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39화 (139/251)

139화. 선박 위의 적장(3)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노선은 다르지만 같은 아군이다. 한데도 이들을 다 죽이겠다니?”

“벌레 하나 잡자고 집채까지 다 태우겠다는 말이냐!?”

대번에 주변인들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의외인 것은, 그 대부분이 반(反) 인버스 공작파 귀족들이었다.

그리 참고 살았어도 아군은 아군이라는 건가.

“…훗.”

역시 아직은 해방군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다.

“줄사다리를 내리겠습니다! 천천히들 올라오시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구석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뒀으니 편히 쉬십시오!”

그런 와중에도 포로로 잡혀 있던 해방군 쪽 귀족들은 신속하게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확신이 들었다.

카이클 공작은 결코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그는, 부하 하나를 위해 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상관이어야 하니까.

나라의 정점.

왕(王)을 꿈꾸는 이라면 그래야만 한다.

분명 그랬는데,

- 한번 해보거라.

“……!”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카이클 공작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무슨…?”

- 벨 수 있다면 베어보라는 뜻이다. 어차피 내가 간자를 찍어준다고 해서 네 녀석이 살려준다는 보장도 없지 않겠느냐?

“아, 그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

- 우습군. 이리 쉽게 약속을 저버리는 놈을 또 믿으라는 뜻이냐? 너라면 그리할 수 있겠느냐?

절대로 못하지.

나는 같은 상대에게 두 번이나 당하는 머저리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카이클 공작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정보는 확실하죠?”

직후, 나는 곁에 선 복면인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일전에 내가 포섭한 인버스 공작가 휘하의 암살단이었다.

“확실합니다. 인버스 공작은 저희에게 최우선적으로 내부 귀족들의 동향을 감시토록 명했습니다.”

“그 결과가, 최소 열 이상의 귀족들이 배신했다는 거고요?”

“예. 아마 크리스 경의 배신도 이미 눈치채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공작가 휘하의 정보조직들도 내부 감시에 신경을 써왔으니까요. 지금껏 봐온 성격으로 판단하건대, 그는 절대로 타인을 믿지 않습니다.”

즉, 배신자는 하나가 아니라 최소로 잡아도 열.

카이클 공작이 왕을 노린다면, 이들 모두를 포기할 수는 없을 터였다.

부하들의 신망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테라의 국민들 또한 오랜 내전 끝에 폭군이 왕좌에 앉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

그리되면 왕국 전역에서 민란과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제국군에 맞서, 어느 때보다 하나로 결집해야 할 이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이런 사실들과는 별개로, 인버스 공작이 배신의 징후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점은 의외였다.

“…하면, 인버스 공작은 왜 제 자식을 그냥 두고만 본 것일까?”

힐끗, 내 시선이 크리스 쪽을 향했다.

그는 휘하 기사들과 함께 넘어온 포로들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내가 일을 벌이는 즉시 인버스 공작은 병력을 이끌고 움직였으니까.

다른 감시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얘기였다.

- 왜 그러지? 막상 베라고 하니까 그러지 못하겠나?

바로 그때, 재차 카이클 공작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내 입가로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곤,

“아닌데?”

서걱!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컥!”

머리에 보자기를 뒤집어쓴 예의 인영이 모로 기울어진다.

뒤를 이어, 저쪽에서도 확연히 보일 다량의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지, 진짜로 죽였어. 목이 베였다고!”

때마침, 지금 막 배 위로 올라탄 포로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다시 말하지만, 내 요청으로 그들은 식솔들과 함께였다.

아직 어린아이도 있고, 귀부인들도 많았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그들 모두 몰골은 초췌할지언정 전체적인 상태는 나름 괜찮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이래도 배신자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 네놈…….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냥, 전부 보내자니 저희도 뒷일이 걱정되어서요. 먼젓번에 저희가 나눴던 ‘그것’을 위해서라도, 역풍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카이클 공작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양새였다.

상황이 쭉 그렇게만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 …그 보자기부터 벗겨보거라.

역시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직후, 내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이 또한 예상했던 반응이니까.

이즈음 하여, 누구나 아는 기본적인 상식.

경지가 오를수록 마법의 위력은 상승한다.

써클이 높아질수록 마법의 활용도도 다양해진다.

신체의 힘을 두 배로 상향시키는 스트랭스를 세 배까지 늘릴 수도 있고.

본래 자신에게만 걸 수 있던 헤이스트를 다른 이에게 걸어줄 수도 있다.

마법사에게 실력의 상승이란 그런 것이니까.

단순히 더 고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법으로도 갖가지 응용을 해낼 수 있는.

참고로,

“그럼, 명대로 벗겨드려야겠네.”

화아악!

순간, 내 가벼운 손동작에 쓰러진 인영의 보자기가 확 벗겨졌다.

이내 드러나는 그의 얼굴은…

“이런, 처음부터 너무 거물이 당첨되셨는데?”

나는 짐짓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짤레짤레 흔들었다.

“아, 안드라 후작님?”

“안드라 후작님이다! 안드라 후작님이 돌아가셨다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경악 가득한 목소리가 천지를 찢어발겼다.

물론 이 광경은 저 멀리 배 위의 인물들도 똑똑히 목격했다.

“자, 이제 됐습니까?”

- …정신이 온전치 못한 놈이었구나, 네놈은.

그 대답으로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천재들은 하나같이 미치광이라고.”

***

습기 가득한 어느 지하.

똑, 똑, 똑.

오직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진다.

“…….”

열아홉은 여전히 그곳에 갇혀 있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쓸쓸히.

물론 천장 곳곳에 숨어 있는 감시자들은 예외였다.

어차피 그들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들이었으니까.

한데,

스르륵.

그런 고요한 적막감을 깨뜨리는 이들이 있었다.

순식간에 지하로 숨어든 몇 개의 인기척.

“……!”

그 익숙한 기척에 열아홉이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곧이어,

서걱! 푸확!

“읍…!”

마치 하나와도 같은 여러 개의 파육음이 귀청을 때렸다.

감시자들은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열이나 되었던 그들은 단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만에 명을 달리했다.

“열아홉.”

“읍! 읍!”

쓰러져 있던 열아홉이 필사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물린 재갈 사이로 침이 질질 흘러 나왔다.

그럼에도 열아홉은 괘념치 않았다.

잠시 후, 천장에서 뚝하고 떨어진 눈에 익은 인영이 재갈을 풀어줬다.

“써, 써드 문…….”

열아홉의 잇새로 무척이나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꼴이 말이 아니군.”

“저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

“뭐, 일단은 한 식구니까.”

“……!”

순간, 열아홉의 두 눈으로 격정이 휘몰아쳤다.

정식 달로 인정받기 전과는 차원이 다른 대우였다.

열아홉은 처음으로 죽을힘을 다해 ‘달’에 오른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포박을 풀어주겠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고하라.”

“…그, 그게… 부끄럽지만 정체 모를 애송이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명에 따라, 열아홉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읊었다.

특히나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이에 대해서는 누차 강조까지 했다.

“그 녀석의 이름은?”

“분명 세타 쿤 이그니스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역시 그랬던가.”

마침내 자유의 몸을 얻게 된 열아홉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애송이는 괴물이었다.

혹여나 재대결을 펼친다고 해도, 승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봐~ 내가 뭐랬어? 그 아이는 보통이 아니라고 했잖아.”

“……!”

순간 들려오는 새로운 목소리에 열아홉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나른하고도 졸린 듯한.

듣고 있노라면 자신까지 늘어지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언젠가 열아홉도 꼭 들어본 적 있는.

“제, 제로 문? 당신까지 이곳에 오신 겁니까?”

“…쟤는 언제 적 이름으로 부르는 거람? 지금은 레이지라는 예쁜 이름이 따로 있거든?”

“시, 실례했습니다. 나태의 레이지시여.”

“암튼, 정리하자면 그 아이는 물론이고 이곳의 사령관까지 레이브 성으로 향했다는 거지?”

“예. 분명 성에 있는 군 내 배신자부터 처리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어머. 목적 자체는 우리랑 같은데?”

“예? 그게 무슨…….”

열아홉은 채 말을 마칠 수 없었다.

푸욱!

“……!”

순간, 열아홉이 학질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온몸을 푸들푸들 떨었다.

“내가 대신 답해주지. 저쪽이나 우리나, 쓰레기는 이제 필요 없다는 뜻이다. 조직의 명예에 흠집이나 내는 소모품 따위는.”

“그… 런…!”

열아홉의 얼굴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고작 이런 최후를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살아왔던가?

고작 이따위 인간 같지도 않은 생(生) 때문에…

“…쿨럭!”

열아홉의 시선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반월의 비수는 정확히 그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살아날 가망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치명상이었다.

“빌… 어먹을…….”

시야가 점차 흐릿해졌다.

어느새 동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동료라는 이름의 그 개자식들.

“지옥… 에서… 도… 저주할… 것…이다.”

그렇게 열아홉은 다시 차가운 대지 위로 몸을 뉘었다.

***

결국 내 또라이 짓은 성공했다.

물론 이번에는 반드시 포로를 석방한다는 마나의 맹세까지 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해방군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었다.

배신자들을 내보내 뒤통수를 맞을 일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으며, 적군에 사로잡힌 포로들도 되돌려받았으니까.

직접 데리고 간다는 조건으로, 딱 배신자들만 이송하는 것으로 얘기까지 마무리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해방군이 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될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쏴아아아아!

또 하나의 작은 배 두 척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빠르게 이쪽으로 접근해 왔다.

각각 열 명도 족히 탈 수 있을 듯한 배였지만, 승선한 인원은 고작 세 사람이 전부였다.

“…포로들은 어디에 있소?”

지금 막 우리 배 위로 오른 세 사내 중 하나가 물었다.

직후, 나는 손가락을 들어 배 구석을 가리켰다.

“저쪽에 따로 준비해 뒀죠. 보는 눈이 많아봐야 좋을 것 하나 없으니까.”

“…배려 한번 눈물 나게 고맙군.”

“혹, 엉뚱한 사람까지 몰래 끼어서 데려갈 생각은 아니시죠?”

“그들이 우리 말에 순순히 따르겠소? 만약 그렇다면, 그대 해방군들의 인망을 탓해야지.”

“그건 맞네요. 아 참, 한 가지 더. 이 쪽지도 카이클 공작님께 꼭 좀 전해주세요. 중요한 내용을 적어뒀거든요.”

나는 곧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지?”

“그냥 공작님께 전해줘요. 아니면…….”

순간, 내 시선이 가장 뒤쪽에 자리한 로브인을 향했다.

다른 둘과는 달리 유독 그만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였다.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내 신경은 처음부터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뒤쪽 분이 대신 받아서 전해주시면 더 좋고.”

“……!”

움찔 몸을 떠는 그를 향해, 나는 곧바로 메시지 마법을 쏘아냈다.

- 오랜만이네?

“…….”

- 근데 나 같은 미치광이를 상대로 고작 세 명이서, 그것도 네가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내가 또 이상한 짓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시나 몰라?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곧바로 반응했다.

- …훗.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단, 최소 이 배가 침몰하는 것은 각오해야 할 거다.

- 어이쿠, 그건 안 되지. 농담이야, 농담.

가볍게 손을 휘저은 내가 픽, 하고 실소를 흘렸다.

그게 끝내 녀석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짐짓 목소리를 내리깐 예의 후미의 그가 은은한 마나까지 담아 중얼거린다.

“한데, 안드라 후작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그는 배신자가 아니었거든요.”

“……!”

녀석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분명 큰 목소리가 아니었음에도 주변인들 모두의 귓속으로 쏙쏙 틀어박히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한데,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안타까울 것도 없어.”

“……?”

“그는 죽지 않았거든. 볼래?”

“……!”

잠시 후, 몰려든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 뜨여졌다.

내 명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시신이 기다렸다는 듯 비칠비칠 몸을 일으켰으니까.

“아, 안드라 후작…? 어떻게…?”

“염료 몇 가지를 섞으면 피처럼 보이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거든.”

“…….”

그럼에도 녀석만큼은 의문을 쉽게 풀지 않았다.

그 이유인즉,

- …안드라 후작과 미리 입까지 맞췄다는 뜻인가? 하면 너는 그가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군.

- 아니, 몰랐는데?

- ……?

- 진짜 안드라 후작이 아니니까. 근데, 네 말로 이제는 확실히 알겠네.

- …뭐라고?

사람들이 우르르 가짜 안드라 후작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가득 떠올리고서.

잠시 아까의 말을 이어서 하자면,

비록 지금은 그 의미가 무색해졌지만.

- 잊었어? 내 진짜 주력.

- …설마…….

- 아카데미를 나와 함께 보낸 너라면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부르르르.

순간, 녀석이 잘게 몸을 떨었다.

그래.

본래 내 특기이자 주력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신체 변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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