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14화 (114/251)

114화. 테라 반란군(1)

“…….”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지간히도 내 발언이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테라 왕국 내로 한정하여, 나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한낱 아카데미의 만년 낙제생에 불과할 테니까.

“나라를 떠나 있는 동안 허세만 키워온 거냐?”

“그런 말을 너한테 들으니까 좀… 아니, 많이 낯설다.”

“……?”

“허세하면 바이커 론 인버스. 네가 최고였잖아? 나 없으면 꼴등이었을 주제에, 제노스 델 카이클이 평생의 숙적이니 뭐니.”

“…….”

내 말에 바이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작,

“…풋.”

뒤에 정렬해 있던 마법사 아저씨가 실소를 터뜨렸을 뿐이다.

저런 반응, 나는 이해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둘의 홈그라운드니까.

실제 실력의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갭은 하늘과 땅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여기서 조금 더 자존심을 긁어볼까?

“거봐라. 거기 너희 가문 아저씨들도 인정하는 분위긴데?”

“커흠.”

최초 실소를 터뜨렸던 아저씨가 연신 헛기침을 해댄다.

직후, 바이커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러셔?”

“힘으로 데려가 보라고 했나? 하면, 네 소원대로 해주마. 너 따위는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

당첨이었다.

역시 저 녀석은 바보다.

혹시나 말을 바꿀세라 내가 재빨리 반응했다.

“세상에. 그 대단하신 바이커 론 인버스 님께서 나 따위를 직접?”

“비아냥거리지 마라. 옛정이고 뭐고, 회생 불능으로 짓뭉개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

잠시 바이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보던 내가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자신 있으면 한번 해보시던가.”

***

그 시각.

열 평 남짓한 방에서 자유 연합주인 세논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데, 그 손님이 결코 그녀 못지않은 인물이었다.

“페르.”

“…마음대로 줄여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너무하네. 스실라 씨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그 사람은 내 이모뻘이야. 넌 내 또래고.”

“쳇.”

세논이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저런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애칭으로 부르지 말라니.

세간에서 초월의 마탑주로 더 유명한 그녀의 친구는, 역시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이 야심한 밤중에 내 방에는 어쩐 일이야? 혹시…….”

“그만. 벌써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지도 이틀이 지났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나 해서 찾은 것뿐이다.”

“뭐가 이상한데?”

“제국도, 다른 타국도. 절로 의문이 들 정도로 조용하지 않나? 그만한 인질들을 손에 넣었다면, 분명 지금쯤 뭐라도 반응이 있었을 텐데…….”

“일단 그쪽은 신경 끄라니까 그러네. 집안이 평탄해야 바깥일도 도모할 수 있는 법이야. 돕기로 마음먹었으면, 이 지긋지긋한 내전부터 먼저 종식시켜 달라고.”

“…….”

그럼에도 페르에게서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세논이 이내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어때?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기분은.”

“…별로. 이미 수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오히려 네 제자가 더 인상적이더군.”

“내 제자라면… 세타?”

“그래.”

“걔야 뭐, 나조차 능가하는 괴물이니까.”

“…….”

직접 보기 전이었다면 당장에 헛소리로 치부했을 테지만, 지금의 아타락시아 페르잔은 저 말을 지극히 공감했다.

그가 본 친우의 제자는 지금껏 본 그 어떤 곱등이보다 특별하고, 뛰어났으니까.

“이제 슬슬 본론을 말씀하시지?”

그 순간, 눈빛을 가라앉힌 세논이 말했다.

“빙빙 둘러 가지 말자고. 우리 사이에.”

“…….”

잠시 머뭇거리던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마탑에서 크루노 님의 손녀를 봤다.”

“아하. 그러고 보니, 전대 화염의 마법사는 너랑도 친분이 있었던가?”

“내게는 친형과도 같은 존재였지. 탑에서 괴물 취급이나 받던 나를, 같은 왕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지간히도 챙겨줬으니까. 귀찮을 정도로 말이야.”

“그 손녀 이름이 분명… 유리나. 유리나 벤 아리에나였던가? 그래서 그 혈육에게 은혜라도 대신 갚아주려고?”

“그런 마음이었다면 진즉 마탑에서 그리했겠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세논의 반문에, 그제야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자세를 바로 했다.

“너와 나, 그리고 그 아이까지. 우리 세 사람은 하나의 공통된 원수를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을 하려는 거다.”

“…….”

“그 아이는 제 조부를. 너는 가족을. 나는 일생에 걸쳐 이룩한 모든 것을 빼앗겼지.”

지금이야 세논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에는 ‘빛’을 다루는 마법사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락사스’라고 칭했으며, 대륙인들은 달리 빛의 일족이라고도 불렀다.

아락사스들은 같은 나라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한곳에 모여 살았다.

인원도 소수였기 때문인지, 머지않아 그들은 서로를 가족으로 인식했다.

장장 한 세기 가까이.

한데,

“그런 아락사스를 몰살시킨 건, 블레어 마탑주를 위시한 여섯 마탑주. 그리고 제국이었지.”

“…결론만 간단하게 말해.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어느새 세논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그들이 아락사스를 몰살시킨 이유. 이제는 확신이 들지 않나?”

“확신?”

“당대의 대륙에 사제는 이미 유명무실하다. 흑마법사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제국은 신전의 필요성을 부정했지. 인간 위에 그 어떤 존재도 없다면서.”

“…….”

“만약 신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그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지고한 황제의 위엄에 금이 간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정말로 고작 그런 이유가 전부라고 생각하나?”

“아니라는 거야?”

“하면, 관점을 다르게 보고 생각해 봐라. 세상에서 사제와 아락사스라는 존재가 사라졌을 때,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이들이 누구일까?”

“……!”

직후, 세논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제국? 사제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목적이 황제의 신격화라면 구태여 아락사스들은 건드릴 필요도 없었다.”

“…….”

“그러니,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건 흑마법사들이겠지. 더 포괄적으로는 마왕이나 마족과 관련된 악의 종자들.”

“…….”

“그 대표적인 이들이 지금 대륙에서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잖아?”

한참이나 말이 없던 세논이 그제야 씹어 내뱉듯 중얼거린다.

“칠악…….”

“저번에 네가 편지를 통해 얘기했지? 2황자가 마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

“나도 동의해. 칠악은 지금 제국의 편에서 싸우고 있으니까. 한데, 2황자가 그 둘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거라면…….”

찰나, 말끝을 흐리던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눈을 빛냈다.

“모든 앞뒤 정황이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

순식간에 자그마한 결투장이 만들어졌다.

누가 나서서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인버스 가문의 마법사들이 뱅하니 나와 바이커를 둘러쌌다.

그리고,

“킥킥…….”

그 한쪽에서 루나와 유리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는 개뿔.

서로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화를 나누기 바빴다.

오히려 실비아가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참나. 아무리 그래도 응원 정도는 해줄 것이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내가 이내 정면을 바라봤다.

“바이커. 그냥 붙는 건 재미없으니까, 우리 내기나 하나 할까?”

“…내기?”

“사실 예전부터 꼭 갖고 싶었던 물건이 있거든. 너도 나름 공작가의 자제이니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

“무슨…….”

“던 링.”

“……!”

순간 바이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던 링이란, 일종의 장비 변환 아티팩트였다.

손가락 마디만 한 반지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링은 순식간에 착용자의 신체를 보호한다.

이것도 기사들과 마법사 전용으로 각기 차이가 있었다.

기사의 던 링은, 마법 저항력을 대폭 늘린 마갑으로.

마법사의 던 링은, 로브로 바뀌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 게, 마법사는 순전히 멋을 위해 로브를 착용한다고 생각하는 점이었다.

허나, 이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가난한 사람들이야, ‘나 마법사요’ 하고 티라도 내보려고 로브를 착용하는 일이 더러 있었지만.

적어도 돈 많은 고위 마법사들은 달랐다.

대륙에는 마나 명주라는 특별한 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걸 짜서 만든 로브는, 황금 수백 킬로그램을 줘도 못 사는 어마어마한 아티팩트로 변모했다.

무려 마나의 순환력을 상향시켜 주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대귀족들조차 이런 던 링을 세 개 이상 소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보통이 세 개니까, 가주와 그 직계 혈족들 정도?

참고로 인버스 가문은 아들만 둘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다.

“…내가 던 링을 걸면, 너는 뭘 걸 거지?”

“있긴 있다는 소리네?”

바이커가 말없이 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필이면 그게 중지여서 그 불순한 의도가 심히 의심되었지만, 그곳에 끼워져 있는 것은 분명한 던 링이었다.

사파이어처럼 푸르게 빛나는 그것은, 누가 봐도 영롱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난다.

‘어차피 내가 이길 거지만, 일단 구색은 맞춰줘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녀석이 혹할 만한 물건이 지금 내 손에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리스의 목걸이는 장난으로라도 걸 수 없었다.

피치 못하게 이것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돈은 아예 빈털터리나 다름없었고.

최소한 같은 급으로 내걸어야 녀석도 수락할 터인데…

‘…가만, 같은 급?’

순간 머릿속을 번뜩이며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끼기기긱.

직후 내 고개가 등 뒤로 돌아갔다.

투명한 두 은안이 거짓말처럼 나와 딱 하고 마주쳤다.

이건 운명이다.

그리 생각하며 내가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뭐, 뭐야, 그 재수 없는 웃음은? 팔에 소름이 돋았잖아!”

“실비아. 우리 친구 맞지?”

“갑자기 뭔 개소리야!?”

“그게 아니라, 친구로서 투자를 좀 받고 싶어서.”

“투자…?”

실비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너도 가지고 있지? 던 링.”

“……!”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실비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너는 진짜…!”

“나 믿지? 걱정일랑 접어두라고. 반드시 이길 테니까.”

예나 지금이나, 실비아는 내게 무척이나 고마운 친구이자 호구다.

***

“별 미친…….”

바이커는 진심으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설마하니, 자신을 예전의 그 꼴통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3년이라는 시간은 실로 많은 것을 뒤바꾸어 놓았다.

어느덧 바이커는 스물을 앞둔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해방군 내에서도 제법 높은 위치까지 올랐다.

물론 거기에 가문의 후광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절반은 내 실력이다.’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인버스 공작은 혈육이라고 함부로 자리를 맡기는 인물이 아니다.

흔히들 얘기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그 철혈의 공작이 바로, 바이커의 부친인 인버스 공작이었다.

뒤늦게 한계를 뛰어넘고자 누구보다 더 노력했다.

숱한 위기는 물론이고,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 지옥 같은 과정을 모두 마쳤을 때, 바이커는 마침내 5써클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지를 이룩해 냈다.

기실,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스물 이전에 5써클에 오른 이는 그의 친형이나 실비아, 유리나, 제노스 같은 천재들을 모두 포함해도 왕국 전체에서 열을 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저놈은 내 밥이다.

‘어떻게 끝장내 줄까?’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바이커의 주력은 얼음.

일단 빙결 감옥으로 가두어둔 다음, 동사 직전까지 피를 말려 무릎 꿇릴까.

그도 아니면, 얼음의 송곳니들을 의도적으로 스치도록 맞춰 전신을 피 칠갑으로 만들어 버릴까.

아예 사지 하나를 꿰뚫어 평생 불구로 만드는 것도 좋겠지.

“그럼, 시작!”

순간 심판을 자처한 실비아가 목청을 높였다.

허나, 바이커는 그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아직도 세타를 어떻게 패배시켜야 좋을지 줄기차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한데,

뻐-억!

그 순간, 하늘이 보였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분명 전방에서 접근하는 저 꼴통 놈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

“뭔 놈의 생각을 그리 오래하냐?”

“…….”

순간, 하늘 앞으로 예의 놈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뿐만 아니라, 몸에서 피라는 피는 모조리 빠져나간 사람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그런 와중에, 재차 녀석의 밉살스러운 목소리가 귓속으로 틀어박혔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더라. 쳐 맞기 전까지는.”

“…뭔…….”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이내 바이커의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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