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추락하는 달(1)
쫘아아아악!
마나가 형상을 갖추어간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활이었지만 그 탄력만큼은 어느 명궁(名弓) 못지않았다.
당기고, 유지하고, 쏜다.
일견 간단해 보이는 그 일련의 동작들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집중을 거듭했다.
“오…?”
한 번 해봐서인지 제법 태가 나는 것 같았다.
사실 마사수도 아닌 내가 순수 궁술 실력으로 상대를 이길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앞선 실력도 마법의 힘을 빌린 것이었으니까.
하니, 이번에도 그 특기를 살린다.
우우웅!
써클이 몇 바퀴나 휘돌았다.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거리 앞에 표적인 복면인이 자리해 있었다.
나도 제법 괜찮다고 자찬했는데.
정말이지, 책에서나 나올 법한 완벽한 자세였다.
“준비는 됐나요?”
“언제든지.”
“그럼, 쏩니다.”
복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쏘는 타이밍에 맞춰 화살을 쏘아내려는 듯한데.
그래서야, 필연적으로 공격이 딜레이될 수밖에 없었다.
통상적인 물리 법칙대로라면, 보다 빠르게 쏘아진 화살이 가속의 힘도 배가될 것이고.
그 부분은 내게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하겠지.
‘그만큼 제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만.’
상념을 털어낸 내가 순간적으로 ‘흡’ 하고 호흡을 멈췄다.
그리곤,
팅!
마치 진짜 실이라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쐐애애애애애액!
직후, 한줄기 흑선이 허공을 갈랐다.
준비도, 타이밍도 완벽했다.
표적을 보다 확실하게 눈에 새겨 넣을 호크아이(Hawkeye).
에로우 계열 마법의 적중률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타겟 온(Target on).
마지막으로, 날아가는 물체에도 고유의 마나를 덧씌울 수 있는 레이 오버(Lay over)까지.
티팅!
한 박자 늦게, 복면인 또한 시위를 놓았다.
한데,
퍼어엉!
“……?”
나와는 달리, 예의 흑궁에서는 웬 폭발음이 들려왔다.
미친.
저건 숫제 화살이 아니라 대포잖아?
콰드득!
마주 날아드는 흑선은 주변의 대기마저 어그러뜨렸다.
찰나를 쪼갠 시간 속에서도,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한 수였다.
물론 그렇다고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투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을 동반한 채 화살은 정확히 서로의 촉을 때렸다.
이후의 광경이 더 기가 막혔다.
파직! 파지지직!
의지가 없는 두 화살이 그 상태로 힘겨루기를 해대기 시작했으니까.
서로의 화살에 마나가 실렸다는 반증이었다.
보통이라면 단숨에 힘이 약한 쪽이 튕겨 나가든, 꿰뚫리든 했을 테니까.
이 진귀한 볼거리에 진군을 멈춘 병과 기사들이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봤다.
한데,
파츠츠츠츠츠츠!
“……!”
바로 그때 이변이 벌어졌다.
한참이나 힘겨루기를 이어가던 상대의 화살이 갑작스레 쩌저적! 하고 금이 간 것이다.
내가 이긴 거라면 참 좋겠지만.
아니었다.
화살은 그대로 수십, 수백 조각으로 쪼개져 갔으니까.
하나가 수백으로 갈라진 화살이 갈래갈래 내게로 쏟아지고 있음이다.
“저 비겁한…!”
복면인은 곧장 땅을 굴렀다.
장애물을 잃은 내 화살이 곧장 제 몸으로 짓쳐 들고 있었기에.
저걸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쉽게도 내 마법은 목표물을 놓치지 않는다.
다만, 위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였지만.
티티티티티티티티티팅!
순식간에 생성된 쉴드 마법 위로, 마나가 실린 화살 조각들이 쉼 없이 때려댄다.
주르륵.
급격한 마나 운용의 부작용일까?
그 반작용으로, 입가로 한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내기로 꿀만 빨아대려고 하니 이런 멍청한 한 수에 속는 것이겠지.
이건 전쟁인데도 말이다.
질끈.
스스로 자책한 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 박자 늦게 쏘아낸 화살이 복면인의 옆구리를 관통한다.
푹!
“큭… 지금이오. 공격하시오!”
“고, 공격이라니?”
“시전자가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기 캐스팅된 마법은 응당 디스펠되지 않겠소?”
“……!”
복면인의 얄미운 외침에 군세가 동요하기 시작한다.
디스펠이라고?
웃기는 소리!
이쯤 되면, 오기로라도 하고 만다.
쿠르릉!
내부가 진탕되는 와중에도 나는 힘차게 손을 아래로 내뻗었다.
그 직후.
쿠구구구구구구구!
하늘에 오롯이 떠 있던 소운석이 마침내 지상으로 하강했다.
순간 고통으로 신음하던 복면인의 눈이, 아니, 군세들 모두가 경악하여 입을 벌렸다.
“이, 일선의 마법사들은 가용할 수 있는 최대 쉴드 마법을 펼쳐라아아아아아아아!”
여기서 나는 한 번 더 무리를 하기로 했다.
번쩍!
미리 봐둔 장소로, 곧장 단거리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덥석!
망막에 흐릿한 흑색의 무언가가 맺히는 즉시, 그것을 강하게 붙든다.
번쩍!
그리고, 또 한 번 텔레포트.
“이 선의 마법사들은 격추 마법을 준비! 크기를 최대한 줄여 피해를 최소화하라아아아아아!”
비명과도 같은 누군가의 고함이 재차 천지를 찢어발겼다.
7써클 마법, 미티어 스트라이크.
피유우우우우우우!
나도 그 위력을 정확히 모르는 고대시대 상위의 전쟁 마법이, 지금 내 발아래로 낙하(落下)하고 있었다.
길고 긴 적색(赤色)의 꼬리를 물고.
***
국경 지대의 장벽 앞.
2남 1녀의 무리가 간단한 검문을 거친 뒤에 그곳을 오르고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루나와 세디스.
그리고 중간에 맞닥뜨린 에이스였다.
“얼음 기사 아가씨. 아까부터 왜 이렇게 말이 없어?”
“…….”
“덕분에 쉽게 쉽게 통과해서 좋기는 한데… 어째 아가씨 표정은 영 좋지가 않네? 겁나서 말을 못 걸겠어.”
그제야 루나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실망했으니까요.”
“엉? 실망이라니?”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한마디 말도 해주지 않고 적진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쳤죠.”
“어… 그건 그냥 괜한 걱정 끼치기 싫어서 배려한 것 아닐까?”
“그런 의도였다면 더더욱 말을 해줬어야 했습니다.”
장벽을 오르는 루나의 걸음이 빨라졌다.
“결국 8월의 검사님도, 자신의 제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계시질 않습니까.”
“…뭐, 세타라면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그리 쉽게 말씀하실 문제가 아니라는…!”
“쉽게 말하는 것 아니야. 괜찮아. 분명히. 여기에는 내 목을 걸 수도 있어.”
움찔.
그제야 루나가 에이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언제 어느 때나 가벼워 보이던 8월의 검사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단단하게 자리 잡은 두 동공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으니까.
루나는 곧장 물으려 했다.
무슨 근거로 그리 자신하는 거냐고.
만에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허나 상대의 표정을 보는 순간, 그 물음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리 세타 쿤 이그니스가 예상을 뛰어넘는 천재라지만, 아직은 열아홉에 불과한데. 이 반응은 대체…….’
루나의 상념은 거기까지였다.
“참 빨리들도 온다. 특히 에이스! 너는 명색이 부연합주라는 놈이, 꼴이 그게 뭐냐?”
“……!”
장벽에 완전히 오른 직후였다.
위에서 한껏 비아냥거리는 세논을 향해 에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사랑스러운 제자는?”
“꼴사나운 스승을 대신해, 저 너머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계신다.”
“호오. 그 말인즉, 마녀와 마탑주들은 물리쳤다는 뜻이렷다?”
“그게 문제야? 눈이 장식이 아니라면 너도 보일 텐데.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한 이 분위기가.”
“진짜 전쟁은 아닐 거 아냐?”
“맞는데?”
“……?”
에이스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저긴 분명 스란의 영토일 텐데.”
“뭐긴 뭐겠어. 반란군이 스란과 손을 잡았다는 뜻이지. 정확히는, 그 뒤의 제국과 스란이 손을 잡은 것이지만.”
“…추정 병력은?”
“아직 몰라. 진군 소리가 완전히 멈췄거든. 저 어둠 너머에 분명 자리 잡은 건 확실한 듯하지만…….”
“그걸 우리 제자 혼자서 막으러 갔다고?”
“어. 참고로 적군들 사이에는 마사수도 끼어 있다더라.”
“마, 마사수…?”
움찔.
두 사람의 대화에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었다.
뒤늦게 장벽 위에 오른 인영이었다.
짧게 친 단발에 곱상한 얼굴, 일견 여자로 오해할 만한 외모를 가진.
“마사수… 라고 하셨습니까?”
“……!”
직후, 세논이 움찔 몸을 떨었다.
뒤늦게 인영을 발견한 것이다.
기실 녀석이 ‘그곳’ 출신이라는 사실은, 조직 내에서도 세논과 에이스만이 알고 있었다.
“세디스 너, 언제…?”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세타가 정말로 마수사와 싸우고 있는 겁니까?”
“그, 그게 말이야.”
세논이 말까지 더듬거렸다.
허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
갑작스레, 하늘 위에 오롯이 떠 있던 소운석이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곤,
꽈아아아아아아앙!
“윽…!”
순식간에 지상과 충돌했다.
희뿌연 흙먼지가 정면으로 들이닥친다.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 정도의 여파였다.
허나, 회색의 연무 속에서도 마법의 힘은 온몸으로 전해졌다.
지면 전체로 크레이터가 번져 가고, 그 충격파가 장벽까지 옮겨왔으니까.
몇몇 병사들은 그 힘을 못 이겨 ‘털푸덕’ 쓰러지기까지 했다.
“대장!”
에이스가 빠르게 세논을 감싸 안았다.
그 직후.
쿠우우우웅!
기어이 장벽 위로 2차 충격이 가해졌다.
***
달빛이 어그러지는 어두운 밤.
그 칠흑의 장막을 속에서 디자이어는 상념에 잠겨 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대공.”
“…….”
“느꼈지? 서큐버가 죽었어.”
“…….”
“마탑주들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가장 큰 문제는, 이 사실이 황제의 귀에도 들어갔다는 거고.”
“…….”
“곤란해. 대체 왜 그런 행동을 벌인 거야?”
순간 디자이어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정면에, 보기 드물게 실눈을 나직이 뜬 사내가 자리해 있었다.
“스노비.”
“응?”
“나를 자극하지 마라.”
“……!”
“네가 나를 위한답시고 뒤에서 무얼 하는지 알고 있다. 모두 허용 범위 내의 일이라 따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지금 네 행동은 그 범위 밖의 일이다.”
“…….”
“선을 넘으면, 아무리 너라도 그냥 두지는 않을 거야.”
스노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녀석도 아는 것이겠지.
자신의 이 더러운 성질머리를.
“…그리고, 잊지 마라. 너는 제국의 2황자 스노비 벨 그레이스가 아니라, 칠악의 스노비라는 것을.”
“…알아, 나도.”
“현재 제국과 우리는 동맹 관계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황제도 우리의 적이 되겠지.”
“그래서 내가 더 노력하고 있어. 제국을 집어삼키면, 결국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글쎄. 황제도, 그곳의 귀족들도. 나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디자이어는 작금의 상황이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서큐버의 소멸도, 황제의 파격적인 행보도.
“자이툰의 북부전선이 무너졌다지?”
“맞아. 북부 사령관 알하름 공작이 마스터 에일러의 검에 목이 베이면서 승세가 급격하게 기울었어. 알다시피, 거기서 덴마르 협곡까지 뚫리면 수도까지는 이틀도 채 걸리지 않고. 황제는 아예 처음부터 주변국들을 철저하게 짓밟아 놓고 정복 전쟁을 시작하려는 모양이야. 우리 계획에서 완전히 벗어난 일이지.”
“…결국 믿을 것은 스스로의 힘뿐이다. 하니, 필요하다면 ‘혼(魂)의 계약’까지 고려해 봐야겠지. 그거라면 제국이 아니라, 드래곤이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으니까.”
“진심… 이야?”
멍하니 반문하는 스노비를 일별한 디자이어가 몸을 돌렸다.
“물론.”
“잠깐만 대공. 하면 마탑 쪽은 어떻게 처리할까? 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열둘의 마탑주가 열하나가 되었으니까.”
멈칫.
잠시 멈춰 서 있던 디자이어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내가 직접 블레어 마탑주를 만나보지.”
***
어깨에 짐짝 하나를 짊어진 채, 나는 가까스로 국경 지대로 돌아왔다.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작렬한 이후의 상황은 나조차 알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곧장 복귀한 참이니까.
한데, 그 와중에 무수한 사람들이 나 하나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세타 쿤 이그니스.”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장벽 위로 사뿐히 착지하는 내게 몇몇 이들이 빠르게 다가섰다.
인버스 공작이 가장 빨랐다.
애써 괜찮은 척 그리 버티고 서 있자,
“대체 네 정체가 무엇이냐?”
“…….”
이따위 물음이나 해대고 있었다.
속이 뒤집히는 와중에도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적의 피해는 정확히 추산되지 않는다.
어쩌면, 남은 군세를 추슬러 곧 이곳까지 쳐들어올지도 모른다.
이 정도 해줬으니 뒷일은 알아서 처리하겠지만.
이곳에는 스승님들도 계시고, 마탑주들을 포함한 다른 동료들도 남아 있었다.
이들이 더 이상 곤란한 일들을 겪지 않게 하려면…
…여기서 한 번 더 허세다.
“세상에 메테오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달리 또 있던가요?”
“…뭐?”
“더 알려고 하지 마요. 진실을 알면 다칠 테니까.”
“……!”
길을 막고 있던 인버스 공작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아니, 주변의 다른 기사들까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