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08화 (108/251)

108화. 테라 해방군(1)

골든 버드 상단의 둘밖에 없는 대행수.

란돌프는 지금 무척이나 초조했다.

상행을 나갔던 호송대와 연락이 끊어졌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겨울 모피 따위를 싣고 자이툰 왕국으로 향한, 그저 평범한 호송대 중 하나였으니.

문제는 그 구성원에 있었다.

이번 상행에는, 무려 아가씨께서 직접 동행하셨으니까.

“제발, 제발…….”

바로 어제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나 잘못되셨으면 어쩔까.

누군가 납치하여 인질극이라도 벌이는 건 아닐까.

아니, 차라리 금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다행이었다.

돈이 목적이라면 적어도 목숨은 무사하실 테니까.

그러던 차에, 연락을 받게 된 거다.

“아, 아가씨!!!”

저 멀리서, 홀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아가씨로부터.

“뭣들 하나!? 당장 아가씨를 마중 나가지 않고!”

“명 받들겠습니다!”

“오, 신이시여. 정말로 무사하셨군요.”

감격에 겨운 나머지 란돌프는 눈물까지 줄줄 흘려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상행에 아가씨를 포함시킨 최종 결재권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상단주이며, 왕국의 공작이기도 한 그의 주군은 본연의 업무만으로도 무척이나 바빴다.

하여, 현재 상단 내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는 모두 그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란돌프 아저씨!”

“아가씨! 대체 지금껏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정말로, 저는 정말로 아가씨가 잘못되신 줄로만 알고…….”

“아이참. 왜 또 눈물을 흘리고 그래요. 어린애도 아니고.”

“그치만… 그치만…!”

“그보다, 조금 큰 문제가 생겼어요.”

지금 막 무리 앞에 당도한 레베카가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나간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호송대를 습격한 게, 그 무시무시한 칠악이라고요?”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요. 지금 당장 아버지를 만나 뵈어야겠어요. 통신용 수정구로는 반응이 없으시던데, 혹 자리를 비우신 건 아니죠?”

“아마도… 지금쯤이면 폐하를 알현하고 계실 겁니다.”

“폐하요?”

순간 레베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얘기는 전혀 못 들었는데.

“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폐하께서 주군께 따로 시키신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역시 두 분은 눈치채고 계셨던 거군요.”

“예? 그게 무슨…….”

“자세한 건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말을 마친 레베카가 힐끗 뒤를 돌아봤다.

이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물이 나는 숲 방향이었다.

허나, 레베카가 찾는 이는 그곳에 없었다.

“…아쉽네.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

“란돌프 아저씨. 제가 말하는 곳으로 지금 당장 사람들을 보내주시겠어요?”

“그야 어렵지 않지만… 목적지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테라 왕국이에요.”

“예에!? 어, 어디라고요?”

“방금 들으신 게 맞아요. 그중에서도 해방군 쪽 사람들과 접촉해야 하는 일이고요.”

“……!”

란돌프는 지금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테라만 해도 의문인데, 이미 다 무너져 가는 해방군과 접촉을 하라니?

“용건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해방군에게 필요한 물자들을 조달해 줄 것.”

“그, 그건…!”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우리는 상인이니까요. 전쟁은 대대로 상인들에게 큰돈을 안겨줬죠. 진작 접촉을 시도했어야 하는 건데…….”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 일이라면 주군께서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애당초, 테라의 내전에 군수 물품을 팔지 않았던 이유는 괜스레 남의 싸움에 끼어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승리가 확실시되는 반란군도 아니고 해방군이라니…….”

“반란군이야말로 애초에 거래 대상으로는 탈락이죠. 이미 승리가 확실시되는 마당에, 뭣 하러 쓸데없이 전쟁 물자를 사들이려 하겠어요? 가뜩이나 내전 이후에는 전후(戰後) 복구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 텐데요.”

“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겁니다!”

란돌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지금으로서는 결국 두 세력 모두 무시하는 편이 최선의 선택이니까.

허나, 적어도 아가씨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그러니까, 반란군 쪽에도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주세요.”

“네?”

“대승을 미리 축하드린다고. 적들은 이미 궁지에 몰렸으니, 우리가 군수품을 파는 부분은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 달라고. 만약 이걸 눈감아 주신다면, 책임지고 해방군의 비자금까지 싹싹 털어 테라의 전후 복구에 ‘투자’하겠다고.”

“……!”

듣고 보니 실로 기가 막히는 묘안이었다.

군수품을 팔아 이익을 얻고, 그 일부로 상대의 환심까지 산다니.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닌가?

반란군 입장에서는 꺼릴 게 전혀 없는 제안이었다.

아니,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남은 비자금으로 괜히 국외에 독립군을 창설하겠다느니 설쳐 대면, 반란군으로서는 괜한 골칫거리만 또 안고 가는 셈이니까.

“대, 대단하십니다, 아가씨. 이 와중에 어찌 그런 생각까지 다 하셨습니까?”

곧 란돌프의 얼굴이 감탄으로 물들었다.

‘…조금 부담스럽네.’

다만, 정작 당자인 레베카는 내심 머쓱했다.

기실 이건 모두 그 아이의 계획이었으니까.

자신은 상단 내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푼돈에 눈이 멀어 밉보이지 말자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세타 쿤 이그니스라…….’

자연스레 그 매력적인 얼굴까지 떠올랐지만.

중요한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까 제 용건이 두 가지라고 말씀드렸죠?”

“예? 아, 예.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아가씨.”

완전히 태도가 바뀐 란돌프를 보며 레베카가 미소 지었다.

“사람을 한 명 영입하고 싶어요. 가능하면 꼭이요.”

“사람… 이요? 그야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돈이라면 썩어 넘칠 정도로 많으니까요.”

“저도 돈으로 회유되는 사람이면 좋겠네요.”

“네?”

“아무튼, 일단 자유 연합에도 저희 쪽 사람을 보내주시겠어요?”

“여, 연합이요?”

“뭘 물어보실지 알 것 같으니까 바로 대답해 드릴게요. 연합은 해체되지 않았어요. 단지 테라로 옮겨 갔을 뿐이죠. 외부로 파견을 나가 있는 여타 연합원들은 모두 해방군의 거점인 레이브 영지로 집결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해요.”

“그, 그런…!”

“거기서 제가 사람 한 명을 꼭 데려오고 싶어서요. 완전히 우리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면, 장기 의뢰를 해서라도요.”

레베카의 의지는 확고했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애당초 연합에서 하는 일들이 그런 종류의 것들이니까.

단기 의뢰는 용병 길드에.

장기 의뢰는 자유 연합에.

더욱이 연(年) 단위의 상주 경비 의뢰는 대부분 연합에서 도맡아 처리해 왔다.

하여, 레베카는 연합에 사택 경비를 의뢰할 생각이었다.

물론 특정 인물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하고서.

그리고 그 사택이란, 레베카 자신의 저택이 될 것이다.

“흠흠…….”

순간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괜히 헛기침만 해대는 레베카였다.

***

레베카와 작별한 그날 밤.

“이놈의 육포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검붉은 육포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유리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라 계속된 야영으로 어린 나이에 허리까지 쑤실 지경이었으니까.

“오늘은 침대에서 잘 수 있는 거냐?”

“글쎄.”

“한 번을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적이 없네. 말이라도 잘 수 있다고 해주라. 제발.”

“내가 또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이라서.”

“에휴… 그냥 말을 말자.”

한숨을 내쉰 유리나가 발치의 돌멩이를 ‘툭’ 걷어찼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테라의 국경지대가 보였다.

문제는 그 사이의 거리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가로질러야만, 저곳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진짜 아무것도 없군. 움직임이 다 노출되겠어.”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밤에 움직여야지. 루나, 대체 넌 실비아 그 계집애와 어떻게 국경지대를 통과한 거야?”

“테라에서 스란으로 이어지는 국경지대는 이곳과 달리 엄폐물이 제법 많았다. 얼마 안 가 바로 산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 그리 어렵진 않았겠다. 인정하긴 싫지만, 보조 마법 하나는 걔가 나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

유리나의 말대로였다.

아닌 게 아니라, 대륙에서도 보조 마법사는 흔치 않았다.

6써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는 고작 세 사람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마스터는 치유 보조로 특화된 스실라 씨 하나뿐이었다.

엄밀히 얘기하면, 그녀는 오리지널 마법사는 아니었다.

대륙에 몇 없는, 정령 마법사였다.

물의 최상급 정령과 계약한 그녀는 그 어마어마한 정령 친화력을 바탕으로 마나를 보다 빠르게 쌓았고, 결국 6써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다.

참고로, 이곳의 정령들은 계약하고 싶다고 쉽게 계약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엘프들을 제외하고.

최근 수년 간 인간과 정령이 계약한 사례는 채 천 건이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전 대륙을 통틀어도 정령 마법사는 삼천을 넘기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대부분이 하급이나 최하급 정령 마법사였다.

하여, 세간에는 치유의 마탑주가 하프 엘프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스실라 씨는 어떻게 됐을까?’

문득 걱정이 되었다.

마탑에서 가장 먼저 습격을 당한 이도 바로 그녀였으니까.

“나도 보조 마법이 그토록 편리한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과연 5써클 마스터는 다르더군.”

“…그럼 우리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되겠네.”

“……?”

두 여인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그녀들은 눈빛으로 ‘어떻게?’라고 묻고 있었다.

뭐, 일단 이 두 사람은 나를 천재로 완전히 각인한 듯하니…….

어느 정도는 솔직하게 말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실은… 내가 보조 마법에도 재능이 조금 있거든.”

“…….”

***

다시 수 시간 뒤.

달빛마저 완전히 구름에 가려진 깊은 밤.

사사삭.

비로소 우리의 행동이 시작되었다.

구태여 마나 스캔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눈으로도 적지 않은 인원이 평야를 순찰하고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

아마 국경을 가르는 목책 너머에는 더 많은 인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마 우리를 경계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야. 사실상 이곳 평야도 테라의 영토나 다름없으니까. 저 목책도, 혹시나 있을 마물들의 습격에 대비한 거겠지.”

“하긴, 어느 미친 인간이 검은 마물의 숲에서 나올 거라 생각이나 하겠어?”

부스럭.

바로 그때, 몇몇 인원들이 이쪽으로 다가선다.

우리는 재빨리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시간 한번 더럽게 안 가는구먼. 교대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지?”

“이제 30분 정도? 조금만 더 참자고. 마지막 근문데 끝나고 맥주나 한잔하던가.”

“아서라. 전시 상황에 괜히 걸렸다가 뭔 불호령을 들으려고?”

“전시 상황은 무슨… 이미 다 끝난 마당에.”

“하기야 뭐, 이 생활도 이제 일주일이면 완전히 끝날 테지만.”

인근을 배회하던 2인 1조가 점차 멀어져 간다.

그제야 유리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놀랍네. 전혀 눈치채지 못하잖아?”

“인비저빌리티에, 내가 자체적으로 연구한 이동식 싸일런스라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도 너무 맘 놓고 움직이지는 말고. 큰 충격을 받으면, 막이 어그러질 수도 있으니까.”

“그걸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륙 전체에 너밖에 없을 거다.”

유리나가 기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보다, 방금 대화는 신경 쓰이는군. 겨울이 오려면 아직 한 달은 족히 남았을 텐데…….”

“곧 알게 되겠지. 이제 저 목책만 넘으면 되잖아.”

“맞다. 저 너머에 아르센 영지가 있다. 해방군이 있는 레이브 영지와는 고작해야 3일 거리지.”

“괜히 풀어준 말들이 아쉬워지는데. 말을 타면 반나절 거리라는 뜻이잖아?”

“어쩔 수 없지. 아무튼, 레이브 영지는 사방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부로 들어서는 건, 우리만의 강로를 이용하면 문제 될 일도 아니지만…….”

“아 참, 안쪽에 미리 연락은 해뒀지?”

“물론이다.”

역시 철두철미한 여기사다웠다.

한차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준 내가 이내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우웅! 우우우웅!

“……?”

웬 공명음이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곧 소리의 진원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유리나의 발밑이었다.

그곳에서 새파란 불빛이 번져 가고 있었다.

“마나 트랩…?”

땡땡땡땡땡땡땡땡!

직후, 요란한 경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목책 위로 하나둘 횃불이 밝혀지더니, 순식간에 무수한 병력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하나같이 기다란 활을 꼬나 쥐고서.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마나가 실린 우렁찬 외침이 뒤를 이었다.

“낭패로군.”

“미, 미안. 설마 이런 곳에 마나 트랩이 매립되어 있을 줄은…….”

유리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그걸 밟냐?”

“아, 아니이. 솔직히 너도 마나 트랩까지는 생각 못 했잖냐.”

“결과적으로 민폐를 끼친 건 너니까, 사과부터 하셔야지?”

“그,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말만?”

“아, 진짜. 뭐 어쩌라고?”

“나중에 알아서 보상하라는 뜻이지. 사과의 의미로다가.”

“아, 알았어. 알았다고! 됐냐?”

그제야 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대화를 시도해 보겠다.”

“아니. 넌 몸도 안 좋잖아. 차라리 내가 수습할게.”

애초에 대화로 해결할 상대도 아니었다.

아마도 루나와 유리나를 본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려 할 테지.

루나의 모호한 눈빛을 뒤로한 채, 이내 내가 앞으로 나섰다.

대화는 불필요하다.

그러니 모습은 드러내지 않을 거다.

그저 저들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목책부터 날려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 거라면… 역시 그 마법이 딱이지.”

우우웅!

직후, 내 써클이 다시금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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