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82화 (82/251)

82화. 전쟁의 시발점

공왕을 생포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미친 행위에 동참하고 있었다.

마나를 운용하자 보다 확실하게 느껴졌다.

선두에서 다가서는 이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진짜배기는…

“으음…….”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이 소동이 벌어졌는데도 줄곧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이들.

공왕 주변에 자리 잡은 도합 다섯의 기사.

여태 검은 뽑지도 않고 있는 그들에게서 허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왕을 사로잡으려면, 결국 저 철통같은 호위도 뚫어내야 한다는 건데…

“공국만큼 기사들 간의 수준 차이가 심하게 나는 곳도 없다더니.”

마침 스승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씀이긴. 그런 쩌리 하나 처리하고 너무 들뜨지 말라는 뜻이다, 짜식아. 애당초 정규 기사라는 놈이, 고작 마법사 주먹 한 방에 저리 나가떨어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제가 강한 것 아닐까요? 그래도 나름, 공국 제일의 유망주쯤 되어 보이는 사람도 꺾었는데요. 경지도 엑스퍼트 중급이라던데.”

“그럼 걔도 쩌리겠네. 그리고, 엑스퍼트 중급이 다 같은 중급인 줄 알아? 실제로 제국 출신 기사는, 같은 경지의 공국 기사 셋도 감당할 수 있을걸?”

“에이, 그래도 설마 그렇게까지야…….”

나는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제법 컸던 탓인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의 기세가 사뭇 흉흉하게 변했으니까.

허나, 스승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나마 쓸 만한 놈들은 철의 기사. 그리고 저기 왕 주변의 다섯 정도? 분명 스란에는 파이브 쉴드라는, 유치뽕짝한 이름을 가진 놈들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지.”

“저, 스승님? 그리 크게 말씀하시면 다 들릴 텐데…….”

“들리면 뭐. 어쩌라고?”

“…….”

역시 내 스승님들은 닮았다.

본인들은 절대 아니라고 핏대를 세우곤 하시지만.

다르긴 무슨.

‘스승님이 셋, 나와 세디스가 각각 하나씩 맡는다면 참 좋겠지만…….’

문제는 상대가 예의 다섯 기사들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곳은 적진 한복판.

무식하게 머릿수로 몰아붙이면 승산은 없었다.

하니, 여기서 스승님에게 기대해 본다.

그래도 대조직을 이끄는 수장이 아니신가?

이쯤 되면 진짜 계획을 말씀하시겠지.

“니네, 일일이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한꺼번에 다 덤벼라.”

슬금슬금 접근하는 일부 기사들을 향해 스승님이 눈을 부라렸다.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허나, 바로 직후 메시지 마법이 들려왔다.

- 야, 튀자.

- 예에?

- 이만하면 됐잖냐.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뜨자고.

- 소기의 목적이라니… 일을 이 지경으로 벌려 놓으시고요?

- 공왕 흉내 내는 저거. 정체는 모르겠지만 제국과 관련된 놈이란 건 확실해졌잖아. 눈치를 보아하니, 다른 외부인들도 조금은 의심하는 것 같고.

- …설마, 처음부터 이러실 생각이셨어요?

- 응. 얘네 지금 빡 돌아서 나만 쳐다보고 있잖아? 이럴 때 딱 알맞은 마법이 있으니까, 너는 튈 준비나 해. 세디스한테도 전달해 주고.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한순간 두 스승님을 동급으로 취급한 점을.

세논 스승님에게는 진심으로 면목이 없었다.

- 레드 썬! 하면 튀는 거다.

- 레드 썬… 이요?

- 아, 알려줬잖아. 척하면 알아들어야지. 태양권 말이야, 빙딱아.

- 아하.

1써클 마법에 무려 5써클의 마나를 쏟아붓는 것.

모두가 알다시피, 지극히도 비효율적인 일이다.

가령 같은 마나로 파이어볼을 만들어내더라도.

그 위력은 다른 5써클 화염 계열 마법보다 훨씬 떨어졌으니까.

이런 부분에서 스승님은 천재였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당신이 직접 고안해 낸 마법.

일명 ‘태양권’은, 특정 상황에서 본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위력을 발휘했으니까.

‘눈 딱 감아. 도망칠 거니까.’

“……!”

나는 곧, 세디스를 향해 빠르게 메시지 마법을 쏘아 보냈다.

태양권이란, 이름 그대로 빛을 강하게 점등시켜 한순간 적의 시야를 빼앗는 마법이었으니까.

허나, 그 실체는 고작 1써클 라이트다.

“왜들 그래? 사내새끼들이 여자 하나랑 어린애 둘한테 쫄았냐?”

“흥분하지 마라! 상대는 그 빛의 마녀다. 방진을 형성하고, 철저하게 자리를 지켜라. 시간은 우리 편이다!”

“호오? 그럼 가만히 서서 한번 막아보시던가.”

“……!”

이윽고 스승님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마치 대규모 마법이라도 준비하는 듯이.

우웅! 우우우우웅!

펼쳐진 양팔 사이로 무시하지 못할 마나가 대기를 진동시켰다.

“안 돼! 막아라!”

직후, 최선두의 기사 일 개 조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스승님이 눈을 빛냈다.

“호구 새끼들.”

번-쩍!

마치 태양이 지상으로 추락한 듯.

이내 어마어마한 빛무리가 연회장 내부를 가득 메웠다.

***

다다다다다다!

우리는 지금, 날듯이 복도를 뛰고 있었다.

“에이스 스승님은 어쩌죠?”

“지가 애야? 알아서 오겠지.”

“…그 말씀, 혹시나 들으면 되게 상처받으실 것 같은데.”

“오히려 혼자야 탈출 확률이 훨씬 높은 놈이야. 고작 공국의 궁일 뿐이잖아?”

누가 들으면 당장에 미친년 소리 듣기 좋은 발언이었다.

그래도 일국의 궁이 아니던가?

물론 스승님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우뚝.

그때, 별안간 스승님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갑자기 왜 멈추세요?”

“생각해 봤는데, 이대로 길을 따라가면 또 귀찮은 것들이 막고 있겠지?”

“네? 그야 뭐…….”

“그럼, 그냥 새로운 길을 만드는 편이 낫겠지?”

“……?”

“물러서. 여길 허물어 버릴 거니까.”

그리곤 언젠가 본 적 있는 주먹만 한 빛 덩이를 만들어 내는 스승님이셨다.

나는 안다.

저거 하나면…

파스스!

직후, 순식간에 복도의 한쪽 벽면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한데,

“오?”

마침 그곳이 왕의 선물을 보관하는 임시 창고였던 모양이다.

무수한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방이었다.

분명 문밖에 경비 병력이 있을 텐데도, 워낙 작은 소음이라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대박.”

나지막이 감탄사를 터뜨린 스승님이 빠르게 내부를 훑었다.

“이건 이백 년 묵은 설삼이고, 이건 어지간한 저택 값이랑 맞먹는다는 블루 다이아몬드. 저건… 오! 최상급 마나석을 갈아 넣은 반지잖아?”

“헉, 진짜요?”

세디스마저 놀라 기함했다.

“역시 왕은 왕이라는 거지? 효과가 뭔지는 가져가 보면 알 테니까. 일단 이거랑 이거. 이거까지. 아니다. 딱 봐도 돈 될 만한 건 다 챙겨.”

“예? 그건…….”

“뭐? 어차피 이대로라면 공국을 떠야 할 텐데, 땅이랑 건물 값 정도는 받아내야 할 것 아니야?”

“그렇긴 한데요, 연합주님. 저희는 손이 두 개인데요?”

“이걸 써라.”

툭.

순간 스승님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지신다.

아공간 주머니였다.

아니, 근데 저거 방금 어디서 나온 거지?

“…그래서 카피 본도 용케 숨길 수 있으셨던 거였군.”

“빨리 움직여. 시간 없다.”

“진짜 하시게요? 세디스 말마따나, 이건 도둑질이랑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은데…….”

“십 퍼센트.”

“……!”

“아니, 이십 퍼센트 준다. 아공간 주머니는 내 거니까, 이 정도면 엄청 인심 쓴 거 알지?”

번뇌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최선을 다해 쓸어 담겠습니다, 스승님.”

하긴, 도둑놈이면 또 어떤가?

어차피 이미 공국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가 되어 버렸는데.

***

제9마탑 인근.

으드득.

누군가의 이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일견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복장의 중년 사내였다.

그 뒤로 오십의 기사들이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제국의 기사들.

그중에서도 파동의 마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명문, 트라오레 가문의 기사들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물론 이곳은 마탑의 영역이었기에 탑에서 나온 인사도 동행한 상태였다.

그것도 제1마탑의 부탑주가 직접.

“지금 당장 치유의 마탑으로 연락해! 상처가 심각하다!”

“알겠습니다!”

그런 그들의 앞에 한 인영이 죽어가고 있었다.

제1부탑주와도 안면이 있는, 대 트라오레 가(家)의 핏줄이.

“우리 영역 한복판에서 어찌 이런… 정말로 면목 없네. 마탑의 명예를 걸고, 흉수는 반드시 잡겠네.”

“…….”

그럼에도 트라오레 백작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이에, 제1부탑주의 안색이 점차 초조해져 갈 무렵.

“2황자 쪽은 아니겠습니까?”

조용히 다가선 휘하 가신이 트라오레 백작의 귓가에 속삭였다.

“…굳이 타국의 영역에서 이리 대범하게 일을 벌일 인물은 아니다.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실익도 없고.”

“그럼 대체…….”

“일단 이 녀석이 정신을 차려봐야 알겠지.”

순간 트라오레 백작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개막전에서 이 녀석을 패배시켰던 그 아이… 이름이 뭐였지?”

“예? 갑자기 그건 왜…?”

기실, 이건 트라오레 백작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치부였다.

나름 제국 제일을 자처하는 명가의 일원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연합의 애송이에게 무릎을 꿇은,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으니까.

그런 일을 트라오레 백작은 지금 스스로 수면 위로 떠올리고 있었다.

“이 녀석, 생각보다 속이 좁아. 만약 그 일을 가지고 복수라도 하겠다며 설치다가 이 꼴을 당한 거라면…….”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도련님이 그리 우둔한 행동을 하실 리가 없지요.”

“…뭐가 됐든, 지금은 여러 가지를 의심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리고…….”

찰나, 말끝을 흐리던 트라오레 백작이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그게 누구라도, 내 것을 건드린 죗값은 톡톡히 치르게 해줄 것이다.”

허나 이때에는 그도 알지 못했다.

이 일이, 바야흐로 대륙 전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는.

***

“이, 이제 멈춰도 되지 않을까요?”

얼마나 기었는지, 허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호위 병력이 가장 많은 궁 내부는 확실하게 벗어났다.

우리만의 특별한 경로를 통해 결국 소기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물론, 에이스 스승님에게 대부분의 시선이 쏠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쯤 타국도 난리가 났겠죠?”

“그렇겠지.”

“그럼, 저희는 이제 어쩌죠?”

“뭘 어째. 챙길 거만 챙겨서 곧장 이 나라를 떠야지.”

“바로 추격자가 붙지 않을까요?”

“아닐걸?”

“네?”

“지금은 외부인들이 방문해 있는 상황이잖냐. 꼴랑 세 명 잡겠다고 이 난리를 친 것도 쪽팔릴 텐데, 거기에 연회까지 파한다고 해봐. 손님들은 무슨 죄냐?”

“…그것도 그렇네요.”

“최소 내일은 되어서야 일을 벌이겠지. 그 부당함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우리니까, 당장 떠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할 거고. 뭐, 그래도 감시자는 보낼 테지만.”

“이번에도 계획이 있으신 거죠? 어디로 옮기실 건지, 저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세요.”

“일단, 그나마 제국의 영향력이 약한 후보지가 세 군데 정도 있기는 한데…….”

그 후보지란, 아마도 다른 왕국일 것이다.

당장 나도 두 군데 정도는 떠올랐다.

대대로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르힘 왕국이나.

아예 외교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는 트루크 왕국 정도?

…잠깐만.

생각하다 보니, 문득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어차피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새 시작을 해야 하는 거라면…

“…스승님.”

“왜?”

“만약에요. 자리 잡는 데 성공만 한다면, 그 옛날 공국에서 받았던 수준보다 훨씬 더 나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생각 좀 있으세요?”

“…뭐? 지금 대륙 천지에 그런 곳이 어디 있냐? 당장 우리를 쫓아내지 않아도 감사해야 할 판국에.”

우리가 국외로 빠져나가면 공국은 끝까지 우리를 뒤쫓을 것이다.

다시 말해, 연합을 받아준다 함은 곧, 공국과 척을 지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약소국에 불과한 스란이지만…

일개 집단을 위해, 한 국가와 적이 되고픈 나라가 어디 있을까?

더욱이 그 옛날 스란이 연합에 베푼 혜택은 생각보다 훨씬 엄청났다.

일반적으로 집단은 번 돈의 40퍼센트를 세금으로 헌납했으나, 그 당시의 스란은 연합을 상대로 그 반의 반도 받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만약에요.”

“아, 빙빙 돌리지 말고 딱 말해 봐. 어딘데 거기가?”

채근하는 스승님을 향해, 이윽고 내가 짤막하게 답했다.

“테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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