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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152화 (152/251)

152화. 마나 포션(1)

지정한 세 사람을 색욕의 권능으로 이동시킨 뒤.

나는 가만히 주저앉아 내부를 관조했다.

앞으로 약 한 시간.

써클이라는 그릇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명상만으로는 마나 리싸이클(Recycle)에 한계가 있으니까.

목표는 전체의 10퍼센트.

일단 그 정도만 되어도 만족할 생각이다.

한데, 여기서 또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

순간적으로 나와 세디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것도 분명 사방이 막혔을 식당 내부에서.

착각이 아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대화 소리까지 드문드문 들려온다.

“어차피 처먹지도 않는 거, 매일같이 이게 뭔 고생인지.”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입은 대잖냐. 지도 사람인데, 살기는 살아야 할 테니.”

“다 늙은 노인네, 언제 뒤져 주려나 모르겠네. 이 기회에 나도 내전에서 공을 세워 신분 상승을 노려보고 싶은데 말이야.”

“하기야 다음 왕권은 분명 카이클 공작님이 지지하는 이가 잡을 테니… 한데, 오늘도 음식에 ‘그걸’ 넣었나?”

“흑중초? 이미 음식에 다 녹아들어서 보이지도 않을걸?”

“나는 이 부분이 더 의문이라니까? 약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꽤나 귀한 독초(毒草)라고 하던데. 그 태반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격이잖냐.”

“흑중초의 무서운 점이, 극소량이라도 장기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는 점이라더라. 당장은 몸에 이상이 없지만, 몇 년간 꾸준히 섭취하면 자연스레 생명을 좀먹는다던가 뭐라던가.”

“그건 나도 들어봤지. 그래서 소리 없는 암살자라며? 쥐도 새도 모르게 대상자를 말려 죽인다고.”

여기까지 대화가 이어졌을 때, 삼중으로 된 잠금장치가 대부분 해체되었다.

기실, 이건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나 세디스는 마나에 무척이나 민감했으니까.

그 즉시 우리는 복도 끝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덜커덕!

때마침 주방 문이 활짝 개방되었다.

대략 열댓 명인가?

단순한 식료품 전달책이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많은 고급 인력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들 모두를 단숨에 쓰러뜨린 뒤, 주방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는 건데…

“…절반은 내가 맡을게.”

내 속삭임에 세디스가 곧장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겠냐? 네 써클, 이미 바닥이라며. 마나 탈진 현상이라도 겪으면 어쩌려고?”

“그래서 절반이라고 말한 거야. 조금만 더 여유가 있어도 내가 다 처리했을 테니까.”

“…내가 봤을 때, 자신감 하나는 바이커보다 네가 더 끝내주는 것 같다.”

서로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세디스와 바이커는 친구가 되기로 했다.

애당초 바이커 녀석은 입으로 내뱉는 말과 달리, 신분의 고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부류였으니까.

각설하고,

우우웅!

나는 조용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상황에 맞게 마나 효율이 좋은 에로우 계열 마법으로.

한 발에 한 명씩이다.

빗나간 이후의 대처는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만큼 현재 내 써클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다만, 자신감 하나만큼은 나도 언제나 차고 넘친다.

“자 그럼, 신념 따위는 저기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신 기사라는 이름의 버러지들을 한번 치워보실까?”

***

레이브 영주 성 집무실.

실비아는 홀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웬 둥그런 수정구 하나가 자리해 있다.

예의 카이클 공작과의 연락 수단인, 통신용 수정구였다.

우우웅!

약간의 마나를 불어넣자, 이내 수정구가 공명음을 토해냈다.

기다림은 짧았다.

- 생각보다 빨리 연락했군.

곧 수정구 위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꿈에서는 이미 골백번도 더 목을 베어낸 반란군의 수괴.

카이클 공작이다.

“…….”

직후, 실비아는 애써 동요하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여기서 일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개미 눈곱만큼도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일전에 있었던 회신에 대한 저의가 무엇인지요?”

- 저의? 그거야 네가 본 그대로일 텐데. 우리는 해방군과의 일시적인 정전(停戰)에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것을 찾기 위한 답신의 연기다.

“…필요성이라면 이미 충분히 설명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 글쎄? 그거야 순전히 너희 쪽 생각이 아닌가? 제국이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역시 상대는 닳고 닳은 여우이자, 속에 능구렁이 수백 마리는 더 품은 인물이었다.

미세하게 입술을 삐죽 내민 실비아는 고민을 거듭했다.

여기서 약하게 나가면,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하면 무엇으로 그를 꼬아내야 하는가?

아쉬운 점은, 칼자루를 쥔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저쪽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무엇을 제안하든 필요치 않고, 다 같이 죽자는 식으로 나오면 달리 방도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낮았지만…

‘…정말로 모르겠어. 카이클 공작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실비아는 순간적으로 미소를 띠고 있는 상대의 안면을 후려치고픈 충동을 느꼈다.

확실한 카드를 쥘 수만 있다면…

이쪽도 믿는 구석이 하나쯤이라도 생긴다면, 배짱 정도는 부려볼 수 있을 텐데.

똑, 똑, 똑.

그 순간, 거짓말처럼 노크 소리가 울렸다.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손님이 와서요.”

- 나보다 중한 손님인가?

“그건 아니겠지만요.”

- 뭐, 오래는 기다리지 못해. 잘 알다시피 나는 바쁜 몸이니까.

“십 초면 됩니다.”

짤막히 대꾸한 실비아가 냉랭하게 돌아섰다.

그 즉시, ‘재수탱이…’라는 말을 입으로 뇌까리며.

벌컥!

“무슨 일이시죠?”

자연스레 실비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분명 연락을 취하는 동안만큼은 방해를 삼가달라고 당부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카이클 공작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내였으니까.

한데,

“이 쪽지를…….”

“……?”

불청객이라 생각했던 손님은 사실 어마어마한 선물이었다.

내용은 단 한 줄.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금의 분위기를 송두리째 뒤엎을 수 있는 것이었기에.

- 폐하께서 지금 막 이곳에 도착하셨습니다.

부르르르르.

순간, 실비아는 정수리를 관통하는 어떤 전율을 느꼈다.

쪽지를 쥔 손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쉼 없이 떨려댔다.

침착하자.

애써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실비아는 능청스레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 십 초보다는 더 걸렸군.

이번에도 속을 뒤집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상대였으나,

“그럼, 협상은 결렬이네요.”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실비아는 되레 맞받아쳤다.

- 호오? 잠깐 대답을 유예한다는 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이쪽도 피차 시간은 없으니까요. 뒤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 …이런 중한 사안을, 상의조차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내릴 수 있는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걱정해 주셔서 감사한데, 이 부분은 저희 해방군 측 ‘새로운’ 대표에게 확실하게 위임받아서요.”

-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카이클 공작이 곧장 물어왔다.

- 크리스 론 인버스, 그 애송이에게 말인가?

“그는 표면적인 대표고요.”

- ……?

“이쪽의 진짜 대표가 누구인지는, 카이클 공작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나요?”

- ……!

말을 마친 실비아가 싱긋 눈웃음쳤다.

어느새 카이클 공작은 묘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 그편이 당신에게 조금 더 부담이겠죠. 안 그래요?”

***

고작 십여 분도 채 되지 않을 짧은 시간 만에,

“헉, 헉. 빌어먹을, 더럽게 힘드네.”

우리는 열댓의 기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예상보다 낮은 상대의 수준.

그리고 효율적인 기습이 주효했다.

기실, 쓰러진 이들 중 엑스퍼트에 접어든 기사는 고작 세 사람뿐이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평범한 마나 유저였으니까.

“진짜 전력은 모두 전장으로 내보냈다는 말이렷다?”

“그, 그래도 벅찬 건 마찬가지거든? 절반은 상대한다더니, 네놈이 약속과는 달리 고작 셋만 때려눕혀서 내가 이 꼴이잖냐!?”

“그 셋이 모두 엑스퍼트 기사들이었잖냐.”

“…쯧. 아무래도 추락하는 달에 다시 들어가야 할까 보다. 갈수록 하는 일이 살수에 가까워지니…….”

재차 숨을 고른 세디스의 호흡이 점차 안정화되어 갔다.

순간, 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지금 뭐 하냐?”

“뭐 하긴. 보는 그대로지.”

“…손버릇이 고약한 것을 보니, 어디 도둑 길드에라도 취업하셨나 봐?”

나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손은 여전히 쓰러진 기사들의 품을 뒤적이며.

“분명 여분이 남아 있을 텐데 말이지.”

“진짜 뭐 하냐고?”

“연금술(Alchemy)에 대해서, 대충 들어는 봤지?”

“연금술?”

“이미 알겠지만, 지금 나한테 가장 필요한 건 소모된 마나거든.”

“그런데?”

“그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 뭐겠냐?”

잠시 고민하던 세디스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포션?”

“그래. 포션이지. 그것도 상품(上品)일수록 더욱 좋고.”

어지간한 하품(下品)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내 방대한 그릇이 고작 하품 따위로 만족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뭐, 여기서 마나 포션이라도 만들어보겠다는 거냐?”

“마침 재료는 충분한 것 같아서. 아까 얘들이 하는 얘기 들었지? 참고로, 인간들 사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흑중초는 중품 마나 포션의 핵심 재료야. 여기서 몇 가지 재료만 더 배합하면,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포션 서너 개는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지.”

“그 몇 가지 재료는 수중에 있고?”

“마법사에게 필수품이 뭐겠냐? 바로 이…….”

잠시 말끝을 흐리던 내가 품 안에서 주먹만 한 가죽 주머니 하나를 흔들어 보였다.

“아공간 주머니지.”

“너 잘났다. 됐고, 그런 사실을 너는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냐?”

“엉?”

“방금 니가 말했잖아. 인간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배합법이라고. 가만 보면, 말하는 것도 꼭 자기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니까. 혹시 진짜 이종족이라던가, 그런 거 아냐?”

뜨끔.

찰나 당황했지만, 나는 곧 태연하게 반문했다.

“이종족은 무슨… 지난 3년 동안 날 봐왔으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

“하긴, 엘프도 그 수명만큼이나 성장이 무척 느리다고 들었으니… 나는 그런 쪽인 줄 알았지.”

“엘프라, 그래도 내가 잘생긴 건 아나 보네?”

“…항상 말하는 거지만, 너 재수 없어. 엄청.”

말을 마친 세디스가 눈을 반짝였다.

그것도 심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무튼, 중품 마나 포션만 만들면 우리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다는 거지? 네 이능을 또 한 번 쓸 수 있을 테니까.”

“아마도?”

‘중품이면 최소 열 개는 필요할 듯하지만…’ 하는 뒷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또 무슨 말이냐느니, 꼬치꼬치 캐물어댈 것이 뻔했기에.

다만, 수도에서 벗어나는 정도의 거리라면 그리 많은 마나는 필요치 않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흑중초가 들어가는 중품 마나 포션 제조법은 무척이나 희귀했다.

여기에 내 자체적인 능력으로 변화시킨 개량(改良) 조합법은, 성능 또한 곱절은 뛰어났으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물론 이 모든 지식의 출처는 아이리스였다.

“하면, 빠르게 시작해 볼까?”

나직이 휘파람을 분 내가, 이윽고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지만.

역시 잘생기고 똑똑한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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