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해방 제2군 사령관(2)
“…….”
숨 막힐 듯한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다들 내 거친 행동을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들이었다.
신사처럼 대해주면, 저들이 진짜 신사들인 줄 안다.
사실은 세상 그 어떤 인간보다 추악한 욕망의 덩어리들이.
그러니까, 나도 지금부터 상대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해줄 생각이다.
“으으으으…….”
급증한 중력을 버텨내지 못했음일까.
홀스 자작의 두 눈에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그럼에도 나는 마력을 거두지 않았다.
“조아리시지요.”
“네놈이…….”
“조아려.”
“내… 가 잘못했다. 일단 마력을…!”
“입 다물어. 상급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지 않겠다면, 나 또한 마나는 거두지 않아.”
“컥… 컥…!”
이제 홀스 자작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쾅!
“폐하 앞에서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보다 못한 인버스 공작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한데, 그 얼굴에 묘하게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설령 내가 백작의 위를 하사받았다 하더라도, 제보다는 하급자니까.
“당장 마나를 풀게. 이건 상급자로서의 명이네, 이그니스 백작.”
“…….”
같은 귀족으로 대우하면서도, 명백히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는 말투였다.
내심 잘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나를 옭아맬 ‘위계질서’라는 카드를 손에 쥔 셈이니까.
다만…
“공작 각하께서, 저와의 내기는 잊으신 모양입니다?”
“……!”
순간, 인버스 공작이 두 눈을 치켜떴다.
그러고도 모자라 ‘콰득’ 제 입술을 깨물기까지 했다.
“내기는 무슨…!”
“설마 발뺌할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보는 눈이 얼마였는데, 저는 공작 각하께서 그런 철면피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습니다만…….”
“이익…! 이것과 그 일은 별개의 문제다!”
“신의를 저버리고, 인격체 간의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를 예우해 줄 이유는 없겠지요.”
“네놈! 정녕 뻔뻔스러움이 끝을 보이지 않는구나! 너는 하급자에게 도리를 강조하면서, 상급자에게는 예를 지키지 않겠다는 뜻이냐!?”
“누가 안 지키겠답니까?”
“뭐, 뭐라…?”
인버스 공작이 또 발광을 하기 전에 나는 마력을 거두었다.
그 시점에서, 홀스 자작은 이미 내게 깊게 고개를 조아린 상태였다.
입가로는 침까지 질질 흘리는 것이, 만약 그대로 뒀다면 실금마저 지렸을 모양새다.
“흐어어어억!”
그제야 홀스 자작이 헉헉 숨을 몰아쉰다.
허나, 나는 이제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뚜벅, 뚜벅, 뚜벅.
“……!”
그저 거침없이 상석까지 나아갔다.
내게로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들을 무시하고.
단 한 점의 위축됨이 없이.
마치 언젠가 봤던, 누구보다 내가 존경했던 사내.
대(大) 대지의 마법사, 아즈문 사트리노처럼.
“폐하. 곧 제국군이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뭣…!”
몇몇 귀족들이 참지 못하고 기함을 터뜨렸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본 사실들을 이어나갔다.
숲에서 발견한 대군.
제국군의 또 다른 침략 계획.
선봉에 선 웨이브로 공작의 존재까지.
“…하여, 이제 제게 작위를 넘어 ‘직책’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이왕이면 군을 통솔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작전권과 군권을요.”
“…….”
“저는 이대로 카이클 공작과 담판을 지을 생각입니다. 아마 그는 아직까지 제국군의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을 테죠.”
“…….”
“적장이지만 그는 현명한 자입니다. 우리가 손을 잡지 않는 이상, 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입을 다문 채 머릿속으로 치열한 계산만 해대고 있는 다른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
우르고스 국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제 의문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현재 해방군의 총 병력이 얼마나 되지?”
어느새 다시 착석한 인버스 공작에게 이리 물을 뿐이었다.
이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상황 적응력과 빠져야 할 타이밍은 귀신같이 캐치해 내는 사내였다.
공작은 공짜로 얻은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현재 해방군의 병력은 약 3만 명입니다. 각 1만 5천씩 1군과 2군으로 나뉘어 있으며, 국경지대의 병력까지 포함하면 여기서 수천이 더 늘어나게 됩니다.”
“…….”
확실히 제국군에 비하면 인원이 극히 빈약했다.
그들은 1군의 병력만 10만에 달했으니까.
물론 내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쪽수가 딸리면, 그 간격은 전략으로 메꾸면 그만이니까.
다만, 바로 다음에 이어진 우르고스 국왕의 말은 나조차 전혀 의외였다.
“하면, 이그니스 백작에게 2군 ‘전체’를 내리지.”
“……!”
인버스 공작이 ‘흡’ 하고 헛숨을 들이킨다.
“폐, 폐하? 그 말씀은…?”
“이그니스 백작은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이 나를 구해낸 은인이자 영웅이네. 기적이라면 이미 경들도 보지 않았던가?”
“하, 하지만…….”
“반론은 받지 않겠네.”
단호한 어조로 읊조린 우르고스 국왕이 시선을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뜻대로 직책을 내리지.”
“……!”
이 놀라운 광경에 모두가 경악하고 있을 때.
“나 우르고스 칸 테레이라는, 세타 쿤 이그니스 백작에게 제2군 ‘사령관’의 직책을 부여한다.”
“헉!”
“받들겠나?”
주변 신하들의 경악스러운 반응에도 우르고스 국왕은 조금도 괘념치 않았다.
그런 왕을 향해,
“…존엄하신 폐하의 기대에 부응하겠나이다.”
나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여 보일 뿐이었다.
***
한편, 실비아의 방.
머엉~
아직 침대에 누운 채인 실비아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간 있었던 일들은 모두 유리나에게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상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하아.”
순간, 실비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실, 이건 두 눈으로 직접 왕을 본 순간부터 떠오른 감정이기도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내심 좋으면서, 한편으로는 뜨거운 열화(熱火)가 솟구쳤다.
애써 수면 아래에 가라앉혀 놓았던 오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니.”
실비아에게는 그녀와 꼭 닮은 손 위의 언니가 있었다.
마법적인 재능은 오히려 그녀보다도 더 뛰어났던 5살 터울의 자매.
실리스 스필 세드릭.
언니는 그 재능으로 가문의 모든 총애를 한 몸에 받았으나…
결국 성별의 문턱은 넘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언니를,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바라봤으니까.
물론 그 일을 전적으로 아버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무려 국왕이 강력하게 추진한 일이었기에.
우르고스 칸 테레이라는 제 바로 아래의 남동생에게 언니를 시집보내기를 원했다.
왕의 동생이라고 해도, 언니에 비해서는 띠동갑은 차이가 나는 사내였다.
분명 이름이 조제프 후작이었던가.
실비아는 흥미가 없는 인간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기에 정확히 얼굴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언니는 마법에 대한 욕망이 누구보다 강했다.
그래서 왕실로 떠나기 하루 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가문을 떠났다.
만약 우르고스 국왕이 그따위 일을 추진하지만 않았어도 언니가 가출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게 벌써 1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였다.
“…그때부터였지.”
언니의 출가 이후, 아버지도 변했다.
저 카이클 공작은 왕의 여동생을 혼처로 들였노라고.
우리도 질 수 없다고.
그리 목소리를 높이던 아버지는 약 수 개월간의 칩거에 들어갔다.
무수한 사람들을 풀고, 막대한 포상금을 걸었음에도 언니는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왕은 가문 내 다른 자식이라도 혼처로 들이려 했으나,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어머니 사후(死後), 두 딸은 아버지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저 인버스 공작도 제 아들인 크리스 경을 공주의 남편으로 주려고 했다고 하니, 가히 왕도 욕심이 보통은 아니야. 3대 공작가 전체를 혈육으로 묶으려는 발상을 할 줄이야.”
쓰게 미소 지은 실비아가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사사로운 감정 탓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지금은 나라와 가문이 우선이니까.
“…지금쯤이면 독대도 끝났겠지.”
벌써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는 되었다 싶어,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똑, 똑, 똑.
때마침 손님이 찾아왔다.
“자나?”
“……!”
그것도, 아직은 절대로 피하고 싶은 이가.
아까도 말했지만, 실비아는 그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들었다.
끼이이이이익.
직후, 문에서 나는 오랜 경첩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그 즉시, 실비아는 잽싸게 눈을 감았다.
자는 척.
지금은 자는 척이다.
아니, 나는 이미 잠들어 있다.
“커어어어어어~”
조금 더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실비아는 아예 코까지 골았다.
“…잠 한번 요란하게 자네.”
지금 막 안으로 들어서려던 예의 손님.
세타가 이내 천천히 방문을 닫았다.
쿵!
작은 소음과 동시에, 비로소 실비아가 살며시 눈을 떴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진짜 미치겠네. 왜 옷을 벗겨서는…….”
종래에는 애꿎은 이불까지 펑펑, 발로 차 대기까지 했다.
***
실비아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직후, 일단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에 의논이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남은 새벽 동안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날이 밝는 대로 곧장 머릿속의 계획을 실행할 작정이었다.
자격이라면 이미 충분했으니까.
그때에는 쥐뿔도 없는 평민 세타 쿤 이그니스였으나.
이제는 대 해방군의 사령관으로서 카이클 공작을 마주할 것이다.
“그보다, 지금쯤이면 왕궁의 비보(悲報)도 접했겠지? 표정 한번 볼만하겠네.”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마 당장에 쳐들어올 계획을 세우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계획을 시작도 전부터 망칠 생각이었고.
“…어차피 싸우지도 않을 건데, 그냥 지금 바로 갈까?”
혹시 또 모른다.
밤중에 무리를 해서라도 배를 타고 기습을 해올지도.
빡이 있는 대로 쳤을 테니까.
“흐음…….”
다시금 고민해 봤지만.
역시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지금 가는 편이 나을 듯싶다.
웨에에에에엥!
그 즉시, 나는 색욕의 이능을 발동시켰다.
장소는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이곳까지 오면서 지나친 지점이니까.
이능의 내부는 마치 새까만 통로와도 같았다.
목적지를 떠올리며, 그곳을 지나치면 마침내 원하는 장소에 두두둥!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마나는 무지막지하게 잡아먹지만.
꿀렁!
곧 통로 끝을 통과했다.
어느새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방금의 이능으로 잔여 마나의 5퍼센트가 더 날아갔다.
그나마 거리가 가깝고 혼자였기에 망정이지.
그럼에도 이제 남은 마나는 전체의 10퍼센트 남짓이었다.
“경지를 올려도 이 모양이네. 역시 아직은 적응 시간이 필요한 건가?”
작게 중얼거린 내가 정면을 바라봤다.
강 너머, 드넓은 평야.
밤중임에도 진을 친 무수한 천막들이 불을 켜고 있었다.
모두가 잠이 든 시각이건만.
주변 천지에 오직 저곳만이 부산스러웠다.
저벅, 저벅, 저벅.
허나,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가운데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누, 누구냐!?”
경계를 담당하던 외곽의 보초병이 대번에 창을 겨눴다.
그 움직임이 상당히 신속했다.
어느새 십수 명이나 되는 인원이 내 주변을 에워쌌으니까.
물론 나라고 시간을 끌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테라 제2해방군 사령관입니다. 반란군의 사령관인 카이클 공작을 만나고 싶습니다.”
“뭐, 뭣…!?”
경계병이 대번에 살기를 드리운다.
이후의 반응이야 불을 보듯 뻔했기에.
나는 곧장 마나를 외부로 드러냈다.
우웅! 우우우우웅!
“헉!”
“한 가지 더. 나오지 않겠다면, 그것도 상관없다고 전해주세요. 단, 이곳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는 일은 피할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