고위 마법사의 존재를 아직 겪어보지 못했을 테지? 아군이 아닌 적으로 말이다.”
“그야 그렇습니다만…….”
“나는 겪어봤다. 너와 같은 5써클에 불과했던 론지에 후작은 아무것도 아니야. 당장 마법사로 따져도 6써클 이상은… 가히 일인 군단이나 다름없어.”
“공작님처럼… 말씀이십니까?”
“그나마 나야 주력 자체가 단일 마법에 특화되어 있으나, 대규모 학살 마법이 특기인 이들은 또 달라. 그러니 제국에서도 십이월을 정복 전쟁의 선봉으로 내세운 것이지. 캐스팅도 하기 전에 목을 베는 것. 그것만이 최고위 마법사를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할 유일한 방도니까.”
“서, 설마 그렇게까지야…….”
“현실적으로, 만약 해방군과 전쟁을 감행할 계획이라면. 우리 군 전체의 태반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
그제야 란돌프가 입을 다물었다.
아군의 인원은 대략 8만.
예비군까지 다 끌어모으면 9만에 달했다.
적군보다 무려 세 배가 넘는 대인원인데, 전투를 벌이면 태반이 희생될 거라 하신다.
이 사실을 대관절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허나, 정작 경악스러운 일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고, 공작 각하!”
“……!”
지금 막, 천막 내부로 전령 하나가 쏜살같이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해방군 쪽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본인을 2군의 사령관이라고 밝히는데… 일단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이 믿기 힘든 얘기에 란돌프가 헛숨을 들이켰다.
어느새 카이클 공작의 두 눈마저 착하니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어디에 있지?”
***
최초의 열댓 명은 어느덧 수십으로 불어났다.
그들 모두가 주변을 에워쌌음에도 나는 여유롭게 카이클 공작을 기다렸다.
허나,
“…어?”
저 멀리 중앙 천막 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면서 그 여유는 깨졌다.
기다리던 이는 아니었다.
다만, 내심 기대하던 상대이기는 했다.
“제노스 델 카이클?”
아카데미 시절부터 혼자서 다 해 먹는 놈.
그 속은 나조차 알 수 없는 녀석이, 천천히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제노스는 내게서 불과 세 발자국 정도의 거리만 남겨두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무슨 속셈이냐?”
“…그건 내가 물을 말인데? 나는 네가 아니라 너네 아버지와의 대면을 원했거든.”
“공작 각하께서 너처럼 한가한 사람인 줄 아나?”
“못 만날 건 또 뭐야? 나도 이제 해방군의 어엿한 ‘사령관’인데.”
“…….”
원체 똑똑한 녀석이었다.
그 한마디로, 제노스는 돌아가는 상황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쪽 사람들이 노망이라도 든 모양이군. 그보다…….”
“……?”
“…벽을 뛰어넘은 건가?”
“…….”
나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내가 보기에는…
“…그러는 너도.”
전신으로 전해졌다.
마치 마법이라고는 조금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제노스에게서는 아주 약간의 마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다.
‘…7써클.’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다.
나야 그렇다 쳐도.
녀석 또한 고작 스물 안팎의 나이로 7써클의 경지에 들어섰을 줄이야.
그것도 기운이 상당히 안정된 것이, 이미 벽을 넘은 지도 꽤나 시간이 지난 듯싶다.
역시 이 녀석은 괴물이었다.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그때, 제노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엉?”
“이리 네 발로 적진에 들어왔지 않나? 설마 내가 그냥 보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런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라.”
“여기서 너를 잡으면, 설령 신의를 잃더라도 남는 장사다.”
“그게 아니라, 폐하가 지금 어디에 계신지는 벌써 잊은 거냐?”
“…폐하? 그게 무슨 뜻이지?”
“엥? 아직 모른다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
웬 희미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 것은.
얼마나 급했던지, 상대는 중앙 천막에서 외곽인 이곳으로 말까지 타고 달려왔다.
그리곤,
“워워!”
내 코앞에서 고삐를 틀어쥐었다.
“…제노스? 네가 왜 이곳에 있지?”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외곽에서 범상치 않은 마나가 느껴지기에… 한번 와봤습니다.”
“…그랬더냐?”
지금 막 도착한 카이클 공작이 말에서 내려선다.
뒤를 따르던 수십의 사람들도 함께였다.
그들은 검이며 마나를 한껏 끌어올린 채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역시 네 녀석이 맞았군. 이런 발칙한 짓을 떠올릴 이는 네놈뿐이겠지.”
“칭찬이시죠?”
“악담이다. 아무튼, 네놈은 이곳에 무슨 일이냐? 사령관이니 하는 헛소리는 또 무엇이고.”
“이 녀석과 달리, 공작 각하시라면 이미 소식을 접하셨을 텐데요?”
“……!”
“예. 생각대로 폐하는 지금 저희 해방군 진영에 계십니다.”
“…역시 그랬던가?”
다른 의문은 더 표하지도 않았다.
워프도 먹통인 마당에.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만한 거리를 어떻게 이동시켰는지 자못 궁금할 법도 한데 말이지.
다만, 빠르게 신색을 회복해 가는 카이클 공작과 달리 제노스는 안색이 돌변했다.
“여기서 사람들 반응이나 보고 있을 여유는 없어서요. 확답을 듣고 싶습니다.”
“확답…?”
“동맹하시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카이클 공작과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당장 이 지긋지긋한 내전을 종식하자는 의미입니다. 웨이브로 공작이 직접 군을 이끌고 테라로 쳐들어오고 있거든요.”
“뭣…!?”
“그가 지휘하는 3군은 도합 10만. 설마하니,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순진하게 해방군만 노릴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건…….”
예상대로 카이클 공작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아는 것이다.
이미 대륙 정복 전쟁을 시작한 이상, 저들이 고작 영지 하나로 만족할 리가 없다고.
이전까지는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나라가 테라였으나.
예측 불능의 ‘변수’가 발생한 지금은 아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어쩌시겠습니까?”
카이클 공작은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즈음 하여, 나는 쐐기를 박기로 했다.
- 고민할 틈이 있습니까? 권력도, 복수도. 나라가 유지되어야 모두 이룰 수 있을 텐데요.
“……!”
순간 머릿속에 울리는 내 메시지 마법에, 카이클 공작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너, 대체 어디까지…….”
“지금까지 설명을 드렸건만, 이러고 계실 틈이 있습니까?”
“…….”
카이클 공작이 곧장 입을 다물었다.
고민은 짧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을 직접 만나보지. 최소한 그 부분은 내 눈으로 확인해야 답을 줄 수 있겠다.”
기다리던 대답이 들려왔다.
찰나, 내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물론 그러셔야지요.”
***
이후의 상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우선 카이클 공작의 명에 따라 곧장 배 다섯 척이 준비되었다.
공작가 휘하의 최정예 기사단이 10개 조.
더하여, 마법 군단 5개 조도 함께 이동시킬 수단이었다.
다섯 척의 배는 지체 없이 강 위로 띄워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였으나…
배들이 강을 반쯤 건넜을 무렵, 상황이 급변했다.
“…물보라?”
그건 정말로 부지불식간이었다.
배가 나아가는 강로에, 있어서는 안 될 소용돌이가 휘돌고 있었다.
어디 드넓은 대해(大海)에서나 볼 법한 그것은,
“겨, 경로를 틀어라!”
“이미 늦었습니다!”
“이런 젠장!”
콰직!
“으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선두의 배를 집어삼켰다.
“…….”
카이클 공작가가 자랑하는 전력 수 개 조가,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몰살을 당한 것이다.
“역시 함정이었느냐!?”
카이클 공작이 대번에 내게로 달려들었다.
이해는 간다.
나 같아도 그리 행동했을 테니까.
다만, 지금 우리끼리 이러고 있을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적습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콰콰콰콰콰쾅!
두 번째 배에서 어마어마한 폭음이 들려왔다.
혼자라면 색욕의 이능으로 충분히 몸을 빼낼 수 있었으나.
그리하지는 않았다.
아직 흉수를 찾지 못했으니까.
그 순간,
찰박!
“……!”
웬 흑색의 두 인영이, 내가 발을 딛고 선 배 위로 내려앉았다.
“인사가 너무 거칠었지?”
“…누구냐?”
“아차.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던가? 네 얘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친근감이 들었지 뭐야.”
“…….”
“일전에 옆의 내 동료가 네게 신세를 좀 졌다지?”
마치 나를 아주 잘 아는 듯한 말투였다.
그 시선조차, 오직 내게만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소개가 늦었네. 나는 추락하는 달을 이끌고 있는… 음… 일종의 두목이랄까?”“…뭣!”
그러고 보니, 곁에 선 동료라는 인영은 며칠 전 실비아를 습격했던 그놈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달이라고 했던가?
세디스의 말마따나, 만약 순번이 실력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라면…
“…곤란한데.”
내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무려 ‘마스터’가 둘이나 적으로 등장한 격이니까.
하기야, 저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일 터였다.
사방이 물로 막힌 배 위에서,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다만, 저들이 꿈에도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합을 맞춰봐야겠지?”
“…….”
녀석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제 써클을 휘돌릴 뿐.
적이라면 모르겠으나, 아군이라면 존재만으로도 든든해지는 녀석.
그래.
저들이 추호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지금은 잘 부탁한다. 제노스.”
저쪽이 살수 마스터가 둘이라면, 이쪽은 7써클 마법사가 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