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폐하를 구출하라(4)
최소한 이 나라, 테라 왕국 내에서라면 뭇 고관대작들의 집을 털려는 도둑 중 ‘지붕’을 통해 침입하려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그 정점에 있는 왕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워낙 마법이 발전한 나라이니만큼, 하늘로의 적습도 철저하게 방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벽 전체에 둘러쳐진 마력 감지 결계는 물론이고, 궁 지붕에는 온갖 격추 마법들이 각인된 마나석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사실, 일전에 레이브 영주 성에서 있었던 달들의 습격은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 또한 지붕을 통해 침입했으나 예의 마나석은 발동하지 않았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분명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 방어 방식에, 맹점이 있는 것이다.
일이 터진 직후, 세디스와 나는 곧장 지붕 위로 올라가 현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붕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마나석들이 파괴는커녕 너무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마나 트랩과 달리, 마법이 각인된 마나석은 직접 밟지 않아도 인간의 생기에 감지하고 반응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혹시나 싶어 슬쩍 발을 들이밀어 봤더니, 대번에 에로우 계열 마법들이 내게로 폭사되는 것까지 확인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건 추락하는 달만의 ‘고유 비전’이었다.
그들은 마나석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기운에 민감한 나는 그 방법이란 걸 단번에 깨달았다.
지붕 위에 남아 있던 웬 희미한 잔향.
그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증거였으니까.
우선, 특별한 방식을 통해 가공한 마나를 ‘막’ 형태로 분사한다.
최대한 얇고 넓게.
이 과정에서 마나는 그리 많이 필요치도 않았다.
각자 맡은 구역에서 나아갈 거동 범위 정도에만 막을 내리깔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세디스는 이것을, ‘속임수의 천막’이라고 부른다 했다.
그리고 천재(?)인 나는 그 운용 방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든 상태였다.
이제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던 세디스에게도 무리 없이 가르칠 정도로.
“조,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아…….”
한참을 내달리던 내가 그제야 멈춰 섰다.
어느 샌가 두 부녀는 꽤나 멀리도 뒤처져 있었다.
하기야,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왕과 공주였으니…….
“아시겠지만, 시간이 지체될수록 붙잡힐 확률도 훨씬 높아질 겁니다.”
“아, 알아요. 아는데 아주 조금만요. 폐하께서 많이 힘들어하세요.”
“음…….”
그 말대로 폐하의 숨소리가 상당히 거칠었다.
곤란했다.
우리가 나아가는 경로선상에 있는 감시자들은 모두 세디스 혼자서 도맡고 있었다.
지나온 길 곳곳에 쓰러져 있는 기사들이 그 증거였다.
아직은 들키지 않은 듯하지만, 머지않아 분명…
쩌엉!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순간, 처음으로 저 앞쪽에서 희미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숨 좀 돌리고 오시지요. 아무래도 일이 터진 것 같으니, 제가 먼저 가서 길을 뚫고 있겠습니다.”
“가, 감사해요.”
공주가 곧장 인사를 표했다.
더하여, 폐하 또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 즉시, 나는 전방으로 쏘아졌다.
“좀 비키라고!”
콰앙!
이제 확실하게 세디스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 앞에는 웬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 사내가 길을 막고 서 있다.
“그럴 수야 없지.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만, 나 크림슨 얀 애쉬드의 이름을 걸고, 네놈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
찰나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크림슨 얀 애쉬드.
제법 익숙한 이름이다.
왕실 직속 산하 마법 제1군단장이자, 평민의 신분으로 고위급인 백작까지 오른 사내.
그 일화는 너무도 유명했다.
마법 왕국으로 쟁쟁한 테라의 자체 대항전에서 무려 우승을 차지하고, 실력만으로 저 위치에 기어오른 입지적인 인물이 그였으니까.
허나, 그런 애쉬드 백작의 또 다른 별명은…
“…승냥이.”
혹은 들개.
달리 권력에 미친 하이에나라고도 불렸다.
왕이 실권을 잃자, 고민조차 하지 않고 카이클 공작에게 옮겨 붙은 인간이다.
철저한 실익에 따라 움직이며, 도덕과 양심, 의리 따위는 언제든 하수구에 처박을 수 있는 사내다.
이런 쓰레기는 새롭게 태어날 왕국을 위해서라도 미리 제거해야 한다.
“뜬금없이 웬 자기소개야? 머리가 어떻게 되셨나.”
“…아무래도 너는 나를 모르는 모양인데, 나는 왕국에 셋밖에 없는 6써클 유저다.”
세디스의 상스러운 손가락질에, 미간을 찌푸린 승냥이가 그리 답했다.
참고로, 이 나라의 왕실 수석 마법사는 6써클 마스터다.
하위 마탑주와 같은 경지인 그 노인네는 일부러 마탑에 소속되지도 않았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
뭐, 그런 사고방식인 듯하지만.
중요한 것은 눈앞의 인물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었다.
실력의 향상보다는 자리의 상승을 바라는 인물.
그런 이가 머무르기에 작금의 테라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기사를 더 우대하는 여타 나라들과 달리, 테라만큼은 마법사들을 확실하게 대우해 줬으니,
“……?”
때마침 나를 발견한 승냥이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힐끗, 내 쪽을 돌아본 세디스는,
“왔냐? 가만있어 봐. 금방 끝낼 테니까.”
도리어 손안의 검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 없어. 내가 할게.”
“…….”
잠시 움찔한 세디스가 이내 선선히 물러선다.
그 모습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승냥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놈들이었군.”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는데, 문득 의문이 들어서요.”
“……?”
“아까 6써클 유저가 이 나라에 고작 셋뿐이라고 하셨는데, 하면 나머지 둘은 누구죠?”
“…이건 뭐, 연기인지 진짜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군.”
“어차피 대마법사님께 붙잡힌 마당에, 그 정돈 알려주실 수 있잖아요?”
“…….”
한참이나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승냥이가, 이내 별 해괴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답한다.
“하나는 내 주군인 카이클 공작님이시며, 다른 하나는 브룩 백작이다.”
브룩 백작?
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니, 그보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무엇이?”
“방금 말씀하신 카이클 공작의 아들인 제노스 델 카이클. 그 녀석도 분명 6써클의 경지에 오른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 따지면 셋이 아니라 네 사람 아닌가요?”
승냥이가 대번에 코웃음을 쳤다.
“흥. 제노스 공자는 5써클 마스터다. 그 재능은 인정한다만, 아직 나와 같은 경지는 아니야.”
“엥?”
반응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건 이상한데?
제노스의 실력은 이미 마법 대전에서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한데도 아군인 눈앞의 사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 말인즉,
‘마법 대전 관전석에 테라인은 아무도 없었던가?’
물론, 제국에서 저지른 대인질극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만…
‘…어째 정보가 전혀 공유되지 않는 것 같은데.’
모종의 이유로 제노스가 제 실력을 감추고 있다 하더라도, 우군이라면 마탑에서 있었던 모든 상황은 반란군 쪽에 전해져야 옳았다.
아직은 단순한 추측이지만, 이거 어째…
‘제국은 이미 테라와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직후, 내 표정이 사악하게 굳어갔다.
안 그래도 급한 마음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대화는 이만하면 됐고, 이제 덤벼 봐요.”
“뭐…?”
“어차피 그럴 작정이셨잖아요? 무려 왕국에 셋밖에 없는 6써클 유저 분을 상대하게 되어 영광이네요.”
말과는 달리, 내가 도발적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승냥이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미 그와 같은 경지인 브룩 백작을 ‘마나’만으로 무릎 꿇렸다는 사실을.
“애, 애쉬드 백작?”
“……!”
이제는 하늘마저 내 편이었다.
때마침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두 부녀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공주님…? 허 참, 폐하까지 함께시라니. 이리 마음대로 바깥으로 나오면 안 되시지요. 대체 누구의 허락으로 나오신 겁니까?”
“무엄해요! 감히 폐하께서 누구의 명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인가요?”
“뭐, 작금의 현실이 그러하니까요.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따르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
공주의 얼굴이 치욕으로 물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말, 그대로 돌려드려도 되는 거죠?”
이제 나는 이 나라의 왕 앞에서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얻었으니까.
***
속사(速射)의 마법사.
세간에서 애쉬드 백작을 부르는 별칭이었다.
일 초를 수 등분으로 쪼갠 찰나의 찰나에도, 그는 무수한 마법들을 쏘아 보낼 수 있었다.
그의 특기는 일명 콩알탄이라고도 불리는 도트(Dot) 계열 마법이었다.
압축되고 압축된 콩알 크기의 마법이, 공간을 격하고 날아가 한순간 대상을 벌집으로 만든다.
관통력은 철판도 뚫어낼 수 있을 정도의 극상.
속도는 일 초에 오십여 발까지 캐스팅할 수 있는 초고속의 수준.
적어도 그 앞에서 ‘마법’이라는 분야로 이리 당당할 수 있는 존재는 대륙에 몇 없었다.
‘혹, 다른 동료가 있는 건 아니겠지?’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 네 사람이 전부였다.
웬 복면을 뒤집어쓴 애송이가 하나.
다 늙은 노인네와 온실 속에서 자란 공주가 각각 또 하나.
마지막으로, 눈앞의 재수 없게 생긴 핏덩이까지.
‘결국 둘이서 이 궁에 잠입했다는 건데… 완전히 공을 세울 기회로군.’
애쉬드 백작의 입가로 설핏 미소가 스쳤다.
이 녀석들을 사로잡아 카이클 공작님께 바친다.
더불어, 그 윗선까지 확실하게 캐낸다.
이만큼이나 삼엄한 궁 내부로 들키지 않고 숨어든 녀석들이라면, 분명 평범한 애송이들은 아닐 터.
“하늘이 내 편이로다, 크흐흐.”
애쉬드 백작이 만족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한데, 한편으로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근데 네놈 이름이 뭐지?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낯짝이라는 말이지.”
“저요?”
“그래. 아주 얼굴 전체에 버터가 줄줄 흐르는 네놈 말이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저는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합니다. 아무튼, 기어이 막으시겠다면야.”
우우웅!
순간, 예의 녀석의 주변으로 마나의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그 즉시, 애쉬드 백작은 특기인 도트 계열 마법을 캐스팅했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순식간에 웬 속사포 소리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엄지를 튕겨낸다.
마디 끝에 맺힌 마나는 빠르게 전방으로 쇄도한다.
열. 스물. 쉰. 이백.
고작 4초 사이에, 이백 발이나 되는 마나탄을 쏘아낸 그는,
“흐흐흐.”
이내 음침한 웃음을 내흘렸다.
여느 때와 똑같았으니까.
확실한 승리 패턴이다.
그나마 그가 고전했던 상대는, 준비 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먼저 선공을 감행해 왔다.
일단 마법이니만큼 써클에 대한 최소한의 예열 작업은 필요했으니까.
허나, 결론적으로 녀석은 그 기회를 놓쳤다.
이미 일대는 도트 마법이 적중했을 때 피어나는 푸른 연무로 가득했으니…
“……!”
그 순간, 애쉬드 백작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종래에는 아예 입까지 쩌억 벌려대기까지 했다.
“이게 끝이에요?”
“어, 어떻게…?”
“뭐, 별것도 없네.”
녀석은 멀쩡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제 상반신을 툭툭 털어내기까지 한다.
마치 옷에 묻은 먼지라도 털어내는 것처럼, 그렇게.
때마침 무언가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가, 가만. 이름이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이제야 확실하게 기억났다.
세타 쿤 이그니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는지.
그건 비교적 최근에, 대륙 전체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한 천재에 관한 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사실은 따로 있었다.
“이, 이그니스? 설마 그 이그니스는 아니겠지?”
“……!”
당사자도 모르는, 수면 아래의 케케묵은 비사(祕事)가 떠올랐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