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21화 (121/251)

121화. 마녀(2)

‘…표정이 왜 저래?’

당황스럽다.

방금 서큐버의 말이 왜인지 아프게 귓속으로 틀어박혔다.

예의 갓난아기도 어쩌고 하는 섬뜩한 위협 말이다.

분명 사연이 있는 듯한데.

그 내막을 알 길이 없는 내가, 이상하게도 그녀의 슬픔을 공감하고 있었다.

이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은데…….’

아, 기억났다.

그건 아마도 식탐의 힘을 막 취했을 때였을 것이다.

그 힘을 받아들일 때, 일시적으로 원주인인 럼프의 감정과 동화되었던 적이 있다.

기껏해야 식욕밖에 모르는 돼지 녀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럼프는 나조차 감히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크나큰 슬픔을 내면에 지니고 있었다.

더하여 살기 위해 식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식을 탐하는 느낌도 받았다.

그런 와중에 그 비슷한 감정을 눈앞의 서큐버가 자아내고 있었으니.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 자세한 내막이 알고 싶어졌다.

다만,

“안 덤빌 거니?”

“…….”

“이번에는 어린애라고 방심하지 않을 거야. 처음부터 최선을 다할 생각이거든.”

“…….”

“그러니까, 너도 단단히 준비하는 게 좋을걸?”

그 전에 싸움부터 이겨야 할 듯싶지만.

드드드드드드!

“……!”

서큐버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나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마기가 갑작스레 주변으로 들끓어 올랐다.

그녀의 특기인 흑마법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뉘었다.

제아무리 고위 흑마법사라도 그 세 가지를 전부 수준급으로 다룰 수는 없었다.

가령 마법사들의 ‘주력’과 비슷한 개념이다.

언데드 소환 능력으로 따로 분류되는 네크로맨시(Necromancy)를 제외하고.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각종 디버프(Debuffs)를 포함한 저주 쇄약 계열.

파괴력을 극대화한 정통 흑마법 계열.

마지막으로, 그림자를 이용한 암공(Dark shadow) 계열까지.

내가 경험해 본 바로, 특히 서큐버는 앞의 두 가지를 잘 다뤘다.

바로 지금처럼.

“올 더 버프.”

“올 디버프.”

몸에 활력이 넘치는가 싶더니, 한순간 무기력감이 전신으로 번져 갔다.

고대 시대를 거치며 6써클 이상의 고위 마법이 상당수 소실된 정통 마법들과 달리, 흑마법은 지금까지도 누락 없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마족과 계약한 존재들에 의해서.

그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눈앞의 칠악이다.

“발록의 꼬리, 점화하는 마계의 불, 휩스 플레어(whips flare).”

화르르륵!

직후, 마치 채찍처럼 기다란 세 줄기 불꽃이 내게로 쇄도해 왔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오는 그것은, 때로는 좌우로 요동치기도 하고.

한순간 불의 잔영을 만들어 내 눈을 현혹시키기도 했다.

물론,

“악을 가로막는 빛의 장벽, 홀리 월(Holy wall).”

쩌어어어엉!

그 흉포한 마법은 곧장 내가 생성해 낸 눈부신 벽에 가로막혔지만.

“빛의 마나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서큐버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리가…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아티팩트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진짜 빛의 마나를 사용한다는 뜻이니?”

“보면 알잖아.”

내 대답에 서큐버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빛의 마나를 사용하는 존재가, 데모닉의 재능을 타고났을 리가 없잖아.”

“데모닉…?”

“너처럼 인간의 몸으로 마기를 곧잘 받아들이는 특이체질을 지칭하는 말이야. 설마 이것도 몰랐던 거야?”

몰랐다.

어떤 기운에도 잘 융화되는 인간의 육신이니, 마기 또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을 뿐.

즉, 지금 서큐버는 마기에도 재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상한데… 분명 빛의 마나를 다루는 이들 사이에도 비슷한 것이 있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대륙에서 빛의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을 달리 ‘아락사스’라고 불렀다.

한데 데모닉이라니.

너무 대놓고 마족과 관련 있는 존재들 같잖아.

“분명 데모닉은 너무 대놓고 사악해 보인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독심술도 하시네.”

“훗. 오래전 인간들은 그 옛날, 천족들은 아락사스라고 불렀고. 마족은 데모닉이라 칭했거든.”

“……!”

“물론 고대 시대 이전의 인간들이 불렀던 말이니까, 너 같은 꼬맹이는 그 기원을 잘 모를 수도 있겠네.”

그런 거라면 아이리스의 지식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이 이해가 간다.

인간들이 지칭하는 단어 따위, 그 고고한 드래곤들이 알려고 들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 것보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있나 봐? 베놈 샤워, 안티 매직 필드, 다크니스 멀티 에로우.”

후두두두둑!

직후, 하늘에서 독의 비가 떨어져 내린다.

뿐만 아니라 점차 마나마저 동결되어 갔다.

눈앞에는 수십여 발의 새까만 화살이 생성되었다.

그럼에도 서큐버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육체 변이, 종족 강화, 솟구치는 심연의 뿔.”

콰득! 콰드득!

마치 뼈가 뒤틀리는 듯한 소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흑마법의 향연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마법들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크르르르르.

“……!”

갑작스레 서큐버의 전신이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외형 전체가 상당 부분 변해갔다는 사실이었다.

어느새 내가 알던 서큐버는 눈앞에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직경 5미터에 육박하는 괴생명체였다.

등을 뚫고 삐죽이 튀어나온, 마치 까마귀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날개.

이마 위로 솟아난 두 개의 뿔.

입 사이로는, 마치 마물처럼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었다.

책에서나 나올 듯한 악마의 형상이 꼭 저런 외형일까?

- 이 모습은 정말로 오랜만이네.

“…역시 반인반마의 몽마(夢魔)였나?”

- 어? 몽마를 알아?

몽마의 다른 이름은, 그 이름도 유명한 서큐버스(Succubus)였다.

더하여, 인간이 서큐버스가 되는 방법은 알려진 바로 딱 두 가지다.

사내 일만 명의 정기를 취하거나.

혹은, 사내 일천 명을 홀려 죽이거나.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느낀 서큐버는… 전자가 아닌 후자였다.

더하여, 그렇게 서큐버스가 된 존재는 마족만큼이나 규격 외의 힘을 발휘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칠마왕의 직계 권속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 이제 누굴 건드렸는지 감이 좀 오시나 봐?

저 높은 곳에서 서큐버가 삐죽이 양 입가를 말아 올렸다.

분명 미소를 지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형상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기에 상당히 기괴스러운 모습이 연출되었다.

만약 아닌 밤중에 일반인이 저 모습을 본다면, 절로 오줌을 지릴 정도로.

“…뭐,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네.”

- 응?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거 말이야.”

- 훗.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그리 후회해도 나는 봐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아니. 내가 아니고, 네가 말이야.”

- ……?

서큐버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준비는 이미 끝났다.

“옆을 봐.”

- ……!

무심코 고개를 돌린 서큐버가 그 큼지막한 눈을 더욱 부릅떴다.

어느새 길이 10미터는 이를 듯한 거대한 검이 목 아래에 드리워져 있었다.

빛의 마법.

그중에서도 6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서야 흉내라도 내볼 수 있는, 천신의 검이었다.

- 어, 어느새…?

“나도 시도해 보는 건 처음이야.”

대화를 나누면서 속으로는 끊임없이 영창을 되뇌었다.

소위 언령의 힘이라는 말이 있듯.

마나는 대게, ‘말’이라는 매개체로 발현되어진다.

그걸 무시하고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것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딱 한 존재밖에 없었다.

용언(龍言)이란 사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

지금의 내가, 그들처럼 시전어만으로 마법을 발현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영창을 심언(心言)으로 대신할 수는 있지 않을까?

물론 다른 마법사들은 대번에 ‘미친놈’이라 욕을 할지도 모른다.

수백 개의 연산을 종이에 계산하는 것과 머리로 암산하는 차이와 같으니까.

하여, 서큐버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끙…….”

어느덧 내 전신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달리 남길 말이라도 있어?”

- 자, 잠깐…!

“미안. 예의상 그냥 물어본 거야.”

- ……!

서큐버는 채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서걱!

그 순간, 목 아래에 들이밀어져 있던 빛의 칼날이 그대로 그 목을 갈라냈으니까.

***

부지불식간, 새까만 어둠이 시야를 뒤덮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기억이,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려 했다.

쿵!

웬 묵직한 소음과 동시에, 이윽고 특정 장소가 나타났다.

어둠이 걷혔음에도 상당히 컴컴하고 칙칙한, 더 나아가 습기마저 가득한 지하였다.

곧 그곳이 감옥이라는 것은 나 또한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한데…

그 차가운 바닥에 웬 배가 부른 여인이 쓰러져 있다.

조금의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길테어 경의 딸이 저런 독한 계집년일 줄이야. 성격뿐만 아니라 생명력도 질기구먼.”

“벌써 꼬박 반년이나 그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어째 입도 뻥긋하지 않는대?”

“처음보다 고문의 강도가 많이 약해진 것도 이유가 되겠지. 저 봐, 벌써 손톱이 다 자랐는데도 그대로 두고 있잖아.”

“저건… 따로 이유라도 있는 건가?”

“둘째 도련님의 아이를 배었다는군. 그때부터 윗분들이 수위를 낮추라는 명을 내리셨다나 뭐라나.”

“그거야 보면 알겠는데, 굳이?”

“어차피 죽일 건데 애가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거지?”

“그래. 듣기로, 도련님에게 꼬리친 것도 저 악독한 계집년이고, 홧김에 목을 찌른 것도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며? 어차피 죽일 년, 애는 살려둬서 뭣해?”

“뭣하긴. 그래도 절반은 고귀한 핏줄이라는 거지. 어차피 미래야 뻔하겠지만.”

“너만 알고 있지 말고, 나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줘라.”

“가령 그런 거야. 체면을 중시하는 소위 높으신 분들이, 제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려 하지는 않으실 테지만. 첫째 도련님은 고자시지 않나?”

“쉽게 말해, 후대를 위해서다?”

“물론 다음 대의 후계가 확정되는 날에는, 저 배 속의 아이도 죽게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어딘가에 평생 가둬놓고 키우려 하시겠지.”

“그러니까, ‘혹시나’에 대한 안전장치라는 뜻이군.”

꿈틀.

간수들의 대화가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 여인의 몸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아무튼 이런 얘기를 들으니 불쌍하구먼. 저년이나 애새끼나.”

“불쌍하긴. 다 자업자득 아니겠어?”

“우리야 진짜 진실은 알지 못하지 않나?”

“어허. 이놈이 경을 치려고! 어디에 윗분들의 귀가 있을지 알고,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하는 게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렇게 두 간수는 천천히 멀어져 갔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웨에에엥!

갑작스레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웬 새까만 아가리가 생성되었다.

내 기억에도 있는, 예의 아스모데우스의 권능이었다.

- 흐응… 웬 인간의 한이 이만큼이나 철철 흘러넘치나 했더니, 직접 보니 그럴 만하네.

그곳에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존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다만 좌우로 흔들리는 다리 사이의 꼬리는, 적어도 그가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 힘을 원하나?

예의 존재는, 처음에는 절로 신뢰가 가는 중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 난 네게 충분한 힘을 빌려줄 수 있단다. 너를 이렇게 만든 모든 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힘 말이야.

다음으로는, 세상 그 누구보다 자애로운 여성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 엄마. 이대로 나를 낳을 거야? 이런 생지옥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게 해주면 안 돼?

그리고, 종래에는 웬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울부짖기도 했다.

- 내 권속이 되는 조건은 단 하나. 장차 반인반마의 존재가 되어 나의 큰 힘이 될 것. 그리고…….

그 달콤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 조금 있으면 태어날, 그 불쌍하기 짝이 없는 아이를 네 손으로 직접 죽이는 거야.

존재는 손가락으로 여인의 배를 가리켰다.

- 그래. 나는 네가 되돌아갈 곳 따위가 없는, 완벽한 내 종속이 되기를 바란단다.

마침내 그 모든 기억을 훑었을 때.

“…….”

현실로 돌아온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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