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테라로(3)
“웬 놈이냐!?”
내가 다가서자 몇몇 사내들이 대번에 칼을 뽑아 들었다.
용병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상단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호위쯤 되는 듯싶다.
“곤란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누구냐고 물었다.”
“아, 저는 자유 연합 소속의 마법사입니다. 여기…….”
직후, 내가 품 안에서 은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순은으로 제작된 그것은, 자유 연합 소속임을 나타내는 명패였다.
물론 겉면에는 내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
“증거도 있고요.”
“…너 같은 애송이가 마법사라고? 아니, 그런 것보다 자유 연합은 최근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히는 해체가 아니라 이사였지만.
그런 부분까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아~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저도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파견을 나가 있다가, 졸지에 직장을 잃은 실직자가 되었지 뭡니까?”
“그래서, 자유 연합의 마법사가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이미 소개했다시피 저는 마법사입니다. 마침 이 숲에 제가 구하려는 약초가 자생한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한데, 웬 무리가 그 길을 막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무리가 우리라는 건가?”
“바로 그거지요.”
“미쳤군. 고작 약초를 구하겠답시고 검은 마물의 숲에 들어가겠다니.”
“안 됩니까?”
“그야 당연히…!”
이름 모를 사내는 채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만하세요.”
“……!”
“저쪽은 이미 신분까지 밝힌 마당입니다. 그 이상은 무례에요.”
“…죄송합니다, 행수님.”
웬 가면을 뒤집어쓴 가녀린 인영이 앞으로 나섰다.
근데 저게 뭐야?
“비둘기?”
“…참새거든요?”
의문의 인영이 대번에 발끈했다.
“아, 제가 조류에는 관심이 없어서… 실례했습니다.”
“골든 버드 상단을 모르시나요?”
“물론 대륙에서도 위명이 자자한 5대 거상, 골든 버드 상단은 모를 수가 없지요.”
그제야 인영의 말투가 한결 누그러졌다.
“이건 골든 버드 상단을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황금새라고도 하는데, 재운을 물어다 주는 참새라고 알려져 있죠.”
“그렇군요.”
“근데, 마법사라고 하셨나요?”
“네. 5써클 마법사입니다.”
“……!”
순간 예의 인영이 움찔 몸을 떨었다.
실력의 3할은 숨기라는 말이 있어, 조금 줄여 얘기한 것인데.
그마저도 대단해 보이겠지.
5써클부터는, 어느 왕국을 가든 남작 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으니까.
“5써클? 정말이신가요?”
“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 무리의 책임자인 레베카입니다.”
책임자라고?
얼핏 보기에도 내 또래로 보이는데.
“레베카 님이야말로 대단하시네요. 한데, 골든 버드 상단이야말로 이곳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맡은 의뢰를 처리하고 복귀하는 길이었답니다. 출발할 때와는 달리, 피치 못할 이유로 이 길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인데… 하아. 역시 검은 마물의 숲은 쉽지가 않네요.”
피치 못할 이유라.
결국 저들도 스란의 영토를 통과하는 게 꺼려진다는 건이다.
나는 왜 그 이유가 짐작되는 걸까.
‘골든 버드 상단. 혹은 리비아 왕국에서 스란의 변고를 눈치챘다. 그거라면 이런 경계심도 이해가 되지.’
공국의 연회에는 리비아 왕국의 고위 귀족도 참석했다.
분명 이름이,
“테르말리온 후작님?”
“응? 저희 부상단주님을 아시나요?”
참고로 황금왕이라 불리는 상단주는, 리비아 왕국의 둘밖에 없는 공작이었다.
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제발 경각심을 가져주십사, 연회장에서 그 난리를 피웠던 거긴 했지만 이리 발 빠르게 대응해 주는 사람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당장 자이툰의 지크 공작만 해도 세월아, 네월아 조카 집에서 담소나 나누고 있었으니까.
그건 아마도 외부 정보에 민감한 상인 특유의 직감일 테지.
“큰손으로 이름 높으신 테르말리온 후작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던가요? 그보다, 숲이 쉽지 않다는 건 이해가 안 가는군요. 골든 버드쯤 되는 상단이라면, 리비아까지는 딱히 문제도 아닐 듯싶은데요.”
목적지가 서남부의 리비아라면, 우리처럼 숲 중심부를 가로지를 필요도 없었다.
가두리만 둘러 둘러 가도 충분히 당도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예로, 여타 실력에 자신이 있는 상단들도 종종 이 길을 이용하곤 했다.
일종의 편법인데, 이 루트를 타면 적지 않은 통행세를 아낄 수 있었으니까.
“그게, 오크들이 최근 숲 초입에 부락을 형성했어요.”
“오크요?”
순간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쥐뿔도 없던 낙제생 시절.
개화를 시키겠다며 학장 할아버지가 나를 사지로 몰아넣던 날.
그 빌어먹을 백마전의 방에서 처음 마주한 게 바로 오크들이었다.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까짓 오크쯤이야…….”
“이곳에 대해 잘 모르시는 모양이네요. 검은 마물의 숲에서 서식하는 마물들은, 다른 동류들보다 최소 곱절은 강하답니다. 이 안에서 서식하는 오크들은, 블랙 오크라는 특이한 변종이에요.”
“그래 봐야 오크 아닙니까?”
“참고로, 블랙 오크 다섯이면 오우거도 상대할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이 자그마치 일백이 넘는다고요.”
“헤에…….”
오우거 하나는 최소 엑스퍼트 하급이 셋은 들러붙어야 제압할 수 있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블랙 오크 하나면 엑스퍼트 최하급 수준으로 봐도 무방했다.
이래서 검은 마물의 숲이 위험하다는 거다.
만만했다면 진즉 제국에서 정벌했겠지.
물론 내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내 목적은 정벌이 아니라 숲을 통과하는 거니까.’
그리 생각하며 눈앞의 인영을 빤히 쳐다봤다.
“사정이 그러시다면, 저한테 의뢰를 하시겠어요?”
“의뢰요?”
“제가 그것들을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대금은 단 100골드.”
“……!”
레베카 씨가 움찔 몸을 떨었다.
단일 의뢰에 100골드면, 어지간한 대상단에서도 제법 부담스러운 액수다.
허나, 눈앞의 골칫덩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터.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누워서 ‘돈’ 먹기 아니겠는가?
“저희가 이번 의뢰금으로 받은 돈이 200골드입니다만…….”
“딱 좋네요. 대신 오크들에게서 나온 부산품들은 모두 골든 버드 상단에 양도하겠습니다. 어차피 개인인 저희가 일일이 처리하기도 힘드니까요.”
“…한데, 정말로 가능은 하시겠어요?”
이익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상인이기 때문일까?
기본적인 말조심이 입에 배어 있었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고작 너 따위 애송이가?’ 따위의 말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말이지.
그 점이 못내 만족스러워, 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맡겨주세요.”
직후 레베카 씨가 힐끗, 내 뒤쪽을 바라봤다.
“…대륙에는 실력 있는 파티들이 많다던데. 그런 거라면 오히려 제 쪽에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접수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정정하자면.”
“네?”
“의뢰는 파티가 아니라, 저 혼자서 수행할 겁니다.”
“……!”
그리 말하곤 성큼성큼 숲 안으로 걸어갔다.
이왕 돈줄을 잡기로 한 것.
첫인상은 확실하게 박아둬야지.
***
“뭐 저런…?”
레베카는 진심으로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어렸지만,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정보들을 접해왔다.
하여,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 두 번이나 놀랐다.
한 번은 갑자기 나타난 또래 아이의 외모에.
나머지 하나는, 상식 따위는 없어 보이는 그 아이의 무식한 행동에.
“설마, 죽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는 아니겠지?”
레베카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블랙 오크가 어떤 존재들인가?
가히 검은 숲 초입부 최강의 생명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단일 개체로는 그보다 위협적인 마물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무리 생활을 했다.
단체로 움직이며, 마물 주제에 집단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한데도, 그런 놈들을 혼자서 처리하겠다고 한다.
‘블랙 오크 한 마리의 최대 가치는 약 2골드. 이래저래 처리 비용이 조금 들기는 하겠지만,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으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 오히려 이득이지. 일개 부족 단위면 최소 100마리는 될 테니까…….’
아니, 이게 아니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습관적으로 계산부터 하고 말았다.
애당초, 저런 어린아이가 오크들을 처리할 리도 없는데…….
‘근데, 솔직히 얼굴은 내 취향이었어.’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레베카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제파 아저씨, 그리고 워그르 씨.”
“네, 아가씨.”
“두 분이서 저 아이를 따라가 주세요. 여차하면 언제든 짊어지고 도망쳐 주시고요. 부탁드릴게요.”
“허참, 골 때리면서도 사람 귀찮게 하는 애송이군요.”
“어디 하나 모자란 아이 같아요. 좋은 일 한 번 한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면, 무지함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한 경고로는 충분할 테니까요.”
“아가씨는 너무 착해서 탈이십니다.”
말은 그리하면서도 두 사내는 선선히 숲속으로 걸어갔다.
레베카가 무리에서 얼마나 신뢰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보다, 저기 두 사람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직후, 레베카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그곳에 예의 모자란 아이의 일행이 있었다.
그녀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연신 서로에게 속닥거리고 있었다.
외모나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들은 귀족이다.
그것도 꽤나 높은 위치의.
한데, 이런 위험한 곳에 꼴랑 마법사 하나만 대동하고 온다고?
“흐음…….”
본연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정보는 곧 돈이니까.
그녀는 천상 장사꾼이었다.
“…일단 지켜봐 볼까?”
어느새 레베카의 눈빛 위로 숨길 수 없는 흥미가 떠올라 있었다.
***
숲속으로 들어선 지 10분가량 지났을 무렵.
“딱히 믿어서 보내준 건 아니라는 건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 멀지 않은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애당초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두 사내는 중간부터 대놓고 움직였다.
“이봐~ 애송아! 너무 깊게는 들어가지 마라.”
“안 그래도 아저씨들이 일 많아 죽겠다. 좀 봐줘라.”
심지어 이런 외침까지 들려온다.
물론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이 나았으니까.
“저것들인가?”
우거진 풀숲을 지나자, 이윽고 제법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
목표물은 그곳에 있었다.
버려진 나무들을 주워다 지었는지, 꽤나 모양새를 갖춘 집들이 여기저기 지어져 있었다.
그건, 문자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부락이었다.
“대략 백오십쯤? 정말로 길목 한복판을 막고 있네.”
눈대중으로 대충 머릿수를 세어본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전력이면, 상대가 대륙 5대 상단이라도 충분히 긴장할 만했다.
그런고로,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거지.”
힐끗, 뒤를 돌아본 내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약 10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예의 두 사내는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해볼 테면 마음껏 해보라는 듯이.
그렇담 해줘야지.
“가만있어 보자, 이 상황에서 적당한 마법이…….”
잠시 고민했다.
구경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면서, 단 한 방으로 쓸어버릴 수 있는 마법.
역시 그것밖에 없었다.
“화려한 건 불꽃이 최고거든.”
주변에 널린 게 나무집이었다.
심지어, 가연성마저 풍부한 숲속 한복판.
우기가 완전히 지난 겨울이었기에, 그 흔한 습기조차 없었다.
가히 불꽃이 타오르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거다.
우우웅!
곧 심장의 써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목표는 하나.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염의 비여…….”
눈앞에 있는, 오크들의 몰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