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출생의 비밀
“저거 뭘 하려는 거냐?”
제파와 워그르는 골든 버드 상단 내에서도 2등급 호위였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단계부터 이 2등급으로 분류되었는데, 기사의 경지로 따지면 엑스퍼트 중급의 실력을 가진 강자들이었다.
상단 전체에서도 셋밖에 없는 1등급 호위는, 무려 엑스퍼트 상급의 경지였으니.
가히, 5대 상단이라는 이름값이 대륙에서도 유명할 법했다.
“나라고 알 턱이 없지. 확실한 건, 팔자에도 없는 애새끼 뒤치다꺼리나 하게 생겼다는 거고.”
“나참. 혹, 아가씨께서 뒤늦게 사춘기라도 오신 것은 아니겠지?”
“뭔 사춘기?”
“솔직히 저 녀석. 마법사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이거 하나는 끝내주잖냐.”
순간 워그르가 손바닥을 들어 제 얼굴 앞을 휘적거렸다.
“사내새끼 얼굴이 다 똑같지.”
“미적 감각하고는. 그러니 웬 트롤 닮은 마누라 만나서 이혼이나 당하지.”
“너야말로 진짜로 그런 취향이었냐?”
“뭔 개소리야. 사실이라니까.”
“아닌데. 오히려 네가 반한 것 같은데.”
그리 중얼거린 제파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아닌 게 아니라, 워그르에 대한 소문은 상단 내에서도 꽤나 유명했다.
외모만 괜찮다면 성별조차 가리지 않는다는 짐승 워그르로 통할 정도였으니까.
“…솔직히 탐나기는 해.”
“미친놈. 진짜 역겨워 죽겠네. 너는 고추 새끼를 상대로 그 짓이 생각나냐?”
“왜, 너도 저 정도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냐? 나뿐만 아니라, 남색이 취향인 귀족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대번 침을 흘릴걸?”
“더러우니까 제발 그만해라. 난 지극히 이성애자니까.”
“이성애자가 아니라 트롤성애자겠지.”
“입조심 해.”
직후, 감자 주먹을 치켜세운 제파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가씨 명령 잊은 건 아니지? 괜히 쟤 귀에 들어가서 안 따라가려고 들면, 모두 워그르. 네 책임이다.”
“아, 알았어, 알았어.”
잠시 티격거리던 둘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만큼은 생각이 같았다.
예의 저 곱상한 놈의 실력 따위는, 오크 터럭만큼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
우우웅!
영창이 이어지자 손끝에 붉은 화염이 맺혀져 갔다.
이전의 이클립스처럼, 대륙에서 잊혀진 마법은 아니었다.
모르는 마법보다는 아는 마법이 훨씬 더 인상적일 테니까.
그럼에도 지금부터 내가 펼칠 마법은 위력 면에서 결코 이클립스에 뒤지지 않았다.
최소한 이런 광범위 타겟을 목표로 두고 있다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염의 비여. 염화의 여왕 아그자하의 눈물이여.”
입으로는 영창을.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수식을 연산한다.
일반적인 불꽃의 비가 아니라, 거기에 ‘폭발성’이라는 새로운 산식을 추가했다.
다른 마법사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당장에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터였다.
기존에 정립되어 있는 마법에, 자의적인 해석을 도입하는 건.
‘나 폐인이 되고 싶어요!’하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더욱이 고써클로 올라갈수록 그런 경향이 훨씬 더 심했다.
애당초 5써클 마법 정도만 되어도 초당 계산해야 할 수식이 최소 열이나 되었으니까.
“적을 멸하는 말살의 비가 되어라. 모조리 태워, 그 한을 달래라.”
점차 내 써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거기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머리 위, 듬성듬성 보이는 나뭇잎 사이로 하늘마저 붉게 물들었다.
“꾸이이익?”
이 시점에서 일부 마물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한데, 오크 주제에 대응이 상당히 기민했다.
곧장 몽둥이를 하나씩 꼬나 쥐더니 괴성을 지르며 이쪽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수가, 자그마치 서른을 훌쩍 넘겼다.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좋았을 것을.’
직후, 내가 가볍게 혀를 찼다.
덕분에 마법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저 서른 마리는 지금부터 곱절은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신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우우웅!
영창이 끝났다.
“파이어 레인(Fire rain).”
마침내 내 잇새로 시전어가 흘러나왔다.
나름의 해석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6써클 마법이다.
“꾸이이익?”
그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일까?
짓쳐들어오던 오크 몇 마리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곤 곧장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옥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피유우웅! 피유우우우웅!
마치 마법 폭죽을 쏘아 올릴 때 소리처럼.
무수한 낙하물들이 대기를 달구며 지상으로 하강했다.
그건, 문자 그대로 화염의 비였다.
다만,
퍼펑! 퍼퍼퍼퍼펑!
차이점이라면, 지면과 충돌한 붉은 비가 ‘폭발’을 일으킨다는 사실이었다.
“꾸이이이이이익!”
오크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매캐한 연기가 삽시간에 주변을 잠식해 갔다.
채 나를 발견하지 못했던 백 수십여 마리.
아니, 애당초 발견은 했지만 선발대만으로 충분했다고 판단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 방심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꾸이익…!”
살아남은 몇 마리의 오크들이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위력에 기가 질린 것일까?
그도 아니면, 마물 주제에 동족애라도 있는 것일까?
그게 어느 쪽이든 내게는 상관없지만.
남은 오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공포로 물든 오크들의 시선은, 끝끝내 내가 아닌 화마(火魔)를 향해 있었으니까.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흐음…….”
레베카가 턱을 쓰다듬으며 상념에 빠져들었다.
벌써 한 시간은 훌쩍 넘은 듯싶다.
한데, 숲속으로 들어간 무리에게서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사람을 더 보내봐야 하나?’
지금 막, 통신용 수정구를 통해 본가의 연락을 받은 참이다.
정이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공국의 국경을 넘으라고.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 정돈 본가에서 충분히 알아서 해결할 터였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으니까.
오히려 웬 정신 나간 아이 하나에게 200골드씩이나 배팅하는 것보단 이편이 더 나았다.
이제 일행들이 합류하는 대로 길을 우회하기만 하면 됐는데…
“…끄응.”
순간 레베카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이상 의미 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건 싫었다.
시간은 곧 돈이다.
지금 그녀는 그 돈을 쓰레기통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 점이 못내 견디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정보라도 얻어보자.’
결국, 레베카는 외부인인 두 여인에게 다가가 보기로 했다.
대화를 통해 정보라도 얻자.
그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 사람을 보내면 되겠지.
그리 마음먹고 놀고 있는 세 호위를 불러들인 레베카가 사뿐사뿐 목표물을 향해 걸어갔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
이미 접근할 때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여인들이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본 그녀들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그냥 기다리고 있자니 지루해서요.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저희는…….”
햇살을 연상케 하는 미인이 대답하려는 것을, 차가운 느낌의 미녀가 제지하며 나섰다.
“저흰 용병들입니다.”
“네? 용병?”
순간 레베카의 얼굴 위로 황당함이 떠올랐다.
얘기해 주기 싫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저런 얼굴을 하고 용병이라고 하면…….
“여기 용병패도 있습니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증거까지 제시했다.
“흠…….”
그럼에도 레베카의 의구심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용병패쯤이야 자신 또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으니까.
차라리 자유 기사 정도로 소개했다면 또 모를까.
‘약간 그런 쪽인가 보네. 본인은 스스로가 철두철미한 사람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허당인 부류.’
레베카가 애써 미소 지었다.
잠시 그러고 있자, 곁의 일행이 한숨을 내쉰다.
“안 하는 것만도 못한 거짓말을.”
“……?”
“저희는 테라 출신이에요.”
“……!”
대번에 허당 미녀의 따가운 눈초리가 일행을 향했다.
“아까 그 녀석이 메시지 마법도 보냈잖냐. 이 사람들도 공국을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놈의 완벽주의. 걱정 좀 넣어둬.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도 있잖아.”
순간 레베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 그 사람이… 그런 말까지 했다고요?”
“놀랍죠? 난 매일 같이 다녀도 맨날 놀란다니깐요.”
“…….”
믿는 구석이 허세와 외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건가?
아무튼, 테라 출신이라는 말이 못내 신경 쓰인다.
귀족임이 분명한 이들이, 어느 쪽에 붙었느냐에 따라,
‘…돈이 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 그리고 걔가 또 그러더라고요.”
“네?”
“대륙 5대 상단이라면, 이런 혼란기에 괜한 적을 만드는 멍청한 짓도 하지 않을 거라고요.”
“…….”
레베카가 속으로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대로, 이들을 인질로 삼으면… 까지 계산하던 참이니까.
“흠흠. 물론이죠. 저희는 대 골든 버드 상단입니다. 설마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겠어요?”
“그렇죠?”
“그럼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화를 마친 유리나와 레베카가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때,
“아, 아가씨.”
“귀인과 대화 중이에요. 조금 있다가…….”
“그게 아니라, 저기 제파와 워그르가 돌아왔습니다.”
“……!”
직후, 레베카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마치 혼이 나간 듯한 두 사내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한데, 그 표정들이 꼭 귀신이라도 본 듯했다.
“저, 저희 왔습니다.”
불길한 상상 속, 레베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왜 둘만… 혹, 죽은 건 아니죠?”
“아,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네?”
“그 아이가 오크들을 전멸시켰습니다.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요.”
“……!”
***
다시, 검은 마물의 숲 초입부.
“예상보다 가성비가 좋기는 한데… 쓸데없는 마나의 소모는 조금 더 줄일 필요가 있겠어.”
나는 지금 막, 나머지 서른 여 마리의 오크들마저 몰살시켰다.
이번에는 대지 마법에 파동의 수식을 뒤섞어 봤다.
6써클 마법인 어스퀘이크까지 가지 않더라도, 저써클 마법들만으로도 충분히 비슷한 위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기실 이런 시도들은 조합의 마법사로 유명한 간다르 테이들러와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가령, 물에 젖은 물체는 훨씬 더 감전되기 쉽다.
물과 전기의 상생 관계.
간다르 테이들러는 그 최고의 상생을 보이는 마법의 공식을 최소 수백 가지 이상 꿰차고 있다 알려져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술식 자체를 새로이 만들어내고 있었고.
조합의 마법사가 아니라, 오히려 합체의 마법사라고 하면 또 모를까.
둘은 분명히 개념이 달랐다.
‘그보다…….’
상념을 마친 내가 가만히 주변을 둘러봤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풍경.
구경꾼들은 이미 진즉에 되돌려 보냈다.
물론 그 아저씨들은 경악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도 잘도 펄쩍 뛰어댔지만.
오히려 나는, 보다 완고하게 나갔다.
오크들이 더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돈까지 받기로 한 마당이니, 확실하게 처리하겠다고.
이제 실력을 확인했으니 문제 될 일도 없지 않느냐고.
그러면서 적당한 겁까지 줬다.
잘 알다시피, 이 안에는 아저씨들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하는 마물들이 득실댈 거라고 말이다.
그리곤 홀로 숲 깊숙한 곳으로 뛰어든 지도 벌써 10여 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분명 나는 이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했지.’
언젠가 학장 할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고작 5살이었던 나는, 홀로 검은 마물의 숲 한복판에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생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지금의 나는 인간이었으니까.
다시 말해, 지금의 나를 낳아준 부모도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런 부모가 나를 이곳에 버렸다는 건데.
정작 학장 할아버지는 그 얘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물어봐도 그저 허허, 웃어 넘어가곤 했으니까.
‘이 안쪽에 그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 생각하며 내 걸음이 거침없이 숲 깊숙이, 더 심층부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