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자이툰 왕국(1)
데니스 자작은 왕국 내에서도 이름 높은 대부호였다.
대륙 5대 거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능히 30위 안에는 드는 돈 많은 귀족.
지금 그런 그의 영지에 귀한 손님이 와 있었다.
왕국의 재상이자 그의 삼촌이기도 한, 지크 덴 프라이트 공작이었다.
스란을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데니스 자작령을 거쳐야 했다.
하여, 그 귀국길에 들른 참이었다.
“공작 각하.”
“둘만 있을 때는 삼촌이라고 부르래도.”
“삼촌.”
삼십 중반을 넘어서 제법 사내 티가 나는 조카를 보며 지크 공작이 미소 지었다.
“엘리나도 오랜만이구나. 더 이뻐졌어.”
“작은할아버지를 뵙습니다.”
“예순도 안 된 나이에 할아버지라… 네가 참 결혼을 빨리 하기는 했구나.”
지크 공작의 말에, 데니스 자작이 곧장 반응했다.
“전 열일곱에 장가를 갔지 않습니까? 하하! 한데, 이제는 엘리나가 벌써 열일곱이 되었군요.”
“그래. 아주 숙녀가 다 되었어. 가히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미인답구나. 수도에서도 엘리나의 미모에 대한 칭송이 자자해.”
자기 조카 손녀라서가 아니라, 엘리나는 객관적으로 예뻤다.
고생 한 번 하지 않은 새하얀 피부에, 윤기 나는 금발 머리.
보자마자 ‘와’ 하고 감탄할 만한 절세 미녀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한 번쯤은 돌아보게 만드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뭣하지만, 엘리나가 예쁘긴 하죠.”
“하이고. 그래서 시집은 보낼 수 있겠느냐?”
“시원찮은 놈한테는 절대로 안 줄 겁니다. 정이 성에 안 차면, 아예 끼고 살지요, 뭐.”
“대단한 팔불출 납셨네. 그러려면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는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입이 많아져도, 아시다시피 제가 가진 게 사업가로서의 재능뿐이지 않습니까?”
“그야 인정한다만.”
“혹시나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지요. 삼촌께는 무이자로 빌려드리겠습니다.”
“거참, 든든하구나.”
지크 공작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 섞인 진심이었다.
조카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으니까.
“한데,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음…….”
순간 지크 공작이 가볍게 침음을 삼켰다.
그제야 일전의 일이 떠올랐다.
“거기서 신경 쓰이는 말을 들었다.”
“예? 무슨…….”
“공국이 황제의 편에 붙었다는 얘기였다.”
“……!”
데니스 자작의 눈이 대번에 동그랗게 뜨여졌다.
“고, 공국이요?”
“그래.”
“그 공왕이 의식을 회복했는데도 말입니까?”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아무래도 공왕이 직접 주도한 일인 것 같거든.”
“어떻게 그런…?”
데니스 자작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제국에 가장 반감이 큰 나라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주변 4개 인접국이었다.
그중에서도 공국은 제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제국은 호시탐탐 스란을 속국으로 복속시키려 해왔으니까.
“사실일까요?”
“일단은 귀족들을 한데 규합해 봐야지.”
“지,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나서 움직여도…….”
“최소한의 대비는 해두자는 거지. 미리 움직여서 나쁠 건 없지 않나? 그간 우리끼리만 너무 으르렁대기도 했고.”
“그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근 10년 이내, 자이툰 왕국은 이전에 이랬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국왕파와 귀족파가 격렬하게 대립했다.
명확한 이유조차 없었다.
그저, 언젠가부터 그런 구도가 되었다.
마치 고인 물은 썩는 것처럼.
“그 돼지들이 한데 뭉치려고 할까요?”
“안 돼도 해봐야지. 무엇보다, 그 단서를 제공한 인물이 사라졌다 알려진 자유 연합주였다.”
“헉! 그 마녀가 살아 있었습니까?”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황제가 공국을 포섭했다… 하, 만약 제국이 전쟁을 생각하고 그런 일을 벌인 거라면, 실수하는 겁니다.”
“그래. 우리 자이툰은 스란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겠지.”
서부에 위치한 자이툰은 위로 제국뿐만 아니라, 남과 동으로도 적대국을 두고 있었다.
경쟁이 곧 힘이라는 말이 있듯.
과거에도, 지금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이 자이툰이었다.
물론 평화기에 접어들어서야 그 경쟁력이 잠시나마 약해졌지만.
그 기간만큼, 쓰지 않아도 될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차라리 잘됐어. 내부의 힘이 커질수록, 종래에는 폭발하기 마련이니까. 저기 테라처럼…….”
“그 부분은 지극히 공감합니다.”
“근데… 갑자기 좀 더워진 것 같지 않니?”
갑작스레 지크 공작이 손부채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데니스 자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실, 그도 느끼던 부분이었으니까.
“음, 분명 볕이 잘 드는 방이기는 한데…….”
그리곤 힐끗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 가만. 저건… 태양?”
직후, 데니스 자작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창문 밖,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불꽃덩이가 다가서 있었다.
그건, 그래.
마치 하나의 작은 태양을 보는 듯했다.
“자작님! 큰일입니다!!!!”
방문 밖에서 쩌렁쩌렁한 고성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유리나는 진심으로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역시나, 오랜만에 봐도 외모 하나는…
‘…이게 아니지.’
어느새 세타는 원래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마탑에서야 처음부터 그리 참가해서 어쩔 수 없이 신체 변형 마법을 유지했다지만.
앞으로 공식적인 활동은 모두 저 모습으로 할 거라고 한다.
“…크흠.”
한차례 헛기침을 한 유리나가 이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이클립스라고 했다.
한데, 유리나는 그 이름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불꽃 계열은,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만큼 서적이란 서적들은 모조리 뒤져가며 지식을 쌓곤 했으니까.
한데도, 단연코 저런 마법은 처음 봤다.
동류였기에 알 수 있었다.
저 이클립스라는 마법은 분명 성 하나는 통째 날려 버릴 만한 마력을 품고 있다고.
“그거 뭐냐?”
“불꽃 마법.”
“아니,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것 같니?”
“뭘. 나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해 줬을 뿐인데.”
…얄미운 자식.
삐죽 입술을 내민 유리나가 재차 물었다.
“…나도 배울 수 있는 마법이냐?”
사실, 상대의 마법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건 금기나 다름없었다.
기사가 상대 가문의 비기에 대해 묻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해야 할까?
하니, 제아무리 유리나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글쎄. 써클만 올리면 할 수 있을지도?”
“…….”
“왜, 가르쳐 줘?”
“지, 진짜!?”
“구라지.”
진짜 얄미운 자식.
유리나가 속으로 입에 담기도 힘든 욕지거리를 뱉어내고 있을 때였다.
우르르르르!
마침내 열린 성문으로 중무장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이도 몰려왔네.”
족히 오백은 넘을 듯한 대인원이었다.
이 정도라면, 가히 영주성 내에 상주하는 모든 기사들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웬 놈이냐!!!”
“데니스 자작님을 뵙고 싶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선두로 나선 기사가 손짓 발짓 다 해가며, 하늘을 가리키곤 발광했다.
“아, 이건 너무 급해서.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하면, 그 미친 마법부터 당장 디스펠시켜라!”
순간 잠자코 있던 루나가 시각에 집중했다.
곧 기사들의 뒤로,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사내 둘이 시야로 들어왔다.
직후, 루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퍼어어어엉!
마치 폭죽처럼 하늘 높이 떠오른 불꽃덩이가 터져 나갔다.
“…….”
유리나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불꽃의 비는, 자못 아름답기까지 했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반드시 저 마법을 배우기로.
“이제 됐습니까?”
“…기사들은 앞으로!”
처처처처척!
오백의 기사들이 순식간에 주변을 에워쌌다.
그러고선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순순히 포박을 당해라!”
“그건 좀…….”
“하면, 대화는 끝이다!”
촤아아앙!
오백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든다.
그 기세가 사뭇 흉흉했다.
보다 못한 루나가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테라에서 왔습니다!”
“……!”
직후, 기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테, 테라?”
“테라라고?”
“테라는 분명히 내전이 한창이라고 들었는데…….”
책임자임이 분명한 예의 선두의 기사가 일갈했다.
“증거를 대라!”
“테라 왕국 론지에 후작가의 장녀, 루나 틴 론지에입니다. 이건 가문의 표식입니다.”
쩔그럭!
루나가 품안에서 새까만 목걸이 하나를 끄집어냈다.
모양은 단조로웠으나 그 때깔만큼은 심히 범상치 않은 초승달 모양의 물건이었다.
“…음…….”
그제야 책임자가 가볍게 침음을 삼켰다.
상황이 이렇다지만.
타국의 귀족을 상대로 윽박만 질러댈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가져가서 보셔도 됩니다.”
루나는 순순히 목걸이를 건넸다.
조심스레 다가선 사내가 목걸이를 받아들더니 후다닥 안쪽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또르륵.
한 기사의 목덜미 뒤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릴 무렵.
“…일단 들여보내라고 하시는군.”
이윽고 세 사람은 기다리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오…….”
성 안으로 들어선 나는 나지막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공국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자그마한 정원에, 각양각색의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경계심을 풀지 않은 건지 오백의 기사들은 우리를 노려보기 바빴다.
아무래도 손님 대접은 이미 그른 모양이다.
저벅, 저벅, 저벅.
순간 나이 지긋한 중년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어…? 저 사람은 분명…
“지크 공작이네. 아는 얼굴이라 이리 내가 대신 나서게 되었네.”
“역시…….”
“그쪽의 잘생긴 청년은 나와 구면이지?”
역시 내 얼굴은 쉽게 잊기가 힘들지.
한데, 그리 말하는 지크 공작의 표정이 사뭇 굳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
곁에 선 귀족 아가씨는 꼭 혼이라도 나간 사람 같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숫제,
“쟤 너한테 반했나 보다.”
“엥?”
“뭘 모르는 척은. 어딜 가나 얼빠들이 하나씩은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까지 생각한 건 아닌데. 혹시 부럽냐?”
“헹. 퍽이나. 인기는 아카데미 때 내가 더 많았거든?”
나이가 드니 알겠다.
어렸을(?) 때는 그저 귀찮은 일로만 여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잘생겨서 나쁠 것 하나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얼굴로 다녀야지.’
머릿속으로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크 공작이 내게 물어왔다.
“한데, 이곳에는 무슨 일인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여, 이리 경우 없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공작님께서 여기 계실 거라고는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지만요.”
“문제라… 혹, 자네가 스란의 공적이 된 일 말인가?”
이건 처음 듣는 소식인데.
역시 그렇게 된 건가?
“미리 얘기하지만, 우린 자네를 도와줄 수 없다네. 연합 하나 때문에 공국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응?”
“제국군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자이툰 왕국 또한 예외는 아닐 겁니다.”
“…….”
예상외로 지크 공작은 그 흔한 표정의 변화조차 보이지 않았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지금 당장 마탑에 파견된 귀국의 인사에게 연락을 취해보시지요. 아마 반응은 없을 테니까요.”
“그건 또 무슨 뜻인가?”
“제국은 정복 전쟁의 첫 걸음으로, 각국의 수많은 고위 인사들을 포로로 잡기로 했습니다. 마탑과 손을 잡고요.”
“……!”
역시나 노회한 귀족다웠다.
반응을 보아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듯했으니까.
“…돌킨 경.”
지크 공작의 부름에, 한 기사가 빠르게 달려왔다.
“예, 각하.”
“부탁하네.”
“명 받들겠습니다.”
아마 곧장 내 말의 진위를 확인하러 가는 것이겠지.
이리되면, 또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
기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어느덧 30분은 족히 지난 듯싶다.
이내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무렵.
“하암.”
유리나가 참지 못하고 하품을 했다.
“유리나, 공석(公席)이다.”
“이게 뭔 공석이야. 가시방석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도록. 우리는 테라의 대표로서 이곳에 온 것이니까.”
“정작 저쪽은 대표가 아니라 불청객으로 맞이하시는 것 같은데.”
“…….”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
딱 그런 표정으로 잠시 유리나를 바라보던 루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마음, 내가 잘 알지.
후다닥!
바로 그때, 확인을 갔던 기사가 돌아왔다.
그리곤 지크 공작에게 빠르게 소곤거렸다.
직후, 그의 안색이 형형색색 변해갔다.
“아무리 시도해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 두 쪽 다 말인가?”
“네. 국경지대와 마탑. 두 곳 모두입니다.”
“음…….”
그리곤 이런 대화까지 나지막이 들려온다.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과연 노회한 지크 공작은 여기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차라리 저한테 맡겨주시지요.”
“무슨 뜻인가?”
“아직 저들을 백 퍼센트 신뢰하지 않으시는 것 아닙니까? 하니, 제가 직접 시험해 보겠습니다.”
그리 말한 돌킨이라는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쪽은 론지에 가문의 장녀라고 하셨지요?”
“네? 네.”
“들으셨다시피, 저희 각하께서는 당신들을 신뢰하지 않는 모양이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목걸이 하나만 딸랑 가지고 신분을 확인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해합니다.”
“기사는 검으로 말하는 법이라고들 하지요. 루나 틴 론지에는, 그 황제조차 탐을 내는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돌킨의 목적은 분명했다.
신분을 확인하는 한편.
이번 기회에, 테라 해방군의 중추가 되는 루나의 실력을 보고 싶은 것이겠지.
익숙한 일이다.
스란에서도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대 이로 하시죠?”
“이 대 이?”
“저까지 포함해서요.”
곧 돌킨의 얼굴 위로 어처구니없음이 번져 갔다.
“딱 봐도 자네는 마법사인 것 같은데?”
“어차피 이 대 이인데. 관계있을까요? 그리고 제 주력이 전투 마법사라면요?”
“전투 마법사? 사실인가?”
“네. 참고로 저도 제 동료와 합을 맞춰보는 건 처음입니다.”
“흠…….”
지금은 고민하는 척하지만, 마다할 리가 없겠지.
이쯤 되면 개인이 아니라 국가 간의 자존심 싸움이었으니까.
“프란체스, 너도 나와라.”
“아니, 왜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들어선…….”
“공작 각하께서 고민하고 계시잖냐. 부하로서 응당 나서야지”
“말은 참 잘하지. 그냥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하지 그러냐.”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물론 그 상대는 전혀 예상 밖이었지만.
저들은 무려 공작의 개인 호위였으니까.
어쩌면 이곳 영주 성 기사단의 그 누구보다 강한 사내들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일개 자작가의 기사가, 대귀족인 공작의 개인 호위에게 비빌 수는 없다.
“나도 참고로 한 가지 말해주지. 부끄럽지만 난 엑스퍼트 상급이야.”
“……!”
이건 놀랍다.
엑스퍼트 상급이라면, 가히 왕실 기사단에서도 높은 자리를 꿰찰 수 있는 강자다.
제국을 제외하고, 여타 왕국들을 기준으로 엑스퍼트 상급은 채 열을 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다음 단계인 최상급만 넘으면 꿈의 경지라는 ‘마스터’였다.
“프란체스 데오르네라고 하네. 테라의 이름 높은 천재를 이리 보게 되어 영광이군. 얼굴은… 솔직히 과장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소문이 못하군.”
한데, 앞으로 나선 또 다른 사내 또한 내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어느새 루나의 두 눈이 호승심으로 화르륵 불타올랐다.
이 대 이고 뭐고, 셋이서 번갈아 붙어보고 싶은 생각들이신 것 같은데…
정이 그러시다면야,
“후회하실 텐데.”
“응? 거기, 방금 뭐라고…….”
“아니 뭐, 까불다가 지고선 아무 말도 못하는 모습을 한두 번 봐온 게 아니라서요.”
“엥?”
“고작 기사 따위가 저한테 싸움이 되려나 모르겠네.”
순식간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뭐 어쩌라고.
나도 이런 취급은 이제 신물이 나거든.
자꾸 건들면 지렁이도 꿈틀댈 수 있다는 걸, 이 기회에 똑똑히 보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