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추락하는 달(3)
지하를 빠져나왔다.
그 즉시 나는 사람 한 명을 찾아 나섰다.
역시나 외부로 나가는 동안 앞을 막아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내리쬐는 태양만이 환하게 나를 반겨줬으니까.
진작 이럴 것이지.
이 얼마나 평화로운 광경이란 말인가?
말끔하게 치워진 초소의 잔해.
장벽 곳곳에 들러붙어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병사들.
마지막으로, 공터 한편에서 훈련이 한창인 기사들까지…….
다만, 내가 찾고 있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세타.”
오히려 기사들의 훈련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루나가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하곤 빠르게 다가왔다.
“국경지대에는 언제 온 거야?”
“…얼마 되지 않았다. 네가 복귀한 시간과 그리 차이도 나지 않을 거다.”
“그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테라로 돌아오자마자 사라지길래, 뭔 일이라도 생긴 건가 걱정했거든.”
“…….”
그런 내 말에도 루나에게서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얼굴만 빤히 들여다볼 뿐.
왜인지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혹시 세디스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
“…대략 한 시간 전쯤에 저쪽의 숲 내부로 들어갔다. 8월의 검사님도 함께.”
“스승님이랑?”
뭐 훈련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컸다.
내가 아는 녀석의 성격이라면 말이다.
“그럼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할게.”
“…잠깐만.”
“……?”
“걱정이라면… 나도 했다.”
내 걸음이 절로 우뚝 멈춰 섰다.
“엉…?”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게도 미리 말해줄 수 없겠나? 동료로서.”
“…….”
“나는 네가, 너무 혼자만 감당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얜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제자리에 굳은 듯 서 있던 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었어. 혼자가 아니라, 스승님들과 다른 마탑주님들도 함께였고.”
“그들의 공통점은, 제 몫은 능히 해낼 수 있는 강자라는 점이지.”
“…….”
“너는,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거겠지?”
말을 마친 루나가 이내 몸을 돌렸다.
한데, 그 뒷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그렇다면, 나 또한 강해지겠다. 네게 동료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
“…무사해서 진심으로 다행이다, 세타.”
루나의 신형이 점차 멀어져 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겉으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더니…….
지금 이 순간, 마음 한구석이 짜르르 울렸다.
물안개처럼 희미해져 가던 희노애락의 감정이 조금은 짙어진 기분이다.
***
루나가 알려준 숲은 그리 멀지 않았다.
쩡! 쩌저저정!
예상대로 숲과 가까워질수록 희미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뭐 하는 거야?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갔잖아!”
“큭…!”
“이래서야 부상당한 내 옷깃도 스치지 못하겠다. 오랜만에 붙어주십사 부탁하길래 뭔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싶었더니. 이거 발전이 전혀 없잖아?”
“으아아아아아아아!”
“기합을 내지른다고 그 변변치 않은 실력이 바뀌나. 경고하는데, 검에 감정을 싣지 마라.”
투-쾅!
이런 대화와 폭음들도 연이어 고막을 때린다.
숲속의 작은 공터에서 에이스 스승님과 세디스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둘은 금세 내 인기척을 눈치챘다.
“오, 사랑스러운 제자님. 언제 정신이 드셨대?”
척하니 어깨 위로 검을 걸친 스승님이 곧장 내게로 접근했다.
세디스는 그 앞에서 쌔액쌔액 숨을 몰아쉬기 바빴다.
“오늘은 이만하자.”
“흣… 아, 아직 멀었습니다.”
“내가 힘들어서 안 되겠다. 쯧. 어째 둘밖에 없는 제자가 이렇게 극과 극이냐? 한 놈은 나조차 가늠되지 않는 괴물이 되어가고, 한 놈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고.”
“…….”
세디스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힐끗, 그 모습을 바라본 내가 곧바로 본론을 끄집어냈다.
“스승님. 세디스와 잠시 둘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엥? 이거 섭섭한데. 일어나자마자 친구부터 챙기는 거냐?”
“따로 할 말도 있고, 친구끼리 우정을 다지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흐음~ 그래?”
세디스는 여전히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허나, 스승님은 그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물론,
- 네가 위로 좀 해줘라. 아무래도, 오랜만에 옛 악연을 만나 무지하게 흔들리는 것 같으니까.
그 속내는 전혀 다르셨지만.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의념에 나는 잽싸게 같은 방법으로 대답했다.
- 맡겨만 주세요.
- 부탁 좀 하마.
- 넵.
몇 차롄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스승님이, 이윽고 쭈욱 하고 기지개를 켰다.
“대낮부터 대장이랑 술이나 걸쳐 볼까? 전쟁통에 당분간 음주가무는 즐기지도 못할 테니.”
터덜터덜.
그 길로 공터를 빠져나가는 스승님을 일별하며, 나는 재빨리 세디스에게 다가섰다.
“세디스, 할 말이 있어.”
“…….”
잠시 후, 녀석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너도 내가 못 미더운 거겠지?”
“뭐…?”
“내가 한심해 보이는 거잖아. 마법 대전은 광탈하고, 성장에서도 확연히 차이가 나고… 그래, 나라도 믿음직스럽지 못할 거야. 세상은 힘의 논리고, 약자는 방해일 뿐이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게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은 거잖아? 그 복면인도, 내 손에 맡기지 않은 거고.”
세디스가 고개를 들었다.
비로소 그 시선을 마주했을 때, 녀석의 두 눈은 배신감으로 가득했다.
물론 할 말은 이쪽도 많았다.
“…그러는 너도 얘기 안 해줬잖아?”
“뭐?”
“네가 추락하는 달에 속해 있었다는 것도. 그곳에서 암살자로 키워졌다는 사실도.”
“……!”
“그런 네가, 믿음이니 어쩌니 운운하는 것도 웃기지 않냐?”
조금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충격에는 더 큰 충격으로.
어차피 지금 세디스의 상태를 보면, 어쭙잖은 위로 따위는 오히려 화만 더 돋울 테니까.
녀석은 루나와는 분명히 달랐다.
함께해 온 시간도,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도.
“피차 마찬가지라는 건가…?”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던 세디스가 이리 중얼거렸다.
그리곤,
“…자세를 잡아라, 세타 쿤 이그니스.”
“뭐?”
“여기서 한 판 붙자. 네가 얼마나 잘났는지, 오랜만에 이 몸으로 직접 느껴봐야겠으니까.”
“…거참. 왜 또 얘기가 그리되는 건지 모르겠네? 나중에 후회해도 난 모른다.”
“그거야 해보면 알겠지!”
촤르르르륵!
직후, 세디스의 연검이 기묘한 궤도로 꺾여 들며 내게로 날아들었다.
그 움직임이 마치 뱀과도 같았다.
빠르고, 거칠고, 강했다.
앞뒤좌우로 요동치는 검신은 한순간 모습을 감추며 내 눈을 현혹시켰으며, 순식간에 코앞까지 당도했다.
다만,
‘…왜 스승님이 검에 감정을 싣지 말라느니 하는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도 같네.’
덥썩!
“……!”
순간 세디스가 눈을 부릅떴다.
마나가 가득 담긴 검을 내가 그대로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맨손으로.
“어, 어떻게…?”
“검을 붙잡는 일이야 몇 가지 마법이면 충분하고, 문제는 검로를 예측하는 일인데. 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너는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갔거든.”
“……!”
“그래서야, 상대가 예측하기 훨씬 쉽지 않겠어? 근육의 움직임이 다 보인다고. 이 눈에.”
어느새 내 두 눈이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세디스의 얼굴은 시뻘겋게 물들었다.
검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인데,
“일단 한숨 자라.”
지금의 나는, 그 꼴을 보고 있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번쩍!
“……!”
순식간에 텔레포트를 이용해 세디스의 뒤를 점한 내가 그대로 후두부를 후려쳤다.
“…컥.”
찰나, 헛숨을 들이켠 세디스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
그런 녀석을 나는 한참이나 바라만 봤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마침내 어둠이 숲속 가득 내려앉을 때까지.
***
“끄응…….”
세디스가 정신을 차린 것은 무려 자정이 다되었을 무렵이었다.
“여기는…?”
“정신이 드냐?”
“……!”
홱!
순간 세디스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멍하니 주저앉아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던 녀석은 곧,
털썩.
“…진짜 어이가 없네.”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밤하늘에 별이 점점이 떠올라 있었다.
그 아름다운 빛무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세디스가 쓰게 미소 지었다.
“꼴불견이었냐?”
“조금?”
“…말이라도 아니라고 해줄 것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녀석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역시 강하네.”
“나 괴물인 것 이제 알았냐?”
“어휴, 재수 없어. 콱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싶다.”
“한번 해보시던가.”
나는 보란 듯 머리를 내밀었다.
그게 못내 얄미웠는지, 잠시 주먹감자를 들이민 세디스가 전신을 부르르 떨어댄다.
“…다음에 두고 보자.”
“그거 전형적인 악당 대사 아니냐? 그것도 주인공한테 맨날 당하기만 하는.”
“한마디를 안 져요. 내 이야기, 이제 안 궁금하신가 봐?”
“…궁금하지.”
“그럼 다물고 있으셔. 확 그냥 말 안 해주는 수가 있으니까.”
내가 정말로 입을 다물자, 그제야 세디스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너는 입만 다물고 있어도 딱 보기 좋다니까?”
“그래서, 그 얘기라는 건?”
“뭐, 특별할 것도 없어. 그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고아의 볼품없는 일대기일 뿐이니까.”
그렇게 시작된 녀석의 과거는, 실로 처절했다.
“나는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는 화전민 출신이었어. 기억날 만한 유년 시절은 딱히 있지도 않고. 한… 다섯 살 때였나? 하루는 인근의 아이들과 나무뿌리나 캐 먹으러 마을을 나섰었지.”
“…….”
“정신없이 놀다가,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마을로 돌아왔어.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져, 다들 혼날 걱정에 잔뜩 움츠려 있었고. 한데, 정작 무서워해야 할 건 어른들이 아니었어.”
“무슨 의미야?”
“마을 전체에서 인기척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거든. 실로 기괴스러운 광경이었어. 아직도 마을 곳곳에 채 꺼지지 않은 불씨들이 가득한데,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까.”
“…….”
“처음에는 어른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어. 며칠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그때서야 다들 우리를 버리고 간 거라 생각했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도 하나둘 죽어나갔어. 고작 다섯 살 안팎의 아이들끼리 그 험한 산중에서 무얼 하겠어? 나무뿌리도 한계가 있지.”
“…….”
“한 달이 못 돼서 다 죽게 되더라. 결국 나 하나만 남게 되었지. 그래도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종래에는 나 또한 한계에 도달했어.”
“…….”
“의식은 점차 멀어져 갔고, 마침내 배고픔의 고통마저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생각했지. 아, 이제 나도 죽는구나.”
“…….”
“그때, 내 앞에 ‘그들’이 나타난 거야.”
“…….”
“이미 제정신이 아닌 와중이었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 그들은 마을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거든. 여태 그날의 장면들이 악몽처럼 떠올라. 나를 발견한 웬 사내가, ‘죽일까요?’라고 묻는 그 섬뜩한 목소리까지.”
“……!”
“그래. 그들이 추락하는 달이었어. 결국 나는 죽지 않았고, 그들의 손에 주워졌지. 이후의 내 삶이 어땠는지 알아?”
순간, 세디스가 감정 한 점 느껴지지 않는 시선을 들었다.
“10년.”
“…….”
“강산도 변한다고 알려진 그 긴 세월. 살수로 키워지는 과정은 욕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버틸 만했어. 나 말고도 함께하는 또래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
“하나씩 낙오될 때마다, 남은 애들끼리 마음을 다 잡았지. 조금만 더 버티자. 힘내자. 이 과정만 버티면 우리에게도 낙이 올 것이다.”
“…….”
“그렇게 10년이 지났을 때 남은 애들은 오십이 채 되지 않았어. 분명 처음에는 천 명도 훌쩍 넘었던 것 같은데, 결국 그것밖에 안 남더라. 아무튼, 끝이 보일수록 우리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지. 그들이 약속했거든. 딱 10년만 버티면,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
“근데, 그 10년째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고 그 미친 작자들이 뭐라고 지껄였는지 알아?”
세디스의 목소리는 처연했다.
그 한마디 한마디에, 그날의 감정들이 절절히 느껴졌다.
“옆에 있는 녀석을 죽이라고. 단 한 명만 살려준다고. 선택받은 그 아이만이 자신들과 함께할 수 있다고.”
“…….”
이미 예상한 스토리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모두가 반발했지. 한데, 결국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 반발하는 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으니까.”
“…….”
“이후, 이만한 숲에서 생존을 건 서바이벌 데스매치가 시작되었지. 나는 적당히 숨어만 있었어. 도저히 친구라 생각했던 이들을 해칠 수가 없었거든. 그렇게 한 5일이 지났을 때였나?”
“…….”
“마침내 웬 사내가 내 앞에 나타나더니 알려주더라. 이제 살아남은 이들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라고.”
“…….”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에 있는 내용물들을 얼마나 게워냈는지 몰라. 그놈들이 증오스러워서?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다른 아이들도 역겨웠거든. 아, 역시 인간은 이기적인 생물이구나.”
“…….”
“그래서 도망쳤어. 나는 그들과 똑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
“쫓기고, 또 쫓기고. 그들이 예고했던 대로 도주는 곧 지옥의 시작이었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그들에게 붙잡힐 위기에 처했지.”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야기는 베드 엔딩이었다.
소설에 써먹어도 인기가 없을 법한.
허나, 나는 안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런 결과였다면, 눈앞의 세디스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겠지.
“그때 스승님을 만난 거야.”
“역시…….”
“이 부분도 얘기하자면 엄청 긴데… 아무튼 나는 스승님에게 구원받았어. 연합주님도 기꺼이 나를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줬고. 그러니까, 나는 내 가족이. 내 쉼터가 이 이상 망가지는 모습을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이윽고 기나긴 얘기를 마친 세디스가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세타. 너도 나와 같은 생각 아니야?”
“…사실대로 대답해 주길 원해?”
“물론.”
“솔직히, 나는 너만큼 조직에 큰 애착은 없어. 지낸 것은 기껏해야 3년이고, 그마저도 두 스승님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으니까.”
“…….”
세디스의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 걸 뭐 어쩌겠어.
“…그래도 조금의 애착쯤은…….”
“애착이야 있지. 다만, 너만큼 목숨까지 내다 바칠 정도는 아니라는 거야. 네가 원하는 대답은 그런 쪽이잖아?”
“…….”
세디스가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군. 그동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였어.”
“…….”
침묵을 지키는 나를 일별하며 세디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 생각은 잘 알겠다. 아, 네 이야기는 해주지 않아도 돼. 딱히 듣고 싶지 않아졌거든.”
“그래도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보지?”
“일 없어.”
“이럴 거면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지나 말던가.”
직후, 내가 작게 투덜거렸다.
“설마 이 정도나 생각이 다를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보라니까 그러네. 조직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면 무척이나 고민되겠지만, 너나 스승님들을 위해서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고.”
“……!”
“그러니까, 조직이 네 목숨보다 중하다고 한다면. 나도 기꺼이 이 한 몸 바쳐 줄게.”
“…….”
멍하니 나만 바라보는 세디스를 향해, 내가 씨익 미소 지었다.
“우린, 친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