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67화 (67/251)

67화. 심문

온몸이 지끈거렸다.

이곳은 제1마탑 지하에 위치한 외부인 접객실.

평생을 살아도 한 번을 볼까 싶은 대단한 위인들.

열두 마탑주들에게, 보호라는 이름의 ‘연행’을 당한 것도 벌써 3시간이 훌쩍 지났다.

“언제까지 가둬둘 생각인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으니까.

칠악의 하나, 럼프의 말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입에 담기조차 싫은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면…….

‘…복수.’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졌기 때문일까?

심장 부근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역시나 빛의 마나는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세논 스승님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설령 고위 마법사라 불리는 6써클에 오를지라도, ‘빛’ 계열 마법은 4써클을 다루는 게 고작일 거라고.

더불어 계속해서 훈련을 거듭하지 않는 이상, 심장의 고리에도 크나큰 무리를 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무려 5써클에 해당하는 마나를 한 번에 쏟아부었으니…….

똑, 똑, 똑.

애써 통증을 참아내고 있을 때,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3번.

한낱 문 두들기는 소음에서조차 절제감이 느껴졌다.

방문한 손님의 정체를 생각하며 내 몸이 긴장감으로 굳어갈 때.

“들어가도 되나요?”

“……!”

일전에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에, 그제야 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오세요.”

“실례할게요.”

곧이어, 한 인영이 방 내부로 들어섰다.

외모에서부터 자애로움이 물씬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아무리 많게 잡아도 3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지런한 금발을 한데 묶은 그녀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소개가 늦었네요. 치유의 마탑주 스실라 샤르넬리예요. 그냥 편하게 스실라라고 불러주세요.”

“세타 쿤 이그니스입니다.”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덕분에요.”

“다행이네요.”

스실라 씨가 제 가슴까지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성격이 어떤지는 몰라도, 겉모습만 보면 어딘가의 성녀님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저한테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아, 그게…….”

내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이내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는다.

“…로마르니에게 들었어요. 세타 님이 빛의 마나를 사용하셨다구요.”

“네, 사실입니다.”

“무례인 줄은 알지만, 그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다.

허나, 이걸 어디까지 얘기해 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대를 믿고 안 믿고가 문제가 아니라, 세논 스승님은 마탑에 그리 좋은 감정이 없어 보이셨으니까.

그런 거라면, 차라리 적당히 둘러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짐작하셨다시피, 저는 초월의 마탑주 님과 비슷한 체질을 지녔습니다. 주력이란 개념은 제게 딱히 의미가 없을뿐더러, 빛도 그중 하나일 뿐인 거죠.”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오늘 이후로 학계 전체가 발칵 뒤집히겠네요. 아무리 ‘초월’이라도 만능은 아니니까요.”

…그랬던가.

허나, 내 대단함을 어필하고자 꺼낸 말은 아니었기에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령 라이트 마법 정도는 어지간한 마법사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세타 님이 사용한 마법이 단순한 라이트는 아니었죠.”

“그건…….”

“당장 저도 라이트 정도는 무리 없이 펼쳐낼 수 있지만, 거기에 ‘물리력’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는 제가 알기로 극소수에요.”

마탑주의 명성은 허언이 아니라는 듯, 상대는 재차 정곡을 찔러왔다.

“그걸 당대의 대륙으로 한정하면… 딱 한 명 있겠네요. 물론 세타 님은 제외하고요.”

“아무리 그래도 딱 한 명이라니…….”

“그래서 말인데, 세논과는 무슨 사이시죠?”

멈칫.

거짓말처럼 내 움직임이 멎었다.

“…스승님을 아시나요?”

“스승님…?”

일순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스실라 씨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논이 제자를 받은 모양이네요. 그것도 이토록 재능 있는 분을…….”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저에 대해서는 따로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왜인지 스실라 씨의 표정이 상당히 침울해 보였기에, 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 스승님께서는 마탑을 꺼려하셨습니다. 마탑과 관련된 얘기는 평소에도 언급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하셨죠.”

“세논의 입장에서라면… 그럴 수밖에요.”

“……?”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보며 그녀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세논이 얘기하지 않은 것이라면, 제가 주제넘게 나설 수는 없는 법이겠죠. 그래서 말인데, 혹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요?”

“세타 님은 곧 이곳 최상층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게 될 거에요. 다른 탑주님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요.”

“…….”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으니까.

사건 사고가 터지면 그 책임 소재부터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디를 가나 똑같았다.

“우선적으로, 빛의 마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감추세요. 나머진 제가 어떻게든 도와드릴 테니까요.”

도와준다라…….

점차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 간다.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자세한 설명은 드릴 수 없어요. 다만, 말씀드렸다시피 세타 님에게 결코 손해 가는 일은 아닐 거예요.”

첫 만남 이후 줄곧 느껴오던 것이지만.

스실라 씨에게는, 상대가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묘한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목격자가 한 분 더 계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목격자…? 아, 로마르니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는 제 부탁을 들어줄 테니까요.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왜인지 한참이나 망설이는 그녀였다.

잠시 후.

“…혹, 세논이 ‘아락사스’에 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던가요?”

“네?”

벌컥!

그 순간, 내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방의 출입문이 벌컥 열어 젖혀졌다.

“야! 괜찮냐?”

“…….”

나와 상대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을 향했다.

출입구 쪽에서, 머릿결마저 헝클어진 유리나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찰나,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스실라 씨가 이내 싱긋 미소 지었다.

“…여자친구?”

“아닙니다.”

정색까지 해가며 대답하는 나를 보며, 스실라 씨가 ‘풋’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제가 불청객이 되었네요. 이만 가볼게요.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해요.”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

“또 봐요. 세타 쿤 이그니스 님.”

기어이 몸을 돌린 그녀가 곧장 출입문을 나선다.

“그럼…….”

멍청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유리나에게 목례를 해주는 것도 잊지 않으며.

“앗, 넵.”

화들짝 놀란 유리나가 잽싸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쩝.”

괜스레 뻘쭘해진 나는 그저 애꿎은 콧잔등만 긁적일 뿐이었다.

***

유리나가 변고를 접한 것은 기껏해야 30분 전의 일이었다.

칠악이 또 나타났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랐던지.

대전만 아니었다면 곧바로 워프 게이트를 이용했을 터였다.

그 명성답게, 마탑은 탑 간의 이동을 위한 워프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이 또한 이용하려면 돈이 들었다.

그것도 많이.

“어… 괜찮냐?”

“멀쩡해.”

“…겉보기에는 뭐 별 문제없어 보이기는 한다만…….”

“왜, 걱정했냐?”

“걱정은 얼어 죽을.”

힐끗, 유리나의 시선이 세타의 위아래를 훑었다.

“이 정도면 액땜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일반인들은 평생 마주치지도 못할 것들의 습격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받아?”

“…한 번은 우연이라도, 그게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지 않을까?”

“……!”

순간 유리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너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뜻이야? 걔들이 무슨 이유로?”

“글쎄… 그걸 지금부터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순간 유리나는 뚫어질 듯한 상대의 시선을 느꼈다.

“유리나.”

“어, 어?”

“너는 마법 대전이 끝나는 대로 곧장 테라로 돌아갈 생각이지?”

“…물론이지. 계획만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갔을걸?”

“그럼, 그때 나도 같이 가자.”

“……!”

잘못 들었나?

일순간 유리나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지, 진짜?”

“그래. 갈 때 얘기해 줘. 나도 테라에 중요한 볼일이 생겼거든.”

***

제1마탑 최상층.

스실라 씨가 예고했던 대로, 그리 오래지 않아 나는 이곳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그사이에 꽤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소식 또한 접했다.

바로, 럼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비보 말이다.

제아무리 식이 인형일지라도, 그만한 폭살 능력이라면 분명 본체 또한 근처에 있었을 텐데…….

“세타 쿤 이그니스라고 했나?”

“네.”

“직접 전투를 벌인 네가 한번 얘기해 보거라. 칠악이 대관절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지를 말이다.”

뭇 강자들의 시선이 모조리 내게로 집중되었다.

명실상부 대륙 정점에 자리한, 12인의 마법사.

누군가는 이들을 탑주라 칭하고.

또 이들 중 몇몇은 인간의 한계라고까지 칭해지는 8써클 아크 메이지로 불렸다.

…각설하고, 저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거 애한테 쪽팔리게… 설명이라면 제가 이미 다 드렸지 않습니까?”

“그대는 조용히 하라. 로마르니.”

로마르니를 제지한 이는, 일견 보기에도 깐깐함이 느껴지는 중년 사내였다.

11마탑주, 바람의 마도사 아이젠버그.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같은 탑주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총합 8남 4녀.

이미 접해본 얼굴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조금의 거짓이라도 느껴진다면, 내 직접 네게 징벌을 가할 것이다.”

“좋은 생각이시네요. 그럼 바람의 탑주 님이 전적으로 담당하시는 걸로 하고, 저는 이만 가봐도 될까요? 저런 평범하다 못해 못생긴 애는 절대로 제 취향이 아니라서…….”

“끌끌. 실로 양파 같은 아이로고. 이런 자리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구먼. 오래간만에 아주 흥미가 생겨.”

…생긴 것만큼이나 성격은 모두가 달랐다.

“대답할 생각이 없나? 하면, 칠악과는 무슨 관계더냐?”

“예?”

“아카데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평생 한 번도 마주치기 힘든 칠악을 두 번씩이나. 그것도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엮이게 되면, 우리로서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짬 안 되면 알아서 움직이는 법이라고 했던가.

연이어 나를 몰아붙이고 있는 이는, 제1마탑의 부탑주였다.

개인적인 볼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 탑주를 대신하여, 유일하게 부탑주인 그가 자리한 상황이었다.

“그건 저도 알고 싶습니다만…….”

“흥. 되었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아니, 그게 아니라…….”

성격 급한 그가, 내 대답을 더 듣지도 않고 주변을 둘러본다.

“여러 탑주님들께 제안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 아이에게 ‘마나 금제’를 가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무슨 뜻인가?”

“인간은 본래 목숨이 경각에 달해야지만 진실을 말하는 법이라지요. 하니 말에서 조금이라도 거짓이 느껴진다면, 아예 금제를 풀어주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마나 불구자로 살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실토하겠지요.”

미친…….

내가 곧바로 발작하려는 순간, 잠자코 듣고 있던 스실라 씨가 한발 먼저 앞으로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수십만 마법사들의 표본이에요. 설마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할 생각이신가요?”

“그건…….”

그러자, 이번에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외모를 가진 냉미녀가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하지만, 1부탑주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사안이 사안이니까요. 이번 일은 저희 마탑 전체의 명예가 걸린 일입니다. 탑 한복판에서 사악한 존재가 나타난 것도 수치스러운데, 그 흉수는 흔적조차 잡아내지 못하다니요.”

“그래서 저는 이 아이가 의심된다는 겁니다! 혹 사악한 그들과 어떤 커넥션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 탑주님들도 개막전에서 보셨다시피, 이 아이의 재능은 그 나이대로 보기에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예의 1부탑주라는 놈이 기다렸다는 듯 냉미녀의 말을 거들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대로라면 화병으로 먼저 죽을 것 같으니까.

하여, 이번에야말로 그 속마음을 입 밖으로 토해내고야 말았다.

“…지랄.”

“……!”

“헛소리 좀 작작 하시죠. 흉수는 능력 부족으로 놓치셨고, 책임소재는 찾아야겠고. 그래서 그 대상을 저로 하겠다, 이 말씀 아니십니까? 혼자 깨끗한 척, 고고한 척. 무슨 말씀을 그리 돌려 하시는지요?”

“…….”

일순간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당사자인 1부탑주는, 아예 할 말을 잃고 입만 뻐끔거렸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은 위로 들어 나를 가리킨 채로.

“…….”

“푸핫!”

그 외에 말없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 아예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믿었던 전투의 마탑주 로마르니의 반응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저거 완전 또라이였잖아?”

그는, 나만큼이나 솔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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