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73화 (73/251)

73화. 공국의 연회(1)

마법 대전.

기사 대전을 상당히 의식한 듯, 유치하기 그지없는 이 행사는 제노스에게 퍽이나 고역이었다.

경쟁자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너무 실력을 드러내서도.

그렇다고, 너무 얕잡아 보여서도 안 됐다.

그때그때 상대에 맞춰, 적당한 수준으로 어울려 줘야 했다.

적을 죽이는 것보다 사로잡는 일이 더 힘들듯이.

이건, 그냥 상대를 패배시키는 것보다 훨씬 난도 높은 일이었다.

5차전이 끝난 현재.

지금껏 본 실력을 조금이나마라도 드러내야 할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비단 직접 맞붙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겨뤄보지 않은, 다른 ‘모든’ 참가자들을 포함해서.

허나,

“…….”

눈앞에 있는 이 녀석만큼은 예외다.

자신과 같은 테라 왕국 출신이며, 아카데미 동기이기도 한 아이.

생도 시절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최하위의 낙제생.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강력한 그의 경쟁자.

그런 아이가 멍하니 중얼거린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드래곤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냐고?”

“…….”

제노스의 물음에, 세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긍정하자니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부정하자니, 방금 들은 말들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겠지.

여기서 제노스는 잠시간 고민했다.

상대에 대해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 피차 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너… 누구야?”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네 동기였던 제노스 델 카이클이다.”

“아니, 그건 아는데…….”

“혹여나 더블 워커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진짜니까.”

“…….”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직후, 마치 탐색이라도 하는 듯 상대의 시선이 신체를 샅샅이 훑었다.

허나,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생각이 많을 터였다.

지금부터 하는 질문 하나하나가, 스스로의 비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일 테니까.

그런 거라면, 제노스는 조금쯤 도와줄 용의도 있었다.

“…나야말로 궁금하군.”

“뭐?”

“네가 단순히 드래곤의 지식을 전이 받은 이인지, 그게 아니면 이전 삶의 기억을 가진 전생자(前生者)인지. 나도 아직은 판단이 서질 않아서.”

“……!”

“그러니, 그냥 대놓고 물어볼게.”

마치 보이지 않는 심해의 그것처럼.

지금 이 순간, 제노스의 눈빛은 그 깊이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아득히 가라앉아 있었다.

“너는 드래곤인가?”

***

“……?”

탑에서의 모든 볼일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서려던 에이스가 멈칫했다.

“쟤는 저기 가만히 서서 뭐 하고 있는 거래?”

그리 멀지 않은 탑의 출입구.

관중들마저 모조리 빠져나간 그곳에서, 두 사내아이가 마주 보고 있었다.

물론 에이스는 둘 모두 안면이 있었다.

한쪽은 그 자신의 제자였으며.

다른 한쪽은, 마탑의 모든 이들이 눈 여겨 보는 역대급 천재였으니까.

“…가만, 저 분위기라면 설마… 라이벌! 뭐 그런 건가?”

순간 혼자 지레짐작한 에이스가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바로 옆에 자극이 될 정도의 경쟁자가 있다는 것.

그게 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여, 에이스는 잠시간 그런 둘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우웅! 우웅!

“응?”

직후 귀청을 때리는 나지막한 공명음만 아니었다면, 분명 수분은 그러고 있을 작정이었는데,

“…대장?”

곧 에이스의 품 안에서 통신용 수정구가 딸려 나왔다.

한데, 투영되는 내용물은 한 폭의 어둠처럼 깜깜했다.

대략 주머니에 넣어둔 상태로 마나만 불어 넣는다면 이런 모습일까?

“잘못 걸었나? 아니, 써클에 어디 구멍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텐데…….”

시야가 가려졌다고 소리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여, 에이스는 청각에 극도로 신경을 집중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약한 대화 소리가 들려 왔다.

문제는, 그 내용이 무척이나 심상치가 않다는 사실이었다.

공왕, 연회, 그리고 제국의 개…….

시간이 지날수록 에이스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져 갔다.

그리곤.

스팟!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 힘을 다해 땅을 박찼다.

***

“허튼 수작 부릴 생각은 말게.”

상대를 내려다보며, 왕좌에 앉은 공왕이 오만하게 중얼거렸다.

“에이스 디 파르마. 연합의 십이월은 지금 마탑으로 가 있을 테지?”

“…….”

“하면, 자네까지 없는 지금의 연합은 빈집이나 다름없을 터.”

더 듣지 않아도 세논은 공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비겁하시군요. 일국의 왕께서 이따위 치졸한 인질극이라니.”

“그대만 가만히 있어준다면, 내가 치졸해질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처음부터 이러실 작정이셨나요?”

“그건 아니지. 내가 신도 아니고, 자네가 이곳에 올지 안 올지까지 어찌 알겠는가? 모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지.”

“혹시나…?”

“설마하니 그대가 이리 버젓이 살아 있을지도, 연합 내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이곳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일세.”

부르르.

세논은 공왕의 치밀함에 치가 떨렸다.

이만한 준비가, 고작 ‘만약에’라는 가정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다니…….

“어려울 건 없었네. 어차피 연회는 내일 정상적으로 진행할 예정이었고. 그대가 오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귀중한 정보를 얻는 셈이니까.”

“…….”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내가 잘 준비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한데…….”

순간 말을 잇던 공왕이 눈을 빛냈다.

“몸은 좀 어떤가?”

“……?”

“듣기로, 분명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상태라고 하던데… 한 5년 전쯤에 말이야.”

“……!”

세논의 눈가가 거칠게 요동쳤다.

기실, 그 시점부터 그녀는 의도적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실제로 정보 조직을 비롯한 여러 루트를 통해, 거짓 정보 또한 상당히 흘렸으니까.

바로 그날.

달빛 한 점 없던 어두운 밤에, 정체 모를 흉수들에게 습격을 받은 이후로.

그들은 세논조차도 경시하지 못할 대단한 실력자들이었다.

가히 일인군단인 그녀조차, 꼬박 1년 이상을 요양만 했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했으니까.

더하여, 그녀는 이제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설마 그 일도 도우셨습니까?”

“그럴 리가. 알다시피 공국에는 그만한 실력자들이 없다네. 아니, 애당초 그들에게 조력자가 필요하던가? 그 대단한 아락사스들조차, 일개 집단의 힘으로 전멸시킨 이들인데.”

“…….”

“아. 생각해 보니 있긴 있겠어. 그대의 존재를 껄끄럽게 생각하시는 분들 말일세. 그대가 살아 있다는 정보도 모두 그분들이 제공한 것이거든.”

그게 누구인지 추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국…….”

“얘기가 길어졌군. 자, 그럼 순순히 포박을 당해주겠나?”

얼마나 입술을 세게 깨물었는지, 세논의 입가를 타고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진정으로 즐겁다는 듯, 미소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공왕이 이윽고 마지막 말을 마친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래, 마법 대전이 끝나기까지 앞으로 1주일. 그때까지만 잠자코 있어주게. 부탁하지.”

***

“제노스 델 카이클…….”

나도 모르게 상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충격의 연속이다.

엉킨 실타래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드래곤의 유물?

목걸이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거라면, 그 정도 추론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생자니 하는 말은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가령 내가 생각하는 ‘야, 너두?’ 정도가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

한차례 고개를 휘저은 내가 다시금 상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들을 토해내려던 그때,

휘릭!

“당장 따라와라.”

“……!”

거짓말처럼,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낚아챘다.

한줄기 거친 바람과 함께 나타난 사내는, 나를 들춰 매고도 전혀 줄지 않은 속도로 내달렸다.

중요한 것은, 그 의문의 존재가 내게 상당히 익숙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스, 스승님?”

“설명은 나중에 하마. 시간이 없다.”

“자, 잠깐만요! 아직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뚝.

솔직히 씨알도 안 먹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스승님은 내 말을 순순히 들어주셨다.

그새 제법 거리가 벌어졌기에, 10여 미터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제노스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녀석은, 이내 다시 이쪽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연합이 위험하다.”

“…네?”

“최악의 경우, 대장이 이미 적들에게 붙잡혔을 수도 있어.”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하니, 볼일은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으라는 소리야. 한시가 급하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승님의 얼굴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장담컨대, 언제나 여유로운 스승님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

하여, 나 또한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정도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으니까.

“마법 대전은 이대로 포기해야겠네요.”

“뭣 하면, 자세한 상황이 파악된 뒤에 나 혼자 다녀와도 된다.”

“그럴 수는 없죠.”

지금까지의 대화를 모두 들은 것일까?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제노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후회할 텐데.”

“뭐가?”

“너도 알다시피, 마법 대전에서 우승했을 때 얻게 될 이점은 그저 물질적인 보상뿐만이 아니다.”

“…….”

그 말에, 아주 잠시 동안 생각해 봤다.

저 재능에 그랜달의 팔찌까지 갖춘 제노스라.

다른 이점이 아니라 오직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더 괴물이 될지 감조차 오지 않았건만.

“…그래서 뭐?”

“어?”

“이 인간미 없는 자식아. 스승을 제 부모처럼 섬기라고 했다. 그런 부모의 목숨이 위험하다는데, 어느 자식이 눈앞의 이점 따위와 저울질할 수 있겠냐?”

“…….”

“나는 평생을 낙제생으로 살지언정, 후레자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짐짓 어른이 아이를 타이르듯, 내가 그리 말했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게 되었어도, 꼭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듯한 모습은 싫어서.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제노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가만히 듣고 계시던 스승님 또한.

이 분위기라면, ‘내가 자식새끼 하나는 제대로 키웠구먼’라는 반응 정도는 나와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담아, 허리까지 당당하게 펴고 스승님을 마주 바라봤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

연합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마탑과 연합의 자체 워프 게이트를 잇기만 하면 될 일이니까.

과연 그 명성대로, 각 탑마다 자체 게이트를 갖추고 있었다.

이런 부분만 봐도.

기껏해야 게이트가 하나뿐인 연합과의 수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우리의 안전한 귀갓길은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도와주기로 했다.

“정말 이대로 떠날 생각이냐?”

“네. 어쩔 수가 없네요.”

“내뱉는 말과는 달리, 표정은 꽤나 미련이 남아 보인다만.”

“아쉬운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

“그 위명도 자자하신 초월의 마탑주님과 이렇게 친분도 쌓을 수 있었으니까요.”

능청스러운 내 말에, 상대가 코웃음을 쳤다.

“흥. 곱등이 주제에 아첨은… 뭐, 연락 정도는 언제든지 해도 좋다.”

“오!”

“…아예 다시 찾아오면 더 좋고. 근시일 내로 말이다.”

이내 내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번져 갔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

순간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에, 내가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혹 괜찮으시다면, 제 친구에게도 얘기를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

자유연합 본사.

환한 빛무리와 함께, 나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탈락했기에 아무런 미련도 없는 세디스와 여전히 굳어 있는 스승님도 함께.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들 돌아오셨네요.”

눈앞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세실리아 씨가 곧장 이리 물어왔다.

“가셨던 일은…….”

“세실리아.”

“…네?”

“우린, 이대로 대장이 갔다는 그 연회에 참석할 생각이거든?”

“……!”

“그러니까, 얘들도 멋들어지게 한번 꾸며줘. 나름 연합의 이름을 달고 가는 건데, 추레하게 갈 수는 없잖아?”

세실리아 씨가 특유의 놀란 토끼 눈을 떴다.

“네? 그러니까 공국에 가신다는 말씀이세요?”

“응.”

“하지만 지금쯤이면…….”

무슨 말을 할지 다 안다는 듯, 스승님이 세실리아 씨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부활한 공왕이 제 건재함을 대대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연회인데, 고작 하루 저녁에 끝날 리가 없잖아? 우리도 발이나 한번 담가보자고.”

과연, 괜한 걱정을 끼치기는 싫으신 것일까?

스승님은 가타부타 다른 설명은 하지 않으셨다.

“…혹, 다른 목적이 있으신 건 아니시죠?”

“…….”

찰나, 나만 눈치챌 정도로 스승님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목적? 무슨 목적?”

“…가령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가의 아가씨를 꼬드기려는 생각이시라던가. 그래서 꾸며달라느니 하는 말씀을 하시는 거라면…….”

“…그런 거라면 난 이 자체만으로 완벽하거든? 나 말고 얘랑. 특히 얘 말이야.”

스승님이 세디스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세디스랑… 세타도요?”

“응. 줄곧 수련만 해온 애들인데, 얘들도 한 번은 파티 분위기를 경험시켜 줘야지. 아까도 말했지만 연합을 대표해서 가는 거니까, 최대한 화려하게 부탁할게.”

“음… 세디스야 워낙 본판이 좋아서 딱히 건드릴 게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안 봤는데, 세실리아 씨 너무했다.

은근히 맥이는 상대의 말에, 내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스승님 뜻이 그러시다면, 차라리 신체 변형 마법을 풀고 가겠습니다.”

“…엉?”

“최대한 화려하게. 맞죠?”

허나, 그건 곤란한지 스승님이 머리를 긁적이셨다.

그리곤,

“그건 화려해도 너무 화려할 것 같은데…….”

“에?”

세실리아 씨의 의문을 증폭시키는 뒷말까지 덧붙이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 또한 자못 궁금해졌다.

과연 내 진짜 얼굴을 모르는 세실리아 씨가, 훗날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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