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진짜 목적
“…….”
시야를 가득 메우던 광풍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그것에 삼켜진 아이젠버그도.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대륙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힐 것이다.
고작 열아홉 먹은 어린 마법사에게 마탑주라는 거대한 거목이 쓰러진 대사건이었으니까.
직후, 내 시선은 곧장 다른 한쪽으로 향했고,
“……!”
그 상태 그대로,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스승님의 검에서 ‘쨍’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툭.
검신이 정확히 두 동강이 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서걱!
“안 돼!”
텅 빈 상체를, 흑색의 칼날이 훑고 지나갔다.
스승님은 나를 등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정확히 어디를 베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사방으로 비산하는 다량의 피로 보아,
쯔어어어엉!
관망은 여기까지다.
어느새 내 손안에 길이 3미터에 육박하는 마력 창이 만들어졌다.
단거리 텔레포트를 이용해 단숨에 두 사람의 측면으로 이동한 나는,
쐐애애애애액!
냅다 마력 창을 적에게 집어 던졌다.
“……!”
그제야 디자이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확실하게 끝내려 했던 건지, 칼날은 여전히 스승님에게로 향한 채였다.
일 초를 다시 수 등분으로 쪼갠 찰나의 찰나.
마침내 그 검 끝이 내 쪽을 겨눈다.
딱 거기까지는 계획대로였으나…
“자, 잠깐…!”
통탄스럽게도 적의 검은 하나가 아닌 두 자루였다.
푸욱!
“이 개자식아아아아아!”
비틀거리는 스승님의 상체를, 왼손의 검이 꿰뚫는다.
그러면서 오른손의 검으로는 날아드는 마력 창을 막아간다.
충돌과 동시에, ‘파직!’ 하고 불똥이 튀었다.
“빌어먹을…!”
나는 곧장 땅을 박찼다.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생각을 거듭했다.
아까와 같은 광범위 마법들은 무용지물이다.
어지간한 마법들은 전부 스승님까지 휘말릴 가능성이 컸으니까.
피치 못하게 근접전을 벌여야 한다는 건데, 스승님마저 꺾은 상대를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승산을 계산하려 들지 말자.
지금은 일분일초가 급하다.
설령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더라도,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파지직!
이윽고 내 손안에 마력 검 한 자루가 생성되었다.
스승님의 것과 똑같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특유의 검신이었다.
각종 보조 마법은 덤이다.
배틀 메이지의 기원은 옛 고대 시대.
소위 말하는, 지금의 전투 마법사들과는 수준부터 큰 차이가 있었다.
“전율의 마나여, 내 마디에 유연함의 물을. 두 다리에 신속의 바람을. 이 한 몸에 폭발의 불꽃을! 올 더 버프(All the buff)!”
마나가 진동한다.
전신의 세포에 활력이 넘친다.
더 나아가 주변의 세상이 점차 멈추어간다.
지금 이 순간, 오직 내 시간만 느리게 흘러가고 있음이다.
에이스 스승님은 평상시에도 마법사인 내게 검사의 움직임을 가르치셨다.
힘을 키우는 것과 싸워 이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면서.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
지난 3년간, 스승님의 훈련 방식은 실로 간단명료했다.
하나는, 바람을 보다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통제 능력 향상.
다른 하나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싸우는 실전 전투 반복.
훈련이라는 이름의 고통 속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은 보다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아니, 그 모든 전투가 이 몸에 직접 새겨졌다.
검을 휘두를 때는 상대가 아닌 공간을 봐라.
시각에 의존하지 말고, 감각에 집중해라.
상대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으려 하면 백전백패다.
어지러운 발동작에 결코 겁먹지 마라.
상대보다 한 걸음 먼저 생각하고, 두 걸음 먼저 움직여라.
전투 마법사가 기사와의 전투에서 패하는 이유는 열에 열, 경험의 차이에서 온다.
맞서는 상대가 대부분 다른 마법사들인 그들과 달리, 기사의 적은 주류가 같은 검사니까.
그러니까 너는, 에이스 디 파르마라는 최고의 실전 상대로 그 경험을 쌓아라.
쩌정! 쩌저저저저정!
내 눈은 더 이상 상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상대가 피할 방향을.
그 공간들을 미리 예측하고 선점했다.
속도의 갭은 내 주력인 마법으로 메꾼다.
나는 상대와 같은 검사가 아닌, 마법사니까.
“음…….”
기어코 디자이어의 잇새로 곤란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전후좌우(前後左右).
이토록 능수능란하게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상대는 그도 쉬이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 나는 검에 더욱더 강한 마력을 불어 넣었다.
화르르륵!
마치 기사의 오러 파이어(Auror fire)처럼, 내 마력 검이 거칠게 타올랐다.
그리곤 전방을 향해 힘차게 쇄도한다.
후우웅!
“……!”
허나, 회심의 일격은 아깝게 허공을 갈랐다.
다만, 목적했던 바는 충분히 이룰 수 있었다.
어느새 스승님의 목숨을 취하려던 그는 저만치나 물러나 있었으니까.
“…놀랍군. 기사도 아니면서, 이 정도 몸놀림이라니…….”
직후, 디자이어가 짤막하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쿨럭!”
“스, 스승님! 괜찮으세요?”
“꼴이… 말이 아니구먼.”
그제야 내 시선이 스승님에게 향했다.
곧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생각보다 상처가 옅었기 때문이다.
“끙… 세타.”
“네?”
“이거 내가 진 거 아니다. 검이 잘못한 거야. 그리 쉽게 툭하고 부러질 줄 누가 알았겠냐?”
“…….”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명검 따위에 관심을 가져 보는 건데…….”
농담할 기력도 있으신 걸 보니, 아무래도 살 만하신 모양이다.
이내 스승님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분명 화를 내야 할 건 그쪽이 아닌 나일 텐데.”
상대를 향해 줄곧 궁금했던 물음을 던졌다.
“…훗.”
“……?”
“지금 너는, 고작 자존심 때문에 내가 이러는 거라 생각하겠지?”
“…….”
구태여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그건 고작이 아니다. 크게는 네가 내 계획을 망친 셈이니까.”
“계획…?”
“먼 옛날, 제국의 전전대 황제는 나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
왜인지 심상치 않은 얘기가 나올 것 같았기에, 나는 곧장 자세를 바로 했다.
“오랫동안 제국이 흑마법사들을 탄압해 온 일은 이미 알고 있을 테지?”
“…그런데?”
“허나 그 이유까지는 모르겠지.”
“그거야 당연히…….”
디자이어가 내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그런 걸 전형적인 영웅 만들기라고 한다.”
“영웅… 만들기?”
“우리는 강한 힘을 지녔지만, 대륙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 그저 이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 증거로, 우리가 직접 나서 악의 종자들을 쳐부수어 주겠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흑마법사 말살 정책이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 결과, 고작 1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만에 흑마법사들은 대륙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만큼 제국의 힘은 막강했으니까. 한데, 이후의 황제는 어떤 행동을 취했더냐?”
어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 이후, 제국인들은 물론 뭇 타국인들까지 황제의 업적을 칭송하였으며.
오늘날처럼 제국은 명실상부 대륙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니까.
이런 과거들을 되짚어보면, 지금 황제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다음으로 황제가 벌인 일이 자국 내에서 사제들을 탄압하는 것이었다. 역모니 역병이니, 그 이유조차 각양각색이었지. 실제로 황제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 스스로, 자신 위에 어떤 존재도 없노라 공언할 정도였으니까.”
“…….”
“당연히 타국의 사제들까지 반발했다. 황제의 오만함이 도를 넘었다면서 모두가 손가락질을 해댔지. 허나, 고작 자신의 신격화가 황제의 목적이었을까?”
순간, 스스로 자문자답한 디자이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실 진짜 이유는 그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합리적이다. 바로, 사제들도 대계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니까.”
“……!”
“마침내 그들이 정복 전쟁을 벌이게 되었을 때, 구심점이 될 만한 싹은 처음부터 잘라놓는 것이 좋을 테니까. 황제는 그 옛날, 자신들 이전의 유일한 제국이었던 신성국 아르바할의 저력을 잊지 않았다. 지금은 권력에 관심이 없는 대사제니 대주교니 하는 인간들이, 언젠가 돌변하여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면… 무척이나 골치 아파질 테니까.”
진짜 충격적인 얘기는 이 다음부터 흘러 나왔다.
“그래서 전전대 황제가 먼저 내게 손을 내민 거다. 무려 반세기도 더 전에 말이다.”
“……!”
“그 오랜 기간, 나는 소위 신을 모시는 자들을 철저하게 죽이고 또 죽여 왔다. 지금에 이르러 사제들이 급감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전부 우리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 암살, 독약, 사고 위장.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목적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다 했다. 결국 목숨이 아까워진 그들이, 스스로 제 신을 버릴 때까지.”
“미친…!”
절로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쌓아온 신뢰다. 그렇게 이어온 역사다. 황제는 그 대가로 우리의 존재를 묵인해 주기로 했다. 책잡힐 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전전대부터 이어져 온 그 신뢰는 이제 여간해선 깨지지 않을 테지. 한데, 그런 와중에 네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고작 그딴 이유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고작이 아니라고 했다. 내 계획을 망치고, 그 같잖은 황제 앞에서 사죄 따위를 하게 만든 네놈을 경멸한다. 감히 내 것을 해친 네놈을 증오한다. 그러고도 버젓이 살아 활개를 치는 네놈이 거슬린다.”
허나, 말과 달리 디자이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니, 지금은 너를 죽이지 않겠다. 나는 줄곧 네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왔으니까.”
“…….”
“네놈의 동료, 가족, 친구, 스승. 그 모든 것들을 빼앗은 뒤, 마침내 네 목숨까지 취할 것이다.”
“…….”
“기억해라. 내 이름은 탐욕의 디자이어다.”
말을 마친 디자이어의 신형이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쿨럭!”
“…스승님!”
지금 내 옆에는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는 스승님이 계셨으니까.
***
스르륵.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디자이어가 다시 나타났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군.”
그런 그의 얼굴에는 왜인지 짜증이 어려 있었다.
한창 전투를 이어가던 중, 스노비가 의지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황제가 찾고 있으니 뒷일은 서큐버에게 맡기고 곧장 복귀하라고 말이다.
“쯧.”
직후, 디자이어가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들이 전면에 나선 그 순간부터, 시종일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다수 있었다.
일찍이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던 것은 황제를 포함한 극소수뿐이었으니까.
복귀를 명한 이유는 더더욱 가관이었다.
“정말로 웃기지도 않는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불안하다고?
아니겠지.
사실은 뒤통수를 칠까 두려워하는 것이겠지.
소위 권력자란 놈들은 전부 그랬으니까.
다른 모든 이들이 제 놈과 똑같은 줄 아는.
사실 그따위 것은 신경 쓸 필요도 없었지만……
아직은 아니다.
여기서 괜한 경계를 사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마침내 스노비가 황권을 잡아 제국을 집어삼킬 그날까지만…….
그러기 위해 솟구치는 살의도 참고 녀석을 살려준 것이 아니던가?
“…큭.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놈이었어.”
사실 더 큰 고통이니 어쩌니.
말은 위협적으로 했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놈의 가능성을 봤으니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살려두는 것이다.
만약 저대로만 성장해 준다면…
그 황제에게도 제법 아픈 칼날이 될 것 같거든.
“…그날을 진심으로 기대하지. 세타 쿤 이그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