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간계(1)
예상대로, 충격은 엄청났다.
“…컥!”
누군가가 내 심장을 움켜쥐면 이런 느낌일까?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마기가 단숨에 혈관을 타고 치솟았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고작 한 줌도 안 되는 마기가, 대해와도 같은 내 마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욱…….”
직후, 입안에서 비릿한 혈향마저 느껴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여기서 피를 토해내면, 그 반작용으로 폐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기껏해야 최하급 스켈레톤 세 마리를 소환해 내는 일인데…….
마기 또한 손톱만큼의 양을 사용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나 고통스러운 것일까?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애초에 마기와 마나가 공생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는 했다.
몸 안에 죄악이라는 ‘그릇’이 있다면, 심장의 써클처럼 또 하나의 마기 저장고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마계 최상위 힘이라는 칠대 죄악이라면.
“너, 너… 이건 마기잖아?”
직후, 놀란 아타락시아 페르잔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물론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내가 구태여 마기를 이용해 스켈레톤을 소환하려는 이유는 확고했으니까.
이미 칠악의 습격이 있었던 상황이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다른 관중들 또한 돌발 상황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 증거로, 최초 탑 내외부의 경비 인원이 원래보다 세 배가량 증가해 있었으니까.
한데,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스켈레톤.
그러니까, 언데드들까지 등장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지. 그 이후에는…….’
들끓어 오르던 내부의 기운이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다.
하여, 나는 잽싸게 입을 열었다.
“설명은 나중에 드릴게요. 지금은 절 좀 도와주세요.”
“이게 설명으로 끝날 일이냐? 네놈, 어떻게 빛의 마나까지 다루면서 마기를… 설마 흑마법사 놈들과도 관련이 있는 건 아니겠지?”
“끝나고 모두 다 해명하겠습니다. 지금은 적극 지원해 주기로 하셨잖아요? 이러다 황제한테 모조리 몰살당하고 말 거라고요.”
“…사실 그것도 네 계획 아니냐?”
“제가 뭣 하러요. 이럴 시간 없어요. 더군다나, 전 칠악에게 두 번이나 공격을 받은 피해자라고요. 같은 편이 아닌 건 확실하잖아요?”
“…….”
“설마, 마탑 한복판에서 대규모 학살극이 벌어지는 걸 보고 싶으신 건 아니시죠?”
그것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겠지.
예상대로,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반드시 내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아야 할 거다. 그게 아니면…….”
“네, 네. 납득 시켜드릴게요. 그러니까 빨리!”
손끝에 맺혀 있던 마기는 이미 내 손을 떠나갔다.
새까만 기운은 이윽고 연무장 바로 옆의 지면으로 스며들었고.
쩌저적! 다그닥! 다그닥!
순식간에, 인간의 뼈로 이루어진 스켈레톤 세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찢어질 듯한 비명이 내부를 가로질렀다.
“어, 언데드?”
“스켈레톤! 스켈레톤이다아아아!”
“또 칠악의 습격인가? 도대체 어디서 저런 마물들이 계속 나타나는 거야!?”
역시나, 대번에 관중들이 집단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여기서부터는 배우가 활약할 시간이다.
“이 사악한 마물들, 여기가 어디라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루나가 순식간에 내가 만든 스켈레톤들의 앞으로 쇄도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너무 쉽게 소멸시켜서는 안 됐다.
그렇다고 너무 시간을 끌면 다른 마법사들이 개입하려 들 것이다.
지금 탑 내 마법사들의 관심은 스켈레톤에 있지 않았다.
2번째 습격을 감행한 마당에, 고작 이 정도가 다는 아닐 거라 예상할 테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사람들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보이지 않는 위협에 한껏 긴장감을 끌어 올린 채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저 모습을 보아, 확실하다.
“오라! 언데드들이여!”
채앵!
곧 루나의 검집에서 새하얀 나신이 경쾌하게 뽑혀 나왔다.
드물게 은빛 투구까지 갖춰 입은 모습이, 영락없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선 기사 같았다.
물론 실상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였지만.
그럼에도 불안감은 여전했다.
너무 약하면 큰일인데.
루나 말고 스켈레톤 쪽이.
힘 조절이야 알아서 잘해주겠지만, 그 약한 힘조차 버티지 못하고 단숨에 부수어질까.
그것이 못내 신경 쓰인다.
‘공격해.’
가가가각!
내 명령에 스켈레톤 세 마리가 단숨에 루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뼈다귀를 하나씩 그려 쥔 그것들의 움직임은,
까강! 까가가강!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윽…! 보통 스켈레톤들이 아닌 건가?”
루나가 반쯤 진심을 담아 소리쳤다.
일반적으로 스켈레톤의 움직임은, 아무리 좋게 쳐줘도 무(武)를 모르는 성인 남성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지닌바 힘도 마찬가지였고.
내구력은 오히려 그보다 더 떨어졌기에, 딱 최하급에 어울리는 언데드였다.
한데, 내가 소환한 스켈레톤들은 그런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외형만 봐도 그랬다.
뼈다귀는 하얗다는 선입관마저 깨부수고.
각기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의 색깔들을 가지고 있는 그것들은, 움직임 또한 상당히 날랬으니까.
거기에 더하여,
파직!
“……!”
나는 보았다.
예의 샛노란 스켈레톤이 제 정강이뼈를 휘두른 직후.
그 궤적을 따라 옅은 스파크가 허공에 남는 모습을.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무려 속성을 품은 스켈레톤이라니!
“음…….”
그럼에도 루나에게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되겠지만.
연기 상대로는 충분하다 못해 과분했다.
이미 3분을 훌쩍 넘게 버텨주고 있었으니까.
“…지금부터는 내가 하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타락시아 페르잔은 지체하지 않고 하늘 높이 몸을 띄웠다.
“저는 초월의 마법사 아타락시아 페르잔입니다. 탑 내에 계신 분들은 지금 당장, 출입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안전을 위해 마법 대전은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지 마시고, 침착하게 빠져나가 주십시오!”
그는 플라이와 목소리 증폭 마법을 이용해, 단숨에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효과는 대단했다.
“나, 나갑시다!”
“괜히 휘말려서 개죽음 당하는 일은 사양이야! 고작 이런 여흥 때문에!”
“비켜! 내가 먼저야!”
하나둘 벌떡 일어난 관중들이 우르르 계단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는데,
‘자, 이제 모습을 드러내시지. 어떻게 반응할 거지?’
내 시선은 최고 귀빈석.
정확히는, 마치 불꽃을 연상케 하는 미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블레어 던 마그마르.
제1마탑주이자, 명실상부 마탑의 1인자.
이번 일을 꾸민 제국의 인사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정황상 저자가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내가 그리 생각하던 순간.
- 그만!
“……!”
부랴부랴 자리를 뜨려던 관중들을 단번에 멈춰 세울 정도로, 위엄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욱더 많은 마나를 담아.
한순간 좌중을 사로잡은 제1마탑주가 타오르는 듯한 시선으로 하늘을 노려봤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탑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선 관련 없는 외부인들부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지요.”
“전시 상황에서 탑 내의 지휘권은 내게 있다! 이리 질서 없이 움직여서야, 더 큰 피해가 생겨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역시 겉모습이야 어떻든, 내면은 닳고 닳은 노마법사라는 거지.
불쾌하게 변해가던 관중들의 표정이 그 한마디에 눈 녹듯이 사라진다.
“아니오! 이번에는 초월의 마탑주의 판단이 옳습니다.”
한데, 여기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끼어들었다.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대규모 폭발 마법이라도 터진다면, 되레 피해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겁니다. 외부인들을 당장 다른 곳으로 대피시켜야 합니다!”
“……!”
잠시 조용해졌던 사람들이, 그와 동시에 재차 커져 간다.
“저, 저 말이 맞아. 다들 봤잖아? 결계조차 단숨에 찌그러지던 그 미친 흑마법을!”
“테라 아카데미 때도 이랬다고 들었어! 어영부영하다간 모조리 다 죽을 거야!”
“어서 나갑시다! 죽고 나서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멈춰 있던 관중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결국 최초의 목표를 달성한 나는 묘한 눈빛으로 그 의외의 조력자를 쳐다봤다.
일견 졸려 보이기까지 한 사내.
파괴의 마탑주, 잭 디스페로우.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전면에 나선 것일까?
***
4층의 관중석.
“이대로 두고만 볼 건가?”
로브를 푹 눌러쓴 앤그리가 물었다.
직후, 곁에 앉은 서큐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곧 스노비가 도착할 텐데,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당장에 화를 낼걸?”
“…탑의 출구는 총 두 곳. 각각 하나씩 맡지.”
“찬성이야.”
서큐버의 요사스러운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 사이하게 빛났다.
“우리만의 장례식을 시작하자. 럼프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축제. 이렇게라도 치러줘야, 그 녀석도 편히 눈 감을 수 있을 테니까.”
“서큐버, 역시 너는 정이 많군.”
“몇 없는 동료였으니까.”
“동료라…….”
어느새 앤그리의 양손에는 핏빛 너클 한 쌍이 끼워져 있었다.
곧 양팔의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의 본체는 분노의 마왕 사트루누스.
“하면, 나도 진심을 다해 조의를 표하도록 하지.”
마계에서의 이명은, ‘만물을 때려 부수는 자’다.
***
“꺄아아아아아악!”
“……!”
깜빡 잠이 든 나머지, 뒤늦게 탑에 도착한 유리나가 화들짝 놀랐다.
방금, 심상치 않은 비명이 내부에서 들려왔다.
“대체…?”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곧 탑의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마법사들도 내부를 힐끗거리기 바빴다.
저들은 문지기라는 맡은 바 임무가 있었기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문제는, 이변이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
발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직후 유리나가 청각에 신경을 집중하자, 보다 확실하게 땅 울림이 전해져 왔다.
쿵, 쿵, 쿵, 쿵!
“지진은 아니야. 이건…….”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소리가 너무 일정하면서 규칙적이었다.
이에, 유리나의 눈동자가 홱 하고 그 진원지를 향했다.
저 멀리, 드넓은 지평선 너머.
마치 개미와도 같은 새까만 흑점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흑점들은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어났다.
“사람…?”
맙소사.
저 흑점들이 전부 다 사람이라고?
저만한 인원이라면, 가히 일국의 군대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여, 유리나는 곧바로 한 가지 마법을 캐스팅했다.
“매직 아이.”
시력을 대폭 상향시키는 2써클 마법이었다.
가장 먼저 펄럭이는 깃발이 시야로 들어온다.
그 아래에, 황금빛 풀플레이트를 멋들어지게 착용한 백마 탄 사내도.
쿵! 쿵! 쿵!
진군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저들이 가까워질수록, 기수가 든 기도 보다 확실하게 망막에 맺혔다.
새하얀 바탕 위.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한 마리의 황금빛 매.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저 문양을 사용하는 나라는 오직 한 군데뿐이었다.
“제국…?”
이내 유리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제발 머릿속을 잠식해 가는, 이 불길한 예상이 틀리기를…….
***
퍼억! 퍼어억!
마치 수박 통이 으깨지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아무도 이곳에서 못 나간다.”
역동적인 근육이 꿈틀거릴 때마다 새하얀 뇌수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칠악의 앤그리.
그의 주먹질 한 방에 최소 셋은 되는 사람의 머리가 퍼석퍼석 터져 나가고 있었다.
“…역시 있었나?”
나는 그 끔찍한 광경을 3층 한구석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둘만으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염화의 마탑주! 앞으로 20분이오! 딱 20분이면 당신이 기다리는 분이 도착하실 것이니, 그때까지만 저들을 좀 도와주시오!”
“……!”
관중석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증폭 마법을 사용했는지, 그 성량 또한 상당했다.
사람들의 얼굴 위로 의문이 떠오른다.
물론, 저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던 나는 흠칫 몸을 굳혔다.
“…어쩔 수 없나?”
제법 떨어진 거리였다.
허나, 블레어 던 마그마르는 분명 입 모양으로 그리 중얼거렸다.
“위험…!”
내가 경고성을 토해내기도 전에, 발 빠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콰아아아앙!
직후, 마탑주들이 모여 있는 최고 귀빈석에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무려 마탑주들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
여섯의 마탑주가, 아타락시아 페르잔을 제외한 다른 다섯 마탑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순식간에 두 인영이 피를 흩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 마탑의 마법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결계를 유지하도록! 죽는 그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마나를 쏟아부어라!
“명 받들겠습니다!”
이어지는 블레어의 외침에, 탑 내 대부분의 호위 마법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직후, 주변을 감싸고 있던 결계에 갑작스레 이질적인 기운이 감지된다.
마나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력 방해 결계다.
저 써클 마법사에게는 상당히 효과적인 결계이지만, 어지간한 경지의 마법사들에게는 딱히 효과도 없는.
허나, 이것의 진짜 무서움은 통신용 수정구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이걸 위해서였나?
실상은 안전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호위를 가장한, 학살을 위해서…….
- 이곳에 있는 전원, 이곳에서 죽어줘야겠네. 어차피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
“무슨 개소리냐!?”
관중석 한편에서, 꽤나 높아 보이는 어느 귀족이 고함쳤다.
허나,
화르르륵!
블레어는 본보기 삼아 그 귀족을 단숨에 불살라 버렸다.
채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람 하나가 재로 화해 사라졌다.
이게 진짜로 실제 상황이라고?
내 예상보다 일이 훨씬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최악이군.”
어느새 내 곁에 내려선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탑주로서 실격이군. 소속 마법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니…….”
“…좌절하기에는 이릅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미 예상했지 않습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되면 승산은 희박해. 저 노인네는 정말로 괴물이거든.”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손가락을 들어 블레어 마탑주를 가리켰다.
“가령 나와 잭 디스페로우가 합공을 해도… 승리는 장담하지 못할 거야.”
“……!”
미친.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괴물이라고?
“저 인간은 오십을 넘은 내가 태어났을 무렵에, 이미 마탑주에 올라 있던 사람이니까.”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응. 그러니 넌 이곳을 탈출하는 걸 최우선으로 여겨. 이기는 것보다, 외부에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말을 마친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자조적인 미소를 베어 물었다.
“어쩌면 네 해명을 듣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아무래도 여기가 내 무덤이 될 것 같거든.”
“…….”
그 음울한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