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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70화 (70/251)

70화. 파벌

“야, 봤냐?”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내게 유리나가 물었다.

“근데 어디 가냐?”

“산책.”

“나도 같이 가자.”

곧 겉옷을 주섬주섬 걸친 그녀가 내 뒤로 바투 따라붙는다.

…솔직히 썩 반갑지는 않았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리 생각하고 아주 정중하게 거절하려는 순간.

“마법 대전 말이야. 끝까지 진행한다는데?”

“…그건 또 어디서 나온 얘기야?”

“메시지.”

그리곤, 마탑에서 지급받은 메시지 전달 수정구를 꺼내 드는 유리나였다.

그래서 봤냐고 물은 거였나.

그러고 보니, 내 건 방에 두고 왔었지.

뭐, 특별히 놀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니까.

열두 마탑주들을 직접 대면하고 나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외부인들의 안전을 위해 대전을 중단한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이유지만, 결국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제 체면치레를 위해, 고작 열아홉 먹은 아이를 붙잡아 겁박하던 이들이다.

그 삿된 자존심으로 보건대, 대전이 중단될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거라 판단했다.

“어쩔 거야?”

“너는?”

“…어차피 내 목적은 제국의 내전 개입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거였어. 그로 인해 타국인들이 최소한의 경각심이라도 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

“하지만 그건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잖아? 그러니까… 계속해야지.”

유리나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다시금 생각했다.

원래라면, 나 또한 이대로 연합으로 복귀하는 것이 옳은 순서였다.

하다못해, 학장 할아버지의 흔적을 쫓아 칠악을 추적하거나.

물론 전자는 돌아가 봐야 달라질 게 없으니 내키지 않았고.

후자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개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컸기에 보류하고 있었다.

하여, 차라리 제3 선택지인 테라로 가서 현장을 재차 살피고, 정보를 끌어모을 계획이었지만…

“대답은?”

“…아직 고민 중이야.”

“이왕이면 계속하지?”

“왜?”

“나랑 같이 돌아가자며… 는 아니고, 너도 그랜달의 팔찌는 욕심날 것 아냐? 마법사라면.”

“…뭐…….”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

그보다는, 지금 가든 대전을 완전히 끝마치고 돌아가든 시간상으로도 어차피 일주일이 채 차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초의 목적대로 이곳에서 모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럼 일단 같이 대전이나 보러 갈래? 어차피 너나 나나 내일은 일정이 없기도 하고…….”

“같이…?”

“…싫음 말던가.”

유리나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꼭 토라진 연인 같아, 괜히 헛기침을 한 내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상관없기는 한데… 굳이 보고 싶은 대전이라도 있어?”

“제노스 델 카이클.”

“…….”

이건 처음 접하는 소식이다.

“걔가 싸운다고?”

“응. 내일.”

“…….”

“뭐야, 몰랐냐? 심지어 상대는 네 친구라던데.”

“……!”

***

스란 공국의 수도 외곽에 위치한, 자유 연합 본사.

공국의 텃세 탓에 중심가에서 오지로 쫓겨난 지도 어언 3년.

실로 오래간만에, 연합주인 세논이 외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정말 가실 겁니까?”

“응.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잖아?”

“굳이 직접 가지 않으셔도…….”

“아니. 내가 직접 나서야 해. 이런 자리까지 에이스에게 떠넘길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연합주님이 모습을 드러내면 공국이… 아니, 대륙 전체가 발칵 뒤집힐 겁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숨어만 지내라고? 이미 조직 전체가 나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3년이 넘도록 하고 있는데.”

“그건 절대로 연합주님 탓이 아닙니다. 조직원들 누구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그제야 세논이 뒤를 돌아봤다.

은테 안경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여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세실리아. 사랑하는 내 동생.”

“……!”

“나는 이제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게 무슨…….”

세실리아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리 말하는 그녀의 상관이자 언니가, 무척이나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절로 심장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눈앞에서 소중한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평생 한 번으로 족하거든.”

“언니…!”

“그래서 말인데…….”

한참이나 머뭇거리던 세논이 이윽고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혹시나. 그럴 리는 절대로 없겠지만 말이야.”

“어…?”

“만에 하나라도 내가 잘못된다면… 곁에서 에이스를 잘 보필해 줄 수 있을까?”

***

다음날, 제1마탑.

총 참가 인원이 이제 백여 명밖에 남지 않은 5차전부터는, 대전 또한 제1마탑과 제2마탑 두 곳에서만 치러졌다.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던 만큼, 안전 차원에서라도 탑에서 취한 조치였다.

더하여, 관계자와 일부 고위급 인사들을 제외한 사상 초유의 ‘무관중’ 대전을 진행하기로 했다.

자연히 반발이 뒤따랐음은 당연했다.

물론, 마탑은 2차 인명 피해에 대한 재발 방지를 이유로 그 모든 논란을 잠재웠지만.

“누가 이길 거라고 봐? 이전에 보니까 네 친구도 보통이 아니던데.”

“분명 보통은 아니지.”

“실제로 마검사는 처음 보는데, 괜히 내가 설레네.”

“…그러게. 벌써 시작하려나 본데.”

그 말과 동시에, 나와 유리나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대연무장 중앙을 기준으로, 좌측 편에 선 세디스가 특유의 통통 튀는 움직임으로 연검을 휘돌린다.

그에 비해, 우측의 제노스는 가만히 양손을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세간의 평은 비슷했다.

오십 대 오십.

제노스가 대륙 전체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역대급 천재는 맞았으나, 세디스 또한 당대 최초의 마검사였다.

“시작하도록.”

이윽고, 사회자가 대전 개시를 선언했다.

그 순간.

스팟!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마치 선공을 양보하면 지기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먼저, 세디스의 검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휘리릭! 휘리리리릭!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것일까?

바람을 한껏 머금은 연검의 움직임은, 이내 하나의 폭풍우를 만들어냈다.

마나와 검기가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를 일으킨 결과였다.

째재재재재재재재쟁!

놀라운 것은, 피할 거라 생각했던 제노스가 그걸 정면에서 받아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각도로 꺾여 들어올지 모르는 기기묘묘한 검.

심지어 그 검이 만들어내는 것은 광풍이었다.

일반인이라면 눈조차 뜨기 힘들 그 맹공을, 제노스는 여유롭게 받아내고 있었다.

고작,

투쾅!

“……!”

마나로 이루어진 한 자루의 창으로.

놀랍다.

진심으로 경탄스러웠다.

녀석은 아카데미 때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

이만 한 거리에서도, 일격 일격에 무시하지 못할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공격을 쳐내는 건 결코 답이 아니었다.

쇄도해 오는 연검을 후려치게 되면, 자연히 다음 공격은 더 강해질 테니까.

마치 채찍과도 같은 그 유연한 무기는, 충격을 받을수록 도리어 가속의 힘이 붙는다.

한데, 녀석은 실로 기묘한 수법으로 그걸 무력화시켰다.

마나의 흐름에 민감한 내게는 똑똑히 보였다.

충돌 직전, 마치 검이 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광경이.

저걸 ‘흡(吸)’의 묘리라고 했던가?

언젠가 서적에서 본 기억이 있다.

물론, 마법이 아닌 ‘검술’과 관련된 서적에서.

내심 지금의 나라면… 이라고 생각했는데.

방금의 충돌만 봐도 그 생각이 얼마나 오판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정도로, 녀석은 격이 달랐으니까.

“…….”

언젠가부터 꼭 쥐어진 내 주먹은 땀으로 흥건했다.

제노스 델 카이클.

만약 이대로 나와 저 녀석이 계속해서 올라가게 된다면, 결국에는…

툭.

“……?”

순간 어깨 위로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 세타 쿤 이그니스.

“……!”

- 잠깐 나 좀 보지.

재차 머릿속을 울리는 전언 마법에, 그제야 내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유리나가 아니다.

바로 뒤도 아니었다.

상대는 최소 사십여 미터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 놀라운 한 수에, 가볍게 놀란 내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잠깐… 화장실.”

“…….”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유리나의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

내가 있던 곳은 관중석이 자리한 4층이었다.

한데, 상대는 순식간에 1층으로 내려갔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아예 탑 바깥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어디까지 가시려는 겁니까?”

“생각보다 더 꼴통이더구나, 네놈은.”

“예?”

“하긴 그러니까 내게도 그따위 건방을 떨어댈 수 있었던 거겠지.”

연신 혀를 차대는 상대의 자그마한 등짝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그 상태로 얼마나 걸었을까?

언젠가부터 탑에서 들려오는 소음마저 희미해질 무렵.

우뚝.

이내 상대가 멈춰 섰다.

그리곤, 그제야 몸을 돌렸다.

아타락시아 페르잔.

외형은 어린아이의 것이나 뭇 대륙인들이 인정하는 괴물 중의 괴물.

“눈치가 없지는 않은 듯하니, 이미 알고는 있겠지? 내가 네놈을 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왔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젠버그처럼 핍박하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탑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예?”

“대륙인들은 생각한다. 세상 그 어느 조직보다 폐쇄적이나, 그렇기에 그 어느 조직보다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하는 것이 마탑이라고.”

“그야 뭐…….”

“실로 개소리다.”

“…네?”

“마탑을 대륙 최고로 만든 것은 끊임없는 경쟁이다. 맨날 경쟁이랍시고 으르렁대는 것들이 친할 리가 있겠느냐?”

“…….”

“아는지 모르겠다만, 이곳에도 파벌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탑주를 해먹고 있는 이들. 소위 1마탑주 쪽 파벌이 가장 세가 강하지. 실제로 외부 활동은 모두 그들이 하고 있기도 하고.”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그 1마탑주 쪽 파벌이라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에르사 아인하르트, 레이나 더글린, 엑스토나 제우스, 간다르 테이들러, 아이젠버그. 이상 다섯은 현재 제1마탑주의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는 모두 잭 디스페로우 쪽 사람들이지.”

“잭 디스페로우라면…….”

“파괴의 마법사다. 물론 나처럼 딱히 파벌 싸움에 관심 없는 스실라 정도는 제외해 두고.”

“…….”

수장까지 무려 여섯.

과반수가 1마탑주 쪽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당신은요?”

“난 중립이야. 사내 정치 따위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고, 마법 외에는 흥미도 없고.”

“…….”

“그러니, 거래하자.”

“…갑자기요?”

“원래는 일전에 내기한 내용대로, 네가 우승하지 못하면 얘기조차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만…….”

익숙한 흐름이다.

그도 이제 내 재능을 완전히 자각했을 테니까.

실상 아이젠버그를 상대로 선보인 한 수는, 이런 의도 또한 없지 않아 있었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 말씀은…….”

“내 후계자가 되라는 의미다. 그러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 아니었나?”

“…….”

“내가 직접 마법을 가르쳐 줌은 물론이고, 네놈을 계속해서 도와주겠다. 이 몸이 네 확실한 후원자가 되어주겠다는 뜻이다.”

실로 엄청난 말이었다.

받아만 들이면, 명실상부 대륙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를 ‘빽’으로 두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제안은 아니었다.

“거절하겠습니다.”

“……?”

표정 한번 가관이다.

설마하니 내가 거절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 상대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게는 이미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되는 스승님이 계셨으니까.

그러니 거래의 내용을 바꿔 제안한다.

이건 이제 내 주특기나 다름없었다.

“알다시피, 제게는 이미 스승님들이 계십니다.”

“그건 상관없어. 세논과는 이미 얘기가 끝났으니까.”

“……!”

그 세논 스승님이?

어떤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생각했던 말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

“…동등한 상생 관계로 가시지요. 서로가 필요할 때 돕기도 하고 정보도 제공하는.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생각으로 그따위 헛소리를 지껄이는지는 모르겠다만, 혹 내가 누구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대초월의 마법사, 아타락시아 페르잔 님.”

“…한데도 네놈은 건방지게 그따위…….”

나는 빠르게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대신, 당장 탑주님께서 혹할 만한 정보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뭐?”

“일전의 내기. 그 드래곤의 정체에 대한 정보입니다.”

“……!”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것은, 문자 그대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혹, ‘라그하일’이라는 이름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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