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공국의 연회(3)
정문을 통과한 직후.
“…많이도 몰려왔네.”
내부로 들어선 스승님의 첫 마디셨다.
물론, 그 대상은 궁이 아니었다.
처처처처처처척!
최소 이백.
은빛 풀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한 채, 오와 열까지 맞춘 근위대가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철의 기사?”
무척이나 묵직한 느낌의 중년 사내가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철의 기사’라 불릴 만한 이는 단 한 사람뿐이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검사 중 하나.
십이월의 11월.
공국의 수호신.
엑스톤 폴 다우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실로 무수한 별칭들을 가지고 있었다.
명실상부 스란의 둘뿐인 공작이자, 근위대장이기도 한 사내였다.
궁에 들어서기도 전에 저런 대단한 인물이 우리를 맞이해 줄 줄이야.
“여어. 오랜만인데?”
“…에이스 디 파르마. 정말로 너였나?”
“그 재미없는 아저씨도, 이리 보니까 또 반갑네.”
말은 그리했지만, 표정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스승님의 얼굴에 반가움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여긴 무슨 일이지?”
“부하한테 못 들었나 봐? 연회에 참석하러 왔다니까.”
“들었으니 묻는 거다. 아무리 너라도, 초대장 없이는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단호해도 너무 단호했다.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상대를 보며 스승님이 머리를 긁적이셨다.
“좀 봐주라. 그래도 공국의 영토에서 얹혀살고 있는 세입자인데, 우리가 아니면 누가 전하의 회복을 축하해 드리겠냐?”
“불가. 그런 손님이라면 이미 차고도 넘친다.”
“거, 되게 빡빡하게 구네. 그럼 우리 연합주만 데리고 돌아갈게. 그건 괜찮지?”
“…….”
꿈틀.
순간, 상대의 눈썹이 미세하게 치솟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쪽의 연합주를 왜 이곳에서 찾는 거지?”
“설마 이것도 모른 척하려고? 니들이 직접 초대장까지 보냈잖냐.”
“나는 모르는 일이다.”
딱 잡아떼는 상대를 보며 스승님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이 그렇다면, 내가 직접 확인해 봐도 되겠지?”
“뭐라고?”
“그냥. 바쁜 너는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이 초대장 발송은 전적으로 우정국에서 담당할 테니까. 그 발송명부를 뒤져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안 그래?”
“…….”
“왜, 이것도 안 된다고 하게?”
철의 기사도 이번에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도 스승님의 성격을 알고 있는 것이겠지.
여기서도 무작정 내뺀다면, 막무가내로 설쳐 대실 거라는 사실도 알 테고.
이곳의 치안을 담당하는 총책임자로서, 그런 일만큼은 막아야 할 터였다.
이미 외부인들도 상당수 궁 안에 머무르고 있을 테니까.
“하아…….”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가 힐끗 주변을 둘러봤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나와 눈이 딱하고 마주쳤다.
“…뒤쪽의 저들은 누구지?”
“얘네? 내 제자들이야.”
“제자? 네가?”
“걱정하지 마. 얘들까지 들여보내 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와 세디스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스, 스승님?”
“괜찮아. 금방 다녀올 테니까.”
허나, 이런 우리의 대화는 애당초 불필요했다.
“그런 뜻으로 물은 것이 아니다.”
“엉?”
“너도 알겠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미스러운 일들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된다. 하여, 정체나 의도가 불분명한 이들은 처음부터 들여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야.”
“내 정체는 너도 알고 있잖아? 아니, 여기 있는 이들 중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기는 하던가?”
“기존에 알고 있는 사람인지는 중요치 않다. 초대장을 소지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나는 그걸로 궁에 입장할 자격을 판단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결론만 말해.”
짐짓 으름장을 놓는 스승님을 보며, 철의 기사가 이내 본론을 끄집어냈다.
“이건 어떤가? 네 제자와 내가 지목하는 우리 대원. 두 사람을 맞붙게 하여 이긴다면, 셋 모두 궁 안으로 들여 보내주겠다.”
“……!”
“단, 네 제자가 패한다면 군소리 없이 돌아간다는 조건이다.”
“…….”
한참이나 말이 없던 스승님이 곧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거 재미있겠는데? 왜, 차라리 네가 직접 나서진 않고?”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하고 싶지만… 전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겠지.”
둘 사이에, 마치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기는 듯했다.
검사 본연의 호승심.
아마 그런 종류의 것일 테지.
“결론 났네요. 이쪽은 제가 할게요.”
“아니, 내가 할게.”
나서는 세디스를 잡아당기며, 내가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던 스승님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받아들이지. 참고로 쟨 마법사야. 괜찮겠지?”
“…마법사?”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상대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왜 네가 마법사 따위를 제자로 키우는 거지?”
“나는 뭐, 검사만 제자로 키워야 하냐?”
“그런 말이 아니지 않나!”
“아 흰소리는 이만하고. 할 거야, 말 거야?”
“제정신이냐? 마법사를 기사와 일대일로 맞붙이겠다고?”
“그냥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해라. 슬슬 짜증나려고 하니까.”
스승님은 작정을 하고 상대를 도발했다.
“…후회나 하지 마라.”
근데, 듣다 보니까 열 받네.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 ‘따위’라니.
만약 내가 배틀 메이지 최고의 유망주라는 제노스라도 저런 반응을 보였을까?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꼰대 쉑.”
“뭐? 거기 너. 방금 뭐라고 했지?”
초인의 감각은 상상을 초월한다더니.
용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철의 기사가 곧바로 반응해 왔다.
“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내가 분명히 들었…….”
“그보다, 오늘 제 앞에 무릎 꿇으실 불쌍한 상대 분은 누구실까요?”
“…뭐?”
“제국도 아니고, 그보다 몇 수는 아래인 공국의 기사님들에게는 저도 지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놈!”
도발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으니까.
아예 대놓고 살기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게 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선.
***
외궁 앞, 한편에 자리한 비어 있는 공터.
지금 나는,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문득 든 생각인데, 이러다 연회에 늦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라면 접어둬도 된다. 혹시라도 네 제자가 이길 가능성은 전무하며, 연회는 저녁부터 시작이니까.”
“뒷말이 핵심이구먼. 최소 2~3시간은 남았다는 뜻이네?”
힐끗 하늘을 바라본 스승님이 철의 기사에게 반문했다.
곧이어,
“네 상대는 나다.”
마침내 내 맞은편으로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서른은 넘기지 않을 듯한 외모의 사내였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키는 170센티미터 가량으로 크지 않았으나,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체구를 가지고 있는.
그 와중에도, 다른 기사들의 목소리가 재차 내 신경을 건드린다.
“이게 진짜 말이 돼? 저딴 어린 애를 제자랍시고 내세우면서 심지어 뭐, 마법사?”
“나 말이야. 그래도 같은 검사로서 저 사람을 존경해 왔거든? 이 정도면 우리를 기만하는 게 아니고 뭐냐?”
“냅둬라. 쪽 한번 제대로 팔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끝나면 소문이나 제대로 내줘. 또 저따위 개 같은 짓거리는 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조금 뒤에도 저리 말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잡자, 이내 상대가 마주 검을 치켜세운다.
“선공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예상했던 대사였기에, 말을 끊어낸 내가 곧장 써클을 휘돌렸다.
기사들이란 인간들은 어찌 저리도 한결같은지.
우웅! 우우우웅!
대기를 타고 마나가 떨어 울린다.
처음부터 작정을 한 내가 전력을 다하고 있음이었다.
하나, 둘, 셋.
가장 안쪽 고리에서 시작된 마나의 순환은 빠르게 두 번째, 세 번째 고리까지 퍼져 나갔다.
허나, 아직 멀었다.
이번에는 내 한계치인 여섯 고리를 모두 휘돌릴 생각이니까.
펑! 펑! 펑!
강대한 마나의 흐름에, 주변의 공기마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
점차 새하얗게 변해가는 상대의 얼굴이 시야로 들어온다.
미안하지만 후회는 이미 늦었다.
내게 선공을 양보한다?
그 말을 내뱉은 시점에서, 이번 승부의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합!”
쯔어엉!
짐짓 우렁찬 기합을 토해낸 상대가 마주 마나홀을 휘돌린다.
마치 운무와도 같은 기(氣)는 검운(劍雲)이요.
그 기가 일정한 형태를 갖추면 검사(劍瀉).
눈에 확연히 드러날 정도의 광선을 뿜어내면, 검기(劍氣)의 단계라 하였다.
지금 상대는 완전하진 않지만 또렷한 빛을 토해내고 있었으니,
‘최소 엑스퍼트 하급.’
나이는 훨씬 더 어렸지만, 왕국을 넘어 대륙급 천재라는 루나 틴 론지에가 3년 전 저 단계였으니.
저 정도라면, 가히 공국 제일의 기재쯤은 되지 않을까?
“오라!”
이내 상대가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저기 있는 꼰대 아저씨가 철의 기사로 불리는 이유.
그건 비단 마나의 특징 때문만이 아니라, 특유의 전투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들었다.
‘방어’에 한해서, 철의 기사를 이길 검사는 아무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 뭇 대륙인들에게 또렷하게 각인된 말이었다.
철통같은 방어를 베이스로 한 날카로운 카운터.
이것이 널리 알려진 철의 기사의 대표적인 전투방식이었다.
그 밑에서 배우고 자란 기사들 또한 비슷한 검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클 테지.
순전히 나를 무시해서 선공을 양보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그래서 나와의 상성은 최악이지만.’
최근 ‘파동’이라는 주력에 제법 재미가 들었다.
무엇보다, 내부를 직접 부순다는 그 발상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됐다.
파동은 일종의 ‘흔들림’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를 가지고 있고.
그 기를 강하게 흔듦으로써, 대상의 내부에 충격을 가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문제.
마나 또한 기의 일종인즉.
외부로 발현된 기사의 ‘검기’ 또한 흔들어 방해할 수 있지 않을까?
스팟!
판단을 마침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멍청한…!”
도리어 접근하는 나를 보며,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상대가 이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런 표정,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잠시 후 얼마나 처절하게 찌그러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으니까.
파앙!
마침내 지근거리까지 도달한 내가 주먹을 내질렀다.
마나를 한껏 머금은 그것은, 호쾌한 공기 소리를 내며 상대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냥 막아내려던 상대가 생각을 고쳐먹곤 내 주먹을 통째 베어낼 듯 검을 휘둘렀다.
“저런!”
직후 외팔이가 될 내 모습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다른 기사들이 놀라 입을 벌렸다.
근데 미안해서 어쩌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텐데.
쩌어어어엉!
“……!”
충돌과 동시에, 상대의 검이 거칠게 튕겨 나갔다.
새파랗게 타오르던 마나는 온데간데없었다.
휘리릭, 휘리릭하며 한참이나 허공을 휘돌던 검은 이내 땅속 깊숙이 박혀 들었다.
톡.
자세가 완전히 열린 상대의 목을 향해, 나는 그저 가만히 주먹을 가져다 댔다.
그걸로 끝.
“…….”
삽시간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합죽이가 된 상대와 다른 기사들을 둘러보며, 나는 언젠가 본 소설의 명대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언젠가 꼭 써먹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인 듯싶다.
“아쉬웠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군요.”
그 나직한 읊조림에, 상대가 거칠게 반응한다.
“…큭! 나를 모욕하는 거냐?”
“설마요. 이건 모욕이 아니라 칭찬. 그리고, 순수한 감탄입니다.”
으드득.
이까지 갈아대는 상대였으나, 이때의 나는 미처 듣지 못했다.
혹시나 까먹을 새라 떠오른 대사들을 쏟아내기 바빴으니까.
“부디 앞으로도 정진하십시오. 당신은 훨씬 더 강해질 거니까요.”
“내 반드시 네놈을…!”
“네. 언젠가는 반드시 저를 이기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주저앉지 마세요. 지금의 당신도 결코 약한 게 아니니까요.”
“…….”
“그저 상대가 좋지 않았을 뿐이죠.”
크으으.
기어이 모두 뱉어내고야 말았다.
조금 유치하면 또 어떤가?
내 나이, 이제 고작해야 열아홉인데.
하지만, 다른 두 일행은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른 듯싶었다.
“…미안하네. 저건 내가 사과하지. 아직 어려서 철이 없다네.”
“쪽팔려서 정말…! 어, 거기. 날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요. 전 쟤랑 다르니까. 어허, 왼쪽에 수염 난 아저씨! 왜 한숨을 날 보면서 쉬시냐니깐?”
아니, 조금 말고 많이.
***
띠링, 띠리링.
마침내 귀를 감미롭게 만드는 선율의 조화가 궁 곳곳에 울려 퍼진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음악이, 연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임을.
“언제 들어갈까?”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라잖아요.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 명성대로, 약속 하나는 철통같이 지키는 사내였다.
실제로 철의 기사는 우리를 순순히 안으로 들여보내 줬으니까.
다만, 연회가 예정된 5시 이후에.
덕분에 미리 궁 내부를 둘러보려던 작전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저 아저씨들은 언제까지 우리를 따라올 거래요?”
“적어도 연회가 끝날 때까지는 쫓아다니겠지.”
“그건 좀 위험한 거 아니에요?”
“어차피 쟤들은 감시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남 눈치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었다면, 구태여 하루 앞당겨 대장을 왜 초대했겠어?”
“그 감시가 가장 큰 문제일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든 되겠죠?”
줄곧 세디스와 대화를 나누던 스승님이, 이번에는 내 쪽을 쳐다봤다.
“근데 넌 언제 풀려고?”
“뭘요?”
“신체 변형 마법 말이다. 원래 네 얼굴로 이 연회를 즐겨보시겠다며?”
이미 주인공 병이 제대로 도진 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입장할 때요.”
“…굳이?”
“그때가 사람들의 이목이 가장 많이 집중될 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