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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86화 (86/251)

86화. 귀국(1)

“용병단이시니, 다들 개인 용병패도 소지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확인할 수 있겠는지요?”

두 병사가 다가선다.

내 시야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성문 앞의 경비는 여덟이 한 조가 되어 교대로 근무를 섰다.

루나의 앞을 막아선 인원이 둘.

경계의 눈초리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원이 넷.

다시, 우리 앞의 둘까지.

눈에 보이는 건 이렇게 여덟이 전부지만, 성문 양쪽의 초소 내에 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있을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뚫자고 했잖아.”

빠르게 다가선 스승님이 소곤거렸다.

“잠시만요.”

“왜, 또?”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뚫는다는 계획 자체에는 동의한다.

허나, 여럿이 움직이면 대번에 의심을 살 것이다.

저들의 매뉴얼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하니, 혼자가 낫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진 여덟을 동시에 제압해야 하는 일.

하나라도 놓치면, 대번에 호각이 울리고 초소 내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용병패가 없으십니까?”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선 병사 둘이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나머지는 믿는다.

내가 상대해야 할 이는 성문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넷.

빠르게 메시지 마법을 쏘아 보내고,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 물론 있죠. 저부터 보여 드리면 되나요?”

“네. 저희가 지목하는 몇몇 분들만 확인하겠습니다.”

“잠시만요.”

물건을 꺼내는 척, 조용히 써클을 휘돌렸다.

신속하면서도 은밀하게.

더하여, 단번에 대상을 기절시킬 수 있는 한 방을.

…아니, 네 방.

투투투퉁!

땅 밑에서 무언가 쏘아져 나가는 소리가 연속해서 울려 퍼졌다.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화살.

록 에로우(Rock Arrow)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에로우 계열 마법은 단순히 쏘아 보내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으니까.

목표물을 적중시킬 극도로 세밀한 컨트롤.

하나라도 놓치면, 계획은 실패였다.

따다닥! 퍼억!

“퍼억…?”

저런 소리가 날 리가 없는데.

힘이 부족했나?

곧 우측의 쓰러진 사내가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소리가 미묘하게 다르다 싶더니, 마지막 한 발이 관자놀이가 아닌 뺨을 가격한 모양이다.

“무, 무슨…!”

순간 루나가 유려하게 몸을 휘돌렸다.

툭!

발치의 돌멩이를 가볍게 걷어차는 한편.

퍼퍽!

“억!”

전면의 둘마저 손날을 이용해 단숨에 기절시킨다.

물론,

“이, 이런 짓을 하고도…….”

“한숨 푹 자고 일어나셔.”

털썩!

직후, 내 앞의 둘 또한.

깔끔하게 일처리를 끝낸 스승님이 손바닥을 털었다.

타닥, 타닥, 타닥.

“…….”

이제 사위는 간간이 횃불 타는 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대로 성문을 벗어나면 성벽 위, 망루의 경계병이 이상 징후를 눈치채겠지만, 상관없었다.

그때쯤이면 이미 위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일 테니까.

“너, 마력 컨트롤이…?”

순간 실비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제법이잖아? 이런 건 나도 안 가르쳐 줬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제자 아니겠습니까?”

“까분다, 또.”

사실, 당대에 정밀도까지 갖춘 마법사는 흔치 않았다.

달리 컨트롤(Control) 능력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일대일은 기사.

전쟁에서는 마법사라는 말이 있듯.

그간의 마법은 얼마나 더 많은 적을 효과적으로 ‘대량살상’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발전되어 왔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처럼 하나하나를 제압하는 마법은 인기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논 타게팅(Non Targeting) 마법의 적중률은 궁수가 활을 쏘는 것만 못했으니까.

일반인들이 착각하는 대표적인 예가, 에로우 계열 마법은 다 타게팅 마법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쉽게 말해, 대상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휘리릭 날아가 타격할 거라는, 진짜 마법 같은 이야기.

허나, 현실은 정반대다.

이게 오늘날 에로우 계열 마법이 사장되다시피 한 이유였다.

“이제 가시죠?”

이내 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이런 반응, 썩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 맛에 마법을 배우지.

***

제1마탑.

“…….”

총 12층으로 이루어진 그곳 9층에서, 유리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참고로, 8층부터는 층 전체가 한 개인의 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중에서도 이곳, 9층의 주인은…

“오라길래 왔어요.”

“나는 결승전이 끝나고 오라는 뜻이었다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됐나 보네요. 돌아갈까요?”

“…뭐, 상관없겠지.”

마력 승강기 앞에 대략 서른쯤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불꽃을 다루는 마법사답지 않게, 푸른 머리칼을 가진 그는 눈동자마저 새파랬다.

제1마탑주의 직계제자, 프레이 던 마그마르였다.

“결승전 진출, 축하드려요.”

“고맙군.”

“이왕이면 이기시고요. 그래도 우승자에게 패했다고 하면, 돌아가서도 할 말이 있으니까요.”

순간 사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게 아니라, 제노스 델 카이클에게 힘이 주어지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고?”

“무슨 말씀을…….”

“유리나 벤 아리에나.”

“……!”

“풀네임을 감췄어도, 그런 눈에 띄는 얼굴을 가지고 사람들의 이목을 속일 순 없지.”

저벅.

직후, 사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섰다.

“뜬금없지만, 내 것이 되겠나?”

“……!”

그리곤, 그 손가락을 뻗어 유리나의 고운 턱밑을 쓸어대기 시작한다.

“지금 이게 무슨…!”

“불사조의 정수. 들어는 봤을 테지?”

움찔.

거짓말처럼 유리나가 움직임을 멈췄다.

“일단 취하기만 하면, 화염 계열 마나의 친화도를 대폭 상승시켜 줌은 물론, 불꽃에 대한 내성까지 생긴다고 알려진 보물 중의 보물이지.”

“…그래서요? 그걸 내어주고 날 가져보겠다, 뭐 그런 뜻인가요?”

“훗. 천만에. 그게 내 손안에 있었다면 당장에 내가 취했겠지. 왜 아깝게 남을 주나?”

“헹. 되게 솔직하시네요. 난 욕심 많은 남자는 별로던데.”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정보를 주지.”

“……?”

“혹시 알고 있나? 여기서 무척이나 가까운 곳에, 불사조의 정수가 있다는 사실을.”

유리나의 얼굴 위로 떠오른 의문이 한층 더 짙어졌다.

“뭔 헛소리시래?”

“정수는 이름 그대로 생명의 원천이다. 불사조의 배를 산채로 갈라야만 그것을 취할 수 있지.”

“핵심만 말씀하시죠?”

“신수라 불리는 생명체의 몸속에서도 흡수되지 않고 힘을 키워가는 근원의 힘. 하면, 그 정수를 취한 인간은 어떨까?”

“어떻긴 뭘…….”

“섭취와 동시에 완전히 흡수될까? 그도 아니면, 여전히 신체에 남아 고고히 제 존재감을 뽐낼까?”

“……!”

이제 유리나는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대로 남는다. 이미 확인 또한 했지. 나는 그게 탐이 난다.”

유리나가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미, 미쳤어. 지금 제 스승을 해하겠다는 뜻인가요?”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지.”

“그게 무슨…….”

“내 스승님이 불사조의 정수를 어찌 취하셨는지 아나?”

“그야, 할아버지를 포함한 수백 마법사들이 목숨을 던져가며 겨우 붙잡아…….”

“틀렸다.”

“……?”

“그들을 죽인 것은 불사조가 아니야. 내 스승님이지.”

“……!”

“그들은 살해당했다.”

마침내 사내가 말을 마치자 유리나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제자는 스승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운다고 하지. 어떤가, 이러면 대충 감이 오나?”

***

성문을 통과하고도 조금 더 걷자, 그리 멀지 않은 숲 입구에 수백 필의 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소규모 상인들도.

“연합주님, 오셨습니까?”

정확히는, 미리 연락을 받고 도시에서 나와 있던 연합원들이었다.

이걸 타고 우리는 밤을 새워 공왕의 영역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세실리아. 내가 시킨 일은?”

“말씀대로, 각 조장들에게 통신용 수정구로 모두 전달 마무리했습니다. 조기에 임무 종료가 가능한 이들은 곧장 테라로. 나머지 인원들도 임무가 끝나는 대로 출발하는 것으로요.”

“저 애가 한 말도 있고, 봄이 오기 전에 다 와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손가락을 들어 실비아를 가리킨 스승님이 곧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연합의 구성원들은 나도 많이 접하지 못했다.

꼬박 3년을 지내면서도 같은 사람을 두 번 마주하기가 힘들었으니까.

여기에는 달리 이유가 있었다.

용병 길드가 대게 몬스터 토벌이나 물품 호송 등, 중단기적인 의뢰를 맡아왔다면.

자유 연합은 그보다 장기적인 상주 의뢰들.

그러니까, 최소 1년 단위의 경비 업무나 지역 탐사 업무 따위를 주로 맡아왔기 때문이다.

애당초 주 수입원도 달랐다.

용병은 의뢰에 대한 보상을.

연합은 의뢰는 부수입일 뿐이고, 각종 유적지나 난파선 탐사를 통한 이익 창출이 주였으니까.

그 인원이 대략 팔천.

마탑이나 다른 용병들에 비해 인원은 턱없이 부족했으나, 연합은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다.

“한데… 정말로 테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아시다시피 거긴…….”

스승님이 세실리아 씨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언제까지 방랑자로 살아갈 수는 없잖아. 이제 우리도 번듯한 집 하나 장만해야지.”

“…….”

“설마 지들 목숨 구해준 애들을 상대로 배신을 때리겠어? 그리고 일단 자치구로 인정받으면 국왕이라도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

한 나라가 스스로 제 살을 도려내는 일이다.

아마 제국이나 다른 왕국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테지.

그리고, 해준 것도 없으면서 조금만 핍박하면 당장에 감 놔라, 배 놔라 목청을 높일 테고.

“…뜻이 정 그러시다면, 제가 직접 상황을 봐야겠습니다.”

“우리 참모가 그러시다는데?”

기다렸다는 듯, 실비아가 앞으로 나섰다.

“저랑 같이 가시죠.”

“넌 마탑으로 갈 거라며?”

“해방군의 가장 뛰어난 참모로서, 이토록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게 신경 쓰이기는 했거든요.”

“여전히 재수도 없고.”

피식 웃음을 터뜨린 스승님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우리는 두 패로 갈라지기로 했다.

주력이나 다름없는 실비아와 스승님, 연합원들은 모두 테라로.

그리고…

“그럼 내가 마탑으로 가서 유리나를 데리고 오면 되는 거지?”

“나도 같이 간다.”

“……?”

“…우리 일이니까. 너한테만 맡겨둘 수는 없지.”

아직 ‘동료’라는 인식이 완전히 박혀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3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니까.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아니, 같이 간다.”

이러면 곤란한데.

“…그럼, 겸사겸사 결승전도 보고 떠나도 되는 거지?”

“……?”

“실은 나도 제노스, 그 녀석에게 볼일이 있어서.”

“…….”

아직도 ‘드래곤’ 운운하던 녀석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하여,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캐물을 생각이다.

“…애당초 배보다 배꼽에 관심이 있었군.”

그걸 위해, ‘어이없음’이라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루나는 깔끔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

제11마탑.

“결국 결승전까지 갔군.”

바람의 마탑주 아이젠버그와 제노스의 밀월 관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기실 제국 출신이기도 한 아이젠버그는, 가문의 일원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신경 쓰이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타 쿤 이그니스에 대해 조사해 주시지요. 마탑의 정보력으로 말입니다.”

“세타 쿤 이그니스라면… 개막전의 그 시건방진 놈?”

“예.”

아이젠버그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내가 왜?”

“탑주님에게도, 제국에도 도움이 되는 일일 테니까요.”

“스스로의 처지를 잊은 건 아니겠지? 구체적으로 얘기해라.”

“…….”

역시 호락호락 넘어가는 상대가 아니었다.

여기서 제노스는 잠시간 고민했다.

어느 선까지 얘기해 줘야 이들이 움직일까?

정도가 과해서는 안 된다.

먼저 접촉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어야 하니까.

‘차라리 그때 붙잡고 끝을 봤어야 하는 건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하물며 그때는 불가항력이었다.

녀석의 곁에, 8월의 검사도 함께 있었으니까.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리는군.”

“…….”

직후, 제노스는 결심했다.

하면, 마법사 개인의 욕망을 건드려 본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상대도 비슷한 종류의 흥미를 품게 만드는 거다.

“…세타 쿤 이그니스가, 초월의 마탑주님과 같은 재능을 타고났다는 얘기는 들어보셨겠지요?”

“…….”

무언의 긍정이다.

이러면 얘기가 더 쉬웠다.

“그게 실은 초월의 재능이 아니라면요?”

“…뭐?”

“사람들은 초월이라는 재능이, 순전히 한계 따위는 없는 올 라운더 매지션을 뜻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일부 상성이 맞는 주력을 제외하고, 다른 주력들은 마나가 ‘배’ 이상 든다는 사실을요. 그에 대한 효율성 문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

“그럼에도 초월의 마탑주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그 극악의 비효율성을 무시할 정도로, 적재적소에 마법을 사용해서인즉.”

“…….”

“허나, 제가 봐온 세타 쿤 이그니스에게 그와 같은 낌새는 없었습니다.”

“…뭐라고?”

“녀석은 쓸데없는 마나의 낭비 없이, ‘모든’ 주력을 다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쾅!

아이젠버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듣자듣자 하니까, 갑자기 찾아와선 개소리만 늘어놓는구나. 그러니까 네놈은, 초월의 재능조차 뛰어넘은 전혀 새로운 애송이가 나타났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냐?”

“전혀 새로운 건 아니지요.”

“뭐라?”

“과거에는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마법사‘들’이.”

“무슨…….”

순간 제노스가 눈을 빛냈다.

“…용혈의 마법사.”

“뭐?”

“세타 쿤 이그니스는, 사라진 그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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