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40화 (140/251)

140화. 지휘권 확보(1)

시신은 가짜다.

정체는 거짓이다.

그 모든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앞의 녀석.

제노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 …어이가 없군. 내가 이따위 저급한 속임수에 넘어갈 줄이야…….

- 하나만 묻자. 너도 전생자(轉生者)냐?

- …….

녀석은 답하지 않았다.

전생자.

나와 같은, 이전 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존재.

녀석은 내 전생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밖에 없지 않을까?

하물며,

기억하기로 나와 같은 미친 짓을 했거나 할 존재는 하나뿐이다.

“답은 직접 찾아보시지.”

잠시 후, 제노스가 육성으로 중얼거렸다.

그 반응에 녀석과 함께 온 사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방금 뭐라고…….”

“아닙니다.”

딱 잘라 답한 제노스가 곧장 몸을 돌렸다.

그들이 솎아낸 배신자들이 속속들이 작은 배로 옮겨 타고 있었다.

한데, 그 숫자가 자그마치 스물에 달했다.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곱절은 더 많은 인원이었다.

“저들이 전부 배신자라는 건가…?”

“…뭐야. 인버스 공작가의 휘하 가신들도 있잖아? 에리브 백작이나 스라크 자작은 수십 년 전부터 공작가와 함께해 온 역사나 다름없을 텐데…….”

“이게 해방군의 민낯이라는 뜻이겠지. 이따위 상태로 반란군에 맞서려 했다니…….”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바꿔야지. 저 녀석 덕분에 최악은 면했으니까.”

루나와 실비아가 연신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그제야 내 시선도 변절자들을 향했다.

머리의 보자기가 모두 벗겨진 그들은 이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저기, 떠나시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움찔.

절반의 인원이 배로 옮겨 탄 직후였다.

지금 막 승선하려던 한 귀족이 힐끗 내 쪽을 돌아봤다.

찰나, 품 안으로 손을 넣어 무언가를 조작한 내가 입을 열었다.

“그냥, 여기까지 버텨놓고 뒤늦게 배신한 이유가 궁금해서요. 애당초 그럴 작정이었다면 내전 초기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대우도 훨씬 더 좋아졌을 거잖아요?”

“…….”

“해방군이 확실한 승기를 잡은 적이 있다면 모를까, 저라면 그리 생각했을 것 같아서요.”

멈춰 선 그는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곁으로 다가선 실비아가, 저 사내가 스라크 자작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줬다.

“미래가 없는 해방군에게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곧 스라크 자작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설령 남작으로 작위가 강등당하더라도, 더 늦기 전에 생각을 고쳐먹을 필요성을 느꼈다.”

“역시 처음부터 배신할 생각은 아니셨다는 말씀이시네요.”

“우리가 권력에 미친 자들인 줄 아느냐? 믿기진 않겠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테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 이들이었다. 강제로 왕을 폐위한 정권 따위,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

“그게 정상적인 생각이죠.”

“허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카이클 공작님의 진심을 봤다. 더불어, 이 이상 무능한 지휘관 아래에 있고 싶지도 않고.”

뒷말은 진심인지 잘 모르겠다.

이왕 배신하기로 작정한 것, 늦게라도 점수를 따볼 요량일지도.

“실제로 여기 있는 이들 중 절반은 배신 따위를 하지 않았다.”

“……!”

이건 다른 동료들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실비아와 루나가 대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이냐는 듯 내 시선이 옮겨 간 귀족들을 향했다.

그들은 애써 내 눈을 피했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이,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 분명 배신자들만 보내기로…….”

“아니.”

“……!”

“나는 저들을 이해해.”

“그런…….”

실비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차라리 잘됐어. 이번 기회에 잠재적 배신자까지 모조리 내보내자고.”

우우웅!

순간, 품 안에서 나만 들리는 기묘한 공명음이 들려왔다.

목적은 이뤘다.

직후, 나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

“비록 마음은 떠나셨지만, 오랜 기간 여러분이 해방군에 바친 헌신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지요.”

“…….”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옮겨 간 귀족들이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방금 전한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놈.”

가만히 지켜보던 제노스와 두 사내도 그제야 몸을 돌렸다.

나는 재차 녀석에게 외쳤다.

“쪽지는 꼭 전해드려라?”

“…….”

이번에도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멈춰 있던 배들이 천천히 멀어져 간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던 나는,

“우리도 돌아가죠.”

마침내 일행들에게 협상이 종료되었음을 알렸다.

***

겨울의 하루는 금세 저물었다.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 전, 우리는 레이브 성으로 돌아왔다.

그때쯤 되자 인버스 공작은 이미 지근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수성(守城)을 준비하죠.”

“……!”

실비아의 당찬 제안에 새롭게 지휘부로 합류한 귀족들이 눈을 크게 떴다.

특히나, 전 동문의 경비대장이자 지금은 성 전체의 치안을 담당하는 빈센트 남작은 눈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걱정마저 드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저런 반응도 이해는 간다.

당장 귀족들만 해도 떠날 이들은 모두 가고 고작 서른만 남아 있었으니까.

“설마, 싸울 생각이십니까?”

“이왕 일을 벌인 것, 주도권은 확실하게 잡아야죠. 이렇게 수성이라는 유리한 고지까지 점했잖아요?”

일견 들으면 일리 있는 말이다.

본거지에 남아 있는 병력은 삼천.

그에 비해 저쪽은 고작 천이 전부다.

인원부터 세 배가 차이 나는데, 거기에 공성은 수성하는 전력의 최소 세 배는 많아야 전투가 된다는 일반적인 상식까지.

수적인 병력의 우위는 압도적이었다.

다만,

“아니. 그건 악수야.”

“…응?”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사령관을 교체하는 것에 동의했지만, 일반 병사들은 아니니까. 걔 중에는 아직도 인버스 공작을 따르는 이들도 더러 있을 거야.”

“…그래 봤자, 어차피 군권을 장악한 우리의 명이면…….”

“그게 악수라는 거지. 그런 찍어누르는 방식도 귀족들의 배신에 크게 한몫했으니까.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 아군끼리 피 터지게 싸우면, 누가 가장 좋아하겠어?”

“하면,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야?”

순간, 지휘부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집중되었다.

유의미한 반응이다.

원래라면 감히 평민이 어쩌고 하는 고성이 터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니까.

싱긋, 미소 지은 나는 이내 그들이 원하는 답을 내어놓았다.

“일단 들여보내 줘야지. 이 성 내부로.”

***

두두두두두두!

일천의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하나같이 말을 탄 그들은 국경지대에서도 엄선된 최정예 병력이었다.

심지어 3분의 1은 일반 병(兵)이 아니라 기사이기까지 했다.

“진군 속도를 높여라! 배신자 놈들은 보이는 즉시 처단하라!”

지금, 인버스 공작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었다.

처음만 하더라도 믿기지 않았다.

크리스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

그쯤이야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어미가 죽은 그날부터, 녀석은 때때로 적의 어린 시선을 보내오곤 했으니까.

다만 이토록 막장으로 일을 벌일 거라고는 그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크리스를 감시가 아니라 ‘미끼’ 역할로 보냈다.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 수단 말이다.

결국 모든 정황을 눈치챈 그 빌어먹을 녀석이, 크리스를 대신 징벌해 준다면 그 또한 괜찮았고.

“성에서 추가적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없느냐?”

“그게, 한 가지 있기는 한데 이게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상세히 고하라.”

“배신자들이 도합 스물에 이른다고 합니다. 다만, 그들 모두 무(無)조건으로 반란군에 송환해 줬다는 정보입니다.”

“뭐라고…?”

순간, 인버스 공작이 ‘흡’ 눈을 치켜떴다.

“지, 진짜 배신자들이 있었다고? 크리스가 아니라?”

“그, 그렇다고 합니다.”

“하면, 그들을 그냥 보내줬다는 말이냐? 감히 내 명도 없이 누구 마음대로!?”

“세, 세타 쿤 이그니스입니다. 크리스 경… 죄송합니다. 대역죄인 크리스를 포함한 나머지 귀족들이 그를 지지하면서 송환 절차는 그대로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다른 귀족들도 이참에 옳다구나 했겠구나. 내게 쌓인 것이 많았을 테니까.”

저 멀리, 성벽이 보였다.

마침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주제는 아는군.”

인버스 공작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 같이 죽자는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 싸움은 피하고 싶겠지.

허나, 인버스 공작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개미 눈곱만큼도 없었다.

“속도를 늦추지 마라! 단숨에 죄인들을 진압한다! 최우선적으로 성부터 점령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믿음직한 군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 기세에 맞춰 말들이 ‘두두두두!’ 힘차게 투레질했다.

해방군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일까?

“모조리 밟아주마. 다시는 그 대가리를 쳐들지 못하도록.”

때마침 대지 위로 짙은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

강을 건너 군의 임시 거처로 돌아온 제노스는 곧장 중앙 천막을 찾았다.

그곳에 그와 무척이나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 사내가 다른 귀족들과 자리해 있었다.

하나의 원형 테이블 주변으로 사람들이 뱅 하니 둘러싼 형상이었다.

“…공작 각하.”

“소식은 이미 들었다. 갔던 일은 잘 처리하고 왔다지?”

반란군의 지휘부는 미소로 제노스를 맞이했다.

무(無)조건 포로 송환.

더하여, 추가로 생각을 고쳐먹은 귀족들을 상처 없이 데려왔다.

적어도, 지금 아군에게 제노스는 영웅이었다.

“한데, 의외로구나. 해방군이야 썩어 빠진 놈들만 있다는 건 애당초 알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조금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네 녀석도 인정한 아이가 합류했다 하지 않았느냐?”

“…그 아이가 공작 각하께 이걸 전해주라 하였습니다.”

“……?”

순간, 카이클 공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곧장 다가선 제노스가 손안의 양피지를 내밀었다.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펼쳐 보인 카이클 공작은 빠르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 공작 각하. 저희에게도 내용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군의 군수품 총책을 맡고 있는 로만 후작이 조심스레 물었다.

“동맹을 하자는군요.”

“예? 도, 동맹이라니요? 그게 대체 무슨…….”

“직접 한번 읽어보시지요.”

카이클 공작이 선선히 손안의 양피지를 내밀었다.

잽싸게 받아 든 로만 후작은 소리 내어 그 내용을 읊조렸다.

- 언제나 노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최근 해방군에 합류한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고급 인력의 중요성은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함이 없겠지요. 하여, 저희 해방군은 카이클 공작님에게 동맹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참고로, 이쪽에는 두 마탑주님과 빛의 마녀, 8월의 검사님도 계십니다. 가히 수만 군세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전력이지요.

“핫! 이딴 헛소리, 더 들어줄 필요도 없겠습니다. 그냥 밀어버리시지요. 조금 더 피해는 감수해야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동맹 따위를 해줄 이유는 조금도…….”

“그 뒤까지 계속 읽어보시지요.”

“…예? 아, 예.”

카이클 공작의 말에 로만 후작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 그렇다 해도 이쪽이 열세임은 분명하지요. 저도 그냥 손을 잡아달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무릇 동맹이란 건, 동등한 관계에서 시작되어야 잡음이 없는 법이니까요.

‘…그래도 양심은 있는 놈이었군.’

속으로 조소한 로만 후작은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분명 헛소리하지 말라고, 그냥 밀어버리자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니 저는, 동등한 동맹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능력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이 새끼, 어디서 몰래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로만 후작이 참지 못하고 주변을 홱홱 둘러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로만 후작?”

“아, 아닙니다. 계속 읽겠습니다.”

- 내일 이 시각. 저는 해방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무능하며 부패한 인버스 공작이 개처럼 짖는 ‘기억 저장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폐하 다음가는 권력자는 이 나라에서 단 세 분뿐. 큰 부상을 당한 세드릭 공작님과 위신이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버스 공작님. 둘이 사라지는 셈이니, 혹여나 하나로 합치더라도 카이클 공작님에게는 이득뿐인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뭣…!”

직후, 로만 후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저희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끝까지 반발하는 잔당들이야, 나중에라도 처리하면 그만이니까요. 구심점을 잃은 귀족들은, 근본도 모르는 애송이보다 공작님에게 모여들 것입니다.”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개처럼 짖게 만들겠다느니 하는 말은 솔직히 믿지 못하겠지만, 그 핏덩이가 해방군을 장악할 수 있다면 전체적인 그림은 훨씬 좋아지겠지요.”

“솔직히, 자기들끼리 싸우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카이클 공작이 핵심을 찔렀다.

“그걸 그 아이가 염두해 두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

지휘부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제노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개인적인 견해를 물으시는 것이라면…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피식 웃음을 터뜨린 카이클 공작이 이내 좌중을 둘러봤다.

마치 그 대답이면 충분하다는 듯.

“하면,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할까요?”

너무 놀란 나머지 로만 후작은 끝까지 읽지 않았지만, 사실 카이클 공작은 이미 답을 내려놓고 있었다.

양피지의 마지막.

- 하루빨리 내전을 종식하고, 저 악랄한 황제에 맞서 함께 싸우시지요.

…하는 부분이 무척이나 재미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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