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대세논 구출 작전(3)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두근, 두근.
적막한 침묵 속, 심장의 고동 소리만이 나지막이 들려온다.
이제야 확실히 느껴졌다.
저기 서 있는 여인에게선 아무런 기운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그게 일반인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마나는 물론이고, 인간이라면 응당 내포하고 있어야 할 생기까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내가 방금 느꼈던 기운은 뭐였던 거지?’
조금 더 기감에 집중한다.
그러자 주변의 생기들이 보다 면밀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넷.
허나, 마지막 하나는 더욱 끈적하며 사이했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은밀하게.
종래에는, 그 고고한 살의마저 드러내며.
나는 언젠가 비슷한 기운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이건, ‘마기’다.
사아아아아아!
“……!”
순간 흠칫 놀란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방금, 뱀의 아가리에 내 머리가 들이밀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연.
“역시 감이 좋네?”
두근, 두근, 두근.
심장 소리가 점차 빨라졌다.
아니, 잠깐만.
무언가 이상하다.
내게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속도가 빨랐다.
하물며 ‘하나’가 아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조금 더 많은 수가 일시에 뜀박질하는 듯한,
“…아.”
머지않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역시나 내 것이 아니다.
열 개의 심장이 동시다발적으로 박동하며 만들어내는 하모니였다.
제아무리 그 숫자가 다수더라도.
인간의 심장 소리가 타인에게 전해지려면, 대체 얼마나 거칠게 뛰어대야 하는 걸까?
내가 그리 생각하는 순간.
펑!
마치 그런 폭음이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부르르르르.
직후, 수마에 빠져든 열의 기사들이 전신을 떨었다.
구멍이란 구멍에선 하나같이 피까지 줄줄 흘러대며.
“무슨 짓을…?”
“글쎄~ 내가 무슨 짓을 했을까?”
“다 죽인 겁니까?”
“죽여? 우음… 이걸 죽었다고 해야 하나, 살았다고 해야 하나?”
“말장난하지 마시죠.”
“그치만 사실인걸. 지금은 망자(亡者)에 불과하지만, 곧 내 어여쁜 종들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그거 설마…….”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
곧 쓰러져 있던 열의 기사들이 비칠비칠 일어났다.
한데, 그 움직임이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언데드의 그것처럼.
“이만한 기사들에게 최면을 가하는 건, 나라도 힘들거든. 차라리 죽은 자를 조종하는 게 낫지. 물론 네크로맨시는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미친년.”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그 잔인한 손속도 놀라웠지만.
궁 한복판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저 대담함은 정말이지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다시 소개할게. 난 칠악에서도 색욕을 담당하고 있는 서큐버. 응, 그 짐작이 맞아. 서큐버스를 닮고 싶어서 내가 이름도 이렇게 지은 거거든.”
“…….”
“그리고, 이건 약속을 어긴 사내에게 내가 주는 벌이야. 다른 사람이었음 고민도 하지 않고 목을 꺾어버렸을 텐데. 넌 제법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저 헐벗은 미친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성도착증까지 있는 미친년이었다.
“그럼, 첫인사는 이 정도로 해둘까?”
제 용건은 모두 마쳤다는 뜻일까?
솟아오른 엉덩이를 씰룩대며 예의 미친년이 그대로 몸을 돌린다.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게 믿고 간다?”
“잠깐!”
“응?”
“당신이 칠악이라면 학장 할아버지는! 아즈문 사트리노는 어찌했지?”
“…….”
내 물음에 미친년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대지의 마법사? 당연히 죽었지. 사람이 지저 세계로 떨어지고 어떻게 사니?”
“…….”
“어머? 표정 한번 살벌해라~ 뻥이야, 뻥. 사실 나도 잘 몰라. 우리 보스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거든.”
“…….”
“근데, 아마 넌 평생 가도 알 수 없을걸? 대공을 만나는 그날이 네게는…….”
순간 말을 잇던 미친년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알았어~ 그놈의 잔소리. 그냥 가면 될 것 아냐. 나, 너 때문에 방금 혼났다? 이것도 달아둘 거야.”
안 된다.
저리 보낼 수는 없었다.
“크르르르…….”
허나, 예상대로 눈앞의 존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진짜로 간다. 안녕~”
“…젠장.”
이미 혼이 떠난 십의 기사들이 내 앞길을 막아섰다.
양손에는 날카롭게 날이 선 검까지 뽑아 쥔 채.
그토록 피하려고 했건만.
결국은 다수와의 전투다.
허나, 이제는 상관없었다.
우웅! 콰드득!
순간적으로 시전된 내 파동 마법에 기사 둘이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결정을 내렸다면, 행동은 신속하게.
단숨에 이들 모두를 처리하고 저 미친년을 뒤쫓는다.
***
“흥흥흥~”
서큐버가 콧소리까지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왔던 길을 그대로.
기나긴 복도를 넘어.
연회장도 지나쳐.
이내 궁 바깥에 이르기까지.
한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분명 그 와중에도 서큐버와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녀를 보는 즉시, 그들의 눈빛은 흐리멍덩하게 변하곤 했으니까.
더 나아가, 가볍게 목례를 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기실 이건 서큐버의 수많은 능력들 중 하나였다.
정신 착란.
그중에서도 매혹의 일종.
아마 저들에게는 지금 서큐버가 어느 귀족가의 고귀한 영애처럼 보일 터였다.
잠시 후, 궁 외곽의 정원 끝에서 새로운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 황자 전하! 혹시 날 기다리고 있던 거야?”
“서큐버. 내가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에이, 좀 봐주라아~ 세타라는 걔,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싶을 정도로 내 스타일이었단 말이야.”
비음까지 섞여가며 칭얼대는 서큐버를 보며 스노비가 미간을 찌푸렸다.
“일은 잘 처리했고?”
“응, 지금쯤 꽤나 골치 썩고 있을걸? 제 기사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공왕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이제는 단순 감금으로 끝낼 리가 없지.”
“번거롭네. 어차피 그는 네 조종을 받는 게 아니었어?”
“그건 맞는데, 이게 또 만능은 아니라서. 나는 거시적인 최면을 걸 뿐이야. 가령 ‘제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라’, ‘특정 대상을 죽여라’. 그러면, 세부적인 계획은 모두 대상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거거든.”
“생각보다 까다로운데…….”
“그게 아니면 십이월 정도 되는 인물은 당장에 눈치챘을걸? 뭐, 괜찮아. 나중에 내가 완전체로 거듭나게 되면, 최면의 힘도 훨씬 강해질 테니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서큐버가 빙글 제 몸을 휘돌렸다.
“그럼, 이제 자리를 뜨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응? 뭐야, 이대로 가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니까.”
“그건 그렇지만…….”
잠시 뒤를 돌아본 서큐버가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아~ 아쉬워라. 우리 황자 전하가 작정하고 키우려는 아이만 아니었음, 당장에 내가 잡아먹었을 텐데.”
“다시 말하지만, 대공에게는 비밀이야. 그는 저 아이를 죽이려고 하니까.”
“알지, 알지. 나도 최소한의 생각은 하거든?”
“생각…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얘기하는 거야.”
“뭐, 싸우자구?”
궁 내부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연신 티격거리는 두 칠악이었다.
***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뚝, 뚝, 뚝.
내 손바닥을 타고, 연이어 시뻘건 핏물이 떨어져 내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대상이 이미 망자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죽은 시신에라도 흠집을 내면, 온종일 찝찝한 것이 인간이었으니까.
생전에는 모르겠으나, 자아조차 없는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허나, 이전처럼 상처 없이 잠재우는 건 불가능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고.
사지가 날아가도 이빨로 덤벼드는 이들.
생명의 원천인 심장을 잃은 그들은, 이제 언데드였으니까.
하여, 내 손으로 직접 그 저주받은 운명의 고리를 끊어줬다.
앞으로 이들이 어떤 생을 살아갈지.
이곳을 벗어나면 또 어떤 피해를 일으킬지.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졌으니까.
“무슨 일이냐!?”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일까?
직후, 소란을 듣고 뛰쳐나온 지하의 둘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예의 강대한 힘을 품은 그들은 곧바로 거친 기세를 뿜어낸다.
그렇겠지.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광경이 몰살당한 동료들인데, 어느 누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개자식!”
“네놈 짓이냐? 어린놈이 어찌 이리도 잔혹한 손속을…!”
구태여 변명하지 않는다.
이들의 목숨을 끊은 게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물론 하더라도 믿지 않을 테지만.
여기서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도망치거나.
그도 아니면, 맞서 싸우거나.
척 보기에도 강자인 상대.
심지어 발을 딛고 선 곳은 적진 한복판.
전자는 가능성이 희박하며.
후자는 그 미친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대로는 답이 없었다.
“빌어먹을.”
쾅!
“……!”
욕지거리와 동시에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어느새?
또 다른 인영이 지하에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최소 엑스퍼트 중급에 이르는 두 기사를 단숨에 무릎 꿇리기까지 했다.
“컥, 컥…!”
불시에 기습을 당한 두 기사가 버둥거렸다.
목은 상대의 양손에 단단히 부여 잡힌 채.
그건, 한 덩이의 거대한 ‘빛’이었다.
나는 안다.
저건 어떤 사람이 창조한 고유의 마법.
일부 마법사들은 빛을 그저 어둠을 밝히는 데나 이용하는 주력이라 생각한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헛소리다.
빛은 그 자체로 크나큰 에너지다.
이게 어떤 개념이냐면, 특정한 공정 과정을 거쳤을 때 그 에너지를 ‘마나’로까지 대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라.
사방에 존재하는 것이 빛이다.
그 무수한 입자를, 한순간 마나로 치환시켜 사용할 수 있다면?
그걸 또 신체 능력을 상승시키는 데 이용한다면?
그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파직, 파지직!
거대한 빛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쉼 없이 전류를 튀겨댄다.
나는 그 빛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스승님…?”
뚜두둑.
“……!”
순간 무언가 부러지는 듯,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논 스승님은 망설임 없이 살육을 자행했다.
한창 버둥거리던 두 기사는 이내 추욱 늘어졌다.
부지불식간 눈앞에서 벌어진 살인 행위에, 내 눈가가 파르르 떨려댔다.
허나 놀라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빛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마침내 스승님 또한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
“…헉!”
왜인지 상기된 양 볼.
붉게 충혈된 두 눈동자.
더 나아가 촉촉해 보이는 얼굴의 피부까지.
그 모든 것을 말미암아, 지금 스승님은…
“호, 혹시 우세요?”
쩔그럭!
스승님의 양 손목에는 두터운 마력 구속기까지 채워진 상태였다.
놀란 내가 재빨리 다가섰다.
무려 6써클의 마나까지 억제하는 최고급 아티팩트다.
하물며 무게조차 수십 킬로그램을 자랑한다.
애당초 마나를 쓸 수 없는 마법사는, 이걸 차고서 움직이기조차 힘들다는 의미다.
한데 스승님은 이 상태로 경지에 다 다른 두 기사를 소리 없이 제거하기까지 하셨으니…
…그래서 더 의문이다.
쨍그랑!
내 마력에, 이윽고 양손을 구속하고 있던 속박기가 두 동강 났다.
그럼에도 스승님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세타.”
“괘, 괜찮으신 거죠?”
“너, 에이스랑 같이 왔겠지?”
“네? 그렇긴 한데…….”
“긴말하지 않겠다. 너는 그 녀석과 함께 이대로 연합으로 돌아가라.”
“무,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스승님은 연이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만 하셨다.
“…그래. 마탑과 관련 있는 이들. 그 윗대가리까지 모조리 없애 버려야 진정한 복수라고 할 수 있겠지.”
마탑? 윗대가리?
복수는 또 무슨 뜻인가?
“지금부터, 나는 이곳을 통째 쳐부술 생각이다.”
“네에!?”
“하니, 지금 당장 궁에서 나가. 오랜만이라 힘 조절이 전혀 안 될 것 같으니까.”
이내 제 할 말만 마친 스승님이 천천히 멀어져 간다.
“…….”
그리고 나는, 그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