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마나 포션(2)
눈앞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세타의 말에 거짓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증거로,
뚝, 딱, 뚝, 딱.
녀석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실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찧고, 빻고, 때로는 갈기도 하고.
활짝 개방된 주방의 식탁 위로 식재료가 아닌 웬 생소한 약재들이 널려 있었다.
세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약재들을 하나둘 섞어나갔다.
어느 이름난 주방장처럼 이따금 요상한 가루까지 비비고 흩뿌리면서.
“…볼수록 신기한 놈이란 말이지.”
세디스는 턱을 괸 채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만 봤다.
실제로 마나 포션을 직접 복용까지 해봤다.
다만, 그 대부분이 마법사라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하품(下品)이었으며.
최소 수십 골드를 호가하는 중품 이상의 마나 포션은, 접한 경험을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정식 달에 오르기 위한 과정 중, 그런 훈련이 있었다.
홀이며 써클에 잠재한 마나를 한계까지 뽑아 쓴 뒤, 문자 그대로 그릇을 갈기갈기 짓이겨 놓고 포션을 복용하는 것이다.
상처 난 부위에 약을 바르듯.
찢어 놓은 근육에 단백질을 투입하듯.
쪼그라들었던 그릇은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조금 더 크고 단단하게 변했다.
이걸, 소위 살수 훈련생 시절에는 1년에 1번은 꼭 행했다.
미친 짓이다.
사실 이 과정은 성장기의 육신에 크나큰 무리를 주었으니까.
다 큰 성인이라면 모를까.
자라나는 아이의 홀에 강제로 작위적인 힘을 가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그릇은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산산이 부수어지고 만다.
그래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대륙에서는 금기시되어 온 행위이기도 했다.
“…덕분에 내게도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지만.”
실제로 세디스는 그 최초 시도에서 ‘마나 홀’이 완전히 망가졌었다.
설령 신전의 최고위 사제가 와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을 정도로.
훈련 과정에서의 낙오는 곧 폐기 처분이다.
그 절망의 낭떠러지 끝에서, 세디스는 기적적으로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
마나는 회귀(回歸)하려는 습성이 있었고, 제 집을 잃은 기운들은 곧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갔다.
조각 조각난 홀의 파편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장기에 옮겨 붙은 것이다.
다름 아닌, 써클이 자리한 심장으로.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연이었고.
그렇게, 세디스는 마검사가 되었다.
“다 됐다.”
“……!”
때마침, 세타 녀석이 빙글 돌아섰다.
어느새 웬 대야에 보랏빛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걸 주방에서 찾은 적당한 물병에 나눠 담자, 약 1리터짜리 대용량 포션 두 병이 뚝딱 만들어졌다.
“…이런 비현실적인 광경도 계속 겪다 보니 익숙해지네.”
“너, 날 보면서 또 옛날 생각했지?”
“엉?”
“표정이 이상하더라. 꼭 차인 옛날 여자 친구라도 생각하는 사람처럼.”
“…여자 친구가 있었어야 그런 기분을 알지. 너는 뭐, 등 뒤에 눈이라도 달렸냐?”
그제야 피식 웃음을 터뜨린 세디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말대로 자연스레 조직에서의 끔찍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얼마 전, 레이브 성에서 있었던 습격 사건이 컸다.
그 선두에 있던 자는 분명 세 번째 달이라는 써드 문이었으니까.
팔목에 자리한 ‘3’의 숫자를 세디스도 똑똑히 목격했다.
허나, 아직 진짜인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때 달에 소속되었던 세디스에게도 베일에 싸인 존재.
일부 달들을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조차 안 본 이들이 대부분인 그들.
“살의(殺意) 감춰. 애들 깰라.”
흠칫.
찰나 몸을 떤 세디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세타 녀석은 꿀꺽꿀꺽, 잘도 포션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크으… 진짜로 죽이고 싶은 모양이네.”
“물론이야.”
“얼굴은 알고?”
“몰라. 살수라는 것들이 보통 그래. 음침하고, 극도로 노출을 꺼리지. 다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달은 그런 일반적인 상식과도 거리가 멀다고 들었어. 그냥 보면 평범한 인간 그 자체라고 들었으니까.”
“음… 그건 곤란하겠는데.”
“그만한 제약이 있더라도, 달의 재건에 핵심이 될 그들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일 거야. 시간을 들여서라도 꼭.”
잠시 ‘쩝쩝’ 입맛을 다시던 세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곧 이룰 수 있겠네.”
“…어?”
“일전에 달들이 물러간 이유가, 이대로 포기한다는 뜻은 아닐 거니까. 더군다나 쉽게 실패를 받아들일 인간들도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만…….”
솔직히 세디스는 회의적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일이지만.
두 번이나 임무에 실패한 이상, 다음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임이 확실함으로.
그게 언제가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조만간일 테니까.”
“…넌 뭐, 독심술도 배웠냐?”
세디스가 기도 차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보다, 이거 돈 될 것 같지 않냐?”
“엉?”
“일반 포션 병에 담았으면 족히 여섯 개는 나왔을 텐데, 고작 그것만으로도 내 마나의 절반 이상이 채워졌다는 말이지. 내 생각보다도 훨씬 성능이 좋아.”
“…여섯 병으로 고작 절반이면, 오히려 중품치고는 효과가 떨어지는 거 아니냐?”
“아닐걸?”
“왜지?”
“굳이 비유를 들자면… 이거 한 병이면, 어지간한 5써클 마법사는 전체 마나의 최소 80퍼센트가 회복된다는 뜻이니까.”
“……?”
순간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세디스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뭐, 80퍼센트?”
“아주 잘 들었구먼.”
“…네놈 마나 통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그릇이길래?”
“평범한 사람들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 내 마나통은.”
세디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약 방금 들은 말들이 사실이라면, 이 대륙에서 마나로 세타 녀석을 따라갈 자는 아무도 없다는 의미다.
“…괴물 같은 자식.”
“일반적인 중품이 30골드쯤 한다고 들었고, 이건 효과가 거의 상품에 가까우니까. 한 50골드 정도면 마탑에서 만든 포션보다 잘 팔아먹을 수 있겠지?”
“도둑놈에 이어서, 이번에는 장사꾼이냐?”
“전쟁은 곧 돈이니까. 벌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벌어야지. 그래야…….”
잠시 말끝을 흐리던 세타가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진짜 영주가 될 테니까. 나도 이제 고위 귀족이니, 번듯한 ‘성’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
진짜다.
이 녀석은 진짜 귀족을 꿈꾸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뭘 어떡해? 당연히 빌붙어야지.’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상념을 마친 세디스가 찰싹, 세타에게 옮겨 붙었다.
“뭐야? 떨어져.”
“어디든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그니스 백작 각하.”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녀석이 이내 실소를 터뜨린다.
“됐고, 이제 우리도 이동하자.”
우우웅!
때마침, 한줄기 웅혼한 공명음이 대기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확실히 좀 낫네.”
1리터짜리 포션 두 병을 단숨에 비운 세타가 곧장 손가락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테이블 너머의 주방 구석 한편.
바로 그곳에 기사들이 지나온 기다란 통로가 있었다.
***
한편.
부르르르르.
써드 문의 전신이 끊임없이 요동쳤다.
언젠가부터 완전히 명상에 빠져든 사내.
‘대공’이라 불리는 사내가 발산하는 기운은 그만큼이나 대단했다.
평생을 살수로 살아온 써드 문조차도 저만한 살기는 처음이었다.
‘…아니, 딱 한 번.’
그래.
처음 ‘첫 번째 달’을 만났던 그날의 충격을, 써드 문은 아직 잊지 않았다.
문제는 저 살기가 최소 그와 동급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써드 문.”
“……!”
써드 문이 흠칫 몸을 떨었다.
분명 아무런 기척도 없었건만, 웬 인영이 바로 등 뒤까지 접근해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기척에 민감한 써드 문조차 존재 자체를 감지해 내지 못했으니.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세컨드 문…?”
예의 인영이, 그도 아는 이라는 사실이었다.
써드 문이 곧장 제자리에 부복했다.
“상위 달을 뵙습니다.”
“저자가 ‘그’인가?”
“예. 칠악의 대공이라 불리는 자입니다. 제국과 우리의 연결 고리였던 제로 문은 이미 죽었고, 이제는 저 사내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복면 탓에 위쪽 안면부만 보이는 그 눈빛 사이로, 묘한 이채가 떠올랐다.
써드 문은 감히 그 눈을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그것이 조직의 규칙이었으므로.
“…아무튼, 살수로서는 실격이네.”
“네?”
“저만한 살의는, 누군가를 몰래 죽이는 데 방해만 될 테니까.”
“……!”
써드 문은 또 한 번 소리 없이 경악했다.
저 살기를 느끼고 한다는 평이, 고작 ‘방해’라고?
기사나 마법사들처럼.
살수들에게도 ‘정점’으로 치부되는 궁극의 경지가 있었다.
바로, 기세만으로도 상대를 압살할 수 있다는 꿈의 영역.
‘…나이트 마스터(Night Master).’
추측이지만, 대공이라는 자의 살기라면 그 경지까지 노려볼 만했다.
“목표물은 아직 레이브 성에 있는 거지?”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실망인데.”
서늘한 눈이 그를 향했다.
써드 문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보다시피 경황이 없어서…….”
“됐어. 내가 직접 성으로 가보면 될 일이니까.”
“……!”
사실일까?
진심이라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임무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상대의 또 다른 이명은 밤의 지배자.
여태껏 두 번째 달이 숨어든 침실에,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식료품 통로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만한 요소는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손쉽게 별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퍼퍼퍽!
“…컥!”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통로 바깥에서 감시를 맡고 있던 이들은 단숨에 잠재워 줬다.
그저 경계 역할만 맡은 이들이었기에.
실력이 떨어지는 감시자들은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조금 빨리 움직이자. 슬슬 이쪽도 이상 징후를 눈치챌 테니까.”
“네네, 그러시죠. 저는 그저 백작 각하의 명만 따르겠습니다.”
“…아직도 컨셉 놀이냐?”
“컨셉이 아니라, 제 진심인댑쇼?”
세디스 녀석이 장난스레 맞받아쳤다.
…그 꼴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말이야.”
“예이?”
“이곳 별궁에서 변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반란군 쪽에서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뭘 어떻게 반응합니까? 당장에 추격대를 꾸려서 우리를 쫓아오려고 하겠지요. 저희는 그전에 한시라도 빨리 발을 빼야 하겠고요.”
“그럼 자연스럽게 ‘저기’는 또 비겠네?”
“……?”
찰나 고개를 갸웃한 세디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뭔…….”
자연스레 시선을 옮겨가던 세디스가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내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발견했기에.
“…설마 아니지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거.”
“글쎄?”
“…제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이미 폐하까지 구하신 마당에, 빈집은 또 왜 운운하시는 건지.”
“여긴 별궁이고.”
한차례 말을 끊은 내가 재차 저 멀리 백궁(白宮)을 가리켰다.
“저긴 진짜 폐하께서 기거하셨던 본궁이잖냐.”
“…그게 어쨌다는…….”
“이왕 도둑놈이 되기로 했다면, 확실하게 가야 하지 않겠어?”
“미친놈! 진짜로 미친놈!”
드디어 컨셉 질을 멀리 내다 던진 세디스가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까지 한다.
물론 이미 마음먹은 내게는 씨알도 안 먹힐 행동이다.
덥석!
곧장 세디스의 두 어깨를 붙잡은 내가, 녀석과 똑바로 눈을 마주했다.
“생각해 봐. 왕궁에는 온갖 비고가 숨겨져 있고, 갖가지 마법 재료와 서적들도 널려 있을 거야.”
“난 안 해. 아니, 죽어도 못해! 하려면 너 혼자 해, 이 미친놈아.”
“아까는 충심을 다해 모시겠다더니?”
“그거랑 이거랑 같냐? 나라의 궁을 털어먹으려는 또라이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고!”
“어허. 백작 각하 면전에서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꺼져!”
아무래도 세디스 녀석은 죽어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 뭐 어쩌겠어.
죽어도 하게끔 만들어야지.
“너, 너… 지금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안 돼. 하지 마. 그거 아니야.”
연이어 고개를 도리질 치는 세디스를 일별한 내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할 거면 최대한 크고 화려하게.
이게 바로 내 신조다.
“적이다아아아아! 폐하가 사라지셨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막을 때리는 온갖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마나가 담긴 내 고성은, 이내 궁 전체로 널리 널리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