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61화 (161/251)

161화. 해방 제2군 사령관(1)

어처구니가 없었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

그것이 얼마나 추악한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근래 내 눈으로 직접 봐온 일들이기도 하니까.

보다 완벽에 가까운 권력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수십 년간 함께해 온 동료를 배신하며.

심지어는 제 가족까지 팔아넘긴다.

그들은 단지 제 욕심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추잡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누가 또 이 사실을 알고 있지?”

“해방군 쪽 사람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는 눈치였어. 알았다면 그리 당당하게 왕의 존재를 알리려 하지 않았겠지.”

왕이 이쪽에 있다는 것.

당연히 해방군 입장에서는 크나큰 이점이었다.

명분은 바위처럼 확고해질 것이며, 어쩌면 숨죽이고 있던 전력까지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

허나, 변수가 있었다.

카이클 공작의 정실.

분명, ‘메텔’이라는 이름이었던가?

그녀의 존재가 문제였다.

기실, 그 이름은 나조차 처음 접하는 것이었으니까.

“정보가 필요해. 내 머릿속에도 없다는 말은, 최근 수년간 사교계나 대외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일 테니까.”

“이미 죽은 건 아니겠지?”

“…죽은 건 아니겠지. 카이클 공작 같은 인물이 그만한 카드를 그냥 버릴 리가 없어. 빌어먹을, 이러면 또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데…….”

말끝을 흐리는 나를 보며 세디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계획?”

“생각해 봐. 설령 국왕이 제 건재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카이클 공작의 정권 탈취를 만천하에 공개하더라도,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비사도 함께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그만. 무슨 말인지 아주 아주 잘 알겠다.”

“…….”

아무래도 세디스도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뒤는 상상조차 하기 싫겠지.

내가 느끼는 감정처럼.

당장에 민중들은 국왕을 향해 호로 새끼라며 돌을 던질 테니까.

“근데, 만약 그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쳐도… 국민들이 그 얘기를 믿을까?”

“그녀 자체가 이미 증거나 다름없는데 무슨…….”

순간, 세디스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야 비고에서 찾은 책을 이미 봤기 때문에 이리 쉽게 믿는 거지만, 일반 사람들은 쉽사리 신뢰하기 힘든 내용이잖아. 나는 오히려 국민들이 카이클 공작을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카이클 공작이 그것까지 염두해 두지 않았을 리가 없어. 제 말을 증명할 확실한 증거를 이미 손에 쥐고 있겠지. 그런 뒤에 쿠데타를 계획한 것일 테고.”

“그게 뭘까?”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

대화가 이런 방향으로 흐르자, 문득 떠오르지 말아야 할 의문까지 들었다.

…마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그리 얘기하니까 갑자기 나도 궁금한 게 생겼어.”

“엉?”

“제노스의 친아버지는… 분명히 카이클 공작이 맞는 거겠지?”

“…설마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제노스 델 카이클의 친부가 사실은 왕이었다던가.”

“…….”

“에라이 미친! 그 녀석 얼굴을 봐라. 제 아버지랑 판에 박았잖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담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쉬이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하여,

“그냥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야겠어. 구태여 이 나라 사람도 아닌 너한테까지 얘기했다는 건, 사실은 이걸 바랐던 걸지도 모르니까.”

“본, 본인이라니?”

“누구겠어. 당연히 국왕이지.”

“……!”

세디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 순간.

“…윽.”

갑작스레 심장 부근이 아릿했다.

이변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멀찍이서 조용히 지켜만 보던 루나였다.

어느새 후다닥 다가선 그녀가 내 몸 상태를 살폈다.

그리곤 무척이나 진지해진 얼굴로 말한다.

“단언컨대, 너는 명백하게 무리하고 있다.”

“나도 알고 있어.”

“…일반적으로 벽을 뛰어넘게 되면, 다른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그릇의 성장에 육신이 적응하는 데 꽤나 많은 기간이 걸릴 테니까.”

“하지만 그 시간이 없는걸. 숲에서 봤잖아? 이대로면 언제 테라 전체가 불바다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래도…….”

“오히려 나 하나의 희생으로 나라 전체를 구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남는 장사 아닌가?”

이어지는 내 말에, 루나가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곤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하면, 앞으로도 내가 네 뒤를 엄호해 주겠다. 쭉.”

“…….”

그 든든함에, 그제야 내 입가로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잘 부탁할게.”

***

같은 시각.

“얜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유리나가 초조한 낯빛으로 방문을 힐끗거렸다.

“하아, 하아…….”

침대에 몸져누운 실비아의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나빠져만 갔다.

이제는 눈으로 봐도 심각할 정도로.

“이, 이 자식.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나 다른 길로 샌 건 아니겠지?”

“으으으…….”

“엇…! 야, 야. 정신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어! 곧 세타 녀석이 치료제를 만들어 올 거니까!”

순간, 실비아의 숨소리가 빠르고 거칠어졌다.

조급해진 유리나가 쾅! 곁의 테이블을 후려쳤다.

“아니, 잘되면 잘되어간다고 진행 경과라도 보고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기다리는 사람 말려 죽일 일 있나, 이 썩을 브로콜리 쉑…!”

“…미안한데, 내 머리카락은 브로콜리가 아니라 에메랄드거든?”

“허억!”

“진짜 누구 말이 맞는가 보네. 없는 자리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더니…….”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유리나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막, 열린 방문 안으로 기다리던 이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야이, 짜식아! 이제야 왔냐!?”

순식간에 유리나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만개했다.

“이제야는 무슨. 채 6시간도 안 지났구만. 약재들이 어디서 자생하는 것들인지 들으면, 절대로 그런 말은 안 나올 거다.”

“아 알지, 알지. 고생한 거 이 누나는 다 알지. 그래서, 치료제는 구했냐?”

직후, 눈앞의 세타가 병 하나를 흔들어 보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 웬 붉은 액체가 찰랑였다.

“여기.”

“이 기특한 짜아식! 믿고 있었다고!”

“아직 안 끝났어. 복용시킨 이후에도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니까.”

멈칫.

대견한 마음에 당장 세타 녀석의 엉덩이라도 두드려 주려던 유리나가 움찔했다.

“조, 조치?”

“일단 걔 상의부터 다 벗겨줄래?”

“……!”

찰나 이해하지 못한 유리나의 두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너, 너, 지금 무슨 생각을…!”

“그런 거 아니고, 양기와 음기의 밸런스를 맞추려면 외부에서 누군가가 길을 이끌어줘야 한다고. 균형이 무너져서 마나가 폭주할 수도 있으니까. 아님, 네가 할래?”

“아, 진즉 그렇게 말할 것이지.”

그런 무시무시한 일은 절대로 사양이었기에, 유리나는 대번에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곤 머쓱한 표정으로 쓱 제 코밑을 문질렀다.

“그럼… 이, 이대로 다 벗기면 되냐?”

“어. 싹 다 벗겨.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말고.”

“으음… 얘 허락 없이 이래도 되려나 모르겠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냐? 걱정하지 마. 가능하면 안 보고 치료하려고 노력할 테니까.”

“하, 하긴…….”

그제야 유리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고민은 짧았다.

곧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실비아는 반라의 상태가 되었다.

잡티는커녕 군살 하나 없는 그녀의 나신은, 같은 여자인 유리나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허나, 세타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시작한다.”

제 양손을 실비아의 복부 위로 올려놓을 뿐이었다.

한데…

“…응?”

녀석의 상태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이미 시작도 전부터 온몸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니까.

더하여, 뒤에서 걱정스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루나의 표정하며…

우우우웅!

“……!”

유리나가 상념을 멈췄다.

갑작스레 미증유의 마나가 전신으로 느껴졌기에.

얼핏 봐도 알 수 있다.

세타는 집중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만큼 섬세한 작업이겠지.

자칫 길이 조금만 어그러져도, 둘 모두 생명이 위독해질 정도로.

꿀꺽.

유리나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타의 이마 위로 혈관마저 툭툭 불거졌다.

그럼에도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저대로는 위험해.”

흠칫.

그 순간 들려오는 루나의 중얼거림에, 유리나가 잘게 몸을 떨었다.

놀라운 광경은 그 이후부터였다.

“…앗!”

유리나가 단말마 비명을 내질렀다.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하게 실비아의 전신으로 푸른 연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뒤를, 웬 붉은 아지랑이가 잇는다.

청색을 음기라고 하면.

적색은 양기일 터.

경악스러운 것은, 마침내 빠져나온 음양의 기운은 흩어지지 않고,

스으으으으으.

살짝 열린 세타의 잇새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대략 30여 분은 더 지나고 나서야 치료는 끝이 났다.

비틀.

“……!”

세타가 참지 못하고 몸을 휘청였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루나가 잽싸게 다가가 녀석을 부축해 준다.

“…고마워.”

“아무것도 아니다. 약속했지 않나?”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리나가 화들짝 놀랐다.

약속?

무슨 약속?

사뭇 궁금했지만, 애써 의문을 가라앉힌 유리나가 그쪽으로 다가섰다.

“이, 이제 다 된 거냐? 짜식. 역시 대단해. 고생 많았다. 이 누나가 칭찬해 줄게.”

“…뭘 이 정도쯤이야. 일단 고비는 넘겼으니까, 난 이대로 나갔다 올게.”

“어엉? 바로 나간다고? 얘 일어나는 건 보고 가지?”

“됐어. 일어나면 대충 찾아와서 고개 숙이라고 네가 대신 전해주라.”

“그,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대체 어딜 가려고…….”

유리나는 채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굳은 표정의 루나가 곧장 세타의 앞을 막아섰기에.

구태여 입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루나는 이미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으니까.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조금은 쉬어도 된다.”

“한시가 급해. 알고 있잖아?”

“…….”

한참이나 심각한 얼굴로 세타를 바라보던 루나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한계를 넘어서면, 기절시켜서라도 방으로 끌고 갈 거다.”

다만, 이번에는 유리나도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저, 저기. 나한테도 설명을 좀 해주면 안 될까?”

이미 세타가 방을 나선 뒤였다.

힐끗, 고개를 돌린 루나가 짤막하게 대꾸한다.

“다녀와서 하지. 지금 저 아이에게는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

“대, 대체 뭔 소리야, 그게!?”

당혹감으로 가득한 유리나의 목소리가, 이내 방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실비아를 치료한 직후.

나는 거침없이 한 곳으로 나아갔다.

찾고자 하는 이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차피 같은 건물 내였으니까.

“폐하. 세타 쿤 이그니스가 찾아왔습니다.”

“들라 하라.”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그와 동시에 무수한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레이브 성의 대회의실에, ‘그’는 다른 귀족들과 함께 자리해 있었다.

일부는 호의(好意)를 내보이고.

태반이 적의(敵意)를 드러냈다.

배신자들을 축출하고, 명백히 다른 노선을 탄 귀족들을 반란군으로 떠넘겨도 이런 반응이다.

겉으로 티 내지 않았어도, 내심 평민인 내게 불만이 많았겠지.

온갖 권위 의식에 찌들어 있는 인간들.

세상 어디를 뒤져 봐도 몇 없을 추악의 온상.

그런 게 ‘귀족’이라는 족속들이었으니.

“…….”

물론, 나는 이런 분위기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이제는 나도 이들과 같은 귀족이며, 또한 명실상부 대륙에 몇 없는 7써클의 대마법사니까.

“이놈! 폐하의 어전이다! 어서 예부터 갖추지 못하겠느냐?”

“…….”

웬 안면이 말처럼 긴 작자가 대번에 내게 삿대질을 했다.

이름이 홀스 자작이었던가?

왕이 모습을 드러내자 숨죽이고 있던 저런 것들까지 나서서 설쳐 댄다.

“…예(禮)는 아시면서, 귀는 어두우신 모양입니다?”

“뭐라?”

쿠구구구궁!

나는 대답 대신 써클의 마나를 아주 조금만 외부로 발산했다.

“…힉!”

털썩!

예의 홀스 자작이 대번에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것도 모자라 부르르, 전신을 떨어대기까지 한다.

내 중력의 마나를 버티지 못한 결과였다.

“고개를 조아리시지요.”

“감히, 감히…!”

“모르시는 듯하니 제 입으로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제 평민 세타 쿤 이그니스가 아니라, 폐하께 직접 임명받은 대테라의 귀족, 이그니스 백작입니다.”

“……!”

내 돌발 행동으로, 순식간에 경악의 폭풍우가 주변을 잠식했다.

할 거면 확실하게.

예부터 이어져 온 내 신조(信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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