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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132화 (132/251)

132화. 배신자 색출(1)

“두 번째! 군자금 조달 문제는요?”

실비아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역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랐다.

사사건건 내게 태클을 걸던 테미르 후작의 얼굴은 지금, 마치 터지기 직전의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거상(巨商)을 한 명 알고 있습니다.”

“거상…?”

“아마 세드릭 영애도 이름은 접해보셨을 겁니다. 골든 버드 상단이라고, 리비아 왕국에서는 꽤나 유명하다고 들었거든요.”

“……!”

순간 실비아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내 말이 끝나자, 인버스 공작을 포함한 다른 모든 귀족들까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고, 골든 버드 상단이라고…?”

“설마 그 골든 버드 상단이라는 게, 내가 아는 대륙 5대 거상이자 황금의 주인이 상단주로 있는 그 골든 버드 상단은 아니겠지…?”

“네놈! 거짓부렁도 적당히 하거라! 그런 어마어마한 거물이 너 같은 천것과 친분이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마지막 목소리는 예의 테미르 후작의 것이었다.

“물론, 말씀대로 상단주님과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흥. 네놈이 그럼 그렇지.”

“다만, 그 상단주님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요.”

“뭣…!?”

“여기, 증거도 있습니다.”

또 발작하기 전에 나는 재빨리 물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불과 며칠 전 레베카와 헤어질 때 받았던, 골든 버드 상단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네모난 사각 패 위에 창공을 가르는 새가 고풍스럽게 양각된.

우우웅!

직후 내가 그것에 마나를 불어넣자 테이블 위로 예의 새가 그대로 투영되었다.

소위 이름 있는 가문들은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표식에 이런 장치들을 해두곤 했다.

마나의 빛으로 만들어진 새의 형상은 그 자태조차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지, 진짜 골든 버드 상단의 표식이라고…?”

웅성거림은 점차 커져만 갔다.

기왕지사라고.

나는 거침없이 못다 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감정을 하시겠다면 구태여 말리진 않겠지만, 일단 마지막 세 번째 문제까지 쭉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 그래! 그 부분이야말로 네놈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배신자들을 사전에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단언컨대, 저만의 방법으로 배신자들을 색출해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는 말씀드릴 수 없고요.”

“결국 아무런 근거도 없이 큰소리만 뻥뻥 쳐댄 것이라는 뜻이렷다?”

“아뇨? 그게 아니라, 이곳에도 그 ‘배신자’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

귀족들이 하나둘 헛숨을 들이켰다.

테미르 후작이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후려쳤다.

쾅!

“이놈! 감히 누가 누구를 의심하는 게냐!?”

“하면, 테미르 후작님은 확신하실 수 있나요? 바로 옆에 앉은 동료가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았다고요.”

“물론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내전 초기부터 함께해 온 소중한 동지들이니까. 네놈이 지금 하는 짓은 그 의도가 심히 의심되는 역겨운 분탕질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뒤통수나 얻어맞으시지.”

“뭐, 뭐라? 그래도 이놈이!? 끄, 끄으윽…….”

기어이 테미르 후작이 제 뒷목을 부여잡았다.

저대로라면 곧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지만, 배려해 줄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게 왜 자꾸 건드려선.

“인버스 공작 각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

“제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되신다면, 저는 이대로 물러가 보겠습니다. 허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목소리에 힘을 더한 나는 곧 주변을 둘러봤다.

“신분, 배경, 자존심. 그따위 것들 때문에 최선을 외면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수만 군을 통솔하는 책임자들이 아닙니까?”

“……!”

“이곳에서의 한마디가, 수만 군의 인생을 결정하게 될 겁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마침내 길고 길었던 내 말도 끝이 났다.

“…….”

그럼에도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번 일에 나만 한 적임자는 없다는 사실을.

내 예상은 적중했다.

“…부탁하지.”

직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인버스 공작이 제 손을 내밀었다.

그래.

속내야 어떻든, 지금은 내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겠지.

특히나 골든 버드 상단이라는 회심의 카드는 오직 나만이 쥐고 있으니까.

씨익, 미소 지은 나는 순순히 그 손을 맞잡았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작 각하.”

***

회의가 파한 직후.

“세타!”

“……?”

장벽 아래로 내려가는 연녹의 머리통을 실비아가 재빨리 앞질렀다.

“그 배짱, 다시 봤어.”

“내가 좀 잘나기는 했지.”

“……?”

그 뻔뻔한 대답에 잠시 물음표를 띄운 실비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 잘나신 분께서, 왜 아카데미 때는 매년 낙제만 해댔는지 모르겠네?”

“시비 걸 거면 가라. 지금부터는 내가 좀 바쁠 예정이거든.”

“시비라니. 오히려 그 반대인데?”

“……?”

“칭찬해 주려는 거라고.”

우뚝.

세타의 걸음이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한데, 그 얼굴이 꼭 귀신이라도 본 듯한 모양새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아니, 뭐 잘못 먹었나 해서. 네가 나한테 칭찬이라니…….”

“잘한 건 잘했다고 해줘야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칭찬으로 배변을 가리니까. 왜, 머리도 쓰다듬어 줄까?”

“…사양할게.”

상대의 반응에 실비아가 ‘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즐거웠다.

이런 속 시원함을 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지.

다시금 귀족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리니, 절로 고소가 새어 나올 정도였다.

“…이제는 미치셨나 보네. 혼자서 히죽히죽.”

“뭐, 그런 건방진 말투도 오늘은 그냥 넘어가 줄게. 그래서, 배신자들은 어떻게 색출해 낼 생각이야?”

“아까 말하지 않았나? 영업 비밀이라고.”

“뭐야, 나한테까지 비밀이라고?”

“궁금해?”

“그야 당연히…….”

“그럼 가까이 와봐.”

찰나, 주변을 살피던 세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진짜 뭔가 있는 건가?

실비아는 순순히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안 그래도 너한테 따로 부탁할 일이 있어.”

“부탁?”

“난 이대로 해방군의 본거지로 돌아갈 생각이야. 그러니까, 네가 백작급 이상의 고위 귀족들만 따로 추려서 명단을 작성해 줬으면 해.”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인데. 고작 그걸로 충분하겠어? 필요하다면 하위 귀족들은 물론이고, 작위는 없지만 직책은 있는 핵심 인사들까지 알아봐 줄 수도 있는데.”

“쓸모없는 짓이야. 조사해야 할 범위도 비대해질뿐더러, 그럴 시간도 부족하니까.”

“그래도…….”

“뭘 걱정하는지는 알아. 하지만 명단은 고위 귀족들만으로도 충분해. 어차피 정보는 그쪽에서 새어 나갔을 테니까.”

“……!”

확신에 가득 찬 세타의 말에 실비아가 움찔 몸을 떨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주요 인사들의 동선과 같은 극비 정보들은 군 내에서도 극소수 인원만이 알고 있었다.

하물며, 배신자는 적의 수뇌부와 직접적인 연락선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면 그 수뇌부가 별 볼 일 없는 하위 귀족의 한마디에 군을 쉬이 움직이려 들까?

절대로.

오히려 일부러 이쪽에서 거짓 정보를 흘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비아라도 그랬을 테니까.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내전 중 많은 이들이 망명하고 스러졌지만,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들은 아직도 서른에 달했다.

자칫 칼을 잘못 겨눠 이번 일과 관련이 없는 이들마저 돌아서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정말로… 방법이 있는 거지?”

“그래. 사실 이미 의심 가는 인물이 있기도 하고.”

“뭐? 그게 진짜야?”

“아직은 의심일 뿐이야. 아무튼, 이 일련의 과정들은 보다 완벽한 연극이 되어줘야 해. 내 의심에 확신을 더할, 함정 역할도 해줘야 하고.”

“그게 무슨…….”

마지막 의사 전달은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지는 메시지 마법이었다.

- 인버스 공작은 예정보다 일찍 국경지대에 도착했어. 한데, 적은 기다렸다는 듯 이곳으로 치고 들어왔지.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말이야. 과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직후, 파도처럼 들이치는 충격의 연속에 실비아는 제자리에 굳은 듯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일단 권한을 얻은 이상 내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국경지대는 인버스 공작을 필두로 한 스승님들과 마탑주 분들에게 잠시 맡겨두고.

나는 가장 먼저 한 가지 소문을 은밀히 흘렸다.

배신자 색출을 위해, 우리가 본거지로 향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더해 실비아가 따로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출발 인원부터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너무 적으면 도리어 의심을 받을 테고, 너무 많으면 의도한 바를 이끌어 낼 수 없다.

하니, 상징적인 인사도 포함되어야 함은 당연했다.

무려 고위 귀족들을 심문하러 가면서 우리끼리만 가면 그것도 이상하니까.

하여, 이번 동행에는 크리스 론 인버스와 휘하 기사 서른도 함께했다.

“왜 하필 저 사람이야?”

다만, 그게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유리나는 연신 씨근덕거렸지만.

“반대 급부가 필요했던 거라면, 차라리 바이커 녀석을 데리고 갈 것이지. 구해준 은혜도 모르는 저런 못난 사내 따위…….”

“무게감이 떨어진다.”

“무게감?”

“백작급의 고위 인사를 숙청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적어도 공작가의 후계 정도는 되어줘야 그림이 맞겠지.”

“에잉…….”

루나의 친절한 설명에 유리나가 애꿎은 돌멩이만 걷어찼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얼마나 더 걸었을까?

“…정말로 저쪽에서 먼저 움직일까?”

잠시 눈치를 살피던 실비아가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아마도?”

“배신자들이 그리 바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왜, 자존심 상해?”

“…….”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실비아의 입장에서는 자괴감이 들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군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을 나는 너무 쉽게 쉽게 풀어가고 있는 셈이니까.

다만,

움찔.

“…왔군.”

그것도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와, 왔다고? 벌써?”

“나도 예상 밖이야. 최소 반나절은 지나서야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글쎄. 나만 느끼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

실비아가 머리 위로 느낌표를 떠올렸다.

순간, 최후미에서 무리와 걷던 크리스가 자세를 다잡았다.

“쓰레기 같은 놈들.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

찰나, 내 두 눈 사이로 기묘한 빛이 일렁였다.

의문의 적들은 아직 일백여 미터 밖에서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걸 단번에 눈치챌 정도의 실력이라…….

“잠시 멈추지. 전방에 적이 있다.”

크리스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제노스와 더불어 왕국 제일의 천재이자, 그 경지는 무려 20대에 6써클 유저.

“제가 해도 되는데요.”

“너는 아직 적의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텐데? 내 앞에서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티팩트도 무한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티팩트?”

그런가.

역시 제 잘난 맛에 사는 이들은 생각도 오만했다.

아무래도 일전에 내가 선보인 힘을 아티팩트로 착각하는 듯했으니까.

하기야, 하늘에서 갑자기 메테오라니.

그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 같이할까요?”

“뭐?”

“저도 동료들 앞에서 무시당하는 건 질색이라서요.”

“……!”

“둘이서 누가 더 많은 적을 쓰러뜨리는지 내기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소문대로 너는 내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군.”

“뭐 어때요. 크리스 경 입장에서는, 동생의 복수를 갚아줄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요?”

“복수…?”

“아, 알고 내기 어쩌고 얘기했던 거 아니었나? 바이커도 까불다가 나한테 한 방에 무너졌는데.”

“…….”

이어지는 내 말에 크리스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가문 망신은 그 녀석이 다 시키는군.”

“지는 쪽은, 이번 일에 한해서 상대의 부하가 되는 겁니다.”

“…좋다. 받아들이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유리나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럼, 내가 ‘시땅!’ 해줄게!”

“시땅은 또 뭐지?”

“시~땅! 이라고 하면, 내기 시작이라고요. 페어플레이를 위한 일종의 신호음. 몰라요?”

“…….”

순간 멍하니 유리나를 바라보던 크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이는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이 어린 새끼들이, 감히 우리를 뭘로 보고… 뭐, 내기?”

우리가 멈춰 선 것에 이상함을 느낀 건지, 순식간에 접근한 의문의 로브인들이 주변을 둘러쌌다.

비록 머리끝까지 푹 눌러써서 그 면면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복면도 아니고 로브라. 다들 마법사들이신 모양이네요.”

마법사하면 테라였고.

테라하면 왕국이 자랑하는 마법 군단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나를 이길 수 없었다.

나는 나보다 경지가 낮은 마법사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쓰러뜨리는 방법을 몇몇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여기에도 한 가지 조건은 필요했다.

“방심하지 말도록! 단숨에 끝낸다. 모두 메모라이즈해 둔 마법들을 준비하라!”

바로 지금처럼 상대가 써클을 운용하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

보다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할수록,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건은 훌륭하게 충족되었다.

미리 메모라이즈까지 해둘 정도의 마법이라면, 아마도 상대가 가진 최강의 카드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시땅!”

때맞춰 유리나가 당차게 소리쳤다.

생각해 보니까 어이가 없네.

긴장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잖아?

뭐, 그만큼 나를 믿는다는 뜻이겠지만서도,

“…순리를 거스르는 마나여, 진리와 반대되는 마력이여. 지금 내 앞에서 그 힘을 일깨워라. 마나 역행(逆行).”

우우우우웅!

직후, 깊고도 웅혼한 공명음이 울렸다.

그 파장은 이내 주변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대상은 일정 공간 내에 자리한 불특정 다수.

효과는 마법의 피와 살을 이루는, 흐름의 반전(反轉).

두근!

“…컥!”

순간, 한 사내가 제 심장을 움켜쥐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일백에 가까운 로브인들 모두가 제 몸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리곤,

털썩, 털썩, 털썩!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버티고 있던 다른 로브인들마저 하나둘 쓰러져 갔다.

“이, 이게 대체…?”

내기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입을 ‘헤’ 벌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크리스를 응시한 채 나는 아주 잠시 동안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까지 거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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