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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157화 (157/251)

157화. 한계 돌파(1)

해후 인사를 나눌 여유도 없었다.

상황은 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창문이 뻥하니 뚫린 방의 침대 위에, 실비아는 고이 뉘어져 있었다.

푸르게 죽은 입술.

온몸을 적신 식은땀.

손끝의 하염없는 경련 증세까지.

얼핏 보기에도 상태는 무척이나 좋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독이야.”

“독이라면…?”

“추락하는 달이라고 했던가? 놈과 접촉한 이후 이리되었다. 아마 상처 부위를 통해 감염된 듯한데…….”

세논 스승님의 말씀에 내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과연 목덜미에 3센티미터 가량의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어떤 독인지는 확인되었나요?”

“…모르겠어. 제법 많은 독을 겪어봤다고 자부하는데, 나도 처음 보는 증상이라.”

“예를 들어서요?”

“입술이 푸른색을 띠면, 거미의 몸에서 나온 주독(蛛毒)이나 다른 벌레의 맹독일 텐데… 지금 얘처럼 눈가에 붉은 빛을 함께 보이지는 않아. 무엇보다, 내면의 마나 폭주 현상은 더더욱.”

“……!”

직후, 나는 말없이 실비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마치 활화산과도 같은 열기 너머로, 치열한 전장이 전해졌다.

실비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싸우고 있었다.

제 신체를 망가뜨리려 하는 마나에 대항하여.

“…독에 마나를 폭주시키는 특성까지 함께 지녔다는 뜻인가요?”

“그래. 이런 건 페르도 처음 본다고 하더라.”

페르.

스승님이 초월의 마탑주를 칭하는 또 다른 애칭이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그는, 당연하게도 온갖 지식을 머릿속에 섭렵하고 있었다.

주류는 아니지만 마나 비약 제조에도 상당한 실력을 지녔다고 들었으니까.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법이다.

“…월독(月毒)이야.”

“……!”

바로 그때, 세디스의 중얼거림이 천둥처럼 울렸다.

“월독?”

“말 그대로 달에서 만들어진 독이라는 뜻인데…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다만 그 독효는 인간이 품은 음기를 한순간 극대화해서, 신체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데에 있다고 들었어.”

“……!”

평상시 인간의 체내에서 음과 양은 조화를 이룬다.

어느 하나 치우침이 없어야 하며.

만에 하나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이처럼 다시없을 극독이 된다.

그렇기에 몸 안의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대충 알 것도 같아. 그러니까, 음기를 잡을 양기. 그런 효능을 지닌 약재가 필요하다는 뜻이잖아?”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그것도 잘 배합해서 진짜 약으로 만들어야 할 거야. 까딱하면 상태만 더 악화시킬 테니까.”

“여기서 더 악화될 상태도 없는 것 같다만.”

“그건…….”

세디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표정만 봐서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지만 섣불리 말은 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괜찮으니까 얘기해 봐.”

“…월독의 무서운 점은, 그 전파 속도에 있다고 들었어.”

“그 말은?”

“24시간이야.”

“…….”

“지금부터 만 하루가 지나면, 음기는 전신으로 퍼져 나가게 될 거고… 내부의 모든 장기를 얼어붙게 할 거야. 그 상황까지 가게 되면, 설령 해독제를 구하더라도 이미…….”

가만히 듣고 있던 유리나가 ‘흡’ 제 입을 틀어막았다.

내 미간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이대로는 곤란했다.

“…잠시 나갔다 올게.”

“이, 이 밤에? 잠깐만, 양기가 내포된 약재들이라면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

“됐어.”

‘이미 알고 있으니까…’ 하는 뒷말은 도로 삼킨 내가, 빠르게 출입문을 나섰다.

***

아직 동이 틀려면 한참이나 남은 한밤중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정신을 맑게 한다.

양기(陽氣).

다시 말해, 태양의 기운을 품은 약재들은 대부분 대륙 남부에 밀집해 있었다.

다만, 그것들이 자생하는 보다 가까운 지역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사람들도 접근을 꺼리는 장소.

바로, 검은 마물의 숲이다.

“일단 한 번 가본 적은 있으니까, 결국 당장 필요한 건 또 마나라는 건데…….”

작게 중얼거린 내가 쓰게 미소 지었다.

요즘 들어 부쩍 마나가 부족한 느낌이다.

원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던 부분인데…….

죄악의 힘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보다도 많은 마나가 필요할 듯싶다.

그러려면,

“경지의 상승, 그릇의 확대, 마지막으로 마나량 최대치의 증가.”

여기서 말하는 그릇은 물론 써클을 일컬음이나.

나는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개념을 떠올렸다.

대야에 물이 가득 차면 흘러넘치듯.

써클 내부에 마나가 가득 차면, 이내 혈맥을 통해 전신으로 순환하게 된다.

마법사들은 이걸 마나 써큘레이션(Circulation) 현상이라고도 불렀는데, 일부 고위 마법사들은 이 ‘잉여 마나’ 또한 이용할 수 있었다.

비록 써클에서 끌어다 쓰는 마나보다 효율은 훨씬 떨어지지만.

“…다만 내 이론대로라면, 그 단점조차 지워낼 수 있을지도. 적어도 심장이 아니라 이 몸 전체를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마나 효율은 훨씬 더 나아질 테지.”

다른 마법사들이 들으면 대번에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할 말이었다.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신체 구조를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가능한 발상이지.

소위 드래곤은 ‘하트’를 매개체로 마법을 사용한다고 잘 알려져 있지만.

틀렸다.

괜히 마법의 종주라고 불리는 생명체가 아니니까.

그들은 신체 내부가 아니라,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를 이용한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마나는 대기에 항상 떠다니니.

달리 말하면, 드래곤의 마나는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만약 이 몸으로 그들과 같은 방식이 가능하다면…

더 이상 ‘마나’는 내게 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실비아의 약재도 구하면서… 그 이론을 시험할 재료들도 찾아봐야겠어. 검은 마물의 숲에서 자생하는 약재들은 무척이나 다양하니까…….”

“검은 마물의 숲?”

“……!”

순간, 내 몸이 움찔 떨렸다.

지금 막 성문 밖으로 웬 흑발의 미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루나?”

“미안하군.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보다, 얼핏 마나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만.”

“그것까지 들었다고?”

“고의는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마나 포션이라면 내 방에도 있다. 그것도 최상급으로.”

“……!”

직후, 내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진짜? 기사인 네가 왜 마나 포션을…?”

“잊었나? 내 가문이 어떤 곳인지.”

“…아하.”

테라 제일의 정보 조직인, 매의 눈을 휘하에 두고 있는 가문.

론지에 후작가.

그곳의 여식이 바로 루나였다.

저만한 초거대 조직에, 최상급 마나 포션 하나쯤 보유하고 있다고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네게 주겠다.”

“어…?”

“단, 나도 함께 가지.”

“…….”

나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눈빛으로 ‘왜?’라고 반문했다.

눈치 빠른 루나는 금세 내 의문을 알아챘다.

“마침 네 선물을 시험해 보고 싶기도 하고…….”

찰나 말끝을 흐리던 루나가 달빛 아래에서 말갛게 미소 지었다.

“…그 첫 경험은, 이만한 검을 선물해 준 상대를 위해 쓰고 싶으니까.”

***

웨에에엥!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새까만 아가리가 생성된다.

“으음…….”

그곳에서 빠져나온 루나가 나직한 신음을 내뱉었다.

나야 몇 번이나 겪어 이제는 익숙하지만.

이능의 포탈은, 인간이 가진 본연의 감정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역시 최상급 포션이네.”

지금 막 바닥에 내려선 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 한 병으로, 내 마나의 대부분이 가득 찼다.

이 정도라면, 귀환을 위한 여유량을 제하고도 전체의 30퍼센트는 더 사용할 수 있을 듯싶다.

“근데, 여긴 언제 와도 분위기가 좀…….”

뒤늦게 숲 특유의 음습한 기운이 전신으로 들이닥쳤다.

초입부.

정확히는, 스란과 서부 자이툰을 잇는 숲 접경 지역이었다.

한데,

두두두두두두!

“……?”

순간, 이곳에서 결코 들릴 리 없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이건?”

“루나, 엎드려.”

“……!”

머리 위로 느낌표를 떠올린 루나가 납작 바닥으로 몸을 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웬 대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만 최소 삼천.

특히나, 선두의 기수가 쥔 기(旗)는…

“…제국군?”

찰나, 루나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검은 마물의 숲 내부에서 등장한 제국군.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설마, 숲을 통과해 가며 정복 전쟁을 벌일 생각은 아니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검은 마물의 숲 자체를 일종의 무너지지 않는 요새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숲을 공략하고자 한다면 잃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만큼 일개 기사단으로도 이곳의 마물들을 상대하기는 벅찼으니까.

다만, 소위 초인들.

제국이 자랑하는 십이월이 직접 움직인다면, 얘기는 또 달랐다.

“……!”

생각과 동시였다.

피부를 짜르르 울리는 예리한 감각이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쉼 없이 경종이 울린다.

그 즉시, 나는 일대에 기척을 죽이는 막을 둘러쳤다.

“…쳐다보지 마.”

루나를 향해 빠르게 속삭였다.

허나, 그녀는 시키지 않아도 이미 착실하게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 상태로,

“잠깐이지만… 선두에 있던 자는, 분명 파랑의 검사 웨이브로 공작이었다.”

“…웨이브로 공작이라면?”

“12월의 검사다.”

“음…….”

역시는 역시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을 꿰뚫는 감각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제국군이 조금 더 멀어진 직후였다.

다행스럽게도 들키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거리에서 어렴풋이나마 우리의 존재를 감지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체 어디를 가는 거지?”

“…저들까지 신경 쓰면 끝도 없으니,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지금은 실비아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제국군은 그 다음이야.”

“…어쩔 수 없군.”

못내 아쉬운지, 시선만으로 제국군을 쫓던 루나가 이내 내 쪽을 바라봤다.

“하면, 내가 무얼 하면 되지?”

“이렇게 생긴 거랑, 요렇게 생긴 거부터 찾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곧장 마나의 선을 빈 허공에 그려 약초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혹여나 헷갈려 할지 몰라 나름 심혈을 기울여 봤는데, 영민한 루나는 단번에 그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알았다.”

“그럼, 이대로 흩어져서 찾아보자. 아까처럼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그대로 도망치고.”

“…그렇게 하지.”

루나에게 주의사항을 거듭 당부한 나는, 이내 그곳에서 빠르게 멀어져 갔다.

***

오래지 않아, 나는 양기를 품은 약초 하나를 찾아냈다.

장소가 위험하다 뿐이지, 수집 난이도 자체가 그리 어려운 약초들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또 니들이냐?”

두 번째 약초를 탐색하기 위해 주변을 거닌 지 수 분.

블랙 오우거 한 쌍이 앞길을 막았다.

정확히는, 저들끼리 서로 부대끼고 안으며 길목 한복판에서 ‘무언가’를 해대고 있었다.

“…설마 아니지?”

킁, 킁, 킁.

그때, 별안간 좌측의 오우거가 코를 벌름거렸다.

더 나아가, 상대 오우거를 밀치며 자리를 박차기까지 했다.

…몸을 일으키니 확실하게 알겠다.

다리 사이에 자리한 저 흉물스러운 몽둥이(?)하며, 다른 놈보다 1.5배는 더 큰 저 몸집은…

“…쟤가 수컷인가 보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거사를 방해받아 격분했음일까?

녀석은 대번에 내게로 달려들었다.

쿵쾅쿵쾅!

그 육중한 무게감에 대지가 가볍게 몸서리쳤다.

허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충분히 더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임에도.

…아무래도 내가 인간이라 깔보는 듯한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잖아?”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의 제국군들.

잘하면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진군까지 방해할 수 있을지도 모를.

“…재미있겠는데?”

아주 기가 막힌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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