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상대는 마탑주(2)
“하아, 하아…….”
점차 내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더 이상 다른 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단 한 명.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 일색인 그만이 또렷하게 시야로 틀어박혔다.
“괜찮냐?”
가장 먼저 내 이변을 느낀 세논 스승님이 물어왔다.
“괜찮… 괜찮습니다.”
“…칠악의 대공이라면 그거지? 네 원수.”
“예… 확실합니다.”
“좋지 않은데.”
직후, 세논 스승님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래도 승산이 30퍼센트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막 3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어. 악들의 대가리라서 그런가. 저 대공이라는 자, 보통이 아닌 것 같거든.”
스승님도 본능적으로 아시는 거다.
저 사내가 얼마나 강한지.
‘대공’이라는 직책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아마 대장쯤으로 이해하신 모양이다.
“제가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요?”
“…글쎄. 확실한 건, 나나 페르가 아닌 이상 해방군 영역의 그 누구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군.”
“…….”
다시 말해, 이쪽 제일의 전력인 스승님과 최소 동급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묻고 싶었다.
저 입으로 확실하게 듣고 싶었다.
그분의 안위를.
당신의 마지막을.
“디자이어!!!”
생각과 동시에 마나를 담아 고함쳤다.
“깜짝이야. 대공을 부르는데?”
“잠깐 다녀오지.”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쟤 절대로 보통 꼬맹이가 아니야. 럼프를 소멸시켰음은 물론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식탐의 힘까지 일부 흡수한 듯하니까.”
“나도 느끼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군.”
“응?”
“죄악의 전이(轉移)가 가능하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시도해 볼 만하다는 것.”
“…대공은 언제나 말을 어렵게 한다니까? 그냥 배를 갈라서 죄악을 도로 회수한다고 하면 될걸.”
“…….”
“개인적인 부탁인데, 배를 가르는 일은 나한테 맡겨주면 안 될까? 럼프의 복수를 해야 되거든.”
“그건 힘들 것 같은데. 나도 갚아줄 것이 있어서.”
“너무하네.”
그걸로 두 칠악의 대화가 끝났다.
사내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나와는 고작해야 10여 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남겨둘 때까지.
“저 정도면 내 공격 범위 안인데, 그냥 냅다 쳐 죽일까?”
“…아니요. 이건 제 일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해야 합니다.”
스승님에게 확실하게 부정의 의사를 전한 내가 다섯 걸음을 마주 걸었다.
이제는 고작 5미터 안팎의 거리다.
검이 주무기인 기사들에게도 무척이나 위협적인 공격 범위.
거기서 나는 물었다.
“학장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시지?”
“너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텐데.”
“네 입으로 직접 말해!”
“죽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그 깊디깊은 지저 세계로 떨어지던 와중에도, 아즈문 사트리노는 내게 위해를 가하려 들었다. 정작 제 몸은 치명상을 입은 채 죽어가고 있음에도.”
파르르르.
내 눈꼬리가 쉼 없이 떨려댔다.
그런 와중에도 사내의 담담한 육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추후 필연(必然)이 될 대재앙을 끌어안고 죽고 싶었겠지. 하여, 그 몸에 다시 한번 이 검을 쑤셔 넣어줬다.”
“…뭐가 그렇게…….”
내 목소리는 금세 상대의 말에 파묻혔다.
“그 상태로 홀로 지저 세계 깊은 곳까지 떨어졌으니,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무저갱의 끝이 어디인지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
“뭐가 그렇게… 당당한데.”
“확신이 안 간다면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해주마. 아즈문 사트리노는 이제 없다. 바로 내가, 이 손으로 그를 죽였다.”
부르르르.
호흡이 가빠진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고, 혈관의 피란 피는 모조리 거꾸로 치솟아 올랐다.
아버지나 다름없던 사람.
세상 하나밖에 없는 내 가족.
그런 존재를 죽인 원수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우웅! 우우우우웅!
“……!”
전신의 기운이 요동친다.
아니, 주변의 대기가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듯 출렁이기 시작했다.
내 감정에 반응하여 일대의 마나가 움직이고 있음이다.
“…이런.”
그 마력의 범람이 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일까?
번-쩍!
사내가 지체 없이 검을 휘둘러 왔다.
반월형의 새까만 검기가 순식간에 내 코앞까지 당도했다.
허나,
꽈아아아아아아앙!
마침내 팽창한 내 마나가 폭발했을 때.
인근은 희뿌연 흙먼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
“윽…!”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눈살을 찌푸렸다.
녀석의 변화야 진즉에 인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마력이 아닌가?
“세논 너, 대체 뭘 키운 거냐?”
“읏…! 나도 모르겠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단기간에 이렇게 괴물이 되었을 줄은…….”
“그사이에 또 강해졌다는 거잖아! 그보다, 이건 그냥 괴물 수준이 아니잖아. 고작 열아홉 먹은 곱등이라며! 이 마력이면, 이미 어지간한 마탑주 급이구만!”
“어쩌면 저거, 마력 폭주 상태일 지도…….”
“뭣!? 그럼 이러고 있을 때냐!? 곱등이 저거 지금 심각한 상태 아니냐고?”
아직도 희뿌연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세논이 불안한 낯빛으로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이 빌어먹을 흙먼지들부터 치우자. 스트롱 윈드(Strong wind)!”
휘오오오오오오!
한줄기 마나에 반응하여 때 아닌 강풍이 휘몰아쳤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이내 그들의 눈앞에 드러난 광경은…
“……!”
없었다.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딱 한 사람만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새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그 어마어마한 마력도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이게 대체…?”
“대장! 제자는 내가 잠시 데려간다!”
“…이 목소리는… 에이스!?”
한 손으로는 세타를 옆구리에 끼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그려 쥔 에이스가 유려하게 허공을 휘돌았다.
그리곤, 디자이어와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사뿐히 착지했다.
“위험한 상황이었던 거 맞지? 오자마자 깜짝 놀랐지 뭐야. 사랑스러운 우리 제자를 위협하는 검기라니!”
“걔, 걔는 어때? 괜찮은 것 맞지?”
“눈이 아예 헤까닥 한 것 같아서 잠시 기절시켰는데, 내가 괜한 짓을 한 건가?”
“…아니… 잘했어. 오랜만에 한 건 했다, 너.”
이윽고 세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변태 곱등이! 걔 데리고 얼른 자리부터 피해!”
“엥? 피하라고? 그럼 머릿수가 안 맞을 텐데…….”
“버티고 있을 테니까 지원군을 데리고 오란 뜻이다, 이 똥멍청아! 멀지 않은 곳에 해방군의 병력이 있잖아!”
“아하. 진즉 그리 말해줄 것이지.”
이제야 알겠다는 듯, 반라의 에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버틸 수는 있는 거지? 그 대단하신 빛의 마녀와 마탑 제일의 괴물이시니까.”
“잡담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그럼 사양하지 않고.”
스팟!
순식간에 에이스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디자이어가 인상을 찌푸렸다.
“…서큐버. 뒤는 부탁하지.”
“쫓을 생각이야?”
“저 녀석은 놓칠 수 없다. 내 자존심에 금이 가게 만든 이 세상 유일한 존재니까.”
“좋아. 그럼 내 복수도 대공에게 대신 부탁할게.”
한차례 고개를 주억인 디자이어가 곧장 땅을 박차려 할 때였다.
“잠깐!”
“……?”
뒤쪽에서 누군가 빠르게 접근했다.
“나도 같이 가겠다.”
“…바람의 마탑주?”
“머릿수 맞추기 정도로 생각하지. 저쪽도 둘이니까.”
허나, 디자이어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우리를 믿지 않는 거군.”
“부정은 하지 않겠다. 애당초 신뢰 관계가 형성될 수 없는 사이가 아니던가? 원래 기운에 민감한 우리 마법사들은, 마기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니까.”
“우릴 보낸 게, 당신네들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황제라도 말인가?”
“그러니 더더욱 함께해야지. 혹시나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이해는 한다. 한 짓들이 있으니, 다른 이들도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겠지.”
“시비 거는 건가?”
“다만, 솔직한 점은 마음에 든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디자이어가 이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까딱였다.
“마음대로 하도록.”
“화끈해서 좋군.”
그리 말한 둘이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넷.
“…세논. 안 쫓아가도 되겠어?”
“에이스는 쉽게 당할 놈이 아니야.”
“나중에 괜히 후회할 일 만들지 말라는 거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부하를 믿어주는 것도 상관으로서의 도리겠지. 그보다 저 넷 정도면 버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 저기 헐벗은 암컷 곱등이의 최대 능력치를 알 길이 없으니.”
힐끗, 서큐버 쪽을 바라본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다시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예의 마을이 있는 방향이었다.
“음…….”
그곳은, 지독스럽게도 조용했다.
인기척은커녕 그 흔한 새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른 몇 가지 요소들이 하나의 결과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 묻어 있는 검붉은 자국이며, 일부 깎여 나간 주택의 외부.
결정적으로, 은은하게 코끝을 찌르는 비린 내음까지…….
“…다 죽인 거냐?”
이내 시선을 거둔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물었다.
세논과 에반젤린조차 한껏 표정을 굳혔다.
그 서늘한 시선을 받으며 서큐버가 아닌 남은 세 마탑주 중 하나가 답했다.
“끌끌… 그러게 도망치지 말지 그랬나?”
얼굴에 검버섯이 핀 노인.
달리 조합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그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꾸했다.
“간다르 테이들러. 아예 괴물이 되기로 작정한 거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민간인들을 상대로, 이토록 끔찍한 학살을 자행하다니!”
“대의에는 언제나 소의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
“대의? 대체 무엇이 대의란 말이오!? 당신들의 추악한 욕망을 채우는 게 정녕 대의라고 할 수 있소?”
“끌끌…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결국 도태되기 마련. 그건 사람뿐만 아니라 조직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을 한 것뿐이다.”
“이 미친 노인네가… 그딴 궤변으로 네놈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겠다는 거냐!?”
“제국은 결국 대륙을 정복할 것이다. 바야흐로 대통일 제국이 탄생하게 되겠지.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나 해대며 훼방을 놓는 이들은… 없는 것만 못하다.”
“……!”
“그러니,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라. 그대들은 위대한 첫걸음의 자양분이 되는 거다. 우리는 그 희생을 잊지 않을 테니… 끌끌.”
말을 마친 간다르 테이들러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직후, 이번에는 지극히도 냉막한 인상의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에르사 아인하르트.
빙결의 마탑주였다.
“초월의 마탑주님은 그렇다 치고… 에반젤린. 당신은 어째서 거기에 있는 거죠?”
“…….”
“나는 지금껏 당신이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
“다른 걸 다 떠나, 당신은 중립파시잖아요? 제국에 딱히 호의는 느끼지 않겠지만, 악감정이랄 것도 없으실 텐데요. 당신은, 특정 나라가 아닌 ‘방랑자’ 출신이니까.”
한데, 이후 에반젤린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그 말대로야.”
그녀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천천히 마을 방향으로 걸어가기까지 했다.
“에, 에반젤린?”
이 충격적인 상황에 아락시아 페르잔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쟤 지금 배신한 것 맞지?”
“…….”
“이 미친… 넌 대체 그동안 인간관계를 어떻게 쌓아온 거야?”
“아, 아니.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져 봐야…….”
움찔.
순간 무언가를 발견한 아타락시아 페르잔의 동공이 좌우로 요동쳤다.
“…준비해, 세논.”
“뭐?”
“아무래도 우리가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이거든.”
“……!”
바로 앞의 사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그가 곧장 튀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에르사! 물러서라!”
이변을 감지한 간다르 테이들러가 고함쳤다.
허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둘은 내가 데려갈게요, 페르잔. 나머지는 부탁해요.”
우우우웅!
에반젤린의 목소리와 동시에, 마치 무지개를 연상케 하는 형형색색의 빛무리가 순식간에 둘을 집어삼켰다.
그녀의 주력은 환상(Illusion).
일단 에반젤린의 마력에 휘어 감기면, 설령 마탑주라도 그 가상의 영역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
순식간에 내려앉은 고요한 침묵 속.
“…이걸로 이 대 삼. 체면이 있지, 이 정돈 우리가 해결해 줘야겠지?”
“사실은 멋있는 여자였군.”
이윽고 두 사람이 한껏 마나를 끌어올렸다.
***
“음…….”
흐릿했던 시야에 점차 초점이 맞춰져 간다.
나, 기절했던 건가?
익숙한 기운이라 무시했는데, 그게 그대로 목 뒤를 가격했던 모양이다.
“정신이 드냐?”
“…스승님?”
“괜찮으면 네 발로 서 봐라. 아무래도 이쯤에서 멈춰서야 할 것 같거든.”
“그게 무슨…?”
“짐짝 하나 업고 도망치는 게 여간 쉽지가 않네. 싸울 순 있지?”
“……!”
그제야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싸워?
그랬지, 나는 분명 그 사내와…
“느껴지는 기운은 나만큼이나 날카롭게 벼려진 예기가 하나. 그리고, 너 같은 먹물이 또 하나.”
“그거 설마…?”
“아마 네 원수랑 마탑주 중 하나인 것 같거든?”
“…….”
순간 내 눈이 깊게 침체되었다.
차라리 잘됐다.
여기서 그놈을 처리하고, 복수를 하는 거다.
그리 마음을 다 잡고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는데…
“잠시 버텨주는 건 가능하겠지?”
“…예?”
“원수고 뭐고, 마법사는 마법사끼리 싸우라는 뜻이야. 검사는 검사끼리 놀 테니까. 그쪽부터 빠르게 제거하고 도와줄게.”
말은 그리하고 있었지만, 나는 보았다.
직후 에이스 스승님의 이마 위로 흐르는 식은땀을.
아마 스승님도 그 사내의 강함을 본능적으로 느끼시는 거겠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엉…?”
“그 반대로 하시죠. 제가 먼저 상대를 쓰러뜨리고 스승님을 도와드릴게요.”
“…….”
이 의외의 발언에, 한참이나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스승님.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신다.
“그것참, 든든한 제자로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