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41화 (141/251)

141화. 지휘권 확보(2)

두두두두두두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인버스 공작의 명에 따라 일천의 군세가 보무도 당당하게 열린 성문 사이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성이라도 끝까지 고집했다면 모를까.

지레 겁을 먹고 미리 싸우기를 포기한 겁쟁이들 따위, 삼천이 아니라 삼만이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한데,

“……?”

갑작스레 선봉을 자처하던 기사들이 하나둘 멈춰서기 시작했다.

지금 막, 성문 안으로 완전히 들어선 직후였다.

등 뒤에 자리한 것은 네 개의 성문 중에서도 동문(東門).

괴이한 점은 성문 안에도 밖에도, 경비를 담당하는 병(兵)들이 머리털 한 올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흠칫.

“…혹시?”

그제야 선두의 기사는 등골이 오싹해져 옴을 느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이 일련의 상황들이 전부 ‘함정’이라 가정한다면…

“전군(全軍), 정지!”

기사는 제 직감을 믿기로 했다.

그 즉시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질렀다.

“워, 워!”

이윽고 나머지 기사들은 물론이고, 기마병들마저 급하게 고삐를 틀어쥐었다.

“무슨 일이냐!?”

뒤쪽에서 지휘부가 빠르게 접근했다.

예의 기사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다니엘 경. 왜 군을 멈추게 한 게지?”

“보시다시피, 무언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성문 밖은 그러려니 했지만, 안쪽에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습니다.”

“…….”

과연 그 말대로였다.

후미의 인버스 공작이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동문에서 가장 가까운 민가(民家)까지는 대략 일백여 미터.

그 사이에 자리한 것은 수백 평에 이르는 드넓은 공터였다.

하여, 평상시의 병들은 이 부지를 이용하여 훈련을 해오곤 했다.

한데도 그 흔한 경비병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함정?”

“모르겠습니다. 다만, 성벽 위에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

어째 갈수록 의문만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구태여 수성의 이점을 포기하고 팔 만한 함정이라면,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군세가 진입하는 즉시.

성벽 위에서 숨어 대기하고 있던 병력으로 화살이며 끓는 물 따위를 부어대는 뻔한 수법 말이다.

이미 가까워질 대로 가까워진 아군은 피할 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허나, 확인 결과 그 또한 아닌 듯하니…

“…동문 경비의 책임자가 누구지?”

인버스 공작의 물음에 다니엘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빈센트 남작입니다.”

“그 올곧기 그지없는 사내가 제 경비구역을 비우고 어디 마실이나 나갔을 리는 없을 테고… 하면, 전부 영주 성에 모여 있는 것인가?”

레이브의 성은 민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에 자리해 있었다.

영지 한가운데에 작은 언덕이 하나 존재하는데, 영주 성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요? 설마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으려는 생각은…….”

“잊었는가? 저쪽에 누가 있는지.”

“…아, 그렇군요.”

다니엘이 곧바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죄인 크리스의 성격이라면 그럴 리가 없지요.”

다니엘은 기억한다.

그가 크리스와 함께 전장에 참전했던 날.

아군은 패퇴하고, 적군에게 쫓기고 또 쫓기던 그 비 오던 밤.

생존 병력은 고작 일백 수십 가량의 일 개 기사단이 전부였다.

때마침 작은 마을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적군은 마침내 턱 밑까지 쫓아왔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어느 기사가 말했다.

차라리 마을을 미끼로 삼자고.

민간인들에게 상처를 입히면, 민심을 생각하는 반란군은 절대로 그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라고.

일단은 목숨부터 건져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리 간언하는 기사의 얼굴을 크리스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검으로 베었다.

“…위선자 새끼.”

그때의 기억만 떠올리면 다니엘은 안면 전체가 쓰라렸다.

특히나 얼굴 중심을 사선으로 가로지른 검흔(劍痕) 부가.

기실, 크리스가 배신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기뻐했던 이도 다니엘이었다.

이제 놈을, 대공작가의 후계가 아닌 동지를 팔아먹은 개자식으로 대할 수 있을 테니까.

‘죽인다, 반드시.’

애써 살심을 가라앉힌 다니엘이 정면을 바라봤다.

“일단 영주 성으로 가보시지요.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선봉은 그대로 제가 맡겠습니다.”

“음, 하면 부탁하겠네, 다니엘 경.”

“맡겨만 주시지요.”

다니엘이 충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겉으로는 다시없을 정의로운 기사이나, 속은 누구보다 복수심에 미친 살귀.

그가 바로 현 해방군의 최선봉 기사인 다니엘 레쉬가드다.

***

레이브 성 1층 중앙 로비.

“이게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실비아가 참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입은 열지 않고 있지만 가만히 서 있는 루나도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유리나나 크리스는 아예 동태를 살피겠다며 성 꼭대기까지 오른 상황이었고.

두두두두두두두두!

바로 그때, 나만 들리는 희미한 말발굽 소리가 느껴졌다.

“왔나?”

“……!”

내 중얼거림에 실비아가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직후, 루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왔다! 왔다고! 이제 어쩔 거야?”

유리나와 크리스도 날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죄인은 당장 이리 나와서 무릎을 꿇어라!

바깥에서 이런 외침마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죄인은 무슨.”

피식 웃음을 터뜨린 내가 곧장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만에 하나 네 계획이 실패했을 때는…….”

“응. 그때는 저들을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네 명에 따른다니까.”

“…약속 지켜.”

실비아의 거듭된 당부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준 나는 이내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한데…

“……!”

곧 예상치 못한 광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드넓은 정원에 수백의 사람들이 가득 도열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중무장한 상태로.

“이건…?”

“오해는 말게. 자네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만일의 상황에 대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다들 자발적으로 나선 거니까.”

“여기 있는 분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선 거라고요?”

성에 상주하는 병력은 오백.

어림잡아도 그 태반은 나온 듯싶었다.

“생각보다 설득이 쉬웠네. 병사들도 사람이니까. 다들 무능한 지휘부에 신뢰를 잃은 지 오래였지. 이런 상태도 모르고 지휘부는 무조건적인 결사항전이나 외쳐 대고 있었으니…….”

“…….”

군은 상관의 명에 복종한다.

그들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니까.

시키면 그저 따를 수밖에 없는.

허나, 머리가 정도(正道)에서 한참이나 벗어나는 일을 하려고 하면, 몸은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거기에 구심점이 되어줄 이까지 나타난다면…

소위,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네를 지지하네. 혹여나 계획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저들과 맞서 싸울 것이네.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의지로.”

그제야 내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요.”

***

그 시각.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공작 각하.”

인버스 공작 무리는 일천의 병력으로 영주 성을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혹여나 성에서 탈출하려 해도, 이제 저희 허락 없이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좋군.”

성을 재탈환하기 위해 인버스 공작은 정공법을 택했다.

일반적으로 방어선이 성까지 밀리게 되면, 수성군(守城軍)의 입장에서는 최후의 항전을 결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견고한 외곽의 성벽을 두고 중심지의 성을 택한다 함은, 결국 성과 함께 목숨도 내던지겠다는 각오일 테니까.

격전지(激戰地)가 성이 되면, 내부 시설들은 필연적으로 파괴되고 말 것이다.

“병사들을 설득하기는 힘들고, 패색은 짙으니… 가지지 못한다면 부숴 버리겠다는 못된 심보인가?”

“혹시 또 모르지요. 가령 일반적인 패장(敗將)처럼 영주가 직접 나와 가신들과 영지민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휘하 식솔들은 살려달라고 빌지도. 물론 이 경우에는 영주가 아니라 이번 일을 획책한 년놈들이 모두 나와야겠지만요.”

“하하하하!”

몇몇 귀족들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기분을 대체 언제 느껴봤던가?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그들 스스로가 겪어왔던 일이니까.

물론 열에 아홉은 아군이 얘기 속 패장이 되었다.

“영지민들은 어찌 반응하고 있나?”

“무슨 일인가 싶어 하나둘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저희가 제법 요란하게 움직인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모든 상황이 아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인가?”

“다만, 영지민들이 휘말릴 우려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접근해서… 이 부분은 어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흠…….”

백성들의 불안감은 당연했다.

저들도 눈과 귀가 있으니까.

당장 영주 하나만 바뀌어도 저들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고 만다.

하물며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영지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것이 무릇 권력자의 도리겠지. 가서 병사들에게 일러라. 은밀히 영지민들 사이로 숨어들어 소문을 흘리라고. 성 내부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어, 이 메이저 론 인버스가 직접 처리하러 왔다고 말이다.”

“……!”

“구태여 접근하는 이들은 막지 말거라. 이런 일에 구경꾼들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인버스 공작은 최후의 최후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반란군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민심.

그걸 역으로 이용하는 거다.

일단 레이브 영지민들의 신뢰만 얻어 놓으면, 언제든 이들을 인질로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하면 또 한 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그는 반란군과 제국의 관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거라면,

‘내가 직접 그 다리 역할을 해줄 수도 있겠지. 제국의 목적은 대륙 통일이니까. 속국 테라가 아니라, 제국령 테라가 훨씬 더 구미가 당기지 않겠는가?’

공작까지는 아니겠지만, 제국의 후작.

못해도 백작 정도라면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다.

이 막강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기실, 왕에 대한 충성심은 처음부터 눈곱만큼도 없었다.

내전이 발발했을 때, 해방군 쪽을 택한 이유도 하나였다.

카이클 공작과 같은 노선을 타면, 결코 일인자는 될 수 없을 테니까.

그가 봐온 카이클 공작은 범이었다.

결코 남 아래에 있을 성격이 못 되는.

어떻게 저런 자가 왕 아래에서 버텨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나라는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으니.

‘…설마 이렇게까지 내가 밀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 과정이 어떻든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인 법.’

상념을 마친 인버스 공작이 이내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고, 공작 각하. 영주 성의 출입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뭐라고?”

순간, 인버스 공작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그 말대로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개방되고 있었다.

곧이어,

저벅, 저벅, 저벅.

“……!”

그 사이로,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물론 인버스 공작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세타 쿤 이그니스…?”

“이제야 오셨군요.”

“…….”

그 대범함에, 인버스 공작은 혀를 내둘렀다.

허나, 당황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는 법.

이미 곳곳에서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어느새 모여든 영지민들까지,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악한 매국노 놈. 위기에 몰리니 결국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이렷다?”

인버스 공작이 짐짓 호기롭게 외쳤다.

허나,

“매국노라니요. 저는 그저 대의를 따랐을 뿐입니다만.”

“…뭐라? 대의?”

“떠나간 귀족 분들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미래가 없는 해방군에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더 이상 무능한 지휘관 아래에 있고 싶지 않다… 라고요.”

“……!”

그 적나라한 말에 인버스 공작이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그딴 개소리를 내가…!”

“당연히 믿지 못하시겠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직후, 녀석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생긴 건 꼭 통신용 수정구처럼 생긴 것이, 무(無)색이 아닌 은은한 녹 빛을 띠는 주먹만 한 구체였다.

우우웅!

곧 그것에서 은은한 공명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무언가의 형상들이 떠올랐다.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빛은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장소는 웬 목조 선박 위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또렷한 대화 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한다.

- 역시 처음부터 배신할 생각은 아니셨다는 말씀이시네요.

- 우리가 권력에 미친 자들인 줄 아느냐? 믿기진 않겠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테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 이들이었다. 강제로 왕을 폐위한 정권 따위,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

- 그게 정상적인 생각이죠.

- 허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카이클 공작님의 진심을 봤다. 더불어, 이 이상 무능한 지휘관 아래에 있고 싶지도 않고.

- …….

- 실제로, 여기 있는 이들 중 절반은 배신 따위를 하지 않았다.

“뭣…!”

인버스 공작은 너무 놀란 나머지, ‘흡’ 하고 눈을 치켜떴다.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능한 지휘관은 물러가라!”

“우리는 더 이상 병을 화살받이로 생각하는 사령관을 따를 수 없다!”

“내 나라, 테라를 위하여!!!!”

영주 성 내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보셨죠? 민심은 이미 이쪽으로 돌아섰다니까요.”

“그, 그 물건은 무엇이냐? 아티팩트냐?”

“아, 이거요?”

손안의 예의 둥그런 구체를 들어 보인 녀석.

세타 쿤 이그니스가 얄밉게 미소 지었다.

“근래 초월의 마탑에서 개발해 낸 ‘기억 저장구’라고 하는 건데, 들어는 보셨으려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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