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37화 (137/251)

137화. 선박 위의 적장(1)

매일 밤 10시, 테라 반란군이 전략 회의를 거행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 주최자는 왕 다음가는 권력자라 불리는, 아니, 이제는 명실상부 왕국 서열 1위로 올라선 카이클 공작이었다.

회의 안건은 매번 비슷했다.

대스왈로우 제국군의 동향.

그리고 이 일시적인 동맹 관계를 얼마나 길게, 깊게 유지할지에 대해서.

이들에게 ‘해방군’이라는 적은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오늘만큼은 그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하면 발안(發案)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금일은 피치 못하게 해방군 문제부터 거론해야 할 듯싶습니다.”

카이클 공작의 부관이자 반란군의 대참모 역할을 맡고 있는 제러드 후작이 운을 뗐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국경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적 수뇌부를 기습적으로 궤멸시키는 임무에, 실패하였다고요.”

“……!”

이미 소식을 접한 지휘부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더러 존재했다.

물론 곧장 반응하는 것은 후자의 사람들이었다.

“이, 인버스 공작을 생포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입니까?”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병력이라면 충분했을 텐데요?”

“저희가 정보를 잘못 접한 것입니까? 그도 아니면, 스란 공국에서 배신을 했다던가…….”

제러드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정보는 들으신 그대로일 겁니다. 일만 수천의 아군을 막아선 것은 고작 한 명. 그 한 명에게 진군(進軍)이 막혔고, 작전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 한 명?”

지휘부의 웅성거림은 점차 커져만 갔다.

이왕지사,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제러드 후작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접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해방군에 우리도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합류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메테오를 연상케 하는 운석 마법까지 썼다고 합니다.”

“메테오? 지금 메테오라고 하셨습니까?”

좌중이 경악에 빠졌다.

마법사들에게 있어 메테오는 전설 속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전 대륙에서 유일무이하게, 오직 드래곤만의 전유물이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니까.

애당초 ‘운석’ 마법 자체가 머나먼 고대에 잊혀진 주력이기도 했다.

만약 지금에 이르러 ‘운석’의 재능 따위가 등장하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빛의 마녀와 일부 마탑주들이 해방군에 합류했다던데… 설마 그들입니까?”

“저도 들었습니다! 초월의 마법사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적의 진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요.”

“적은 많이 쳐줘야 십대 후반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고 하니, 예의 운석 마법의 주인공은 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이번에도 제러드 후작은 가만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가 아닙니다. 의문의 마법사는, 세타 쿤 이그니스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했다고 합니다.”

움찔.

순간, 지금껏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던 카이클 공작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으니까.

그는 한 번 들은 것은 어지간해선 잊지 않는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였다.

그러니까, 그 이름은 아마도…

“…제노스의 친구였던가? 예의 녀석이 필생의 호적수라느니 얘기했던.”

고성이 오가는 정면에 시선을 둔 채 카이클 공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우웅! 우우우웅!

“…….”

타이밍 좋게 품 안에서 통신용 수정구가 울렸다.

참고로, 지금 이 주파수를 알고 있는 대상은 몇 되지 않았다.

“카이클 공작 각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눈치 빠른 제러드 후작이 이리 물어왔다.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소. 마침 중요한 연락이 온 듯하여…….”

“혹, 그쪽에서 온 연락입니까?”

“맞소.”

찰나 눈을 크게 뜬 제러드 후작이 가볍게 목례했다.

“다녀오시지요.”

“실례하겠소.”

이미 저들끼리 열띤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 회의장이었다.

한차례 고개를 주억인 카이클 공작이 조용히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회의실 바로 옆에 딸린 또 하나의 작은 방이었다.

홀로 그곳에 들어선 카이클 공작이 이내 마나를 주입하자,

화아아악!

새하얀 빛무리와 동시에, 이내 수정구 내로 웬 청년이 투영되었다.

“…너는 크리스가 아니군.”

- 카이클 공작님이십니까?

“…….”

카이클 공작은 반응하지 않았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그의 성격이 대답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태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 아, 제가 크리스 경에게 따로 부탁을 했습니다. 카이클 공작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요.

“…….”

절로 카이클 공작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게 이런 종류의 밀월 관계란, 아는 이가 많아봐야 좋을 것 하나 없었다.

한데도…

-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합니다.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네가?”

- 네. 절 아시나요?

“…….”

카이클 공작이 말없이 수정구를 들여다봤다.

그런가.

이 녀석이 장안의 화제인, 그 세타 쿤 이그니스였던가.

“…일단 용건부터 말해보거라.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니, 무슨 뜻이지?”

- 그냥, 현재 테라 내의 귀족들 중 오직 공작님만이 저와 얘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설명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 공작님의 지략은, 뭇 타국인들에게도 명성이 자자하다죠? 눈앞의 현재만 바라보지 않고 두 수, 세 수 앞까지 바라보신다고요.

“…나는 아첨하는 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상당히 혐오한다.”

-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죠.

“……!”

속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런 유치한 앙갚음이라니.

역시 상대는 아직 핏덩이였다.

대체 자신은 이런 애송이에게 무엇을 기대한 건지.

- 저는 다만. 마침내 테라를 통일한 이후 저 대단한 제국군을 나라에서 어떻게 몰아낼지, 공작님의 고견을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내가 왜 그따위 것을 네게 설명해야 하지?”

- 만약 방도가 없으시다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개 한 마리 잡자고 호랑이를 끌어올 머저리는 아니신 것 같거든요.

“…우습군. 진심으로.”

카이클 공작이 비릿한 조소를 베어 물었다.

그는 이 이상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꺼져라. 이번 일은 단단히 새겨두겠다고 크리스에게도 이르도록.”

- 얘기라도 들어보시죠. 아님, 제가 공작님의 생각을 한번 맞춰볼까요?

“헛소리…….”

- 이미 충분한 전력이 있음에도 공작님이 제국군을 끌어들인 이유. 그거잖아요. ‘내전’이라는 이름의 시간 벌기.

“……!”

순간, 카이클 공작의 동공이 잘게 요동쳤다.

- 카이클 공작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셨던 거죠? 스왈로우 제국이 머지않아 본격적으로 정복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요.

“…….”

- 그 전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둔다면, 높은 확률로 제국은 테라를 피해 전쟁을 벌이겠죠. 같은 편을 공격하는 멍청이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적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보다 각개 격파하는 편이 전략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이고.

“…….”

- 아마 제국은 반란군의 제안을 열렬히 환영했을 거예요. 테라쯤은 언제든지 패망시킬 수 있는 나라고, 전쟁 초기에는 우군이 많을수록 명분을 만들기도 좋을 테니까요.

“…너…….”

- 이제 조금은 저랑 대화할 의향이 생기셨나요?

카이클 공작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말대로였으니까.

- 장소는 레이브 강 위. 아직 강물이 얼기 전이니, 배를 타고 한가운데서 만나도록 하지요. 이러면 매복 따위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지요?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카이클 공작이 묻는다.

“내가 그 요구에 굳이 응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

- 안 궁금하세요? 제국군을 몰아낼 방법.

“그거야 네놈을 직접 사로잡아 들어도 될 문제다. 어차피 레이브 영지는 길어도 이 주야 내면 완전히 점령될 운명이니…….”

- 제가 도망이라도 치면 어쩌려고 그리 자신 있게 말씀하실까?

“…….”

사실이었다.

실제로 카이클 공작은 그 부분을 염려하고 있었으니까.

고위 마법사가 작정하고 국외로 도망치면, 생포는 상당히 힘들어질 터였다.

“…하면 나를 설득해 봐라. 대화쯤은 지금처럼 수정구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구태여 위험 부담을 감수해 가며 네 요청에 응해야 할 이유를 말해보란 말이다.”

- 아, 물론 그러시겠죠. 만나서 고작 대화만 나누다 헤어지면 그림이 이상할 테니까요. 저도 동의해요.

“…알아들었으면 그 생각이라는 것부터…….”

- 그러니까, 포로 교환도 겸하시지요.

“…포로?”

무슨 헛소리냐는 듯, 카이클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후,

“……!”

그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수정구 속 녀석이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선 직후였다.

곧 줄줄이 포박된 귀족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누구지? 가만… 선두의 저자는 분명, 안드라 후작이 아닌가?”

- 제 썩은 눈알… 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말씀대로 해방군의 귀중한 지휘부들이지요.

“뭣…!?”

- 이들을 넘겨 드릴 테니, 그쪽에서도 지금껏 사로잡은 해방군 쪽 귀족들을 풀어주시지요. 하위 귀족들만 대략 이백도 더 된다고 들었습니다만.”

“진심이냐?”

- 네. 아 참, 기왕이면 휘하 식솔들까지 전부요. 그래야 그림이 맞지 않습니까? 이쪽은 모조리 고위 귀족들이니까요.

“…….”

그 뒤로 카이클 공작은 한참이나 수정구를 들여다봤다.

기나긴 침묵 뒤,

“…얼핏 본 거긴 하지만, 네가 사로잡은 귀족들은 인버스 공작 쪽 사람들로 보였는데.”

녀석이 대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그사이에 그걸 보셨다고요? 역시 눈썰미가 대단하십니다.

“설마 네놈은 ‘개혁’을 꿈꾸는 것이냐?”

- 네. 저도 공작님과 같은 걱정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크리스 경과 손을 잡았지요. 그 첫걸음이 지금 눈앞에서 보시는 결과물이고요.

“…큭큭큭큭.”

일순간 카이클 공작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실제로도 상당히 재미있는 녀석이었군.”

- 그 말씀,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직후, 그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좋다. 네 제안은 내가 직접 추진하도록 하지. 곧 만나게 될 그 날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겠다, 세타 쿤 이그니스.”

***

산 중턱에 덩그러니 지어진 별장 앞.

휘오오오오!

새하얀 눈발까지 휘날리는 그 겨울의 산중에 다섯의 복면인이 도열해 있었다.

닫혀 있던 별장의 출입문은, 그때서야 천천히 아가리를 드러냈다.

“준비들은 다 된 거야~?”

잠시 후, 나태의 레이지가 하품을 해대며 흐느적흐느적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우린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다.”

“그래? 잘 알다시피 안 그래도 테라는 내전이 한창이야. 괜히 애꿎은 곳은 들쑤시지 말자.”

“이미 열아홉이 반란군을 도운 시점에서, 그런 걱정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거야 호감 작업이지~ 어차피 내전은 반란군이 이길 테니까. 내 말은, 해방군이 아니라 반란군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야.”

“유의하지.”

“그럼, 가볼까?”

“……?”

순간, 선두에 선 써드 문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너도 같이 간다고?”

“당연하지~ 잊었어? 표적은 내 동료들을 죽인 원수라고.”

“…인원이 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써드문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한 자릿수 달들이 다섯.

거기에 대죄라고 불리는 칠악까지 끼게 되면, 일국의 왕조차 암살해 낼 수 있는 전력이다.

“아닐걸?”

“……!”

“내가 가늠한 상대의 전력이라면, 아마 이 인원으로도 부족할 거야.”

“…설마. 믿을 수 없다.”

허나, 써드문의 놀라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세컨드 문에게도 연락해 뒀어. 일이 끝나는 대로 곧장 합류하라고 말이야.”

“……!”

***

마침내 수정구가 빛을 잃은 직후,

“대관절 어쩔 생각이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대기하던 크리스가 잽싸게 다가섰다.

“설마 진짜 저들을 넘길 생각은 아니겠지?”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어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라면 그만둬라.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아군의 ‘신뢰’를 잃게 될 테니까. 목적을 위해 동료를 팔아먹는 수뇌부 따위, 부하들이 믿고 따를 것 같으냐?”

크리스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인버스 공작님이나 크리스 경처럼 말이지요?”

“……!”

그리곤 상대와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바라봤다.

“크리스 경이야말로, 인버스 공작님을 배신한 이후에는 어쩔 계획이셨죠?”

“…아버지에게 무능함의 책임을 묻고, 가문의 모든 권력을 바이커에게 이양할 생각이었다.”

“본인은 처음부터 희생할 작정이셨다?”

“…그래. 내 친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녀석은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 가문은 처음부터 바이커가 맡았어야 했어. 나는 마법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후계니까. 비록 지금은 아버지에게 휘둘리고 있는 녀석이지만…….”

“그 족쇄를 풀어주면, 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것이다?”

“…그래.”

잠시 턱을 괸 채 무언가를 고민하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제가 대신해 드릴게요.”

“…뭐?”

“크리스 경이 맡으려고 한 그 악역. 제가 대신해 드리겠다고요.”

“……!”

순간 크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렇게까지 해주려는 이유가 뭐지?”

“그야…….”

솔직히 이유라면 많았다.

사사로이 바이커 녀석은 내가 사귄 첫 번째 친구였으며.

공적으로는, 그편이 내가 하려는 일에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른 무엇보다,

“영웅보다는 악당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요?”

“……!”

이 점이 가장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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