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72화 (72/251)

72화. 제노스 델 카이클

한편, 대전이 한창인 제1마탑.

“괴물 같은 자식들…….”

여전히 대연무장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던 유리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제노스 델 카이클.

저 녀석이 대단한 것이야,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저 나이대에 저만한 또래는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

눈앞의 대전을 보기 전까지는, 분명 그리 생각해 왔다.

채챙! 채채채채채채챙!

대전이 시작된 지도 벌써 10여 분.

싸움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상은 넓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편의 명승부였다.

초반만 하더라도 수비로 일관하던 제노스였건만.

언젠가부터, 되레 쉼 없이 상대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굳이 한 줄 평을 하자면, 제노스의 전투는 ‘효율’의 극치였다.

거리가 조금 벌어진다 싶으면 마나의 창으로 맞서고.

다시 가까워진다 싶으면, 검 형태의 마력을 뽑아내 빠르게 상대를 몰아쳤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예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고자 몸을 띄우는 상대를 향해, 제노스는 무려 ‘마나의 활’을 만들어 상대를 격추하려 하기까지 했다.

단언컨대, 전투 센스만큼은 누구와도 비교를 불허하는 녀석이었다.

“세디스라는 저 아이도 괴물이지만, 역시 제노스는…….”

“쟨 괴물 아냐.”

“……?”

“제노스 델 카이클. 저 녀석은 뭐, 지극히 공감한다만.”

재차 들려오는 생소한 목소리에, 그제야 유리나의 시선이 돌아갔다.

어느새?

제법 안면이 있는 반라의 사내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저 복장하며, 외모하며…….

나름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유리나가 아니더라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외형을 가진 미남자였다.

“에이스 디 파르마…?”

“날 아는구먼. 역시 내가 좀 유명하기는 하지?”

“네, 뭐…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말 안 듣는 두 제자를 찾으러 왔는데, 하나는 저기서 한창 전투 중이고, 여기 있어야 할 다른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네?”

“……!”

순간 유리나는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아카데미 시절… 그러니까, 정확히는 교내 랭킹전 때였나?

당시 구제 불능의 낙제생이, 무려 에이스 디 파르마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접했었다.

…그랬구나.

역시 세타는 이 사내의 제자가 되었구나.

그리 생각하자 새삼 녀석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눈앞의 상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대륙 제일의 검사 중 하나라는 십이월(十二月)이 아니던가?

다만, 왜 그가 마법사인 세타를 제자로 삼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이왕 내친걸음, 잠깐 시간이라도 죽여볼까?”

그리 말한 상대가 대연무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유리나는 문득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누가 이길 거라고 보세요?”

“뭘. 승부야 이미 기울었는데.”

“네?”

“아까 말했잖냐. 저기서 괴물은 하나뿐이라고.”

“…제노스가 이긴다는 말씀이세요?”

“아마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뻐한다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사내를 보며, 유리나는 한 가지 의문이 더 들었다.

하여, 표정을 바로 잡고.

“…그럼, 다른 제자라는 그 아이와 제노스가 맞붙는다면요?”

마치 그 아이가 누군지는 모른다는 양, 능청스레 의뭉을 떨었다.

“…….”

한데, 예상외로 이번에는 상대에게서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유리나가 재차 질문을 던지려던 그 순간.

“…질걸?”

“……?”

가장 중요한 주어가 없었다.

“누가요?”

“누구겠니?”

“네?”

“예?”

장난하자는 건가?

유리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곧 옆을 돌아본 그녀는 그제야 보았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이쪽을 바라보는 상대의 두 눈이, 게슴츠레 호선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참나.”

괜스레 기분만 나빠졌다.

정말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초면이나 다름없는 이 사내는 지금, 유리나를 놀려먹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거슬리는 표정까지 지은 채로.

***

“어?”

지금 막 자리로 돌아온 내 머리 위로 느낌표가 떠올랐다.

“언제 오셨어요?”

“방금.”

그리 대답하는 스승님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내가 곧장 자리에 앉았다.

“혹시 여기 있던 애는 못 보셨어요?”

“누구? 네 여자친구?”

“…여자친구 아니고요.”

“제법 반반하더라? 다 늙은 스승이 질투가 날 정도로 말이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당연히 아니시겠죠. 누구는 제자 챙기랴, 조직 걱정하랴, 하루하루 노총각으로 늙어가는데, 누구는 이런 곳에서 팔자 좋게 데이트나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혹시 걔한테도 이런 식으로 빈정대신 건 아니시죠? 그래서 참다못해 먼저 자리를 떠났다던가.”

“뭐, 한참 혼자서 꿍시렁대더니 대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쓩 하고 사라지긴 하더라.”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대연무장 위가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미 승부가 판가름 났다는 뜻인즉.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빠르게 되물었다.

“누가 이겼어요?”

“…제노스라고 했던가. 걔 성이 분명히 ‘카이클’이었지?”

“네? 아, 네.”

“소문은 익히 들어왔고 실제로 본 적도 있지만, 내 예상보다 더한 괴물이더라. 역시 핏줄은 못 속인다는 거겠지.”

“……!”

물론 스승님과 제노스는 구면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나와의 첫 만남 때, 최초 목적은 분명 소문의 제노스를 보기 위해서라고 하셨던 기억 또한 있었으니까.

한데…

“제노스의 핏줄이라뇨?”

“걔 할아버지가 전전대 마탑주잖냐.”

“……!”

“몰랐냐?”

전혀 몰랐다.

하긴 테라는 대대로 마법 왕국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마법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국가였다.

한데 그런 나라에서 역대 마탑주를 단 한 명도 배출해 내지 못했을까?

물론 아니었다.

당장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테라 왕국 출신이었으며.

과거까지 통틀면, 결코 그 못지않은 인물들이 다수 존재했으니까.

더하여 걔 중에는, 아직 죽지 않고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 부분이 바로 비공식 랭킹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현재 공식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있지만, 실력만은 확실한 은퇴자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나는 방금의 대답으로 내 궁금증 또한 해소할 수 있었다.

“…결국 세디스가 졌나 보네요.”

“어쩔 수 없지. 더군다나 저 괴물 녀석은 아직도 실력을 숨기고 있는 느낌이거든.”

“……!”

“물론,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스승님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그저 느낌이라고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저기 봐라. 벌써부터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잖냐?”

“…….”

이미 자리를 떠난 세디스와는 달리, 제노스는 아직 대연무장 아래에 남아 있었다.

축하라도 해주려는 것일까?

일면식이 있는 두 사내가, 그런 제노스에게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중 하나.

전투의 마법사로 불리는 로마르니야, 무슨 이유로 접근하는지 익히 예상이 되었지만,

“전투의 마탑주나 저기 바람의 마탑주나. 공식 랭킹이야 어떻든 내부 서열은 하위권이잖냐. 일종의 사전 호감 작업이랄까? 다른 탑에 인재를 뺏기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스승님이 설명을 덧붙이셨다.

“굳이 바람의 마탑주는 왜요?”

“저만한 재능이라면 주력이 무슨 상관이겠냐? 하물며 아예 클래스가 다른 널 제자로 삼은 나도 있는데.”

“…이해했습니다. 근데, 쟤가 마탑에 소속되려고 할까요?”

“할걸?”

“이 난리통에요?”

“그러니까 더더욱 하려고 하겠지. 마탑을 등에 업은 제노스 델 카이클과 아무런 소속도 없는 제노스 델 카이클. 어느 쪽이 더 유리하겠냐? 뭣 하면, 탑에 헌신할 테니 도움을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고.”

“그건… 해방군 입장에서는 최악이겠네요.”

“관심 있으면 너도 적당한 곳에 들어가던가.”

“진심이세요?”

“그럼 가짜겠냐? 너, 어차피 그러려고 여기 온 거잖아.”

“…….”

부정할 수 없었다.

두 스승님에게 배우면서 그 마음이 옅어지긴 했지만, 마탑에 오려던 최초의 목적은 분명 스승님의 말씀대로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굳이?’라는 마음이 더 강했다.

“…세논 스승님이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응?”

“저더러 초월의 마탑주 밑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나 봐요.”

“뭐? 진짜?”

순간 스승님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뭐지, 이 반응은?

“…그럴 리가 없는데.”

“네?”

“미래를 위한 포석… 뭐 그런 건가?”

“……?”

연이어 알 수 없는 말들을 토해내는 스승님을, 나는 그저 멍청하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

또각, 또각, 또각.

중앙을 가로지르는 고풍스러운 레드 까펫.

귀를 즐겁게 만드는 감미로운 음악 소리를 들으며, 한 여인이 우아하게 걸어 나갔다.

화려하진 않지만,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백의 드레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는 나비 모양의 핀으로 고정까지 시킨 세논이었다.

그 아름다운 자태에, 뭇 사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물론, 길의 끝에 있는 사내.

현 스란의 공왕 또한…

“어서 오시게.”

“세논 벤자민, 존경하는 공왕 전하를 뵙습니다.”

“못 본 사이에 더 아름다워졌군. 본사 이전 건 이후로 처음 보는 건가? 근거 없는 소문에 제법 걱정을 많이 했다네.”

“저야말로 전하의 안위를 걱정하였는데, 이리 강녕하시니 이제는 한시름 놓을 수 있겠습니다.”

“덕분이네.”

세논의 말은 진심이었다.

3년간 누워만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내의 혈색은 좋아 보였으니까.

“초대를 하면서도 의문이었는데, 이리 직접 자리를 빛내주니 진정으로 기쁘군.”

“별 말씀을요.”

“그래. 해묵은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지. 지금은 부디 즐겨주시게. 어찌 보면 이건 자네를 위한 연회나 다름없음이니.”

물론 세논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제아무리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공왕일지라도.

건강상의 이유로 독대는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설령 독대를 허락하더라도, 아직은 함정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하니, 말하려면 지금 해야 했다.

수많은 외부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바로 지금.

“과분한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전하. 이미 잘 아시다시피, 연합의 상황이 썩 좋지가 않습니다.”

“…….”

공왕의 덕담에 맞춰, 음량을 낮춰가던 음악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하고 끊겼다.

그와 동시에 무수한 시선이 세논에게로 향했다.

“…이런. 연합주가 내게 섭섭함이 제법 많은 모양이로군.”

“당치 않습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실 텐데요. 다만, 수천 가족들을 책임지는 수장의 자리에 있는지라, 이리 참지 못하고 급히 말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디 배움이 부족한 여식을 이해해 주시길…….”

“이해하네.”

허나, 말과 표정이 달랐다.

그리 말하는 공왕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 있었으니까.

그의 입장에서야 상대가 대놓고 호의를 거절한 것이니, 이런 반응 또한 충분히 내보일 수 있었지만,

“…하면, 내 회복을 기념하는 연회는 잠시 미뤄두고, 우리 본격적인 대화를 나눠보지.”

이어지는 상대의 반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합은 왜 우리의 은혜를 저버렸나?”

“예? 그게 무슨…….”

“우리는 귀하의 조직에게 실로 많은 배려와 혜택을 베풀었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아는 사람이 왜 우리를 적대시하느냐는 말일세.”

“…하시는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저희가 언제…….”

세논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살기!’

갑작스레 피부를 에는 섬뜩한 기운이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졌으니까.

직후, 세논은 본능에 따라 황급히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매끈한 감촉.

준비한 물건은 그대로 있었다.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우웅!

“……!”

신경 쓴다고 썼지만, 통신용 수정구 특유의 공명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하여, 그 낌새를 감추고자 세논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단언컨대! 저희는 공국에 해가 가는 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틀렸네.”

“네?”

“지금 나는 왜 공국에게 피해를 끼쳤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네. 왜 ‘제국’을 적대시하느냐고 물은 것이지.”

“……!”

당최 저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누구보다 자국의 독립을 꿈꾸는 공왕이, 이리 대놓고 제국이 뒤에 있음을 운운한다?

그것도 이토록 많은 외부인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 정말로 공왕이 맞나요?”

“물론. 내가 바로 현 스란의 태양이네.”

“…만약 그렇다면 변하셨군요. 그것도 매우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한 건 내가 아니네. 세상이지.”

살기가 점차 짙어졌다.

세논의 등 뒤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에이스의 말이 씨가 됐다.

그 거침없는 언행을 보아, 상대는 오늘 단단히 준비를 한 듯싶었다.

이미 그녀가 초대를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치명적인 덫에 걸려든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기에 작금의 상황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제국과 한통속이셨습니까?”

“처음부터? 글쎄. 그 처음이라는 기준을 나는 잘 모르겠군.”

“…대답할 생각이 없으시군요. 하면 여기 계신 타국인들께 여쭙습니다. 공국은 제국이 뒤에 있음을 저리도 당당하게 인정하고 있는데, 저는 그 의중을 심히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훗.”

공왕이 코웃음을 쳤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명백한 조소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점차 확신이 되어 간다.

“이곳에 타국인은 없다네. 모두 자랑스러운 공국의 사람들이지.”

“……!”

“진짜 연회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거든.”

“하지만 정원의 마차들은 분명…….”

“표식을 위조하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

“…….”

그랬던가.

지금 이 순간, 세논은 스스로가 너무도 한심했다.

이따위 함정 같지도 않은 속임수에, 그녀 자신이 걸려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이미 말하지 않았나? 이건 오직 자네만을 위한 연회라고.”

“…….”

“그러게 왜 제국의 뒤를 캐고 다녔나? 정말로 그분들이 모르고 계실 거라 생각했나?”

“…대체 언제부터 제국의 개가 되기로 하신 겁니까?”

“그래도 일국의 왕인데, 개새끼는 듣기 거북하구먼.”

답답한 마음에 의문을 토해봤지만, 이번에도 상대는 비아냥으로 응수했다.

부우욱!

하여, 세논은 줄곧 불편했던 드레스 밑자락을 거침없이 찢어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할 것 같군요. 어차피 궁금한 걸 물어봐야,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을 테니까요.”

“같은 마음이네.”

순간, 세논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미소를 날렸다.

“근데, 제가 정말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

***

앞으로 2번만 더 이기면 제노스와 맞붙는다.

흘러가는 대진표가 그랬다.

그 와중에,

“…….”

“…….”

제1마탑을 나서던 중, 거짓말처럼 그 당사자와 딱 하고 마주쳤다.

“어… 오랜만이네.”

“…그래.”

“잘 지냈냐?”

제노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특별한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니었다.

아카데미 때부터 녀석과 나는 사는 세상 자체가 달랐으니까.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전 승리 축하한다.”

“너도.”

“이대로라면 곧 만나겠네. 그땐 살살 좀 부탁하고.”

“…….”

“그럼 난 이만…….”

결국, 어색함을 참지 못한 내가 그대로 녀석을 지나치려고 했다.

한데,

“…목걸이는 두고 왔나 보네.”

힐끗, 내 목 아래를 흘겨본 제노스가 그리 말했다.

그건 너무나 의외의 말이어서, 순간적으로 내 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뭐?”

“미리 얘기하는데, 넌 나한테 못 이겨. 차라리 지금이라도 테라로 돌아가 친구들을 도와주는 건 어떨까?”

“…그게 뭔 소리냐?”

앞부분이 아니라, 뒷부분의 말이 신경 쓰였다.

엄밀히 얘기하면 반란군.

그것도 수괴의 자식인 제노스는, 해방군인 유리나나 실비아와는 명백한 ‘적’이었다.

차라리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따위의 전형적인 대사였다면 모를까.

이건 도무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는 발언이었는데…….

정작 내 혼을 쏙 빼놓는 말은 바로 다음에 이어졌다.

“그래. 설령 네가 드래곤의 유물을 가지고 있더라도 날 이길 순 없을 거야. 내가 장담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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