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테라 반란군(2)
저벅, 저벅, 저벅.
우리는 인버스 가문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영지 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직도 기절해 있는 바이커는, 가문의 마법사에게 업힌 채였다.
참고로 지금 내 손가락에는 무척이나 영롱한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예의 사파이어 빛으로 반짝이는, 세련된 그것.
던 링이다.
“그거 나 줘.”
한데, 염치도 없는 호구가 이런 말 따위를 해댄다.
“분명 성격이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양아치세요?”
“양아치가 아니라, 당연한 요구 아니니?”
“엥?”
“난 너한테 투자를 한 거지, 기부를 한 게 아니야. 그럼 나한테도 돌아오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과연, 듣고 보니 그랬다.
내가 실비아를 너무 호구로만 봤던 모양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얘는 해방군 제일의 참모라고 했는데…
‘…라곤 해도, 줄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내가 그제야 힐끗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바싹 다가붙은 실비아가 곧장 제 손을 내민다.
“줘.”
“이건 내 거야. 그리고 투자에 대한 이익이라면 이미 충분하잖아?”
“이익?”
“나라는 인재는 물론이고, 자유 연합에 그 대단한 마탑주님들까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엄청난 전력을 얻게 되었으니까.”
내 뻔뻔한 대답에 실비아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첫 번째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 이유는 전혀 납득이 안 가는데. 그게 모두 네 덕이라고?”
“말해 뭐해.”
“하? 기도 안 차서. 사실은 내가 아니라 네가 양아치였구나? 아카데미 때부터 알고야 있었지만.”
무어라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이었다.
허나, 의외로 실비아는 그 이상 던 링에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좋아. 그거 너 줄게.”
“…어? 이렇게 순순히?”
“어차피 나한테는 필요도 없는 물건이니까. 대신, 조건이 있어.”
“그럼 그렇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고, 일단 그 던 링부터 활성화해 볼래?”
“네네.”
일단은 실비아의 말에 얌전히 따랐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마침 나도 시도해 보고 싶던 참이었으니까.
우우웅!
직후, 내 마나에 링이 반응했다.
손가락 마디보다도 작던 그것은 이내 푸른빛이 되어 내 전신을 감싸 안았으며.
화아악!
“…….”
마침내 빛이 사라졌을 때, 나는 완벽한 고위 마법사로 변모해 있었다.
푸른 로브는 일견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때깔을 지녔다.
그 테두리를 수놓은 금빛 가루는, 거기에 세련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로브의 등판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대현자들이나 사용하는, 떡갈나무 스태프 한 자루가 오롯이 자리해 있었으니까.
“오호…….”
“제법 어울리는군. 그것도 내장된 마법인가? 남의 옷인데도 그리 몸에 딱 맞는 걸 보니.”
유리나와 루나가 차례로 짤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연히 내 어깨도 치솟아 올랐다.
“이거면 됐어?”
“그래. 그거면 됐어.”
“…진짜 이게 다라고?”
순간 내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단언컨대 내가 아는 실비아 스필 세드릭은 이만큼이나 친절한 여자가 아니었다.
대체 무슨 꿍꿍인 걸까?
속내는 금세 드러났다.
“오늘 하루 동안만 그 로브를 계속 착용하고 있어주라.”
“…다시 말해, 이걸 착용한 채로 해방군 진영까지 들어가라는 뜻이야?”
“응. 간단하지?”
간단하기는 지랄…….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새어 나올 뻔했다.
지금도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고 있는 마당이다.
물론 그 전부가 인버스 가문의 마법사들이었다.
만약 실비아의 말에 따라 이 꼴로 해방군 진영에 진입하게 된다면…
‘…백이면 백. 절대로 좋은 대접은 못 받겠지.’
아니, 좋은 대접이 뭐냐.
높은 확률로 인버스 가문의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힐 것이다.
“훗.”
점차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영 호구는 아닌 모양이다.
***
해방군의 본거지는 레이브 영지령 내에서도 가장 큰 도시에 자리해 있었다.
그래 봐야 이곳은 작은 마을까지 다 합쳐도 여덟밖에 되지 않는 중소 규모의 영지였지만.
먼 옛날, 이곳을 둘러싼 레이브 강은 원래 하나의 거대한 호수였다고 한다.
빙하가 침식하여 만들어진 레이브 지형에 물이 고이면서 어마어마한 넓이의 호수가 된 것이다.
그 규모는 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이후 퇴적과 침식,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을 두루 거치면서 호수 절반이 육지로 떠오른 특이한 지역이다.
덕분에 지금은 레이브 강이라 불리는 기다란 물길이, 해방군의 중요한 방파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고.
딱 여기까지는 외적인 부분에 대한 내 감상평이었고,
“…….”
지금 막 영주성의 정문을 통과했다.
안으로 들어선 나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 흔한 환영 인사조차 없었다.
분명 그 사이에는 세논 스승님과 초월의 마탑주님도 함께 계셨음에도.
“네 제자, 어쩌려고 저러냐?”
“…몰라.”
“저거 인버스 가문 혈족들 전용 로브 맞지? 설마하니 갑자기 라인을 갈아탔을 리는 없을 테고. 애 삥이라도 뜯은 거 아냐?”
“어허, 나는 쟤 모른다니까? 괜히 오해받아서 불똥이라도 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자세히 보니 나도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긴 해.”
저 두 사람은 자신들의 대화가 안 들릴 거라 생각했겠지만, 내 귀에는 무척이나 잘 들린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근데 너무들 하시네.
아예 모르는 체하려고 작정하신 듯한데.
그거야말로 어림도 없지.
“…흐읍.”
직후, 나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켰다.
환영 인사를 겸해서.
무사히 복귀했다는 보고까지 동시에 하기 위해서.
“스승니이이임! 초월의 마탑주님! 저 돌아왔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
“……!”
구태여 마나까지 쓰지는 않았지만, 오래전에 변성기를 지난 내 목소리는 너무도 우렁찼다.
순식간에 영주 성 전체로 번져 나갈 정도로.
“저 미친…….”
가장 먼저 스승님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친 내가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바로 그때.
“가주님들을 뵙습니다.”
“……!”
거짓말처럼, 내 뒤에 도열해 있던 사람들이 예를 갖췄다.
한쪽 무릎을 꿇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테라 특유의 예법이었다.
인버스 가문의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루나나 유리나, 실비아까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그 선두에 한 중년 사내가 있었다.
“…무사히들 돌아왔구나.”
마치 여우를 연상케 하는 중년의 귀족이었다.
얼떨결에 예를 갖추던 내가 조심스레 시선을 들었다.
딱 겉으로 티는 나지 않을 정도로만.
얼핏, 가슴 부근이 시야를 스쳤다.
문제는 그곳에 있는 문양이었다.
‘내가 착용한 로브의 문양과 똑같잖아…?’
상대의 가슴팍에 떡갈나무 스태프 한 자루가 자그맣게 수놓아져 있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저 사람이다.
바이커의 아버지이자, 해방군의 핵심 인물인 메이저 론 인버스 공작.
“분명 그쪽의 친구가, 예의 자유 연합주의 제자라는…….”
그 말과 동시에,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 흠모해마지 않는 인버스 공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가 구면이던가?”
“아니요. 허나, 테라 왕국 사람이 인버스 공작님을 모른다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
나는 봤다.
상대의 입가가 미묘하게나마 씰룩이는 것을.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실비아의 저 골 때리는 듯한 표정은 덤이다.
“…인물만 훤칠한 줄 알았는데 아부도 잘하는군.”
“아부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진심인데요.”
“허, 그 친구 참…….”
현재 해방군 내에서 인버스 공작이 실세임은 분명했다.
좋든 싫든, 가까이 지내서 나쁠 건 없다는 의미다.
초면에 괜한 적대감을 보였다가 무슨 불이익을 당할 줄 알고?
혹여나 뒤통수를 칠 낌새가 보인다면, 그때 가서 내가 먼저 후려치면 그만이다.
“한데, 내 눈이 이상한 건가? 자네가 입고 있는 로브는 분명 우리 가문의 물건인 듯한데…….”
다만,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이커는 아직도 정신을 잃고 있는 상황이기에, 결국 내가 직접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이커와 내기를 했습니다.”
“내기?”
“예. 다짜고짜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길래, 힘으로 데려가 보라고 했더니… 보시다시피 젊은 혈기에 이런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아, 명하신다면 이 로브는 지금이라도 돌려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애들 싸움이니까요.”
“…그러니까, 결투의 내기로 바이커가 던 링을 걸었다?”
“넵. 그 말씀대로입니다. ‘가문의 명예’까지 운운하며 반지를 걸었는데, 이건 저라도 받지 않을 도리가 없겠거니 싶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대(大) 인버스 가문이니까요.”
“…….”
상대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사실관계는 추후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가문의 명예까지 거론된 마당에 던 링을 내놓으라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고작 그깟 아티팩트 하나가, 가문 전체의 위상과 비견될 수는 없었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한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인물이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바이커는 5써클 마법사다. 혹시라도 너 따위 낙제생에게는 절대로…!”
“…실례지만 누구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크리스 론 인버스다.”
웬 잘생긴 사내가 가슴을 펴며 말했다.
아하.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바이커의 형이었군.
한때는 제노스와 테라 최고의 천재로 쌍벽을 이루었던.
실제로 그와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인 듯싶다.
내가 럼프와 전투를 벌일 때도, 그는 이미 유리나에게 업혀 실려 가던 와중이었으니까.
“크리스. 물러나라.”
“아, 아버지. 하지만…….”
“공석이다.”
“…공작 각하.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어찌 저런 아이가 바이커를…….”
“너야말로 어울리지 않는구나. 언제는 동생 따위는 없다면서 목에 핏대까지 세우더니.”
“…바이커는 이제 변했습니다. 누구보다 가문을 위해 노력하는 자랑스러운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이 이상 보고 있기가 힘듭니다.”
“호오…?”
눈꼬리가 휘어가는 인버스 공작에게서 애써 시선을 거두며 크리스가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실비아. 네가 한번 얘기해 보거라. 이 아이가 정말로 바이커를 꺾었느냐?”
“진실을 알고 싶으신 거라면… 네. 누가 봐도 확실하게 무릎 꿇렸죠.”
“…뭐라고?”
“쓴 마법이라고는, 단거리 텔레포트 하나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마나가 담긴 주먹질 한 방. 그걸로 승부는 끝이었어요.”
“……!”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차 커져 갔다.
특히 크리스의 반응이 볼만했다.
“다, 단거리 텔레포트?”
더듬거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말도 안 된다. 그 말은…….”
“예. 세타 쿤 이그니스는, 누가 봐도 확실한 6써클 이상의 마법사였습니다.”
“…….”
좌중은 순식간에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초기의 기선제압.
아무래도 실비아의 진짜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
작은 해프닝 이후.
나는 곧장 접객실로 안내되었다.
그래도 인정은 있는 건지, 해방군 쪽 사람들은 내게 가장 먼저 지인들과 해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배려를 해줬다.
물론,
따아악!
그 배려가 딱히 원했던 종류의 것은 아니었지만.
“으아아아…….”
내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이마를 문질러댔다.
그 앞에서, 세논 스승님이 또 한 차례 주먹감자를 들이 미신다.
“이 쉐끼 이거, 물귀신이야, 뭐야?”
“아니이… 제자가 곤경에 처하면 당연히 구해주셔야…….”
“아직도 입이 살았냐?”
“죄송합니다.”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더 맞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인버스 가문이다. 안 그래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진짜 어쩌려고 그랬냐?”
“그래도 잘 해결됐지 않습니까아.”
“해결되긴 개뿔이…….”
“그, 근데 골치 아픈 일이라뇨?”
빠르게 화제를 전환하는 나를 향해, 한편에서 가만히 바라보던 초월의 마탑주님이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다.”
“이게… 뭔가요?”
“직접 봐. 참고로, 저 인버스 공작조차 모르는 극비가 이 안에 들어 있으니까.”
“……!”
직후, 내 시선이 서신을 향했다.
봉인지가 뜯긴 그것 위에, 선명하게 날인된 하나의 문양이 가장 먼저 시야로 들어왔다.
“마탑…?”
이내 내 손에 그 알맹이가 딸려 나왔다.
나는 빠르게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수신지는 아타락시아 페르잔.
내용은 실로 간단명료하기 그지없었다.
“더 이상 도망치지 마라. 제2, 제3의 피해자를 만들지 마라. 너희와 엮이는 자들은, 그 누구라도 전부 말살시킬 테니…?”
뭐야, 협박 편지였나?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이걸 어떻게 알고 보내왔대요?”
“우리가 레이브 영지로 도망친 것을 이미 저들도 알고 있으니까. 만약 이게 인버스 공작의 손에 먼저 들어갔다면, 그대로 영지 바깥으로 쫓겨났겠지.”
“따로 생각해 둔 바는 있으신 거죠?”
“없지.”
“예에!?”
“일단 우리만 조용히 국경지대로 오라는데… 안 갈 수도 없는 상황이야. 뒤쪽에 보면 알겠지만, 안 오면 인질이 된 두 마탑주를 죽이겠다니까.”
과연 그 말대로, 배신자 스실라… 어쩌고 하는 끔찍한 내용이 뒷면까지 이어져 있었다.
“해, 해방군에 도움을 요청하시는 건 어때요?”
“상식적으로, 부상당해 쓸모없는 마탑주 둘과 그나마 멀쩡한 마탑주 둘. 고작 그만한 전력을 얻자고 마탑 전체를 적으로 돌리려 하겠냐?”
“그러니까, 고작 여섯 마탑주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둘밖에 안 된다는…?”
“아마도 블레어 마탑주까지 행차하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 혼란스러운 탑을 바로잡을 인물은 그밖에 없을 테니까. 하기야 나머지 다섯 마탑주만으로도, 이쪽의 승산은 희박하지만…….”
“이쪽의 멀쩡한 둘은 누군데요?”
“나랑 환상의 마법사 에반젤린. 기실, 이것도 저쪽에서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우리 둘을 잡기 위해 국경지대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탑주는 최소 넷은 되겠지.”
“…….”
최소 전력이 마탑주 넷.
그 외에 또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을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걸 계산해서 넷의 마탑주만 보낸 거라면…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예 승산이 없지는 않을지도…?”
“뭐? 너 방금 뭐라고…….”
“마탑주는 아니라도, 마탑주 급은 여기도 있잖아요.”
“뭔 헛소리…?”
순간, 말을 잇던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움찔 몸을 떨었다.
직후, 스승님과 내 스스로를 번갈아 가리킨 내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내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탑주한테도 꿀리지 않는 두 명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