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색욕의 죄악(2)
족히 5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서큐버가 막 색욕의 마왕과 계약했던 시절.
‘그날’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남동부, 노르망 왕국의 끝자락.
여느 곳과 다름없는, 평범한 어촌(漁村)에서.
우걱, 우걱, 우걱.
붉은 달이 떴다.
마물들마저 흉성이 곱절은 강해지는 깊디깊은 밤.
사람들은 대부분 살해당했다.
아이는, 그 시신들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죄악의 향에 이끌려 와봤더니… 너, 거기서 뭐 하니?”
기괴스러운 장면이었다.
고작해야 1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비위가 강한 이들조차 당장에 위 속의 내용물을 게워낼 그곳에서.
우걱, 우걱, 우걱.
아이는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이거 전부 네가 그런 거니?”
와그작.
“너, 그런 거 먹으면 배탈 난다?”
와그작.
“대체 얼마나 먹어댄 거야.”
사람의 다리였다.
뿐만 아니라, 지천에 인육(人肉)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다 들리면서 자꾸 내 말 무시할래?”
멈칫.
그제야 아이가 이쪽을 돌아봤다.
서큐버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바라봤다.
“이름이 뭐니?”
“럼프!”
“그래, 럼프. 이제 나랑 얘기 좀 하자. 그렇게 먹어 대기만 하면, 금세 돼지가 되고 말걸?”
“아직도 배고파. 그리고…….”
“그리고?”
직후, 럼프가 서큐버의 상체를 가리켰다.
“그것도 먹고 싶어. 수박!”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아이네. 이런 덜떨어진 아이가 정말 식탐의 계약자라고?”
“헤…….”
“근데 너, 몇 살이니?”
“몰라. 열다섯이었나?”
“아들뻘이네.”
서큐버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자식이 살아 있었다면, 딱 이맘때 나이였을 테니까.
“그만 먹고 가자.”
“어딜?”
“더 맛있는 거 사줄게. 이러다 왕국군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나 강한데.”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야.”
“진짜로 맛있는 거 사줄 거야?”
“내 말 잘 들으면.”
후다닥.
그 말과 동시에, 잽싸게 다가서는 럼프를 보며 서큐버가 미소 지었다.
“말은 잘 듣는 아이네.”
“어디로 갈 거야?”
“글쎄… 일단은 이 나라부터 빠져나가 볼까?”
서큐버가 기억하는 럼프와의.
아니, 또 다른 칠악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그렇게 둘만의 여정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이어졌다.
***
“…….”
서큐버가 감았던 눈을 떴다.
더하여, 주변으로 숨길 수 없는 살의가 번져 갔다.
세타 쿤 이그니스.
저 아이가 럼프를 소멸시켰다.
이 세상, 처음으로 가족이라 부를 만한 존재를 죽여 없앴다.
우웅! 우우우우웅!
그녀의 분노에 반응하여 대기가 요동쳤다.
전신에서 피어오른 새까만 마기가 뭉클거리며 퍼져 나갔다.
살려두지 않겠다.
“…쟤만큼은 반드시 조문객으로 보내줄게.”
서큐버의 힘은 마왕 아스모데우스의 것.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는 당대 최고의 흑마법사였다.
***
‘마나 드레인(Mana drain)인가?’
땅을 박차면서도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적을 알아야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특별한 외상은 없었지만, 시신들이 하나같이 비쩍 마른 점으로 미루어.
생명의 근원인 마나를 통째 빼앗겼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거라면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흑마법.
그중에서도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범위계 마나 드레인.
마법사로 따지면, 최소 6써클은 되어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고위 능력이다.
“마법사가 거리를 포기한다… 너는 내가 아주 물로 보이나 봐?”
“……!”
순간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피어오른 마기가 살기를 품었다.
그때와 같은 독을 뿜으려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다른 저주 계열 마법일까?
어느 쪽이든 그냥 둘 수 없었다.
하여,
“마나 번(Mana burn)!”
미리 캐스팅해 둔 마법을 시전했다.
마나 번.
문자 그대로, 대상이 마나라면 그게 무엇이든 태운다.
물론 마기를 상대로는 그 효과가 미미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번에도 마기와 상극인 빛의 술식을 섞어냈다.
굳이 새롭게 이름을 붙이자면, 마나 번이 아니라 마기 번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화르륵!
“……!”
서큐버도 놀랐는지 잠시 눈을 치켜떴다.
내게로 날아들던 마기가 그대로 허공에서 연소했으니.
허나, 그것도 찰나였다.
“커즈! 포이즌 샤워! 어둠을 품은 은밀한 살의여, 헬 블래스트(Hell blast)!”
흑마법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불쾌한 감각과 동시에 움직임이 둔화된다.
주변으로는 보랏빛 물방울들이 뭉클뭉클 형성되었다.
치이이이!
조금만 스쳐도 단숨에 의류가 녹아드는 맹독이었다.
무엇보다,
쐐애애애애애액!
적중당하면 태반의 생명력을 빼앗긴다고 알려진, 마기의 창.
헬 블레스트가 정면에서 날아들었다.
촤아아아악!
두 발에 제동이 걸렸다.
빠르게 몸을 멈춰 세운 나는, 곧장 몇 가지 마법들을 시전했다.
속도를 빼앗는 커즈는 하이 헤이스트로 상쇄하고.
맹독을 가진 포이즌 샤워는 쉴드로 맞선다.
마지막으로, 헬 블래스트는…
“다연발 라이트 에로우.”
째재재재재재쟁!
시전어와 동시에, 일백 발에 이르는 빛의 화살이 생성되었다.
쾅!
직후, 쏘아져 간 화살의 절반은 헬 블레스트와 충돌하여 소멸했고.
쐐쇄쇄쇄쇄쇅!
나머지 절반은, 상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피할 수는 없을 거다.
에로우 계열에 한해서 내 적중률은 100퍼센트에 가까웠으니까.
한데,
“합!”
서큐버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응으로 내 마법들을 막아냈다.
그녀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은밀한 기운이 순식간에 화살들을 집어 삼켰다.
마기가 아니었다.
그 특유의 새까만 기운이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분홍빛 연무(煙霧)였다.
물론 나는 저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여기서 죄악이라고…?”
내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좋지 않았다.
색욕에는 여러 가지 권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나 ‘집단 최면’이다.
문자 그대로, 최면에 걸린 대상은 시전자의 꼭두각시가 되는 거다.
언데드를 부리는 네크로맨시(Necromancy)와는 또 달랐다.
색욕의 권능은, 죽은 자가 아닌 ‘산자’를 대상으로 했으니까.
가령,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내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유리나도, 루나도. 그런 일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혹시라도 집단 최면을 운용한다면, 나라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기는 싸움과 지키는 싸움은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냐면 그도 아니었다.
권능의 힘이라면, 내게도 있으니까.
그 어떤 죄악보다 먹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게걸스러운 힘.
식탐(食貪).
그 대상은 생명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다 근원의 힘에 가까운 ‘기운’ 따위에 더 격렬하게 반응했다.
대상이 같은 죄악이라면, 이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우웅! 우우우웅!
그 증거로 내 안의 죄악이 요동치고 있었다.
되든 안 되든, 지금은 시도라도 해봐야 할 때였다.
‘…와라!’
또 한 번 내부에 잠들어 있던 마기를 끌어올렸다.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전과 같은 격통은 없었다.
오히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써클을 휘어 감는다.
문제는,
“자, 잠깐…….”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갑작스레 식탐이 미쳐 날뛰었다.
내 통제를 벗어난 힘은 순식간에 외부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냈다.
쩌어억.
“……!”
순간, 갑작스레 허공 위로 새까만 아가리가 생성되었고.
“무, 무슨…!”
꿀꺽.
그 아가리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서큐버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대체…?”
허나, 정작 가장 크게 당황한 것은 나였다.
이런 결과까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까.
저것도 권능의 힘인가?
하면, 서큐버는 저리 허무하게 죽은 것일까?
‘…아니.’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불룩!
서큐버를 집어삼킨 새까만 공이 한차례 크게 튀어 올랐다.
마치 고무라도 되는 양, 내부에서 뚫고 나오려는 움직임이 한눈에 보였다.
아직 저 안에서 사투가 벌어지는 와중이라는 뜻이겠지.
힘의 정체는 모른다.
푸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하니, 일단은 관망해 보기로 한다.
우선은,
“세타! 루, 루나가…!”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으니까.
직후, 나는 신속하게 한곳으로 내달렸다.
***
‘나… 죽은 건가?’
마치 물속에 잠겨 있는 듯 온몸이 무겁다.
시각은 흐릿하고, 청각은 아득하다.
한데 또, 정신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멀쩡했다.
루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었다.
‘힘드니?’
‘힘들어요.’
‘이제 쉬거라.’
‘그래도 될까요?’
‘그럼. 내 딸이 하고 싶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있다면 데리고 오거라. 내 친히 혼내줄 테니까.’
그녀가 꿈이라 자각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아버지는 죽었다.
유리나의 부친인, 아리에나 자작님과 마찬가지로.
대 론지에 가문의 가주는 전쟁 중 명예로이 전사했다.
반란군의 수괴, 카이클 공작.
그 여우같은 인간의 함정에 빠져서.
그리고, 가까스로 생환(生還)한 이들은 말했다.
가주님은 누구보다 앞서서 적을 섬멸했노라고.
그분이 없었다면, 가신들 대부분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허나, 그럼에도 기울어 버린 승세는 바로 잡을 수 없었다.
기실 해방군이 급격하게 밀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론지에 후작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잃었다.
영웅의 전사는, 군영 전체의 사기와 직결된다.
그때부터 루나는 이전보다 배는 더 노력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사명감.
그 무거운 짊이, 그녀를 짓눌렀다.
응당 그녀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대 론지에는 해방군의, 아니, 왕국의 영웅이니까.
여기서 그녀 자신이 흔들리면 군 전체가 동요할 터니까.
허나, 그럴수록 속은 점차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누가 뭐라든, 루나는 고작 20대 초반의 햇병아리였으니까.
‘아빠…….’
이제, 그녀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었다.
가주라는 이름의 막대한 무게감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그만하자.’
점차 루나의 눈이 스르륵 감겨갔다.
수마가 쏟아졌다.
나도 편안해지자.
그동안의 노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 사치는 누려도 되잖아?
촤아아아악!
“앗, 차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뭐야, 물?
“혼자만 도망치지 말라고!”
“……!”
“그리 죽으면 편안해질 것 같냐? 기사로서의 긍지니 의리니 하더니, 이거 되게 이기적인 계집애였잖아?”
계, 계집애…….
고통 속에서도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젖은 머릿결을 타고 물기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남이 무슨 마음인지는 조금도 모르면서!
그 말대로, 이대로는 억울해서 눈도 감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한마디는 꼭 해줘야겠다.
“윽…….”
아직 시야가 흐릿했다.
희뿌연 습막 너머, 상대의 실루엣만이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
꽤나 눈에 익은,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이 언뜻 내비치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복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은 여전했다.
치료해 주는 건가?
그런다고 봐줄지 알고?
이왕이면 짧고 굵은 한마디면 좋겠다.
다시는 이따위 헛소리는 지껄이지 못하도록.
“동료는… 개뿔.”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나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