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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130화 (130/251)

130화. 내전 재개(1)

대장은 장벽 인근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순간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찰랑!

그 즉시 에이스는 가지고 온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대장! 간만에 술이나 한잔하지?”

“……?”

직후, 고개를 갸웃한 세논이 말없이 하늘을 가리켰다.

“대낮부터 술은 무슨.”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어?”

“이 화상아, 진짜 언제 철들래? 적군이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우린 손님이잖아. 필요하면 어련히 알아서 부르시겠지.”

“…네놈한테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그래서, 세디스는 어디다 두고 혼자 온 건데?”

“아, 그 녀석? 세타가 잠시 자리를 좀 비켜달라길래.”

움찔.

에이스의 대답에 세논이 처음으로 반응했다.

“세타가 깨어났다고?”

“알다시피, 우리 제자가 좀 튼튼하잖아.”

“웃기는 놈이네. 일어났으면 냉큼 스승부터 찾을 것이지…….”

“마음에도 없는 얘기는 하지 말고. 사실은 기쁘잖아? 가장 먼저 동료를 생각하는 그 마음 씀씀이가.”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세논이 재차 묻는다.

“케어는 제대로 해주고 오는 거겠지? 세디스 녀석 말이야.”

“내 할 도리는 다했지. 나머진 세타하기 나름이고.”

“참, 스승이라는 놈이 할 소리다.”

“나라고 이 이상 방법이 있나. 추락하는 달에 대한 녀석의 증오심을 생각하면, 당장 죽이겠노라 발광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판국에.”

“…….”

“해서 말인데.”

직후 에이스가 털썩 세논의 곁에 주저앉았다.

“내가 그 복면인을 만나볼까?”

“그 열아홉인가 하는 녀석?”

“어.”

“만나서 뭣 하게.”

“대장 말마따나, 그래도 최소한의 스승 노릇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정보라도 캐낼 생각이냐? 하지만 예전의 너는 분명…….”

“맞아, 실패했지.”

세논이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에이스가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래.

그가 추락하는 달을 만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

더 정확히는 세디스와 처음 만났던 그날, 에이스는 무려 셋의 복면인들을 동시에 상대했다.

그중 둘은 ‘10’ 아래의 숫자를 가진 고만고만한 살수들이었으나 나머지 하나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에이스 자신과 비교해도 그리 실력의 차등이 없었다.

작정하고 숨어드니 존재를 감지하는 일조차 힘들었으니까.

감히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하여, 그날 에이스는 십이월의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했다.

적당히 상대해 주다가 승부를 피하고 도주를 감행했으니까.

뿅!

에이스가 술 마개를 뽑아냈다.

꿀꺽, 꿀꺽.

시원스레 목울대가 넘어간다.

직후, 알싸한 취향이 화악 하고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치사하게 혼자 처먹냐?”

그 모습에 세논이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크으~ 이럴 줄 알고 하나 더 가져왔지.”

에이스가 허리에 매달아둔 술병 하나를 곧장 내밀었다.

“…….”

잠시 갈등하는 듯하던 세논이 이내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그냥 해본 말이다. 혼자 다 처마셔라.”

“엥? 진짜로?”

“그럼 가짜냐?”

“이거 연합을 대표하는 주당답지 않게 왜 이러실까? 설마 정말로 해방군 따위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야?”

“말조심해.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확실한 우군이니까.”

“우군은 지랄. 쟤들이 우리 제자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잊은 건 아니지? 믿지 못하겠다고 사령관이라는 놈이 직접 여기까지 행차하신 마당에.”

“그러니까 더더욱 힘을 보여줘서 우리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다시는 이딴 개짓거리도 하지 못할 테니까.”

“영향력이라면 이미 우리 제자가 충분히 보여준 것 같지만… 아무튼, 대장이 안 마시겠다면 난 이대로 지하로 가보실까나?”

한 손에는 여전히 술병을 꼬나 쥔 채 에이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괜한 의심은 사지 않도록 해. 네 위치도 있고, 인버스 공작은 아직도 우리를 의심하고 있는 듯하니까.”

“네, 네. 그러니까 개종자들이죠. 그 쥐새끼 같은 놈, 하여튼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깐.”

가볍게 손을 휘적여 준 에이스가 점차 멀어져 갔다.

내심 그라고, 어떤 특별한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에이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예의 복면인에게 단 한마디 말조차 들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과거 그가 본 추락하는 달은 그만큼이나 지독하고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세디스를 남겨두고 나는 곧장 공터를 나섰다.

한데, 숲을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예의 서늘한 시선들이 또 한 번 느껴졌다.

“…징글징글하네. 아예 따라다니기로 작정을 한 건가?”

입맛이 쓴 와중이었다.

벼르고 있었는데, 끝내 심기를 건드리고 만다.

하여,

‘경고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을 고쳐먹곤 즉시 마나를 운용했다.

우우웅!

대기에 한줄기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이변을 눈치챈 것일까?

그 즉시 주변에서 반응이 있었다.

- 복귀!

웬 환청과도 같은 웅웅대는 울림이 뒤를 이었다.

허나, 일단 마음먹은 이상 그냥 두고 볼 내가 아니다.

쩌저저저정!

허공 위로, 정확히 아이스 에로우(Ice arrow) 다섯 발이 생성되었다.

그것들은 곧장 내가 봐둔 나무 곳곳으로 날아들어,

푸푹!

“…큭!”

절반의 성과를 거두었다.

직후, 복면을 뒤집어쓴 두 인영이 나무 위에서 우수수 추락했으니까.

이쪽도 복면, 저쪽도 복면.

뭔 도둑놈들이 이리도 많은 건지.

한데, 머릿수 몇 개가 빈다.

쨍!

“…쨍?”

생각과 동시였다.

역으로 비수 한 쌍을 움켜쥔 세 인영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허나, 제 주제는 알고 있는지 그 이상 선을 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보내주시오.”

“엥?”

역으로 이런 요구까지 해대고 있다.

“우리에게 해를 입히면 당신도 곤란할 것이오.”

“뭐가 그리 당당하시대? 남 사생활을 엿보는 고약한 취미를 가진 분들께서.”

“정체는 밝힐 수 없으나, 최소한 적은 아니오. 아마 우리 상관을 알게 된다면 당신도 분명…….”

“그래서, 그 상관이란 게 누군데요?”

“…….”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내 입가로 비틀린 조소가 맺혀졌다.

“적은 아니라면서, 입 닥치고 그냥 보내만 달라?”

“…사정이 있소. 괜한 오해를 사기 싫은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절대로 아니요.”

“사실은 뭐, 나도 알고 있어요.”

“……?”

“인버스 공작님이 보낸 사람들이겠죠. 지하 감옥에서부터 저를 쫓아왔잖아요? 내부의 적이 아닌 이상, 그리 자유롭게 요새 내를 휘젓고 다닐 이들은 몇 없을 테니까요.”

“…….”

찰나 사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딱히 동요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눈치채고 있었군.”

“모르는 게 이상하죠. 그런 특유의 기운들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여기저기 흘려대시고서야.”

“…그게 아니라, 그쪽이 괴물인 거겠지. 우린 나름 일류라 불렸던 암살단 출신이고, 은신술에는 나름의 자부심도 있소.”

“암살단과 뭇 왕국인들에게 존경받는 공작 각하라… 조합이 영 어울리지 않는데요?”

“비아냥거리지 마시오. 우리라고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순간 내 눈빛 사이로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인버스 공작님 쪽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주요 거점들을 몇몇 군데 두기야 하지만, 암살단은 기본적으로 소속이라는 것이 없소. 일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생활지를 옮겨 다닐 필요가 있거든.”

“이해했어요.”

“한 5년 전쯤에… 임무 하나를 잘못 받은 것이 화근이었소. 어느 왕국의 귀부인을 은밀히 죽여 달라는 임무였는데, 실패하고 말았지.”

최소한의 정보는 내어놓기로 한 듯싶었다.

내 태도로 보아 정말로 그냥은 보내주지 않을 거라 판단한 것이겠지.

“그래서요?”

“임무의 실패는 곧 조직의 해체요. 그것이 암살단의 숙명이지. 대상자의 분노를 감당해야 함은 물론, 설령 잘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밥줄이 끊기니까.”

“그걸 인버스 공작님이 무마시켜 준 대신, 암살단 전체가 휘하로 들어간 거다?”

“그렇소. 하니, 적어도 우리는 적이 아니요. 오히려 당신의 자유 연합과 같은 처지인 셈이지.”

“…….”

돌아갈 곳을 잃은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매한가지라는 건가?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정작 사내는 아직 가장 중요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제 가 봐도 되겠소? 정보는 모두 내어놓았소. 우리의 처지도, 누구의 명으로 움직이는 건지도.”

“아니요.”

“……?”

“아까의 얘기는 마저 이어서 하고 가셔야죠.”

“그게 무슨…….”

“그 실패했다는 암살의 대상이 누구인지요.”

“……!”

이어지는 내 말에, 사내가 움찔 몸을 떨었다.

코앞이 아니라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미한 움직임이었으나,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인버스 공작님이 방패가 되어줄 수 있다 함은, 최소 그분의 영향력이 충분히 미칠 수 있는 대상이라는 뜻이겠죠. 그러니까 아마도, 이곳 테라 왕국의 귀족들 중 하나일 테죠?”

“…무려 일국의 공작이오. 타국이라도 영향력이라면 얼마든지…….”

“저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거예요. 물론, 별 볼 일 없는 하위 귀족들이 대상이라면, 타국에도 충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죠. 근데,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잖아요? 원래는 일류 암살단이었다고.”

“……!”

그제야 제 실책을 깨달은 건지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칭 일류 암살단이, 고작 하위 귀족을 대상으로 임무에 실패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

“종합해 보면, 암살 대상은 테라 왕국의 귀족일 가능성이 크죠. 그중에서도 후작가 정도? 못해도 백작가. 그 이하는 딱히 가능성이 커 보이진 않고요.”

“…….”

그제야 내가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예 입을 다물기로 한 건지, 사내는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내 추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근데, 이상도 하죠? 그만한 고위 귀족이 살수들에게 노려졌는데, 외부에 조금도 소문이 나지 않았다?”

“…….”

“설령 차후에 인버스 공작님께서 덮어줬다 하더라도, 그사이 대상이 된 귀족은 무얼 한 걸까요? 당장 왕국 곳곳에 수배지를 배부해도 모자랄 판국에.”

“…….”

“그러니까 예의 대상이라는 건, 인버스 공작가 ‘그 자체’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얘기가 그리되어야, 그 정도로 빠른 수습과 대처도 이해가 될 테니까요.”

“…….”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하던 부분이 있거든요. 우리 테라를 대표할 정도로 미남인 크리스 론 인버스. 그리고 누가 봐도 추남인 내 룸메이트 바이커 론 인버스. 같은 피가 섞인 형제라고는 조금도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둘은 너무나 닮지 않았죠.”

“…그만, 제발 그만하시오.”

뒤늦게 귀청을 때리는 상대의 목소리를 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이런 의심은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은 해봤을 거예요. 귀족 사회에서 사생아니 혼외자이니 하는 얘기는 무척이나 흔하니까. 단지 그 위세가 무서워 다들 쉬쉬하고 있을 뿐이죠. 자,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제 생각인데, 조금만 더 말씀드려 볼까요?”

“하지 말라고 해도… 말할 것이지 않소?”

“잘 아시네요. 누가 봐도 닮지 않은 장남과 차남. 그러니, 사람들은 이제 또 궁금할 거예요. 과연 어느 쪽이 천것의 피가 섞인 반푼이일까? 외모로도 어느 정도 추정은 가능한데… 일단 인버스 공작님은 하나뿐인 본처와 오래전에 사별했으니까요. 초상화 같은 것은 남아 있지도 않고.”

“…….”

“확실한 건, 장남의 재능만큼은 진짜라는 거죠. 가신들은 당연히 보다 능력 있는 가주를 원할 테고, 사실이 어떻든 크리스 론 인버스가 친자이기를 바랄 거예요. 실제로 왕국 제일의 천재와 아카데미 꼴등 비스무리한 차남은 어마어마한 수준 차가 있죠.”

“…….”

“그런 와중에, 어느 가신이 알게 된 거예요. 아무도 누가 서자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핵심적인 증거가 될 진짜 생모(生母)의 행방을.”

“……!”

“가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가문을 생각하는 충직한 가신의 입장에서는 분란이 될 씨앗은 미리 죽여 없애고 싶었을 거예요. 사실 뭐, 애초에 초상화 따위가 없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문제였어요. 부친만 놓고 보면, 외모는 오히려 바이커 쪽이 훨씬 닮았으니까.”

“…….”

“차라리 차남 쪽이 재능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밀어줄 텐데… 그게 아니니까 인버스 공작님도 녀석을 겉돌게 했겠죠. 자연스레 내부의 잡음을 잠재우면서, 혹시나 나중에라도 재능이 만개하게 된다면, 차선책 정도는 남겨두는 방향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바이커는 공작님의 순수 핏줄이니까요.”

“…….”

“그래서 죽이려 한 거잖아요? 크리스 론 인버스의 생모를요.”

“……!”

“허나, 결과적으로 임무는 실패했다… 라고 하면.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지겠네요.”

떨리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사내가 더듬더듬 말한다.

“당신은…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군요. 대체 그 정도 정보만으로 어찌 이런 추론을…….”

“됐고. 만약 이 사실을 크리스 론 인버스가 알게 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까요?”

털썩!

복면인이.

아니, 주변의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모자라, 나를 향해 고개를 처박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누가 죽인대요? 당연히 살려드려야죠.”

“저, 정말입니까?”

“대신, 제 밑으로 들어오신다는 조건으로.”

“……!”

움찔 몸을 떠는 복면인들을 보며 나는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싫으면 그냥 다 일러바치고요. 저는 아직 어린애라서, 아량이 그리 넓지 못하거든요. 사생활에도 무척이나 민감할 나이고요.”

“…….”

“이걸 뭐라고 하더라… 아!”

순간 ‘짝’ 하고 손뼉을 친 내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질풍노도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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