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마스터, 두 번째 달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세타.”
세디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저거, 마스터지?”
“…아마도.”
“다시 말해, 마스터가 지금 우리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고.”
“그래.”
“짐작 갈 만한 건, 역시 ‘그곳’뿐이겠지?”
“…….”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나 세디스나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저자는 ‘추락하는 달’과 관련된 인물이다.
얼굴은 감출 수 있을지언정, 특유의 기운까지 숨기지는 못했으니까.
“…이렇게 빨리 꿈을 이루게 될 줄은 몰랐네. 저 사람은 나한테 맡겨주라.”
“뭔 헛소리야? 상대는 마스터라니까.”
“나도 알아. 그러니까, 반드시 내가 상대해 보고 싶어. 최근의 깨달음도 시험해 볼 겸.”
“……!”
둘이 한 번에 덤벼들자고 해도 모자랄 판에,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설령 깨달음을 얻었을지언정, 그게 절대로 마스터에 미치지는 못했을 텐데…
스팟!
세디스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땅을 박찼다.
눈앞에 있는 복면인의 두 눈 사이로 조소가 어린다.
그 눈빛이 마치 ‘네놈 따위가?’라고 되묻는 듯했다.
촤르르르르륵!
순식간에 세디스의 검이 뽑혀 나왔다.
마치 채찍과도 같은 불규칙한 움직임.
뱀처럼 꺾여 가던 검이 홱, 복면인의 안면부를 노렸다.
허나,
쩌어엉!
“……!”
놀랍게도, 길이 수 미터에 가속까지 붙은 세디스의 검은 손쉽게 튕겨 나왔다.
고작 팔뚝만 한 크기의 비수와 충돌한 직후였다.
충분히 당황할 법도 하건만.
철커덕!
세디스는 도리어 거리를 좁혔다.
일명 스네이크 소드라고도 불리는 검을 도로 회수하며, 반대쪽 손은 번개처럼 품 안으로 넣었다 뺐다.
그 즉시,
피피피피핏!
비수 십수 개가 일제히 복면인에게 쇄도했다.
암기 투척은 살수의 기본이라고 했던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과연 그 손놀림이 남달랐다.
다만, 상대 또한 살수.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자였다.
채챙! 채채채챙!
허공에 은빛 실선이 몇 개나 그려지는가 싶더니.
예의 비수 십수 개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피이잉!
“……!”
손안에 있는 하나뿐인 비수를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대경한 세디스가 90도로 목을 꺾었다.
그 유연함으로 허공에서 한 바퀴 몸을 휘돌린 녀석은 곧,
콰아아앙!
두 다리의 마나를 폭발시켰다.
무기를 잃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십여 미터나 되던 거리가 순식간에 일 미터 안팎까지 가까워졌다.
바로 그 순간,
쐐쇄쇅! 쐐쇄쇄쇄쇅!
“헉!”
놀라운 광경이었다.
부지불식간, 복면인의 전신으로 검은 칼날들이 뻗어 나왔으니까.
마치 문어발이라도 되는 양.
그 수만 자그마치 여덟에 달했다.
쾅! 콰콰쾅! 콰콰콰쾅!
연이어 울려 퍼지는 폭음.
예의 새까만 칼날이, 자아라도 가진 듯 세디스의 명줄을 노렸다.
특유의 날랜 움직임으로 아직은 힘겹게나마 피해내고 있지만.
그 또한 곧 한계인 듯했다.
“…….”
나는 그 모든 광경들을 생생하게 눈에 담았다.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거듭하면서.
육체 능력이 초인에 달하는 마스터를 마법사가 상대할 방도.
우선, 거리를 주지 않는다.
혹은, 거리를 허용해도 맞받아칠 수 있을 정도로 육체를 강화한다.
다름 아닌, 무궁한 마법의 힘으로.
“…직접 시도해 보는 건 처음인데 말이지.”
우우웅!
순간, 내 전신으로 금빛 막이 둘러쳐졌다.
지금부터 사용할 것은 내 경지를 한 단계 상회하는 마법.
원래는 시도조차 힘든 일이나.
현재 내 아공간 주머니에는 골렘의 핵이 있었다.
최소 수백은 되는 마나석을 통째 갈아 넣었으며, 그 정순함은 작금의 마나석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옛 고대 시대의 문명 수준은 드래곤들조차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니까.
핵이 일부 동력을 잃기야 하겠지만, 그거야 다시 충전하면 될 일이다.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한다.
만약 이것을 사용하게 되면, 나는 일시적으로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까.
지금부터 내가 사용할 것은, 무려 ‘7써클’의 대마법이다.
우웅! 우우우웅!
공명음은 계속해서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아직 경계를 살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시전어조차 입으로 작게 웅얼거렸다.
속도는 신속의 신 에르마를 방불케 하고.
힘은 거력의 신 헤라클에 빗대어지며.
마력의 운용은 투신 아테네와 비견된다.
각 신의 힘을 한데 모아 지금 이 땅에, 이 몸 하나에 오롯이 현신시키니.
세상에 상대하지 못할 이가, 누가 있으랴?
“…골든 플레어(Golden flare).”
화아아아악!
순간, 황금빛 광채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저 멀리서도 보일 듯한.
마치 하늘을 꿰뚫을 듯한 황금의 기둥이 이 땅에 내려앉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중심으로.
“……!”
거짓말처럼 복면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곤 눈앞의 세디스조차 무시하고 내게로 쇄도해 왔다.
마스터의 육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느꼈던 것처럼, 복면인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지금 내 힘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임을.
꽈아아아아앙!
피육과 피육이 부딪혔는데, 웬 폭음이 터져 나왔다.
휘둘러지는 복면인의 주먹과 내 다리가 충돌했음이다.
그럼에도,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이쪽의 모습에 상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 놀랄 필요 없어요. 지금 내 신체 능력은 마스터에 필적하니까.”
“……!”
복면인이 ‘흡’ 헛숨을 들이켰다.
허공에서 힘겨루기를 하던 내 다리가, 천천히 주먹을 밀어내고 있었기에.
상반신보다 하반신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은 상식이었지만.
나는 일개 마법사이며, 상대는 육신의 능력으로 마스터에 오른 이였다.
“…큭.”
처음으로 복면인의 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데, 아까부터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미묘하게 상대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고 해야 할까?
‘부상을 당한 건가?’
골든 플레어는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을 초인으로 만들어줄 뿐.
그게 마스터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상대가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건, 한 가지 가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하게 기억했다, 그 얼굴.”
“……!”
나직이 뇌까린 복면인이 이내 훌쩍 뒤로 물러섰다.
곧이어 스르륵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첫 등장 때와 마찬가지로, 실로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다행이다.”
이윽고 완전히 사라진 상대의 존재감을 확인한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내 마나도 거의 바닥이었거든.
색욕의 이능을 두 번이나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힐끗 시선을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세디스가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너, 너 방금 그건 대체…?”
“놀랐냐?”
“놀랐냐가 아니라… 이제는 기사로도 진출했냐?”
“마법사도 마음먹으면 충분히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어. 엄연히 배틀 메이지라는 클래스가 있으니까.”
“미친. 방금 네 움직임을, 현 대륙의 어느 베틀 메이지가 따라 할 수 있다고? 전투의 마법사로 유명한 로마르니도, 네 앞에서는 한숨만 푹푹 내쉬겠다!”
“오버하지 말고.”
“오버가 아니라…!”
뒷말은 한 귀로 흘렸다.
슬슬 걱정이 되었으니까.
방금의 복면인이 추락하는 달이고.
또다시 기습을 감행해 온 거라면…
아마 성에도 변고가 생겼을 테니까.
“…일단 영주 성으로 돌아가자. 지금까지의 고생을 헛수고로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
한편, 실비아의 방.
“걘 뭐였냐?”
이내 자세를 푼 빛의 연합주, 세논이 물었다.
“추락하는 달 같아요.”
“추락하는 달? 일전에 그놈들 말이냐?”
“네. 그보다, 저도 궁금하네요.”
“뭐가?”
“저 물건 말이에요.”
실비아가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완전히 빛을 잃은 웬 둥그런 구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 이거?”
이내 그것을 집어 든 세논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물건이야. 딱 두 개밖에 없는 건데,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렇게 귀한 물건이었나요? 죄송하네요. 괜히 저 때문에…….”
찰나 말끝을 흐리는 실비아를 보며 세논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들은 거랑 성격이 많이 다르네? 사과도 할 줄 알고.”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으니까요. 혹, 다시 만드셔야 하는 물건이라면, 제가 물심양면으로 재료를 구해다 드릴게요.”
“아냐. 재료야 뭐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구하면 되는데, 문제는 시간이거든.”
“시간이요…?”
“가령 그런 거야. 어미 닭이 부화를 위해 오랜 시간 알을 품어야 하는 것처럼,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내 마나를 주입해야 하는 물건이라고. 하나에 대략 3년은 걸리니까, 방금 그 3년을 다 써버렸네?”
“……!”
순간,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금만 더 빨리 개발했으면, 더 여유 있게 만들어 뒀을 텐데. 나도 비교적 근래에 제조법을 터득해서 말이야.”
“그런…….”
“일명 ‘빛 폭탄’이라는 건데, 물리력을 가진 내 마나가 적의 전신으로 폭사하는 거야. 추락하는 달이라… 역시 보통은 아닌 놈들이네. 이걸 피할 존재는 세상에 몇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
“아까 걔, 최소로 잡아도 마스터 이상이야.”
어느새 말을 잇는 세논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저 녀석이 세타를 찾는다고 했지?”
“…네. 그리고, 폐하가 여기 계신지는 모르는 눈치였어요.”
“그야 그렇겠지. 세타의 능력이 저쪽에 알려진 것이 아니라면… 그보다, 곤란하네. 녀석도 아직 마스터는 무리일 거거든.”
이윽고 말을 마친 세논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실비아는,
“…아니요.”
도리어 고개를 저었다.
일순간 달빛에 비친 그녀의 은발이 반짝였다.
“세타는 무사할 거예요.”
“…엉?”
“아카데미 때부터 꽤나 많이 봐왔다고 자부하는데, 매번 제 예측을 벗어나는 결과를 만들어낸 동기거든요. 그 녀석이 위기에 처하는 모습은 이제, 저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드네요.”
“…….”
이어지는 실비아의 말에 세논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더 나아가, 아예 눈꼬리가 미세하게 반달로 휘어지기까지 했다.
분위기가 달짝지근한 것이, 이거 어째 꼭…
“…세타 자식, 안 가르쳐 준 분야도 제법이잖아?”
“네?”
“아냐. 혼잣말이야, 혼잣말.”
한차례 손을 휘저은 세논이 이내 방문을 나서려고 했다.
습격자가 하나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으니까.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털썩!
“……!”
거짓말처럼 세논의 걸음이 멈춰 세워졌다.
곧이어, 끼기긱 그녀의 고개가 뒤로 돌아간다.
“야,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그곳에 여태 멀쩡해 보이던 실비아가, 심장을 움켜쥔 채 쓰러져 있었다.
***
“도착했다.”
우리는 위풍도 당당하게 레이브 성으로 돌아왔다.
아직 깊은 밤이었다.
한데, 곳곳에 이미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이 말인즉,
“…역시 이쪽부터 들른 건가?”
내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활짝 열린 성문을 지나쳐 이내 건물의 정문에 당도하자.
“임마! 세타!”
“……!”
웬 인영이 도도도, 내게로 달려들었다.
와락!
밤임에도 주홍빛 머리칼이 유독 눈에 띄는 그녀의 정체는…
“뭐, 뭐야?”
“…억!”
순간, 그제야 제가 한 짓을 깨달은 유리나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곤 오히려 제가 내 몸을 밀쳐 내기까지 한다.
“미, 미안. 무사한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반가워서 그만…….”
“…크흠.”
괜스레 헛기침을 한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잠시지만 내 품에 폭 안겼던 그녀는 아예 얼굴까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그, 그도 그럴게! 네가 이번에 해낸 일이 정 대단했잖냐? 이,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유리나가 더듬더듬 말을 이어 나갔다.
뒤에서는, 드물게 루나가 미소까지 베어 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참!”
그런 루나를 보는 즉시, 내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안 그래도 줄 선물이 있었는데, 잘됐다.”
“…선물?”
자연스레 내 시선을 따라가던 유리나의 입술이 대번에 댓 발로 튀어나왔다.
왜인지, 직후 목소리에 날이 섰다.
“그 와중에 선물까지 살 여유도 있으셨나 봐?”
“…뭐, 내가 원체 대단하잖냐.”
“…내 거는?”
“네가 뭐 이쁘다고?”
“…….”
유리나가 ‘쿵’, 발소리를 내며 뒤로 돌아섰다.
“아주 잘나셨네, 그냥.”
동료가 강해지면 내게도 좋은 일이다.
그들의 힘이 곧 내 힘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여,
“그때 말했던 마법. 가르쳐 줄게.”
홱!
유리나가 바람처럼 몸을 원상 복구시켰다.
“진짜?”
“어. 일대일 교습으로 확실하게. 아마 어지간한 마법서보다도 효율이 나을 거야. 물론, 죽을 만큼 힘들기야 하겠지만…….”
“진짜, 진짜로 약속한 거다?”
“…그래.”
쓰게 웃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안쪽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겠지?”
“아… 그게, 실비아가 자는 동안 습격을 당했어.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데…….”
말끝을 흐리는 유리나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이내 내 눈이 착하니 가라앉았다.
“지금 어디에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