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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145화 (145/251)

145화. 나태의 죄악(2)

나태의 마왕이자 회피의 마족, 벨페고르.

그 직계 권속인 레이지의 신형은 완전히 연기로 화한 상태였다.

평범한 타격과 마법은 무용지물이나, 단 하나.

어느 마기나 그렇듯, 신성력과 빛의 마나만큼은 예외였다.

치이이이이익!

-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철판에 고기를 올려놓았을 때나 날 법한 소음과 동시에.

유령계 마물인 벤시(Banshee)를 방불케 하는 비명이 내부를 찢어발겼다.

통한다.

내가 만들어낸 빛 덩이에 레이지가 반응하고 있음이다.

하여, 나는 전력을 다해 마나를 쏟아부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상대의 명백한 실책이었다.

이 기회를 살린다.

방심의 대가는 뼈아팠다.

인간만 했던 연기의 형상이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작아지고 있었으니까.

마치 수증기처럼.

- 그, 그만. 그마아아아아아안!

그럴수록 내면에서 들려오는 의념은 점차 강해졌다.

이건 레이지의 목소리인가, 그도 아니면 죄악의 또 다른 속삭임인가?

식탐과 색욕이 요동친다.

저 힘을 먹어치우라고.

내 것으로 만들라고.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고.

‘…큭.’

순간, 내 속이 크게 울렁였다.

그건 내부에서부터 치솟아 오르는 본연적인 거부감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칠죄종의 힘을 모두 흡수하게 되면, 이 몸은 어떻게 될까?

일부라곤 해도 마계 정점이라는 마왕의 힘이다.

처음에야 단순히 죄악을 취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시도한 거지만…

마침내 그 힘들을 모두 흡수했을 때.

그런 나를, 과연 ‘인간’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 혹시 또 모르지.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로, 원래 육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

방금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내면의 울림.

죄악의 속삭임이었다.

그중에서도 힘에 대한 갈망이 무척이나 강한 식탐(食貪)의.

‘뭔…!’

- 솔직히 궁금하잖아? 마침내 전생의 기억을 모두 찾게 되면 너는 바람의 드래곤일까, 아님 인간 세타 쿤 이그니스일까?

‘……!’

- 망설여지나? 이 일련의 과정들로 너 스스로를 잃어가는 듯해서.

‘그건…….’

- 고민할 게 뭐 있어? 일단 다 먹어치우고, 지금처럼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될 것을.

‘……!’

- 네 목적은 하나잖아? 이제 네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것. 단언컨대, 드래곤의 기억에 칠죄종의 힘마저 모조리 흡수한 너는 이 대륙. 아니, 천마계 전체를 통틀어도 다시없을 전무후무한 존재가 될 거야. 아마 그 누구도 네 주변을 건드릴 수 없을걸? 그야말로 네가 바라마지 않던 일 아닌가?

식탐은 끊임없이 속삭였다.

문제는, 그 말에 은연중 납득하는 내 자신이었다.

미증유의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힘을 통제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모를까.

솔직히, 나는 지금도 흡수한 능력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

찰나, 상념을 이어가던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웬 인기척이 빠르게 내게 쇄도해 오고 있었다.

정체는 금세 드러났다.

루나를 크게 떨쳐 낸 써드 문이 곧장 내게 비수를 휘둘렀다.

쩌정! 쩌저저저정!

순식간에 생성된 쉴드가 공격을 막아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 이 정도로 순도 높은 마나라니.”

“…….”

쉴드의 방어력은 사용자의 능력에 비례한다.

지닌바 마나는 쉴드의 크기가 되고, 불순도가 0에 수렴할수록 경도는 훨씬 견고해진다.

그걸 아는 써드 문의 놀라움은 당연했다.

경지로는 엑스퍼트 최상급에 이르는 그의 마나는, 5써클 이하의 쉴드 정도는 단번에 두 동강 낼 수 있을 테니까.

“역시 성급했어. 세컨드 문이 합류하고 나서 움직였어야 하는 건데…….”

홀로 중얼거린 써드 문이 곧장 레이지를 들쳐 업었다.

어느새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복부 한가운데가 뻥 뚫린 채 혼절해 있었다.

힐끗, 레이지를 내려다본 써드 문이 중얼거린다.

“여기서 너를 잃을 순 없지.”

“내가 그냥 보내줄 거라고 생각해?”

“…….”

내 무심한 물음에도 써드 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달들에게 명한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들을 막아내도록. 죽일 수 있다면 더 좋다.”

이따위 비정한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상위 달의 명은 절대적이라고 했던가?

서걱!

“…컥!”

때마침, 인버스 공작을 지키던 마지막 기사의 목이 떨어졌다.

이미 출입문 인근에도 시신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최소 일백은 더 학살당한 듯했다.

이래서야 아군의 피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뿐이다.

“네가 보내주든 보내주지 않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

내 시선이 힐끗, 인버스 공작 쪽을 향했다.

그는 체통조차 잃고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주변으로 몇 겹이나 중첩된 쉴드 마법이 희미하게 보였으나 저걸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나, 저대로 죽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최소한 내 목적을 위해서라도.

“…다음에 또 보지.”

이윽고 레이지를 업은 써드 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런 와중에도,

우웅! 우우우웅!

“…….”

내 써클은 거칠게 진동하고 있었다.

이미 독하게 마음먹은 이상.

저 둘은 잠시 놓아주나, 나머지는 아니다.

콰드드득!

순간, 내 주변의 대기가 통째 일그러졌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그래.

이곳에 있는 달들은, 오늘 내 손에 모두 죽을 것이다.

***

콰쾅! 콰콰콰콰쾅!

“…….”

실비아는 지금,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엑스퍼트 중상급에 이르는 기사들을 순식간에 베어낸 의문의 살수들.

로비 내부를, 문자 그대로 미쳐 날뛰던 그들이,

“…세상에.”

이번에는 철저하게 피해자가 되었다.

하늘 위의 예의 성가신 마사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게 대체 무슨 마법이지?”

웬 묵 빛의 구체였다.

속이 훤히 비치는 그 안에는, 마치 반딧불이 같은 빛 덩이가 무수히도 많이도 들어 있었다.

숫자만 따지자면 대략 수천 개?

아니, 그 이상도 되어 보였다.

중요한 것은,

꽈아앙! 퓨퓨퓩! 퓨퓨퓨퓨퓨퓨퓨퓩!

그 구체가 폭발하는 즉시, 내부의 반딧불이가 사방으로 폭사했다.

털푸덕! 털썩!

인근에 있던 대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즉사했다.

실비아는 저런 미친 마법을 단연코 처음 봤다.

만약 저런 것이 전장 한복판에서 나타난다면…

“…꿀꺽.”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초토화에 이은 대량살상.

가히 일인 군단을 넘어선 천군만마였다.

“저게 인간이냐…?”

그건 곁의 유리나도 같은 생각인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

오직 저 미친 마법에 휘말리지 않는 일만이,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이었으니까.

불꽃 마법은 전장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파괴력을 자랑하나, 그 불꽃 마법조차 저 정도 위력은 아닐 것이다.

단 십 분.

하나하나가 쟁쟁한 실력자들인 아군이 고전한 살수들을 세타 혼자서 쓰러뜨리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

“…….”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오감에 신경을 집중했다.

레이지와 써드 문의 기척은 이제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건물 내부는 물론이고 지붕 위, 더 나아가 최소 100미터 근방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싶다.

“부상자는 한쪽으로! 피해부터 빠르게 보고해 주세요.”

“인버스 공작님 개인 호위 기사가 여덟. 일반 병사 일백둘 외에 기사 이 개 조가 전멸했고, 나머지 크고 작은 부상들은 확인 중에 있습니다.”

“저, 전멸이라니… 단 한 사람도요?”

“네. 한 사람도…….”

“…….”

이런 대화 소리는 내게도 들려왔다.

실비아는 사뭇 심각한 얼굴로 여러 지시를 내리기 바빴다.

덕분에 내부는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시신들을 구석으로 모으는 한편.

이 사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테이블이 새롭게 차려졌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1층 로비가 가득 들어찰 정도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세타.”

“알았어, 갈게.”

실비아의 부름에, 상념에서 벗어난 내가 곧장 테이블로 다가갔다.

곧이어,

“긴급 회의를 시작하죠.”

실비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우리가 아군끼리 이리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도 적들은 호시탐탐 이쪽을 노리고 있습니다.”

“대관절 저들이 누구란 말이냐?”

“그 부분은, 여기 세타 쿤 이그니스가 대신 설명해 줄 것입니다.”

한 귀족의 반문에, 실비아가 도리어 내 쪽을 가리켰다.

아마도 이참에 확실하게 영향력을 키워줄 생각인 듯싶다.

물론 나는 호의를 거절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직후, 온몸에 구멍이 뚫린 시신 하나를 가리킨 내가 말을 잇는다.

“반란군에서 고용한 암살자들입니다. 추락하는 달이라고, 다들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추, 추락하는 달이라고!?”

경악한 고성이 곧장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물론 그 뒤에는 제국이 있겠지만, 아마 추락하는 달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이유는, 일전에 있었던 국경 지대 습격 사건. 그 일이 실패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어, 어쩐지 실력이 범상치 않다더니…….”

“보셨듯이, 적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당장 제가 이곳에 없었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무사하지 못했을 테지요. 저기 인버스 공작님도 포함해서요. 이 부분은 동의들 하시겠지요?”

사실, 이 습격 또한 구태여 열아홉을 생포한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으나.

그 사실은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

“저는 제 능력을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증명했습니다. 하여, 이참에 인버스 공작님께 확언을 듣고 싶습니다.”

움찔.

혼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 있던 인버스 공작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약속대로 지휘권은 양도하시는 거겠지요?”

“…….”

사실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일단은 상징적으로나마 해방군을 대표하는 인물이 필요했으니까.

카이클 공작에 비해, 크리스나 다른 귀족들은 그 격이 너무 떨어진다.

민심이란 그런 것이니까.

우두머리가 누구냐에 따라 이리저리 쉽게 휩쓸리고 마는.

때문에, 조금 귀찮더라도 인버스 공작에게 직접 대답을 들어야 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고, 공작님?”

이내 인버스 공작의 잇새로 원하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내 입가로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일부 귀족들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단,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공작가 휘하 가신들을 제외하고.

내게는 저들까지 모두 납득시킬 의무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

“하면 인버스 공작님의 지시 아래, 실무적인 지휘권은 차근차근 크리스 경이 넘겨받는 것으로 하고. 이와는 별개로, 사실 저는 해방군에게 필요한 게 다른 무엇보다 ‘구심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구심점…?”

“당장 몇 남지 않은 해방군 쪽에도 세드릭 파니, 인버스 파니 세력이 갈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다, 반란군의 수괴인 카이클 공작만큼 확실한 수뇌부가 없기 때문이지요.”

나는 이들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짓밟기로 작정했다.

더는 저들끼리 멋대로 설쳐서는 곤란했으니까.

“그러니까, 저는 그 상징적인 구심점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해낸다니, 그게 무슨…?”

“폐하 말입니다.”

“……!”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귀족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기실 반란군과 손을 잡는 것과는 별개로, 이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향후 카이클 공작과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라도.

“그, 그게 가능했다면 우리가 진즉…….”

당황하는 누군가의 말을, 나는 중간에서 끊었다.

“이전에는 몰라도, 이제는 가능합니다.”

“……?”

“여기, 제가 있으니까요.”

“……!”

***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여, 회의가 끝나는 대로 곧장 건물을 나섰다.

한데,

“세타.”

나를 뒤따라 나오는 인영이 있었다.

실비아였다.

“잠시 같이 걸어도 될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는 빠르게 내 곁으로 다가섰다.

정원에는 이제 몇몇 소수 경비 인원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조금 걷자 금세 인적이 드물어졌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지금까지 너를 다리 역할 정도로만 생각했어.”

“다리?”

“자유 연합과 테라 왕국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지만, 너라는 다리가 있다면 하나로 묶을 수 있을 테니까.”

“아아…….”

“더군다나, 자유 연합주님과 8월의 검사는 그 존재만으로도 훌륭한 전력이기도 하고.”

“…….”

“네 진짜 실력.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래서 말인데…….”

더 듣지 않아도 알 만했다.

아마도 직접 전쟁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이겠지.

참모로서, 나라는 존재가 가져오는 전략상 이점들이 눈에 훤히 보일 테니까.

다만, 나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일단 발을 들인 이상, 해방군을 돕는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무슨 얘길 하려는지는 잘 알겠어. 그럼, 나도 부탁 하나만 하자.”

“어…?”

“내가 전쟁에서 쌓은 공, 승리의 기여도 따위는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거겠지?”

“그, 그야 뭐. 나도 남의 공을 가로채는 파렴치한은 아니니까.”

순간, 머쓱한 표정이 된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갑자기? 그런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뭐래. 너라면 관심 안 가지겠냐? 내가 그동안 어떤 일을 당해왔는데.”

“…아.”

일개 개인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개인은 집단을 이길 수 없다.

역사상 유래 없는 대영웅도, 모두 휘하의 부하나 동료들과 함께였다.

마왕에 맞선 용사와 그 동료들.

제국에 대항하는 연합군.

일신의 무력과는 별개로, 그런 조력자들을 한데 모을 ‘울타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니…

“나, 폐하를 구하고 귀족이 되려고.”

지금부터는, 내 스스로가 이 나라의 포식자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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