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대세논 구출 작전(1)
사방을 밝히는 라이트 구가 점차 어두워진다.
다소 경쾌함마저 느껴지던 음악은 이내 잔잔하면서도 끈적한 느낌의 선율로 변해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지금부터는 오직 파트너와 나.
단둘만의 시간이다.
“시작해 볼까?”
실비아가 자연스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능숙하게 한 발을 내딛곤 그 손을 맞잡는다.
나머지 한쪽 손으로는 살포시 상대의 허리까지 감싸 안으며.
“…….”
잠시 움찔한 그녀였으나, 이윽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예전에 보니까 춤 좀 추더라?”
“학장 할아버지께 배운 적이 있거든.”
“…그 학장 할아버지라는 거, 설마 내가 아는 그 학장님?”
“그래. 내게는 부모 같은 분이셨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학장 할아버지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
비단 마법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소양이나 예의, 기타 교양적인 부분들까지도.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학장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꽤나 멋쟁이로 명성이 자자하셨다고 한다.
특히나 패션이나 춤과 같은 분야에서.
물론 나야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배를 잡고 웃어대곤 했지만.
“말이 나왔으니 묻는 건데.”
“……?”
“너는 학장님을 부모처럼 생각한다고 하면서, 왜 성은 사트리노가 아닌 이그니스인 거지?”
“…….”
“이상하잖아. 더군다나 본연의 업무인 마법사에 집중하고 싶다며 미들네임까지 스스로 버린 학장님과는 달리, 너는 ‘쿤’이라는 이름까지 있고.”
과거에는 나도 이 부분에 대해 궁금해 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정작 그 답을 줄 수 있는 학장 할아버지가, 물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만 하셨으니까.
아직도 기억난다.
내게는 내 삶이 있고, 네게는 네 삶이 있다… 라고.
아마도 대답해 주기 싫으신 거겠지.
지금에서는 내 ‘진짜’ 부모가 남겨준 이름이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너도 잘 모르는구나?”
눈치 빠른 실비아가 물었다.
“그럼, 내가 알려줄까?”
“…네가 어떻게?”
“아카데미 시절에 네 뒷조사를 한 적이 있거든.”
“…….”
그 솔직한 대답에 내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너무 기분 상해하지는 마. 한낱 낙제생 따위가 한순간에 비약적으로 실력이 상승했어.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궁금해 할 만하잖아?”
“그걸 말이라고…….”
“내가 궁금한 건 또 못 참는 성격이라서. 대신, 이렇게 너도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하니까. 그냥 넘어가지?”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
뭐 그런 건가?
어차피 지나간 일이야 돌이킬 수도 없으니, 아무렴 어떤가.
“…그래서?”
“학장님 말고, 네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았어.”
콱!
“악!”
나도 모르게 실비아의 발등을 밟고 말았다.
그것도 제법 세게.
당장에 도끼눈을 뜨는 상대가 시야로 들어온다.
“미, 미안.”
“…….”
한차례 내 눈을 쏘아본 실비아가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곤 계속 말했다.
“종종 검은 마물의 숲 중심부까지 약초를 캐러 다니던 근방의 미친 인간인데… 아직도 떠나지 않고 거기 있더라고.”
“약초꾼…?”
“그 비슷한 거겠지. 아무튼, 그가 얘기했어. 숲 한가운데 버려진 너.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어린아이를 업고, 오밤중에 검은 마물의 숲을 넘는 건 누구나 부담스럽겠지.”
“그거 설마…?”
“네 짐작이 맞아. 그래서 학장님도 발길을 돌려 인근 마을에 들르셨다나 봐.”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음악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학장 할아버지를 목격했다고 한다.
그만큼 검은 마물의 숲에서 걸어 나오는 중년의 사내와 어린아이는 인상적이었다고.
내가 간신히 의식만 붙잡고 있을 정도로 위급한 상태였기에, 학장 할아버지는 지체 없이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절박해 보여 제 먹을 것도 부족한 사람들이 음식이며 잠자리까지 제공했다고.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가 더 지났을 무렵.
마침내 내가 완전히 체력을 회복하게 되었을 때, 떠나려는 학장 할아버지에게 사람들은 ‘이름’을 물었다고 한다.
그때, 학장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고.
자신의 이름은 아즈문 사트리노이며, 이 아이의 이름은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화전민이나 다름없는 그들은 당시에도 유명한 학장 할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우리가 성(姓)이 있는 귀족이라는 것과 당연히 부자지간인 줄 알았던 이들이 다른 성을 가졌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하여 그 연유를 물었더니,
“처음 너를 발견했을 당시… 네가 손안에 꼭 쥐고 있던 물건에 네 이름이 적혀 있었다더라.”
“…물건?”
“몰라? 그 사람도 그것까진 모르던데.”
나라고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고작 다섯 살 때의 일이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그 시절의 기억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마치 가위로 오려내기라도 한 듯, 5살 이전의 과거는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야. 그 외에는 이그니스라는 성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거든.”
“…….”
“이제 떨어지자. 너무 이러고 있으면 괜한 의심만 받을 테니까.”
어느새 음악이 끝났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실비아가 우아하게 드레스를 들어 올렸다.
나 또한 예에 따라 황급히 자세를 낮췄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짐작했다시피, 나도 다른 목적이 있어서 여기 온 거라.”
“자, 잠깐.”
“그리고 이건 선물.”
그리 말한 실비아가 잽싸게 내 품 안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멀어져 간다.
“대체…….”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가 힐끗,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곧 삐죽이 튀어나온 종잇장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건… 지도?
화아아악!
내가 예의 종잇장을 갈무리하는 순간, 라이트 구가 환하게 밝아졌다.
앞으로 약 20분간의 휴식 후, 두 번째 음악이 흘러나올 터였다.
말이 휴식이지, 그 20분은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는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어머, 어머. 봤니?”
“어쩜 저리 춤까지 잘 춘대?”
“다음은 나야!”
내게로 몰려드는 뭇 여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자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저기요.”
그 반례로, 기다렸다는 듯 접근하는 인영도 있었으니까.
자연스레 내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언제 다가온 것일까?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여인보다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가 코앞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보랏빛 머리칼에, 관능미마저 느껴지는 새빨간 입술이 유독 눈에 띄는.
“네?”
“두 번째 파트너로 저는 어떠세요?”
“아, 지금은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
여인의 얼굴 위로 대번에 실망감이 번져 갔다.
“혹시 저랑은 춤추기 싫으세요?”
“그럴 리가요. 진짜로 생리현상이 급해서 그럽니다.”
“정말이죠? 그럼 다녀오신 뒤에는 꼭 저랑 추는 거예요.”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럴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약속했어요?”
“넵.”
짤막하게 대답한 내가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시간이다.
스승님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럼 이만…….”
“제 이름은 서큐버예요. 꼭 기억해 주세요!”
무척이나 당돌한 어느 귀족가 여인에게 대충 고개를 숙여준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
그 시각, 공국의 근위 기사들은 난리가 났다.
“에, 에이스 디 파르마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지다니?”
“아직 행적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갑작스레 연회장 바깥으로 나간 뒤부터 쭉…….”
쾅!
언제나 흔들림이 없는 철의 기사, 엑스톤 폴 다우니스가 책상을 후려쳤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죄, 죄송합니다!”
“대체 언제까지 공국의 이름에 먹칠을 할 생각이냐? 방심했다, 사라졌다, 확인되지 않는다! 그따위 말밖에 하지 못하나?”
“시정하겠습니다!”
“…이 사실을 전하께 보고드린 직후, 내가 직접 움직일 것이다. 그사이 하다못해 녀석의 옷자락이라도 찾아 놓도록.”
“구, 굳이 벌써부터 전하께 보고를 드릴 필요는…….”
“어허!”
“명 받들겠습니다!”
곧장 거수경례를 올려붙인 부하 단원이 잽싸게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직후, 혼자 남게 된 엑스톤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처음에는 분노.
다음에는 한숨.
종래에는…
“에이스 디 파르마. 설마 모두 다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순간 엑스톤의 두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오늘부로 십이월은 십일월이 될 것이다. 너는 결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넌 거니까.”
***
미리 봐둔 좌측의 세 번째 문을 통해 연회장 바깥으로 나오자, 다시 기다란 복도가 나타났다.
잠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를 바라보고 있자,
“달리 찾는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저기 제가 소변이 급해서 그러는데…….”
“이 길을 따라 쭉 가시다 보면 우측 편에 있습니다. 곳곳에 저희 시종들이 배치되어 있으니, 혹 헷갈리시면 붙잡아 물으셔도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대기하고 있던 시종의 답변에 한 차례 고개를 숙여준 내가 빠르게 움직였다.
내부로는 은밀하게 마나를 휘돌리면서.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건, 마법이 아니었다.
에이스 스승님에게 배운 일종의 기감 확장술이었다.
마법을 제외하고도, 대륙에는 무수한 이능들이 존재한다.
걔 중에는 대기의 움직임을 통해 생명체의 기운을 ‘탐지’하는 능력 또한 존재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건 스승님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능력이니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써클과 홀의 마나가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마치 세디스처럼.
하여, 지금 내 몸 안에는 그릇이 두 개였다.
심장에 하나, 복부에도 하나.
만약 이 둘을 합칠 수만 있다면, 스승님께서는 내가 인류에 한 획을 그을 초월적인 존재가 될 거라 말씀하셨지만…
아직은 불가능한 얘기다.
‘대게 사람을 가두고자 한다면… 지하가 최적이겠지.’
상념을 털어내며 사람들의 기감이 느껴지는 곳을 피해 조용히 사각지대로 숨어들었다.
홀의 마나는 기감을 탐지하는 데 이용하고.
써클의 마나로는 인비저빌리티를 시전한다.
그렇게 그 기다란 복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
이윽고 첫 번째 모퉁이를 돌았을 때, 한순간 나는 숨을 죽였다.
“반드시 찾아라! 단장님의 엄명이다!”
“필수 병력 빼고 다 불러!”
“전하께 보고되면 오늘로 좋은 날은 다 가는 거다! 마누라 대신, 구린내 나는 사내새끼들이랑 몇 날 며칠 뒹굴고 싶으면 설렁설렁 움직여!”
이렇게 빨리?
모퉁이 너머에 있는 것은 연회장만 한 크기의 로비였다.
그 널찍한 곳을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내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저들 중 대부분은 일반 병사도 아닌 기사들일 테니까.
제아무리 마법의 힘이라도 숨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여.”
“……!”
심장 떨어질 뻔했다.
진심으로.
“여기다.”
“스, 스승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바로 위, 천장에 착하니 달라붙어 있는 스승님이 보였다.
저쪽은 내 모습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두 눈은 완벽하게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이런 게 격의 차이인가?
“쟤네 지금 날 찾고 있는 것 같거든?”
“…우리가 아니라요?”
“저쪽 입장에서는 한낱 애송이보다 내가 훨씬 더 부담스러울 테니까.”
“그야 그렇겠지만…….”
“그러니까 쟤들은 내가 처리할게. 그 틈에 넌 대장을 찾으라고.”
“어, 어쩌시게요?”
“내가 누구냐?”
왠지 그 자신감이 더 불안했다.
또 어떤 신박한 방법으로 나를 놀래키실지.
휘리릭!
직후, 천장에서 뛰어내린 스승님이 온 힘을 다해 목청을 높였다.
“이봐!”
기사들의 시선이 대번에 스승님에게로 쏠렸다.
“혹시 날 찾아?”
“어, 어디서…!”
“이놈의 뒷간도 눈치 보면서 가야 하는 거야? 철의 기사도 해도 해도 너무하네.”
채채채채채챙!
미리 명령을 받았는지,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아 들었다.
“워, 워. 그 흉측한 것, 일단 넣어둬.”
“순순히 따라오시오, 에이스 디 파르마. 이곳은 당신네 연합이 아닙니다.”
“아, 알지. 뒷간 갔다 오는 길이라니까 그러네, 참.”
순간 능청스레 대답하던 스승님이 짐짓 성난 표정을 지었다.
“근데, 너 말투가 왜 그러냐?”
“무슨…….”
“그래도 내 위치가 있는데 이건 좀 아니지. 네가 나보다 세면 또 몰라도.”
“아니, 그게 뭔…….”
“뭐, 아니라고? 우와. 이 자식 패기 보소? 좋아, 한 판 붙어보자. 사내새끼가 이런 개무시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면 고추를 때야지.”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소!”
“나는 그런 뜻으로 들렸거든? 변명은 됐고, 거기 너부터 너까지. 칼 뽑은 놈들은 다 덤벼라? 오늘 내가 연합의 검이 어떤 건지 톡톡히 경험시켜 줄 테니까.”
여기까지 본 내가 조용히 몸을 돌렸다.
역시나 스승님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작전은 없다.
후퇴도 없다.
그게 바로 존경하는 내 스승님이시니까.
“저런 건 배우지 말아야지.”
물론, 속마음과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달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