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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118화 (118/251)

118화. 상대는 마탑주(3)

휘오오오!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그걸 느낌과 동시에 새로운 두 사내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 흔한 일말의 소음조차 내지 않고.

“기껏 도망친다는 게 여기였나?”

나와도 안면이 있는 바람의 마탑주, 아이젠버그가 조소했다.

상당히 벼르고 있었던지 그 얼굴 위에는 묘한 기대감까지 어려 있었다.

허나 스승님이나 나나, 그는 더 이상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에서 조용히 제 존재감을 흘리고 있는 흑색의 사내.

“이젠 놓치지 않는다.”

그는 칠악의 수좌이자 마계의 대공이며, 탐욕이라 불리는 대죄의 주인.

더하여, 마왕 마몬의 완전한 직계 권속.

아이리스의 기억 속에는 이와 관련된 아주 오랜 지식이 있었다.

일찍이 마계는 동(東) 마계와 서(西) 마계로 나뉘었는데, 그중 동 마계는 지금의 이그란트 대륙에 비견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름난 마족들이 즐비했지만.

억겁의 시간 동안 강자라 불리었던 그 최상위 존재들조차 하루아침에 소멸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

마침내 혼잡한 동 마계를 평정할 대악(大惡)이 나타났으니.

그 이름, 마몬이라.

긴 세월 전투만을 거듭해 온 그는 마침내 동 마계를 통일했으며.

스스로를 대공이라 칭하고, 그곳에 주요 거점인 만마전(萬魔殿)을 건설했다.

최종 목표인 마계 대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그런 그의 순수 전투력은 마계 제일이라는 루시페르와 쌍벽을 이룬다.

“…스승님.”

이윽고 상념에서 벗어난 내가 옆을 돌아봤다.

“응?”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지금이라도 상대를 바꾸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너 지금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게, 제가 저 사내를 좀 아는데…….”

스승님이 내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뭐 어쩌라고. 모르는 내가 봐도 저 먹물보다 훨씬 강자인 건 알겠거든?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저 시꺼먼 놈을 상대해야지.”

“하지만…….”

“그만. 난 네놈 스승이다. 당연히 내가 더 강한 놈이랑 싸우는 게 옳아. 아님, 네가 나보다 더 세냐?”

“…….”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나라고 더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생각 자체가 내 스스로 스승님을 깎아내리는 일이었으니까.

“됐다. 더 말해 뭐 하겠냐. 행동으로 제자의 고민을 덜어줘야지.”

“……!”

스팟!

그 말과 동시에, 스승님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곤,

쩌어어엉!

다시 스승님이 나타난 장소는, 예의 디자이어라는 사내의 코앞이었다.

어느새 스승님의 손안에 검이 쥐어져 있었다.

검신 가득 연녹 빛의 마나를 품은 채로.

휘릭! 휘리리리리릭!

그 순간, 검이 수백 개로 불어났다.

물론 실제로 무구의 수가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스승님이 추구하는 검술의 기본은 쾌(快).

한줄기의 섬전이, 순식간에 수백의 검영(劍影)을 만들어낸 결과였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정!

스승님의 선공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놀랍게도, 대륙에서 제일 빠르다는 스승님의 검을 디자이어는 무리 없이 받아냈다.

곧이어,

서거거거거걱!

한 쌍의 검이 춤을 추며 새까만 검기를 뿌려댄다.

허공을 수놓는 반월의 향연은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영향으로 주변은 점차 황폐하게 변해갔다.

“한눈을 팔 틈이 있느냐, 애송아?”

“…아이젠버그.”

그제야 내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디자이어와는 대비되는, 오물 한 점 묻지 않은 새하얀 로브.

그 고집이 얼굴에서부터 드러나는 중년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일전에는 내가 제법 신세를 졌었지? 두 번씩이나.”

“…한 번은 마탑에서 탈출했을 때를 말씀하시는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기억에 없습니다만…….”

“기억에 없다…? 큭큭큭. 그랬나? 대 마탑주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만든 사건이, 네게는 기억에조차 남지 않은 사소한 일이었군.”

…아.

그때를 얘기하는 건가?

최초 마탑주들과 대면했을 때, 그들이 보는 앞에서 상대를 물 먹인 일.

“나는 네놈처럼 재능에만 의존하는 족속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노력은 쥐뿔도 하지 않으면서 한순간 타인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모든 것을 앗아가는 염치없는 것들.”

“…그러니까, 지금 저한테 스스로 재능 없다고 푸념하시는 건가요?”

“뭐…?”

찰나 움찔 몸을 떤 아이젠버그가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실로 우습구나. 프레스 원에 구멍 한 번 뚫었다고… 설마하니 네가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거냐?”

“사실이니까요.”

“…건방진 놈.”

눈살을 찌푸린 아이젠버그가 써클을 휘돌렸다.

일순간 그 특유의 바람이 주변으로 생성되며, 새하얀 로브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깔끔하게 한데 묶어 뒀던 장발은 순식간에 풀어 헤쳐져 나풀거린다.

“괜찮으시겠어요? 청결에 병적인 집착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러다 그 하얀 옷에 흙이라도 묻으면 어쩌시려고.”

“자만의 대가로, 네놈을 곱게 죽이진 않을 것이다. 두 눈알을 뽑고, 사지를 찢어 늑대들의 밥으로 던져 줄 것이다. 너는 그 고통을 모두 느끼며 죽어갈 것이다. 마법의 힘이라면, 죽음을 연장시키는 일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할 테지.”

“그것참 무섭네요.”

“그뿐이냐? 저기서 싸우고 있는 네 스승도, 동료도. 네놈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똑같이 만들어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

“이제 아차 싶은 게냐? 크크크… 지금에 와서 무릎 꿇고 빌어 봐야 소용없다. 이미 늦었으니까.”

말을 마친 아이젠버그가 섬뜩한 웃음을 내흘렸다.

그럼에도 내 정신은 온통 한곳으로 쏠려 있었다.

아이젠버그가 아닌, 그가 가리킨 스승님 방향으로.

아직 위험한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것 하나 없었다.

“네놈 같은 핏덩이에게 이만한 시간을 할애했으니, 저승 노잣돈으로는 충분하겠지. 단숨에 끝내주마.”

“제가 할 말을 대신 해주시네요.”

“북녘의 끝, 극지(極地)의 숲에서 불어오는 서리 광풍이여. 사계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차디찬 한풍이여…….”

직후, 아이젠버그는 서슴없이 마법을 캐스팅해 나갔다.

물론, 영창만 들어도 단번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6써클에 올라서야만 시전할 수 있는, 한림(寒林)의 서리 바람.

겨울의 숲을 그대로 옮겨다 놓는다고 알려진 이것은, 극저온의 에어붐 수백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대상을 노린다.

붐과 에로우 계열 마법의 차이점은 ‘폭발성’에 있었다.

충돌 직후 마나를 강하게 터뜨려 대상에게 더 큰 충격을 주는 개념이다.

참고로 한림의 서리 바람은 6써클 중에서도 마스터의 영역이다.

가히 아이젠버그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마법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세간에 알려진 그의 경지가 딱 6써클 마스터였으니까.

다시 말해, 지금의 아이젠버그는 내 상대가 안 된다.

절대로.

“…겨울의 숲에서 생성되는 에어붐은 대상자가 지닌 마나에 따라 그 온도도, 크기도, 개수까지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죠.”

“큭큭큭… 주제에 바람 마법에 제법 지식은 있는 모양이구나.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이 마법은 당대의 대륙에서 오직 나만이 사용할 수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간단해. 바람을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들 중 6써클 마스터는 오직 나 하나뿐이니까.”

어느새 무형의 기운이 나를 압박해 왔다.

살을 에는 광풍은 피부를 따갑게 만들었고.

하늘 위에서는 때 아닌 눈 꽃송이마저 떨어져 내렸다.

이 정도 임팩트라면, 바람이 아니라 얼음 계열 마법이라고 해도 범인들은 믿을 것이다.

“지금 막 영창이 끝났다.”

“…….”

“그리 절망만 하며 죽어갈 테냐?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만… 마지막 발악 정도는 기꺼이 지켜봐 줄 용의도 있다.”

“…….”

“쯧. 이러면 꼭, 핏덩이 따위에게 나 혼자 괜히 흥분해 힘을 과하게 쓴 것 같지 않느냐?”

아이젠버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그 신색엔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는 가정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확신하는 것이다.

일대를 빈틈없이 둘러싼 에어백 이백수십 개라면, 언제든 내 전신을 짓뭉갤 수 있으리라고.

“…같잖군. 감히 내 앞에서 바람 마법으로 제일이니 뭐니…….”

절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내 전생은 드래곤이다.

그것도 바람이라면 세상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린 일족의.

비록 지금은 인간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하더라도…….

그 지식은 전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다.

“북녘의 끝, 한림의 서리 바람.”

우우웅!

본신의 경지가 높을수록 그보다 하위 마법의 영창은 짧고 간단해진다.

같은 마법을 시전하면서 고작 삼 초 남짓한 시간 만에 캐스팅을 끝낸 내가 주변을 둘러봤다.

콰드득!

순식간에 생성된 내 마력이, 망설임 없이 상대의 바람을 잠식해 간다.

“한림의… 서리 바람?”

“아이젠버그. 당신이 다수의 에어붐으로 나를 상대하겠다면, 나는 그보다 더 많은 에어붐을 생성해 대응할 겁니다.”

이백수십 개의 에어붐이 나를 노린다면, 나는 그보다 곱절은 많은 사백수십 개의 에어붐으로.

“개소리 하지 마라아아아아아!”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도리질 치던 아이젠버그가 또 한 번 마나를 운용했다.

대기가 거칠게 진동한다.

무리를 하는 것이 분명한지, 입과 코로 검붉은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적을 할퀴는 칼날! 만물을 찢어발기는 바람! 지금 내 앞에 나타나 적을 멸하라! 일대를 짓이겨라!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

이번에는 상대의 손에서 거대한 회오리가 생성되었다.

초대형 바람을 만들어 단숨에 일대를 쓸어버리는 광범위 마법.

그 거칠고도 드센 광풍을 전신으로 때려 맞으며,

“…당신이 돌개바람을 만들겠다면, 나는 그보다 더 거대한 태풍을 소환해 낼 겁니다.”

이번에도 나는 상대와 똑같은 마법을 시전했다.

거스트 오브 윈드.

아니, 이름만 똑같을 뿐 그 내용물은 전혀 달랐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이게 진짜 같은 마법인가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마력까지 느껴지는 바람.

콰우우우우우!

한순간 상대의 바람마저 집어삼켰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크기를 배로 불린 내 바람을 아이젠버그가 멍하니 바라만 봤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평생을 가도 나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아이젠버그.”

“뭐… 라고…?”

“나는 못난 시기심과 질투심 따위에 사로잡혀 있는 노괴에게, 절대로 지지 않을 테니까요.”

“……!”

아이젠버그의 동공이 거칠게 요동쳤다.

그런 그와 나 사이에는 가히 집체보다 더 큰 초대형 광풍이 자리해 있었다.

“그보다, 멋지지 않습니까? 당신과 내 힘이 합쳐진, 세상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릴 듯한 이 거대한 마법 말입니다.”

“너…….”

“악(惡)에 편승한 노괴를 고꾸라뜨리는 데 딱 알맞은 바람 같습니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권력도, 꿈도. 모두 안고 이대로 퇴장하시지요, 바람의 마법사 아이젠버그.”

순간 아이젠버그가 ‘흡’ 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갑작스레 전진하기 시작한 예의 거대한 바람이,

콰드드드드득!

순식간에 그의 신형마저 통째 먹어치우려 했으니까.

“아, 안 돼… 이건, 이건 아니야.”

아이젠버그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허나, 의미 없는 행동일 뿐이다.

광풍은 단숨에 그를 집어삼켰으니까.

“으아아아아아아아!”

오랫동안 대륙 제일로 불리었던 십이 인의 마법사.

그중 하나이자, 시대의 변화에서 낙마하고만 권력자의 허망한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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